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임권산
음식남녀(飮食男女)
“음식과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람들이 크게 바라는 일이고, 사망과 빈고(貧苦)는 사람들이 크게 싫어하는 일이다.”
(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 예기(禮記) 中 예운(禮運)편 -
‘내 남자의 결혼식’에서 벌어진 사건
「커다란 양푼에 달걀노른자 5개와 달걀 4개, 설탕을 넣는다. 반죽이 걸쭉해질 때까지 휘젓다가 달걀 2개를 더 집어넣는다. 계속 휘젓다가 반죽이 다시 걸쭉해지면 달걀 2개를 더 첨가한다.」
‘데 라 가르사’ 집안의 세 자매 중 막내딸인 ‘티타’는 바로 위 언니인 ‘로사우라’의 결혼식에 쓰일 웨딩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농장 부엌에서 반죽을 젓고 있었다. 요리의 달인인 ‘나차’가 메인 요리사였고, 티다는 보조였다. 그런데 요리가 진행될수록 쫀득해져야 하는 반죽은 오히려 묽어지고 있었다. 티다의 하염없는 눈물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눈물이 말랐지만, 티타는 울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이자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형부가 되는 현실 앞에서 어린 티타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반죽을 저으며 울고 또 우는 것뿐이었다.
(재업) 엄마의 고집으로 언니와 결혼한 첫사랑 -1부-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中
형부가 될 ‘페드로’는 티타의 남자였다. 열여섯 살의 티타는 일 년 전 크리스마스 저녁, 페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를 잊지 못했다. 자신의 어깨 위로 느껴지던 페드로의 그 뜨겁고도 강력한 눈빛에 티타는 자신이 마치 팔팔 끓는 기름 속에 던져진 도넛 반죽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자신의 얼굴과 배, 심장, 젖가슴, 온몸이 도넛처럼 기포가 몽글몽글 맺힐 듯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너에게 청혼을 하러 오는 거라면 아예 그만두라고 해라. 그 청년이나 나나 괜한 시간만 낭비하는 거니까. 네가 막내딸이라 내가 죽는 날까지 나를 돌봐야 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니?”」
데 라 가르사 집안에서는 복종 이외에 그 어느 것도 용납되지 않았으며 ‘마마 엘레나’는 그 전통의 수호자였다. 일찍이 과부가 되어 세 자매를 홀로 키운 이 강인하고 고집 센 여자는 농장의 지배자였으며 딸들이 자신의 지시에 토를 다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여자였다. 어머니와 언니는 청혼을 가로챘다. 마마 엘레나는 티타에게 청혼하러 온 페드로에게 단호한 어조로 이 가문의 전통을 말하며 티타의 언니인 로사우라와의 결혼을 제안했다. 티타에 대한 사랑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페드로는 마마 엘레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것만이 티타와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티타가 만든 웨딩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상한 광경이 결혼식장을 덮쳤다. 케이크를 먹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움과 슬픔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마 엘레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괴이한 식중독 증세가 나타났다. 모든 하객들은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모두가 화장실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마당에서 토하기 시작했다. 로사우라 역시 웨딩드레스가 구토물 범벅이 되는 것을 감수해야만 했다. 웨딩 케이크를 먹고도 멀쩡한 사람은 오직 티타 한사람 뿐이었다.
(재업) 엄마의 고집으로 언니와 결혼한 첫사랑 -1부-
우웩~ 우웩~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티타의 음식에는 괴상한 특징이 있는데,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겐 티타의 감정이 그대로 전염되는 ‘전염 증폭’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알몸으로 집을 뛰쳐나간 언니의 사연
「손가락을 찔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장미 꽃잎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떼어 낸다. 가시에 찔리면 아프기도 하지만 꽃잎에 피가 스며들면 요리 맛이 변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농장의 요리사 나차가 죽었다. 집안 여자 중에서 티타가 농장의 공식 요리사가 되었다.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티타는 적임자였다. 티타는 스페인 식민지 전 시대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요리 비법의 마지막 계승자가 되었다. 티타는 부엌이 좋았다. 나차와 함께 요리하는 시간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부엌만이 마마 엘레나의 감시와 구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재업) 엄마의 고집으로 언니와 결혼한 첫사랑 -1부-
티타가 농장의 요리사 된 지 일 년이 되었을 때, 페드로는 티타에게 분홍 장미꽃을 선물했다. 임신 중인 로사우라는 자신의 남편이 자신이 아닌 티타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며 거실을 뛰쳐나갔다. 마마 엘레나는 대노했다. 그리고 티타에게 그 꽃을 버리라고 명령했다.
티타가 장미꽃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부엌으로 들어왔을 때, 원래 분홍색이었던 장미꽃은 티타의 손과 가슴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티타는 도저히 그 꽃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었다. 그때 죽은 나차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여왔다. 티타는 자신의 피가 묻은 그 꽃으로 나차에게 배운 전통 요리를 만들기로 했다.
