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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연재물 ( 일본이 선진국이었던 이유9)

일본이 선진국이었던 이유 1(2/2)

by 자한형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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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선진국이었던 이유 1 [2/2]

3) 언어에 나타나는 호칭문화와 나이에 대한 인식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두번째 영혼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To have another language is to possess a second soul)"

- 샤를마뉴 대제

코네티컷대, 영국 랭캐스터대, 버클리대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쓰는 언어에 따라 태도와 성격이 달라진다. 실제로 내 경우에도 그랬다. 영어를 쓰는 미국에선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했다. 나는 'I'이고 상대방 한 명, 한 명은 전부 'You'일 뿐이었다. 나이가 많아도 적어도, 개개인은 이름으로 불리는 동등한 인격체였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회였다.

2년 동안 일본 사회에서 일본어를 사용할 때도 그랬다. 일본어와 일본 문화의 관계성 그리고 일본어가 내 사고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 영어나 한국어와는 또 다르게 일본어에 나타난 일본의 개인주의 문화를 인식했다.

한국에서는 사회활동에서 누군가를 부를 때, 김 회장, 이 의원, 박 대리, 최 변호사 등 그 사람의 직업이나 직위를 이름 뒤에 붙인다.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손흥민 선수'라고 부른다. 한 코미디언이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인 씨'라고 불렀다가 논쟁이 일었던 적도 있다.

직위나 신분으로 상대방을 지칭하면, 지칭하는 쪽도 지칭된 쪽도 조직 내의 직위 혹은 사회적 신분을 다시 한 번 각인한다. 그것이 수직관계를 상기시키며 권위를 상기시킨다. 수직관계나 권위주의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고자 최근 들어서는 카카오나 왓챠, 크래프톤을 비롯한 회사들에서는 직위 대신 영어이름을 지어부르거나 이름 뒤에 ''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구미와 같이 회사에서도 이름을 부른다. 차이라고 한다면 보통 '(さん, 우리나라의 ''에 해당)'을 붙이는 것이다. 나 또한 '이상(さん, さん)'이라고 불리거나 이 씨인 다른 한국인과 구분하기 위해 민우상('ミヌさん', '민우 씨')이라고 불리웠다. 카쵸(과장), 부쵸(부장), 샤쵸(사장)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총리도 보통 'ㅇㅇ상'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일본은 한 살이든 다섯 살이든 나이 차이가 나도 한국처럼 형, 누나, 언니라고 하지 않고, 이름에 '(さん)'을 붙여 부른다. 한국처럼 수직관계에 소속된 ''를 인식하기보다 수평관계 속에서의 ''를 인식할 수 있는 언어 활동이 많다.

만 나이가 아닌 한국과 같은 '세는 나이' 문화는 일본도 중국도 존재했지만, 20세기에 모두 사라졌다. 일본은 1902, 만 나이를 공식 적용한 뒤 1950년 법적으로 '세는 나이'를 못 쓰게 했고, 중국은 1966~197610년 간 진행된 문화대혁명 이후 세는 나이를 쓰지 않고 있다. 베트남도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에서도 1980년대 이후부터 공식적으로 '만 나이'를 쓰도록 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 있을 때 가끔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Korean age'(한국식 나이)'International age'(국제 나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가며 한국식 나이를 설명했던 게 떠오른다)

일본은 다섯 살, 열 살이 차이 나도 보통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한국어의 반말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장구조를 쓴다. 일본에서 존댓말/반말은 나이 차이보다 '공식성''비공식성'으로 가르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보통 사적인 관계에서는 서로를 수평적으로 지각하게 된다. 나이차이로 인한 호칭정리나 수직관계 없이 개인과 개인이 만날 수 있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프로세스 하나가 더 있고 없고는 다양한 파급을 준다. '빠른생일' 문제나 선배에게 인사하러 오지 않은 후배 같은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나이와 관련하여 일본 생활 초기에 의식적으로 적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한국과 다른 존댓말과 반말 활용이다. 필자는 한국에서 상대방이 동갑이든, 나이가 내 위든, 아래든 우선 존댓말을 고수한다. 나이가 나보다 위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만, 나이가 적은 친구들에게는 나이로 인한 불필요한 수직관계를 피하고 수평적 의사소통을 하려고 그랬다. 존댓말을 하면서도 충분히 친하게 지내며 농담도 할 수 있는 톤과 매너를 지니려고 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존댓말을 계속 쓰니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종종 섭섭해했다. 본인은 반말을 하며 가까운 사이임을 표시하는데 나는 계속 존댓말을 하니, 친해지기 싫은가 보다 느꼈다는 것이다. 일본에 지낼 때 한두 번 들은게 아니다. '일본은 나이로 인한 인간관계 특성이 한국과 다르고 그와 관계된 언어활동도 다르구나'라고 느낀 뒤에는 나이 많은 일본인 친구들에게 적절한 타이밍부터 반말을 의도적으로 쓰려고 했다.

