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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

더 리더

by 자한형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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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누비아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슴속엔 어릴 적 베갯맡에서 잠이 들 때까지 책을 읽어주시던 엄마에 대한 기억 한조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딱히 그 대상이 엄마가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 선생님, 혹은 친구......나를 꿈속으로 인도하게 만들었던 그 편안한 안식으로 이끌던 통로!

영화, 더 리더는 바로 그러한 책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책을 사랑하던 한 여인에게 읽어주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 글자를 읽을 수 없는 한 여자, 그런 그녀의 곁에서 책을 읽어주는 16살 짜리 한 소년이 있다. 물론 당시 소년은 그녀가 글씨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한 번씩 지나치다싶을만큼 히스테리를 부리는 그녀이지만 그 이유가 자신의 숨기고 싶은 치부때문이란 것을 어린 소년은 깨닫지 못했다.

영화 초반, 사실 두 사람간의 수위높은 정사신이 많이 나와서 이 영화의 색깔이 도대체 뭘까 잠시 헷갈리고 의아스러웠던 순간이 있었지만, 이런 류의 영화들은 매번 관객들에게 영화의 감동은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린 자의 몫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들어준다.

이 영화 역시나, 영화 초반엔 스토리를 전혀 이해하거나 짐작할 수 없게 만들었던 그런 자극적인 장면들이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무거운 주제와 감동에 눌려 소리도 없이 우리의 의식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경험을 맛보게 되니까 말이다.

세계 제 2차 대전 종결 후, 사후 책임문제를 놓고 '아우슈비츠' 에서의 유대인 포로들이 나치에 의해 학살당하는 과정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되는 여인, 아픈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야했던 한나역의 케이트 윈슬렛!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영화 '타이타닉'에서 보았던 그녀의 청순하고 도도한 아름다움은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연기자로서 그녀가 보여주게 되는 아름다움에 가려 그 의미조차 무색해져버린다. 그만큼 사회적 약자, 글조차 읽고 쓸 줄 모르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에 내몰린 나약하고 초췌한 중년 여인의 모습과 그녀의 고운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 마치 흐른 세월의 깊이만큼 내공이 쌓인 듯한 그녀의 연기력은 그녀가 가진 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 왜 이 영화의 제목이 더 리더가 되었는지는 극 후반부에 가서야 ""하는 외마디 탄성과 함께 관객들로 하여금 감동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억울하게 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일방적으로 뒤집어쓴 그녀, 그럼에도 자신이 읽고 쓸 수 없는 문맹자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그 모든 죄를 뒤집어쓰는 일보다 더 두려웠던 한 여인,

그런 여인을 위해 훗날 변호사가 된 16살 소년은 주름지고 머리가 희끗한 모습으로 16살 때 그가 그녀의 머리맡에서 읽어주곤 했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오디세이'. 같은 책들을 죄다 녹음해서 카세트 테잎 형태로 그녀가 있는 감옥으로 보내주게 된다.

멋있는 중년의 남성이 마이크를 들고 수 백권을 책을 쌓아놓고 일일이 녹음을 하는 모습, 그리고 그렇게 녹음되어 보내져온 테잎을 들으면서 감옥에서 빌린 책과 그의 목소리에서 내뱉어지는 음절 한소절 한소절을 따라 읽으며 글자를 익히려고 애쓰는 케이트 윈슬렛의 모습은 이 영화 전반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단지 한 여름,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우연히 만나 격정적으로 타오르던 그 짧은 사랑이 수십년동안 한 남자의 뇌리속에 뿌리깊게 박혀있을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한 남자의 생을 송두리채 흔들어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책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매개체를 통해 잘 드러내보여주고 있다.

비록 영화의 결말이 우리가 원하는 것과 같은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여운이 남고 아쉬움이 남는 영화, 전체적인 완성도와 짜임새 면에서 조금 부족함이 느껴졌지만, 배우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단순한 외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연기력....그것에 있다는 걸 이번 영화를 통해서 여실히 보여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 변신(이 영화로 케이트 윈슬렛은 6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6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린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편안한 안식으로 인도하는 통로로서의 책과 그 책을 읽어주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 한자락을 끄집어내주기에 충분한 영화, 더 리더..........

세월이 수십년이 흘러간 후에야 그 날을 뒤돌아보며 "니가 읽어주는 게 더 좋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여인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던 한 남자, 책 읽어주는 남자!

책 읽기 좋은 계절, 따스한 봄볕 아래에서 한 권의 감동적인 책을 읽은 듯한 기쁨을 느끼고 싶은 분들이라면 더 리더가 그 좋은 해답이 되어줄 것 같다.

그리고 드는 생각 하나!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이나 치부를 좀 더 빨리 눈치챌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있다면.........."

세상은, 그리고 사람들은 그 불행이란 것에서 조금 더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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