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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아들의 전역을 맞아

by 자한형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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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전역을 맞아

 

 

 

어저께 마지막으로 아들을 부대에 들여보냈다. 그러면서 물었다. 도대체 몇끼가 남았냐? 라고 말이다. 세끼 남았단다. 하루를 지내면 제대인 아들을 들여보냈다. 얼마전 임병장의 사고가 있었다. 그래도 너네는 좀 다르니 관심병사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니 아들과 그 동기가 하는 말이 그랬다. 물론 그런 곳에는 갈 수 없겠죠 그런데 관심병사는 여전히 있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곳에 있냐? 아들은 그냥 묵묵 부답이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내일에 제대하는 날을 맞았다. 20121015일에 입대를 했다. 두 번째의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입대라는 것이 마음 아팠다. 특히 큰 녀석은 경기도 쪽이었는데 이놈은 강원도라 걱정이 앞섰다. 특히 그냥 제대로 준비를 한 상황이 아니라 얼떨결에 갑자기 황망하게 기분에 군대라도 가보고 기분이라고 전환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가보는 상황이라 안쓰럽기 그지 없었다. 그에 더 갑갑한 상황은 얼마전 동기녀석의 아들이 불의의 상황을 당한 이후라 행여 하는 노파심이 생겼었다. 아무튼 녀석을 데리고 군부대 부근까지 갔다. 그래도 좀 익숙한 지형이라 동기녀석에게 연락을 취했다. 녀석은 순순히 나왔다. 아들은 머리를 깍고 있었고 집사람이 같이 있었다. 동기와 얘기를 하다보니 그래도 상당히 안심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들을 데리고 102보충대에 데리고 들어갔다. 첫째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한참을 걸어들어가면서 뭔가 아품을 다 상쇄하라는 기회를 줬다. 중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입영대상 장병을 대상으로 훈시를 했다. 그리고 다음은 부모와 애인의 차례였다. 부모는 그랬다. 자신이 군생활하던 시절의 암울했던 상황을 호소했다. 그것이 결국은 자기의 하소연에 불과했지만 오래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군생활을 반추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다음은 애인들의 차례였다. 애절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공식적인 세레모니는 끝났고 다음은 공식적인 입영행사가 연병장에서 진행이 되었다. 우리는 다른 일정으로 인해 공식적인 행사를 다 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곧바로 그곳을 빠져 나왔다. 아들은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었고 암울한 상황에서의 입대였다. 그리워하던 이와의 결별을 고하고 바로 입대를 한 상황이었기에 군생활에 대한 제대로의 적응이 이루어질지 걱정이었다. 다음은 얼마 후의 자대 배치였다. 그렇게 뭔가 좀 의미있는 일을 해보라고 권고했지만 그냥 허송세월로 보냈다. 그렇게 입대를 하는 날에는 첫째와는 달리 부부가 동행을 했었다. 그리고 춘천에 와서 같이 입대하는 시간을 공유했다. 점심은 춘천 시청앞에서 등심으로 식사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입대하는 아들을 근에 들여 보냈다. 큰아들 때에는 그냥 종로 3가에서 가라고 작별을 인사했음에 비하면 엄청나게 달라진 부분이었다. 큰 애는 동반입대를 했었다. 그러는 와중에 부모님가지 끼여 드는 부분에 엄청 어색해 해서 그냥 보냈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부모가 같이 입대를 하게 된 셈이었다. 부모대표 그리고 애인 대표가 나와 소회를 밝히는 시간도 잠깐 있었다. 눈물바다를 이루는 순간이기도 했었다. 군대가 뭐라고 말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고 곧바로 연병장으로 집합했다. 그전 식전행사는 연병장과 건물 뒤편의 깍아지런 절벽같이 경사진 곳에서 있었다. 연병장의 행사는 공식행사였고 어떻게 끼여들 자리가 없어 보였다. 공식적인 행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곧바로 귀가길을 서둘기 위해 나왔다. 길가에 죽 길게 주차된 차량 행렬은 뭔가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떠나간 것이 이년 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투복을 입고 전역을 하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일각이 바람처럼 지나갔지만 옆에서 지켜본 부모 입장에서는 일각이 여삼추였었다. 처음 훈련병을 마치고 계급장을 다는 날은 감회가 남달랐었다. 5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민간인이 군인이 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었다. 나방이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는 순간처럼 그렇게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변모된 아들의 모습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그리고 배치를 받은 곳은 청천벽력 같이 여겨졌던 수색대였다. 그렇게 만류를 했건만 어찌 그렇게 고생스러운 곳을 택했단 말인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남자라면 한번 해볼만 하지 않는가 ? 라는 반문에 할말을 잃었다. 처음면회를 가서 보게된 민정경찰 병장은 한없이 부럽기만 했었다. 그런데 얼마동안의 세월이 지나니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어렵고도 힘든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에게 축하에 인사를 보낸다. 엊그제 말년 휴가를 나와서 들여보내며 함께 시간을 두시간 보냈다. 무덤덤하게 그렇게 먼산을 바라보는 눈가에는 어느듯 이슬이 맺힌 듯 보였다. 그옆의 전역동기에게도 회한이 서리는 듯했다. 보다 힘들게 생을 보낸 이에게는 분명 그에 합당한 뭔가가 있으리라 기대가 된다. 조선일보 15,000키로미터의 종주를 신청하기도 할만큼 호기로웠던 아들이 이제는 그 어떤 어려움도 능히 헤쳐갈 수 있는 기린아로 다시 태어났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내일이면 민간인 신분이 된다. 이제 하나의 마무리가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에 섰다는 부분을 충분히 각인시켜주고싶다. 무슨 일이든 어떤 어려움이든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의 자신감을 갖고 세상앞에 섰겠지만 세상은 군대만큼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음을 깊이 인식해야 하리라. 이제부터가 제대로된 삶이고 인생일 수 있으리라. 전역을 하는 순간에는 세상을 다가진 듯하고 모든 만사가 잘 풀려갈 것으로 기대하겠지만 생은 그렇게 만만하게 술술 풀려지지만은 않으리라. 이제 의당 남자라면 다 가야하는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마치고 한 성인 남자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최소한 남자는 군복무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 우스개에 그런 것이 있었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얘기가 뭐냐 그러면 그것은 군대이야기이고 또하나는 축구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면서 최고로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로 꼽는 것이 군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했었다. 지금이야 모두가 월드컵에 열광하고 응원에 한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ᄆᆞᆯ이다. 요즘 경제도 어렵고 취업도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힘든 것이 요즘의 세태다. 모쪼록 정신차리고 학업도 열심히 마무리하고 정상적으로 순리를 쫓아 인생의 출발점에 설 수 있도록 잘 대비하고 준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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