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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연재물 ( 일본이 선진국이었던 이유9)

편견과 선입견이 꼰대로 만든다

by 자한형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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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선입견이 꼰대로 만든다/ 김교환 기자

여우가 자기 생일을 맞아 맛있는 음식을 한상 차려놓고 두루미를 초청한다. 음식들은 모두 납작하고 예쁜 접시에 담겨져 있다. 여우는 맛있는 음식을 혀로 핥아 먹으면서 두루미에게 권하지만 두루미는 긴 주둥이로 접시에 얇게 담긴 음식을 먹지 못해 그냥 구경만 할 수 밖에 없다.

해님이 어느 날 달님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빠서 저리도 분주하게 움직일까요? 달님은 아니 내 보기엔 잠만 자는 데요 하면서 해님에게 나뭇잎을 보라고 한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얼마나 예쁩니까? 해님은 아니 그냥 푸르기만 한데요? 이때 지나가던 바람이 말한다. 해님과 달님의 말이 다 맞네요. 해님은 낮에 본 사람들의 모습이고 달님은 밤에 본 나뭇잎의 모습이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흔히 대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편견이라 하는데 이는 공정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한다. 일어난 상황에 대해 미리 잘못된 방향으로 자기 생각을 굳혀놓고 현상을 해석하려고 한다. 또한 우리는 살면서 경험에 의해 쌓인 지식이 자기만의 생각으로 어떤 현상을 볼 때 미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굳어진 생각인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마치 고집불통의 어른들이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고정관념 역시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하여 흔들리지 않는 관념인데 세 가지의 경우는 엄격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편견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와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면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양보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편견을 비난하면서도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편견이나 선입견은 사실도 진실도 아닌 한 사람 또는 특정 집단의 생각일 뿐이다.

우리 모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어제 유용하던 지식이 오늘 무용지물이 되는 변화가 빠른 정보사회다, 그래서 누가 더 빨리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활용하느냐의 경쟁이다. 따라서 젊은이들로부터 불통이요 꼰대가 되기 전에 스스로 젊은이들과 소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로 남의 모르는 사실에 대해 잘난 체 하고 비판이나 비방을 하지 말자. 내가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잘못 알고 있음에도 자존심 때문에 잘못이나 무지를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자기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멸시하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말의 합리화를 위해 너무 우기지 말자. 누구나 부족함이 있고 실수도 있다. 또한 누구나 믿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속성도 있다. 흔히들 상식이란 말을 많이 쓰지만 그 상식이 내 자신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아닌지 살펴보자. 시대의 변화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도 그 기준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절대적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 이 사회에 발맞춰 내 생각을 바꿔 나가야 한다. 우리말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있다. 사랑과 이해와 관용이 담긴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이다. 육체의 눈은 나이가 들수록 어두워지지만 마음의 눈은 얼마든지 밝게 가질 수 있다.

일상의 기적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박완서 작가가 쓴 일상의 기적의 한 부분으로 나는 며칠 전 우연히 오른쪽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너무도 작가와 같은 공감을 하게 되었기에 여기에 옮겨 보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뜨거운 물수건으로 찜질도 하고 파스도 붙여가며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 점점 심하게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약국 약에도 효과가 없고 침대에서 일어나고 눕기와 잠자리까지 불편하고 허리를 굽히는 일과 기침에도 신경이 쓰일 지경이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자다가 얻은 병이란 말에 공감하며 결국엔 병원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간단한 문진에 이어서 이곳저곳 X-ray를 찍은 다음 의사의 판정을 기다리는 동안 오만가지 불길한 생각을 하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다가 일종의 근육통이라는 진단과 함께 물리 치료와 며칠간의 약 처방을 받고 나왔다.

원인도 모르며 고통을 겪으면서 마음대로 되는 줄로만 알았던 내 몸에 대해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뛰고 걷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새삼 느낄 수 있었고 그동안 무모하게 혹사를 했던 내 몸에 대해 미안하다. 아무 생각 없이 두 다리로 걷고 뛰어다니던 일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기적임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와 건강을 비교하는 격언을 새롭게 생각해 본다. 우리 인체를 신비한 소우주라고 하여 인간만큼 완벽한 기계는 없다고 하지만 아무리 장수시대라고 한들 70, 80년 써먹으면 어느 정도 고장은 당연하다. 그래서 늙으면 병과 함께 살아감이 숙명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늘 조금만 불편하면 자기만 불행하다고생각하는 걸까? 나이 들면 숨차고 피로한 것이 당연하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강 공포증(메디칼 리베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건 욕심 때문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서만은 유독 귀가 얇다. 그래서 TV광고나 선전에 잘 속는다. 신비한 우리 인체는 매우 복잡한 구조이이고 구석구석 다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또한 질병과 노화를 구별해서 생각해 보자. 그리고 숫자에 너무 민감할 필요도 없다. 65세만 되면 노인이라는 그물에 스스로를 가두는 심리적 위축이나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골밀도 등의 정상인 수치를 갖고 70~80 어른까지도 거기에 꼭 맞춰야 된다는 것은 무리다. 큰 불편을 못 느낀다면 너무 걱정하지말자. 인체는 신비하고도 복잡한 기계이면서 정신건강이 육체건강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