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누비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인 것을......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다투게 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나는 네게 이러이러한 걸 해주는데 너는 왜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해주냐?'와 같은 서로가 원하고 그것을 채워주는 방법상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위대한 예술가나 대문호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은 러시아의 위대한 대문호,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니나', '부활',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같은 많은 걸작들을 남긴 세계 문학역사에서도 커다란 획을 그은 한 인물 '레브 리콜라에비치 톨스토이'의 사상가로서의 신념과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부유한 백작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젊은 시절, 한 때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기도 했던 그가 당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러시아의 자본주의 사회로 인한 농민 및 소작농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사유재산의 거부, 소극적 저항'같은 그의 신념을 위해 절친한 벗 '블라드미르 체르트코프'와 의기투합할 때, 그의 사랑은 그의 신념 안에서 새로이 보다 확대된 개념의 '사랑'이었다.
그에 비해 그의 아내, '소피아'의 사랑은 오롯이 그를 향하고, 그와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13명의 자식(게 중 5명은 사망)에게로 향하는, 보편적인 우리네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식에서의 보다 좁은 의미에서의 '사랑'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다보면 두 사람의 갈등을 '소피아'의 '욕심과 비정상적인 정신상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 '체르트코프'와는 달리 비교적 객관적 시선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톨스토이'의 개인비서 '발렌틴 불가코프'의 시선처럼, 관객 입장에서도 선뜻 어느 쪽의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모호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신념을 위해 小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자와 그래도 사랑의 실천은 '내 가족, 내 남편, 내 아내'에서부터라고 믿는 '소피아'의 생각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좁혀질 수 없는 요원함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자칫 대문호, 세상 사람들이 우르러보는 거장이라는 이름 뒤에 일방적으로 '나쁜 여자'의 모습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는 그들 대문화나 예술가 뒤에 가려진 이들의 삶의 모습이 어떠했을지에 대해 한 번쯤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사실 영화 속에서 '톨스토이'와 '소피아'는 유산 문제로 인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하며, 결국에는 톨스토이로 하여금 '1828년, 자신이 태어나던 그 순간에서부터 쭉 살아왔던 그의 자택 '야스나야 폴라나'를 떠나 이름없는 한 정거장에서의 쓸쓸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지만, 두 사람은 끊임없이 싸우는 와중에도 돌아서면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입맞춤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다시는 안볼 것처럼 격하게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싶게 다시 팔짱끼고 다니는 여느 젊은 커플들처럼 그들 역시나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 문제는 '소피아'가 욕심 많은 나쁜 여자였다거나 혹은 '톨스토이'가 자신의 신념만을 위해서 결국은 46년을 함께 살을 맞대며 살아온 조강지처를 버린 매정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두 사람이 그 '사랑'이란 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영화 속에서 보면 소피아가 유산에 관한 모든 사항을 자신이 아닌, 친구 '체르트코프'와 의논해서 그의 책에 관련된 모든 판권을 러시아 민중들에게 돌린다는 톨스토이의 새유서내용에 반발하며 절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모든 것을 상실해버린, 그렇게 빈껍데기만 남은 자신에 대한 허무감, 자괴감의 표현이 '헬렌 미렌'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말미암아 그녀가 당시 느꼈을 배신감과 상실, 허무감이 관객 입장에서도 고스란히 와닿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아주 유명한 사상가나 예술가들의 이미지 우상화 경향 때문에, 그들 뒤에서 묵묵히 그들을 서포트한 이들의 삶이 천덕꾸리기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 조금 . 아주 조금 그런 부분들을 건드려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아내를 떠난 '톨스토이'가 한 정거장 역사에서 최후를 맞을 때, 그는 정녕 행복했을까?
위대한 성인으로서의 최후로는 멋져보였을지 모르지만, 한 개인! 한 인간 '톨스토이'로서의 최후도 만족스러웠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여자는 사랑을 쫓고, 남자는 신념을 쫓는다?"
그러나 정답은 어쩌면 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발렌틴'의 대사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류를 만난 적이 없다. 그저 불완전한 남자와 불완전한 여자가 만났을 뿐이다."
인류를 만난 적 없는 '소피아'에게 전인류를 위한 사랑의 실천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톨스토이'의 그것처럼 뼛 속 깊이 와닿았겠는가?
그녀에게는 단지 '(내 남편, 내 자식으로부터)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세상 유일한 리얼리티'가 아니었을까?
자칫 표독스럽게 비춰질 수도 있는 '소피아'역을 여러가지 감정(때때로 때쓰는 아이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처럼, 배신에 몸부림치지만 남편의 최후를 지켜주고픈 아내의 마음처럼)을 다양한 표정과 뛰어난 연기력 속에 녹여낸 '헬렌 미렌'과 '발렌틴'역의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조합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영화 내내 인상적으로 다가오던 ost도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