본문 바로가기
인사이드 비니(석태문 베트남 이야기)

쌀국수 세계로 나가다

by 자한형 2023. 1. 23.
728x90

쌀국수 세계로 나가다/석태문

베트남 음식은 담백하다. 쌀국수는 담백한 베트남 음식을 대표한다. 다이어트를 원한다면 쌀국수를 먹어라. 세 끼를 여유있게 먹어도 살이 빠진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선수들에게 쌀국수를 못 먹게 했다. 근기가 적어 체력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필자는 베트남 생활 3개월만에 체중 5kg이 가볍게 빠졌다. 감량을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쌀국수를 좀 많이 먹은 것뿐이다. 박항서 감독의 말이 이해되었다.

국수를 만드는 곡물은 밀, 메밀, 쌀 등인데 약간의 찰기가 있으면 가능하다. 우리도 옛날에 메밀이 흔했다. 메밀을 가루내어 메밀국수를 만들었다.

중국은 밀이 많아 밀국수인 면(, noodle)이 되었다. 쌀이 많은 베트남은 쌀가루를 내어 쌀국수가 되었다.

압면(押麵)방식 분(bun)과 하분(河紛)방식 퍼(Pho)·미꽝(Mi Quang)

쌀국수 제조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압면(押麵) 방식이다. 반죽을 구멍이 뚫린 틀에 넣고 밀어서 끓는 물에 삶아 만든 국수이다. (bun) 제조방식이다.

하분(河紛) 방식도 있다. 쌀가루 국물을 가열판 위에 얕고 넓게 펴서, 익힌 후 자른 국수이다. 오늘날의 퍼(Pho), 미꽝(Mi Quang) 제조방식이다.

분은 한국의 국수와 같은 전형적인 둥근 형태의 쌀국수이다. 퍼와 미꽝은 칼국수처럼 넓적한 형태이다.

둥글고(), 넓적한(, 미꽝) 베트남 쌀국수는 동북아 지역에서 오랫동안 발전해온 국수(둥근), 칼국수(넓적한)와 거의 같다. 동북아 지역에서 발원한 국수가 베트남 쌀국수의 역사속에 면면히 계승된 것이다.

1975년 통일베트남 수립을 전후하여 보트피플(Boat people)이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월남 패망 직전 다낭에도 수많은 보트피플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배가 침몰돼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다낭시는 슬픈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2003년 미케 해변의 끝자락 손짜반도에 링잉사(靈應寺)를 건립했다.

링잉사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세계 각지에 둥지를 튼 보트피플이 쌀국수를 세계음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쌀국수 세계화는 정책영향도 컸다. 1986년 베트남은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으로 세계시장에 빗장을 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세계로 나갔고, 지구촌 사람들도 베트남을 찾았다. 빈번한 사람 교류는 쌀국수가 빠르게 지구촌에 자리 잡도록 하였다.

쌀국수는 만들기 쉽다.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별도 반찬이나 세련된 요리법도 필요하지 않다. 보트피플의 허기를 면하고, 생계도 이어주며, 개방정책도 가세하면서 쌀국수는 빠르게 지구촌 음식으로 편입되었다.

분보후에(사진=인터넷 갭쳐)

후띠우(후띠에우)(사진=인터넷 갭쳐)

미꽝(사진=인터넷 캡쳐)

전통의 쌀국수 면()에 프랑스 포토피 쇠고기 국물 가미

베트남 사람들은 언제부터 쌀국수를 먹었을까.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1884)를 기점으로 삼는다. 프랑스의 가정식 요리 포토푀(pot-au-feu)가 발단이다. 프랑스 냄비인 토푀(au-feu)에 쇠고기, 각종 채소, 허브 등을 넣고 끓인 요리가 포토푀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쇠고기, 채소 등 건더기만 건져먹고 국물은 버렸다. 국물 문화가 없었던 프랑스 사람들이 국물을 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보기에 포토푀 국물은 쇠고기를 넣고 두 시간 이상을 끓인 육수였다. 포토푀 육수는 자연스럽게 베트남의 쌀국수 문화에 포함되었다.

쇠고기 육수에 삶은 쇠고기 수육까지 들어간 쌀국수는 기존의 쌀국수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새로 발명된 쌀국수 브랜드로 포토푀 요리명을 변형하여 퍼(pho) 쌀국수가 탄생된 배경일 것이다. 그러므로 퍼를 쌀국수의 시작이다’, ‘쌀국수 역사는 백년에 불과하다란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포토푀 육수에 넣었던 쌀국수 면()은 이미 존재했다. 베트남 쌀국수의 기원은 천년에 이른다. 서기 1000년경에 중국의 농작물과 식품이 대거 베트남에 전래되었다. 여기에 쌀국수로 짐작되는 분(bun)도 함께 들어왔다. 전래된 분은 중국의 밀가루 면(noodle)이었다.