메추리의 털은 산채로 뽑아야 했다. 끓는 물에 메추리를 담그면 고기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었지만 티타는 훌륭하게 여섯 마리의 메추리를 처리했다. 그리고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리를 묶고 소금과 후추를 적당히 뿌린 후 버터를 녹여 노르스름하게 익히고 마지막으로 장미 향을 입혔다. 황홀한 음식이 만들어졌고 무엇보다도 맏언니 ‘헤르트루디스’에게 믿지 못할 변화를 일으켰다. 헤르트루디스는 다리에서부터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를 느꼈으며 몸의 가운데 부분이 간질거려 의자에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헤르트루디스는 정말로 몸이 불편해 보였다.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분홍빛이었으며, 그윽하고 달콤한 장미 향을 풍겼다.」
몸의 열기를 식혀야 했다. 헤르트루디스는 샤워실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몸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렸고 끝내는 나무판자로 만든 샤워실마저 불이 붙었다. 헤르트루디스는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로 샤워실을 뛰쳐나왔다. 얼마 전 마을 광장에서 보았던, 자신과 눈을 마주쳤던 젊은 장교가 떠 올랐다. 헤르트루디스는 순식간에 음탕한 생각에 지배당했다. 그녀는 온몸에서 장미 향을 뿜어내며 나체로 달리기 시작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강렬하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헤르트루디스는 천사와 악마를 반반씩 섞어 놓은 모습이었다. 가녀린 얼굴과 순결한 처녀의 육체는 눈과 땀구멍에서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는 열정이나 관능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냄새에 이끌려 말을 타고 달려 온 젊은 장교 ‘후안’의 눈에 헤르트루디스가 보였다. 뜨거운 열정을 잠재워 줄 남자를 찾아 들판을 헤메고 있는 모습이었다. 후안은 그녀를 자신의 말에 태웠다. 그렇게 헤르트루디스는 농장을 떠났다. 그 후, 마마 엘레나는 헤르트루디스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녀의 사진과 출생 신고서도 모두 불사르게 했다. 불탄 샤워장은 몇 년이 지나도록 장미 향이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티타는 자유를 쟁취한 언니를 위해 매년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만들었다.
처녀의 젖에서 나온 젖
「칠면조는 잡은 지 이틀 뒤에 깨끗이 씻은 다음 소금을 뿌려서 삶는다. 제대로 키우기만 하면 칠면조 고기도 맛있을 수 있다. 심지어 훌륭한 맛을 내기도 한다. 깨끗한 사육장에서 충분한 옥수수와 물을 줘서 키우면 그런 맛을 얻을 수 있다.」
티타는 자신의 조카이자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첫 아들인 ‘로베르토’의 세례식을 축하하는 파티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로베르토는 로사우라의 아들이기보다는 티타의 아들에 가까웠다. 티타가 받아냈고, 티타가 젖을 먹여 키웠다.
로베르토가 나오던 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마 엘레나와 하녀들은 시장에 가고 없었고 주치의 ‘조 브라운’ 박사를 부르러 간 페드로는 마을을 점거한 정부군에 부당하게 억류되어 있었다. 로사우라는 임신 기간 동안 몸무게가 삼십 킬로그램이나 불어난 데다가 초산이었기에 분만은 힘들고 위험했다. 오직 티타가 이 분만을 감당해야 했다.
티타는 가축의 출산만 경험해 보았으나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언니의 가랑이 사이는 어둡고 조용하고 깊은 터널일 뿐이었다. 아이는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티타는 간절히 기도했다. 어느 순간 언니의 가랑이 사이 터널이 조금씩 시뻘건 강물로, 거친 용암으로, 갈가리 찢긴 종이로 바뀌더니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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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육체가 마침내 새 생명에게 길을 터 주었던 것이다. 티타는 조카의 첫 울음소리와 얼굴을 절대로 잊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모습이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로사우라는 젖이 나오지 않았다.
「티타는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평화로워지고 허겁지겁 삼키는 소리까지 들리자 설마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그녀의 젖을 먹고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긴가? 하지만 티타가 아이를 가슴에서 떼어 내자 젖이 뿜어져 나와 흘러내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처녀에게서 젖이 나온 것이었다. 유모를 구하지 못해 아이는 배고픔에 빽빽 울어댔다. 우유를 먹였지만 아이는 뱉어낼 뿐이었다. 아이가 티타의 젖가슴을 비비며 젖을 찾았다. 티타는 누군가가 배가 고파서 음식을 찾는데도 줄 수 있는 먹을 것이 없는 것을 참지 못하는 여자였다. 급한 마음에 자신의 블라우스를 열어 아이에게 젖을 물리자 아이는 미친 듯이 세차게 빨아 댔고, 놀랍게도 젖이 나왔다.
(재업) 엄마의 고집으로 언니와 결혼한 첫사랑 -1부-
로베르토의 세례식 파티에 쓸 칠면조 몰레(멕시코 요리에 쓰이는 여러 소스를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몬드와 참깨를 볶아 갈아야 했다. 티타는 무릎을 꿇고 맷돌 위로 몸을 숙인 채 아몬드와 참깨를 갈면서 춤을 추듯 몸을 움직였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블라우스 밑으로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목에 맺힌 굵은 땀방울이 둥글고 탱탱한 가슴 사이의 깊은 계곡 아래로 흘러내렸다.」
부엌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도저히 참지 못하고 페드로가 왔다. 그리고 그의 눈에 티타의 가슴골이 다가왔다. 페드로는 돌처럼 굳었다. 티타는 맷돌질을 멈추고 페드로가 더 잘 볼 수 있도록 몸을 꼿꼿하게 세워 자랑스럽게 가슴을 펼쳤다. 그리고 페드로의 눈길을 보며 티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왜 모든 물질이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왜 불같은 사랑을 겪어 보지 못한 가슴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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