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녹사 모임을 다녀오며
지난 주말에 신녹사 모임이 있었다. 여름휴가를 보내고 추석이 지나 만난 모임이어서 꽤 오랜만에 회원들과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거의 전 회원이 참석했다. 영재네만 빠진 모양이었다. 제일먼저 기택이네와 훈민이네가 왔다. 민경이네와 수미네가 왔고 다음으로 회장님네, 재민이네, 학균이네 그리고 교장선생님 마지막으로 고문네가 왔다.
장소는 예전 KFC가 있던 자리의 뒷건물에 위치한 갈비촌이었다. 메뉴로 시킨 것은 처음에는 갈매기살로 하다가 모듬으로 바꿨다. 이러 저러한 일상들에 관한 얘기들이 있었다. 화제의 중심에는 오랜 노력 끝에 고문이 내일 영세를 받는 것이었다. 영세명도 스테파노라고 정해졌단다. 오늘 저녁 8시에 성당으로 가서 내일의 본행사에 대비한 예행연습을 해야 했다. 그것에는 대부역을 맡은 훈민이 아빠와의 협조가 크게 기여한 듯했다. 오랫동안의 교리공부를 거쳐 힘들게 나이 60에 영세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영세를 받음으로써 이때까지의 모든 죄악이 사함을 받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내용이었다. 재민이는 3개월여의 자전거 유럽여행을 마치고 8월 중순에 돌아왔다. 범수는 아산에서 공익보건의로서 의료활동지원을 하며 생활하고 있단다. 그 와중에 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빠의 자가용을 내일 넘겨주기로 한 상태라고 했다. 휴가도 거의 아산에서 보냈단다. 꼬박 3년을 근무해야 한다고 하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봉급이 2백만 원가량 되었다. 민경이는 강남에서 미용사로서 잘 배우고 있단다. 머리손질 한 번하는 비용이 4만5천원이라고 하니 대단한 실력이었다. 용성이네는 차량을 바꿨다. 카니발 11인승으로 교체해서 신이 나 있었다. 영근이네는 할아버지가 간암말기 판정을 받아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했다. 영근의 여친은 일주일간 유럽을 돌아보고 왔단다. 영근이와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올 3월에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간 상황인데 아직 학교도 3학기를 남기고 있었다. 올 12월말쯤에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기택이네는 보성쪽의 빈집 농가에서 열흘정도 지내다 오기도 했다는 얘기를 했다. 교장선생님은 결혼식을 다녀오시느라 늦으셨다고 했다. 부회장은 어제의 전작도 있고 곧 성당을 가봐야 하는 것 때문에 술을 먹는 것이 더뎠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어떤 이는 소맥으로 어떤 이는 소주로 어떤 이는 맥주로 각양각색의 음주양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요즘은 술을 마셔도 적당히 마시는 것이 추세이고 유행인 듯했다. 예전처럼 강권하거나 취할 정도까지 마시는 경향은 많이 줄어든 듯했다. 모임을 시작한지도 거의 15년이 다 되어가니 무척이나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모임이다. 대부분 회원 간의 속사정을 다 아는 편안한 모임이었던 것이다. 초창기에는 무던히도 어울려 다녔고 주기적으로 행사를 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많이 시들해졌다. 이제 할아버지가 된 이도 있고 손자를 보기도 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 했다. 뭐니 뭐니 해도 화제의 중심은 재개발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졌다. 강남의 노른자 위 땅이라 할 만하였다. 50여 평이 되니 그 가격도 천정부지인 듯했다. 사업주와의 소송이 진행 중이란다.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매입 가격에 대한 적정여부를 산정하기위해 소송을 불사한다고 하니 이권에 대한 논란은 결국 쉽게 되지는 않는 듯했다. 평당 가격이 3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30% 가 세금으로 나간다는 얘기도 했다. 아무튼 이제는 그것만 해결되면 거의 재벌 수준은 아니더라도 제법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듯했다. 오랫동안 각고의 노력을 해왔던 터였고 10여 년 전에 무리를 해서 장만했던 집이니만큼 그 정도의 보상으로 보답을 받는 것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 명의 아이들은 이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상황이고 보니 세월이 흘렀음을 절감하게 된다. 몇 년 후면 이제 손자 손녀 얘기가 화제의 중심에 설 것 같았다. 얼마 후 자리를 파했다. 그 사이에 영세를 받기 위한 전야 행사를 위해 두 분이 잠깐 자리를 비웠다. 1차적으로 모임을 파한 후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갔고 또 일부가 남아서 인근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전에는 1차 모임 2차 호프 3차 노래방의 수순을 밟았으나 이제는 겨우 1차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애주가들만 2차정도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 추세였다. 나중에 영세 준비를 위해 성당으로 갔던 두 분이 합류하였다. 늦은 시간까지 담소하며 근황들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 모임은 2000년경에 결성되었고 신림, 녹색소년단, 사랑하는 모임의 첫 글자를 따서 신녹사로 지었다. 매월 1회 정도 모이고 모이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명절이 끼인다든지 휴가기간이라든지 기타 회원의 혼사가 있으면 그렇게 혼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모임을 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곳에서 온 회원들이었고 각종 직업에 종사하는 형편이어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의 목적이나 목표를 갖고 모임이 유지되고 지켜져 온 셈이었다. 우의를 돈독히 한 상태였기에 잘 운영이 되는 듯했다. 초창기에는 일요일마다 서울대학교 공학관까지 갔다 오는 자전거타기를 했었고 아이들도 함께 했었는데 얼마 후에 아빠들만 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지금은 간혹 자전거를 타러가는 상황이 되었다. 야외행사도 곧잘 다녀오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거의 신림동 부근에서 행사를 치르는 것이 대부분이 되었다. 처음에는 인원이 많았으나 부득이한 사유 등으로 인해 12명으로 축소가 되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장성해서 거의 혼인 적령기에 접어들 정도가 되었으니 세월의 유수 같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자녀들도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이도 있다. 모든 자리가 끝나고 돌아올 때에는 집근처에 사는 회원의 차를 얻어 타고 모자원고개까지 와서 귀가했다. 조신하게 술을 마셨고 천천히 마신 탓에 그렇게 취기가 오르지는 않았다. 앞으로 이 모임도 경조사를 챙기고 회원의 친목도모를 최우선으로 하는 그런 식으로밖에 될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회원들이 항상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고 원하고 뜻하시는 바를 다 이루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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