3. 밖으로 끄집어내는 집단주의, 안으로 넣는 집단주의

일본의 개인주의에 초점을 두고 썼지만 사실 일본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혼재되어 있다. 일본은 서양과도 다른 개인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국과 다른 집단주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일본 같은 경우, 내향적인 개개인이 사회의 명시적 혹은 묵시적 룰만 지키면 집단에서 놓아둔다. 반면, 한국 같은 경우 내향적인 사람들도 집단의 일원으로서 외향성을 지니도록 하는 공기가 있다. 원하지 않아도 회식을 해야 하며 노래방에 간다. 신입사원은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

개인의 영역을 침입하는 집단주의가 한국이라면 개인을 방치하거나 고립시키는 집단주의는 일본이다. 일본적 집단주의의 예로는 이지메(いじめ, 왕따), 무라하치부(村八分) 등이 있다. 무라하치부는 지극히 일본스러운 풍습이다. 마을에서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8가지 중요한 일, , 성인식, 결혼식, 출산, 간병, 집의 증개축, 수해방지, 제사, 여행 등에서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누군가와 교류할 수도 없다(, 시신수습과 화재는 도와준다. 이 두 가지는 도와주지 않으면 마을에도 피해가 있기 때문이다). 한 가족 전체를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완전한 집단 따돌림으로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2차 세계대전 때 버렸어야 했는데 '모든 것을 일정한 장소에 둔다'는 일본정신으로 인해 여전히 못 버린 모양새다. 여기엔 당시 미국이 공산주의 세력 중국을 견제하며 동아시아 관리를 하기 위해 사실상 최고전범인 천황을 살려둠으로써 일본이 죄값에 비해 어설프게 처벌받은 것도 한 몫했다.

군국주의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한 여러 전쟁에서 승리를 경험했다. 1894년 청일전쟁, 1905년 러일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등 일본은 계속해서 승리를 학습했다. 천황이 생존한 세계대전 이후에 일본은 경제면에서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의 특수를 누렸다. 80년대 후반에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를 안긴 미국의 경제를 위협할 정도였다.

내셔널리즘(국가주의, 민족주의)을 버리지 못한 가운데, 백 년 가까이 단 한 차례를 빼고 거듭 승리를 학습한 것이다. 제조업 중심 시대에 고립된 개인을 만드는 개인주의와 내셔널리즘을 이용한 지배층의 지배와 관리 속에서 개인은 과로사를 할 때까지 묵묵히 사회의 부속품이 되어 일했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지배층은 그런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천황을 중심으로 한 질서체계' 아래에서 잘 관리하고 통제했다.

4. 세상은 21세기가 되었지만 일본은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사람은 본디, 위에 올라가면 내려오는 게 힘들다. 지금 일본이 그렇다. 잘나가던 20세기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처럼 외부로부터 두 번째 패배를 맛봐야 반성하고 변혁을 할까.

코로나19로 미뤄지기 전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해 'again 1964'(부흥기의 도쿄올림픽을 생각하며 재도약) 분위기가 있었다. 백 년 동안 승리한 기억 때문인지 1990년부터의 30년 침체는 여전히 짧은 모양인 듯 하다. 과거의 영광에 젖어 한국과 중국의 상승이 아니꼽고 불안하고 당황스럽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긴 관성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현재 지위가 당분간은 유지되겠지만,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다.

천천히 쇠락하는 나라를 우리는 보고 있다. 이웃 나라가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경제적으로도 잘 돼야 한국에도 좋다. 그렇지만 선진국으로 만들었던 일본의 고립주의적 개인주의와 국가주의적 집단주의가 국제무대에서 일본사회도(ex, 재팬패씽), 일본사회에서 개개인도 고립시킴(ex, 이지메)으로써 일본을 쇠락의 흐름에 안착시켰다.

속도의 시대 21세기에는 쌍방향 소통이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은 사무실을 무지하게 넓게 지어 팀원들이 자주 교류하며 창의력을 발현하기 쉽게 환경을 조성한다. 화장실도 다른 부서 멤버 간에 '우연한 마주침'이 자주 발생할 수 있도록 동선을 감안해서 배치한다. 지식과 정보가 중요하며 하루하루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한 사람의 생각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역량을 가진 다양한 팀원과 협업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그게 서툰 것처럼 보인다. 고립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서는 장인정신이 뛰어난 개인도 많고 오타쿠도 많다. 그러나 빠르게 소통하며 즉각즉각 변화를 주며 일하는 것에는 약하다. 제조업 시대에 흔히 하듯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고 맡은 분야에서 정확하고 정교하게 일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쌍방향 소통에는 약하다. 개개인은 위에 말했듯이 수평적 관계이지만 서로 의견을 표현하고 교환하는 것에는 낯설다. 오히려 외향성을 강제하는 한국의 집단주의가 단점은 많아도 여기서 이점이 있다.

또한 한국의 집단주의는 나라가 어렵거나 지도자가 어리석을 때 국민들을 뭉치게 한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은 지도자가 어리석을 때 뭉치지 않고 지도자가 뭉치라고 해야 뭉치는 듯한 인상이다. 수동적이며 순종적인, 메뉴얼에 묶인 개개인이다. 일본식 개인주의는 과거 제조업시대에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식 개인주의는 변화하는 시대에 지금의 일본을 쇠락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다음편에는 '한국보다 빨리 도입된 일본의 민주주의'를 다뤄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 이승철 지음. 행성B

[일본인 이야기] 김시덕 지음. 메디치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문학동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을유문화사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 이누야마 요시유키 지음. 솔과학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호사카 유지 지음. 김영사

[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지음. 아트북스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 이광훈 지음. for book

논문

연명흠 ( Myeong Heum Yeoun ). 2010. 중국, 일본, 네덜란드, 한국의 개인주의 감성 비교. 감성과학, 13(1): 79-90

기사와 그 밖의 자료

[역사와 현실]한국의 개인, 일본의 개인

집단주의 문화와 눈치의 힘 그리고 민주주의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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