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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오뉴월의 서리

by 자한형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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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의 서리

어느지인으로부터 들었던 얘기의 한토막이다. 오뉴월의 서리처럼 가혹하기 그지 없고 처절한 복수극의 말로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오래전에 M이란 한 여자가 있었다. M씨는 요즘의 표현을 빌린다면 골드미스에 속하는 사람이다. 단지 나이가 좀 들었다는 부분과 가족을 갖지 못한 부분만이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오로지 일에 매진한 결과 제법 건실한 출판사를 운영하는 CEO로 명망도 높았다. M40대 중반의 나이로 아직 미혼이라는 게 항상 문제가 되었다. 회사직원도 10여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그 직원들 중에는 부장급의 K란 중년 남자가 있었다. 결혼한 지 10년이나 되었고 단란한 가정도 이루고 있었다.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새끼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약점으로 눈에 띄는 것은 다리를 절뚝거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K부장은 특출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여자들을 홀리는 기교와 테크닉이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소리 소문 없이 사내에 쫙 퍼져 있었다. K부장의 솜씨를 맛본 이들은 그 기막힘에 대하여 구구절절 칭찬일색이었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내용은 점점 확대 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자연히 M사장도 이러한 사내의 움직임을 간파하게 되었다. 그러자 M사장은 K부장을 유혹할 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늦은 퇴근시간 무렵에 K부장이 결재를 받으러 사장실로 들어왔다. M사장은 결재 후에 조용히 응접탁자에 앉아 K부장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K부장 저녁에 어떻게 시간 좀 낼 수 있겠는가?”그러자 K부장은 시간이 없다고 상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사장의 제안을 쉽사리 거절할 만한 배짱도 부릴 여유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회사근처의 일근 일식집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며 가볍게 약주를 한잔하였다. 이런 저녁식사 자리가 몇 차례 이어지던 어느 날 급기야 M사장의 집으로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깊은 관계에 빠져버리게 된다. K부장의 대단한 기교에 안달이 난 여사장은 결정적인 계략까지 꾸미게 되었다. 도저히 한시라도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M사장은 K부장에게 이혼을 종용하게 되었고 5억원을 건네주었다. K부장은 눈물을 머금은 채 이혼을 하고 말았다. K부장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런 다음에 M사장의 집에 기식(寄食)하게 되었다. 그렇게 M사장은 지극정성을 다해 K부장을 떠받들어 모셨다. 남다른 기술과 테크닉은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M사장의 충동을 되살아나게 했고 아주 평온해 보였고 안락해 보였으며 행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만사가 물 흐르듯이 유연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쉽게 흘러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육욕에 매달리는 M사장에 대해 K부장은 점차 피로해하고 권태를 느끼게 되어 형식적이 되고 피상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K부장은 옛 생각이 났고 전부인과 자식도 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M사장 몰래 가족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M사장이 몰래 주는 용돈이랑 재물들을 계속해서 챙겨두었다가 전 부인에게 갖다 주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M사장은 K부장의 동태를 다 간파하게 되었다. 그러자 M사장은 사업전체를 K부장에게 물려주다시피 해놓고 복수극을 벌이게 된다. 자신이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대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옛정을 못 잊어 안달하는 것에 대하여 비수를 들이대게 된 것이다.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나가도록 종용해놓고 막판에는 부도처리를 해서 뒤통수를 쳐버린다. 회사도 대표이사직까지 K에게 물려주게 된다. 그런상태에서 멋모르고 사업을 확장하다가 덜컥 파산상태로 내몰리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회사는 결국 문을 닫게 되고 K부장은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를 받고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지 않은가. 한 여자의 치정에 얽힌 무서운 복수극의 희생양이 된 K부장의 인생은 이렇게 해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옛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K부장은 자신이 왜 이렇게 처량한 신세로 차디찬 감방에서 비참한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 근원을 떠올리며 상념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배신하고 진실을 가장하는 것에 의한 업보를 보는 듯하다. 언제나 사람이 마음자세를 바르게 갖는다는 게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얼마나 힘든 처세술인지를 실감나게 떠올려주는 이야기인 것만 같다. 어떤 기회가 자신에게 처해져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게 그나마 진정성 있는 삶의 자세이지 않을까 싶다.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던 조강지처를 잊지 못했던 한 사람의 안타까운 모습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여자를 배신한 댓가가 얼마나 쓰라린가를 실감할 수 있었던 예가 아니었을까. 인과응보라고 했고 뿌린대로 거둔다고 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도 했다. 어디에 하소연할 길도 없어 보이고 자신의 죄업이라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뉘우치는 도리이외는 별다른 수가 없어 보인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자신의 뜻대로 호락호락하게만 돌아가지 않음을 절감할 수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원인제공을 남자가 했지만 그 댓가를 치루는 것에서 업보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으리라.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한 댓가는 어떤 형태로든 받게 마련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듯하다. 인간만사가 세옹지마라고도 하지만 여자의 마음에 배신의 상처를 주는 것은 그 죄과를 꼭 되돌려받게 된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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