밀이 생산되지 않았던 베트남은 분의 원료를 쌀가루로 대체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이 분(bun)이란 이름으로 쌀국수를 먹은 역사가 천년이 되는 이유이다.

분으로 전해온 쌀국수의 형태는 찾기 힘들다. 국수 제조방식에서 확인된 것처럼 둥근 모양()과 칼국수 모양()의 쌀국수가 같이 들어왔을 것이다.

쌀국수 백년 설의 허구는 또 있다. 응웬 왕조는 1802년 베트남 최초로 현재의 국경과 거의 유사한 통일왕조를 수립하였다. 왕조의 수도 후에(Hue)는 기존의 왕조 수도를 독점했던 하노이와는 달랐다.

자체 궁중요리가 없어서 서민음식이 궁중음식이 되었다. 응웬 왕조의 궁중음식이 소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후에에는 왕조수립 이전부터 서민음식으로 사랑받아왔던 쌀국수, (bun)이 있었다. 후에가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 쌀국수 면()에 쇠고기()가 들어가고, 수도의 명칭까지 포함되어 쌀국수 브랜드 분보후에’(bun bo hue)가 완성된 것이다.

분보후에는 (bun) 면에 쇠고기(bo)를 넣어서 먹었던 후에 지방의 쌀국수란 뜻이다.

쌀국수는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오랜 역사만큼 그 종류도 다양하다.

면의 모양, 추가되는 식재료에 따라 천차만별의 신상 쌀국수가 나올 수 있다. 필자는 쌀국수를 크게 젖은 면인 습면(濕麵)과 마른 면인 건면(乾麵)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습면은 분, , 미꽝, 건면은 미엔(Mien), 후띠우(Hu Tieu)가 대표적이다.

(Bun) 쌀국수하노이 대표 음식, 오바마도 분짜식당 행보

우리가 즐겨 먹는 분 쌀국수는 기계로 면을 뽑는다.

지역의 작은 분 공장은 새벽 2시에 작업을 시작하여 4시에 생산을 마치고, 바로 지역 소비처에 공급한다. 필자는 베트남 친구에게 부탁하여 오전 10시에 다낭의 작은 분 공장을 찾았다.

쌀을 불리고, 분쇄해 가루로 만들고, 반죽하고, 면을 익히고 뽑는 과정 등 제조과정에 특별한 비법이라곤 없는 평범한 공정이었다. 우리가 떡가래를 뽑는 과정과 비슷했다.

분쌀국수에 구운 쇠고지 짜(cha)를 넣은 분짜 쌀국수.

분 쌀국수 중에는 분보후에(bun bo hue)가 유명하다. 왕조의 음식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후에에 가면 매콤한 소스가 들어간 붉은 색 도는 분보후에를 쉽게 먹을 수 있다. 분짜(bun cha)는 하노이를 대표하는 분 쌀국수이다.

숯불로 구운 고기, (cha)를 분에 넣어 분짜가 되었다. 20165월 하노이를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깜짝 행보로 간 곳이 분짜식당 호엉리엔이다. 필자도 지난 5월 하노이 출장길에 그 식당을 찾았다.

4층 건물인데 손님이 엄청 많았다. 대통령이 앉았던 2층 자리는 유명선수의 결번처럼 비워두었다. 분에 구운 고기를 넣고, 생선류(한국의 오뎅과 비슷)를 넣은 분짜까(bun cha ca)도 서민들이 많이 찾는 분 쌀국수이다.

(Pho) 쌀국수기본은 퍼보, 쇠고기(bo)부위 따라 이름 달라져

퍼는 칼국수처럼 넓적한 면이다. 화덕에 물을 끓이고, 그 위에 평평하고 얇은 철판을 올린다. 쌀가루 물을 얇게 바르고 뚜껑을 잠시 덮어두면 면이 익는다. 그것을 얇게 썬 것이 퍼 면이다. 분보다 기계화는 늦었으나, 최근 퍼도 빠르게 기계화되고 있다.

투입되는 식자재에 따라 퍼의 이름이 달라진다. 가장 기본은 퍼보(pho bo)이다. 쇠고기(bo)의 부위나 상태에 따라 쌀국수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퍼보남(pho bo nam)은 스테이크 부위를 수육으로 만든 쌀국수이다. 퍼보따이(pho bo tai)는 갈비살 부위를 살짝 익혀 넣은 쌀국수이다.

