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나 메르꾸리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프로 중에 ‘꽃보다 할배’ 라는 것이 있다. 이번에 나온 여행기는 그리스편이었다. 한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서구문명의 발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그 프로 중에 할배 한 분이 일행과 따로 떨어져 뭔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것은 멜리나 메르꾸리 흉상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과연 그녀는 누구인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여배우였길래 아직도 그를 기리기 위해 그렇게 흉상까지 만들어 놓았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간단히 얘기하는 것으로 그녀를 살펴보면 1925년에 태어나서 1994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30년간 아테네 시장을 지낸 할아버지 스피로스 메르꾸리의 손에 의해 자란다. 고등학교시절 영국으로 유학을 해서 캠브리지 연극학교에 입학해서 교육을 받는다. 그런와중에 백만장자와 결혼해서 지내다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남편과 결별한다. 1954년 영화 스텔라로 데뷔한다. 1960년에 미국인 영화감독 쥘 다생이 감독한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 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칸느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쥘 다생과 결혼한다. 쥘 다생은 미국인 이었지만 메카시즘에 의해 미국에서 추방당한 영화인이었다. 그는 그리스에 정착한다. 다음으로 1962년에 페드라(죽어도 좋아) 라는 영화에서 팜므파탈적인 여주인공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그러던 중에 1967. 4. 21일에 그리스에는 군사쿠데타가 발생한다. 요르고스 파파도풀로스 대령이 콘스탄티노스 2세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는다. 그녀는 그때 당시 프랑스에 있었는데 결국은 망명을 요청하게 되고 그리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쿠데타는 나에게 겁탈과도 같은 영향을 미쳤다. 겁탈 당하면서 조용히 반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르짖고 반항하며 할퀼 것이다.” 그녀는 결국 뉴욕까지 가게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뮤지컬배우로 활동한다. 그러면서 반정부 인사들의 자금지원을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군사정부는 그녀를 반정부인사로 지목하게 되고 그녀의 모든 그리스내 재산을 몰수하고 암살까지 기도하게 되지만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녀는 이렇게 호소했다. “ 군정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아무도 그리스를 여행하지 마라.” 군부의 시녀였던 그리스 정교회는 그녀를 파문한다. 그녀는 절규했다. “ 나는 그리스인으로 태어났고 그리스인으로 죽을 겁니다. 파코스타는 파시스트로 태어났고 파시스트로 죽을 겁니다. ” 이렇게 말한 것은 그리스 레지스땅스 들의 슬로건이 되었다. 그녀는 그때 당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에게 자신처럼 그렇게 조국 그리스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칼라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어느 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릴 수 있고 그것이 그렇게 순조로울 수 있습니까? 그녀는 그렇게 기자에게 얘기했단다. “나는 눈물을 흘려야할 슬픈 상황이 되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의 조국 그리스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슬픔에 젖어들게 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된다.” 1967년 7.12일 드디어 군사정부가 종국을 고한다. 드디어 그녀는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인 그리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사회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한다. 그러나 33표차로 낙선하고 만다. 다음 선거에서 그녀는 압도적인 표차로 국회의원이 된다. 그러던 그녀는 81년부터 문화부장관으로 발탁되어 89년까지 오랫동안 장관직을 수행하게 된다. 무려 43번의 개각이 있었지만 문화부 장관만은 그녀가 독보적으로 그 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녀가 심혈을 기울였던 역점사업은 문화재의 반환이었다. 오스만 제국 주재 대사 엘긴 경이 소벽 조각상이라는 것을 가져가 대영박물관에 비치해 놓고 있었다. 파르테논에 있던 17개의 조각상으로 엘긴 마블소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녀는 심혈을 기울였지만 끝내 그 반환을 못보고 눈을 감고 말았다. 1994년 지병이었던 암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의 잔다르크로 명명되기도 했다. 그녀의 주연영화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일요일은 참으세요 라는 영화이다. 일리야라는 페레우스 항의 여걸은 뭇사내의 흠모를 받는 존재였다. 옷을 하나씩 벗은 후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그러자 그녀를 추종하는 남자들도 모든 일을 팽개치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남자만 상대하는 이였다. 호머라는 미국인 기자가 일리야를 갱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밤의 세계를 주도하는 얼굴없는 그림자라는 두목은 호머에게 물적지원을 통해 일리야를 조정하려 한다. 일리야는 호머를 통해 새롭게 갱생되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져들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뒤에 배후세력을 알게 되자 돌변하게 된다. 거리의 여자들과 단합된 일리야는 집단행동을 하게 되고 감옥에서 단체행동에 나선다. 결국은 방세 등을 현실화 시키고 단합된 힘을 과시하게 된다. 결국 호머도 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일리야와 호머는 야외 공연장에서 공연을 구경하기도 한다. 다음은 페드라 이다. 거대한 배인 페드라 호가 진수식을 갖는다. 페드라는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딴 배의 테이프를 끊는다. 남편은 멋진 반지를 페드라에게 선물한다. 그녀는 최근에 해운회사 사장과 재혼을 한 상태였다. 자신의 집안도 굴지의 해운회사를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에게는 젊은 아들이 있었다. 이 결혼에 불만을 품은 채 영국에서 미술학도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페드라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영국행을 감행한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져버린다. 꿈같은 나날을 보낸 둘은 이제 그리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한다. 결국 남편에게 사실을 고백한 페드라는 고민에 빠진다. 남편은 아들을 다른 처녀에게 결혼시켜려 하지만 페드라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고 새엄마를 사랑한 아들을 혼내킨다. 결국 아들은 차를 몰고 해변가로 달려가고 마지막으로 페드라를 연호하며 절벽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던 차에 페드라는 약을 먹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그리스의 배우 겸 가수 겸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로 여겨졌다. 이탈리아의 여우 소피아 로렌이라는 이가 있는데 그 배우와 비슷한 인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런데 내막을 알고 보니 차원이 다른 듯했다. 조국을 사랑했고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던 것에서 충분히 동상이 세워질만한 국민적 흠모를 받았음직 했다. 죽은 후 4일 동안을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모든 이들이 고인을 추억하고 기리도록 했단다. 참으로 대단한 메르꾸리가 아닐 수 없는 부분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국민적인 숭상의 대상이 되는 지도자를 가져볼 수는 없을까 하는 회한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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