퍼보거우( pho bo gau)는 스테이크에 기름(fat)이 붙어있는 부위를 수육으로 만든 쌀국수이다. 이 밖에 뒷다리 부위 고기를 넣은 퍼보붑(pho bo bup), 쇠고기를 갈아서 미트볼 형태로 만든 퍼보비엔(pho bo vien) 등 다양한 쇠고기 퍼가 있다.

다낭 등 중부지방의 대표 쌀국수 미꽝. 면의 두께도 넓이도 퍼의 두배다.

미꽝(Mi Quang)두께넓이 퍼의 두배, 채소 많이 들어가

미꽝은 다낭, 광남성 등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발전한 쌀국수이다. 미꽝 면 제조과정은 퍼 쌀국수와 유사하다.

미꽝 면은 두께, 넓이가 모두 퍼 면의 두 배다. 쌀가루 국물을 한 겹 바르고 익힌 후, 다시 한 겹을 더 바르니, 두께가 2(10mm)가 된다.

퍼 면보다 2배 넓게 자르니 넓이도 두 배가 되는 것이다. 퍼 면과 미꽝 면이 같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이유이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 퍼면미꽝면 모두 기계공정으로 많이 생산된다.

미꽝은 물이 적은 비빔국수와 같다. 고기, 어묵, 땅콩, 채소 등을 많이 넣는다. 계란 노른자를 반죽에 섞으면 노란색 미꽝 면이 된다. 미꽝 면은 채소가 많이 들어가 채식식당(vegan food)의 주요 메뉴로 정착되었다.

필자가 자주 가는 채식식당은 한 달에 4~5회만 문을 연다. 월 두차례(음력 1, 15) 채식하는 전통에 맞춘 것이다. 다낭을 찾는 사람은 버킷리스트 음식으로 미꽝을 추천하고 싶다.

건면 쌀국수찹쌀과 고구마 등 다른 재료도 사용, 미엔과 후띠우

건면을 대표하는 쌀국수는 미엔(Mien)과 후띠우(Hi Tieu)이다. 건면은 찹쌀과 고구마 등 다른 식재료로 만든다.

미엔은 찹쌀로 많이 만들지만 녹두콩, 고구마 등 다른 식재료도 사용한다. 면의 건습 차이를 제외하면 분, 퍼와 미엔 쌀국수에 들어가는 추가 식재료는 대부분 같다. 후띠우는 호치민 등 베트남 남부를 대표하는 건면 쌀국수이다. 후띠우를 찹쌀이 아닌 멥쌀로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미엔과 후띠우는 제조과정에 약간 다르다.

삶은 후 젖은 상태에서 면을 자르면 미엔, 말린 후에 자르면 후띠우가 된다. 제조하는 지역의 차이(미엔; 북부, 후띠우; 남쪽)가 브랜드 차이를 만든 것이다.

베트남에서 건면이 나온 것은 오래되었다. 건면은 습면보다 장시간 소비, 먼거리 유통이 가능하다. 건면인 미엔, 후띠우는 초기에는 습면의 보완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쌀국수의 판매거리와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건면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 생각된다.

건면은 장거리운송과 장기보관이 가능해 점점 사용이 늘고 있고 세계시장으로 수출되는 등 쌀국수 시장 판도를 바꾸고있다.

쌀국수시장 판도 바꾸는 건면장거리 운송으로 세계시장 수출

건면 쌀국수는 베트남 쌀국수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새벽 2시에 생산해서 당일 지역 소비시장에 공급하는 습면 쌀국수 생산공장이 대규모 건면 쌀국수 제조업체의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쌀국수의 건면화, 규모화는 베트남의 오랜 쌀국수 생산소비 방식을 무너뜨릴 수 있다.

지역의 작은 쌀국수 공장은 적지않은 위생 환경 문제가 있다. 이것부터 해결해야 소비자들의 식품안전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지역시장에서는 습면이 건면보다 맛의 우위에 있음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의식적인 소비자 참여와 정책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건면으로 생산된 분, , 미꽝이 벌써 장거리 운송을 통해 한국과 세계시장으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에도 쌀국수가 붐을 이루고 있다.

전문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앞세워 신상품 쌀국수가 출시되고 있다. 소비자의 폭발적인 주목도 받고 있다. 이들 식당들은 모두 베트남에서 생산한 건면 쌀국수를 수입해서 사용한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건면 쌀국수가 쌀 소비를 촉진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5~10% 쌀가루가 들어간 쌀국수로 만족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100% 건면 쌀국수로 소비자 입맛을 유혹할 수 있다면, 밀 수입도 상당부분 대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