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생 정동분 4 : 엄니 다 끝났어, 나 그 남자랑 잤어/꼬마목수추천
포니를 끌고 나타난 남자
시간은 다시 흘러 동분 나이 스물둘이었다. 그때 동분은 언니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야, 말도 말어. 그 좁은 집에 아부지, 어무니 있지, 니네 큰 외삼촌이랑 외숙모 있지, 그 사이에 새끼가 둘이나 있지, 거기에 나, 내 밑으로 여동생 있지. 여덟 명이 한 집에서 바글바글하는데, 얼마나 답답했겄냐. 니네 작은이모야 그때 초등학생이었으니까 상관없지만, 엄마는 스물이 훌쩍 넘은 처녀인데, 그 집에 있고 싶었겄냐. 그래서 니네 큰이모 집으로 들어간 겨.”
그때 동분의 언니는 서른.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 모시며 살았다. 그래도 그 집은 형편이 좀 괜찮았다. 식구도 적었다. 무엇보다도 형부가 동분을 친동생처럼 살뜰히 챙겨줬다. 그래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운명의 그날은 설날이었다. 종갓집 며느리인 언니 따라 부지런히 술상을 차렸다. 술상 차리기 무섭게 손님이 또 오고, 그 손님이 나가기 무섭게 또 다른 손님이 왔다. 부엌에서 겨우 한숨 돌리는 찰나, 거실에서 “손님 왔으니 술상 좀 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니네 큰이모가 부엌에 들어오면서 ‘저기 아자씨 왔네, 아자씨.’ 이러는 겨. 그래서 누가 왔나 힐끔 봤더니, 세상에나. 니네 아빠가 거기에 떡하니 서 있는 거 있지. 내가 ‘미쳐 미쳐 어뜩해 언니, 나 어뜩해.’ 그랬더니 니네 큰이모가 ‘아휴 왜?’ 이런다. 그래서 내가 ‘얘기했잖어, 예전에 그렇고 그런 사람 있었다고, 그 사람이 저 사람이여, 저 사람이 여길 왜 와?’ 했다는 거 아니냐. 호호호.”
상황 설명 좀 해야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송일영은 어쩌자고 동분의 언니 집에 세배를 하러 온 걸까. 상황이 복잡하니까 설명 잘 들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 인물은 동분의 형부다. 동분을 친동생처럼 살뜰히 챙겨줬던 그 형부 말이다.
그 사람 이름이 ‘송인대’다. AI가 바둑 두는 세상에 촌수를 따질 수밖에 없어서 참으로 송구스럽지만 그땐 그런 시절이었다. 은진 송(宋)씨 25대손 송인대는 은진 송(宋)씨 24대손 송일영의 아들뻘이다. 그러니까 송일영은 송인대의 어머니(송일영에겐 형수뻘이자 집안 어른), 즉 동분 언니의 시어머니에게 새해 인사를 하러 온 거였다.
그럼 또 이런 의문이 든다. 은진 송(宋)씨가 적지 않을 텐데, 그 많고 많은 은진 송(宋)씨 집안 가운데 송일영은 왜 하필 송인대 집에 인사하러 온 걸까. 상황은 또 이렇다. 2년 전, 송일영과 동분이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만 해도 동분은 신탄진에, 송일영은 대전에 살았다. 그랬던 송일영 집안이 그즈음 송인대가 사는 신탄진의 은진 송(宋)씨 집성촌 주변으로 이사 왔던 것. 그러니까 송인대와 송일영은 윗동네 아랫동네에 사는 이웃사촌이자, 같은 집안사람이었던 거다. 관계가 이렇게나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그런 사정으로 동분과 송일영은 또다시 운명 같이 만난 것. 동분 나이 열여덟에 처음 인연 맺고, 스물에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가, 스물둘에 또다시 극적으로 재회한 것이니, 이 질기고 질긴 인연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니네 아빠도 나를 딱 알아보더라고. 니네 아빠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여. 그때부터 또 들이대기 시작하는데 그 사연이 또 한 보따리여.”
그러면 여기서 또 잠시, 그때의 송일영 상황을 보자. 스물넷에 백수건달로 동분을 꼬시려던 송일영은 스물여섯부터 회사택시를 굴렸고, 스물여덟인 이 시점엔 대한생명으로 이직 준비하고 있었다. 한화생명 전신인 대한생명은 그때도 제법 큰 기업이었다. 서울 본사만으로는 관리가 안 돼서 전국 팔도에 지사를 세웠다.
1960년, 남대문 대한생명 사옥
각 지사를 총괄하는 지사장에겐 고급 승용차 한 대와 수행비서가 한 명씩 딸려있었다. 당시 대한생명 충청북도 지사가 청주에 있었다. 회사택시를 몰던 송일영이 그 충북 지사장 수행비서로 덜컥 취직되었던 것. 하여, 한두 달 안에 청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 동분과 재회한 거다. 그러니 이번에 동분을 놓치면 끝이라고 생각했을 터. 그때부터 송일영은 집안사람을 총출동시켰다. 그 첫 번째가 송일영의 작은누나였다.
“니네 큰이모랑 작은고모랑 하필이면 또 동네에서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였나 봐. 난 전혀 몰랐지. 그런 거 보면 니네 아빠랑 나는 어떻게든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거 같어. 아무튼 그때부터 니네 작은고모가 문지방 닳도록 우리집에 들락거리는 거 있지. 니네 아빠가 시켰다는 겨.
‘누나, 인대 마누라의 동생이 내가 옛날부터 알던 아가씨인데, 그 아가씨가 지금 인대네 집에 와 있어. 난 그 아가씨랑 무조건 결혼해야 겄으니까 누나가 가서 좀 어떻게 해봐.’
그랬다는 겨. 니네 작은고모가 큰이모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두 사람이 쿵짝이 되어가지고는 나를 꼬시기 시작하더라고. 근데 또 웃긴 게 뭔지 아냐? 호호호. 니네 작은고모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더니, 한날은 니네 친할아버지가 와. 말도 안 붙여. 슥 와서 차 한 잔 마시고 슥 가. 니네 아빠가 보냈겄지. 그러고 또 며칠 있다가 니네 친할머니가 슥 와. 또 차 한 잔 마시고 가. 니네 큰고모가 또 오고. 다들 나한테 말도 안 붙여. 그냥 슥 와서 내 얼굴 한 번 보고 가는 겨. 니네 아빠가 온 집안사람을 들들 볶은 겨. 빨리 가서 얼굴 보고 오라고. 그 집 아가씨랑 결혼할 거라고. 니네 아빠도 그런 거 보면 대단햐.”
언니 등쌀에 못 이겼던 동분은 결국, 송일영과의 정식 맞선 자리에 나갔다. 그 사이 송일영은 벌써 대한생명 지사장 수행비서로 취직한 상황. 동분을 두고 청주로 떠날 수 없어, 그 먼 거리를 출퇴근하며 이사를 미루고 있었다. 다방 앞에서 만나기로 한 송일영이 포니1을 끌고 나타났다. 물론, 지사장에게 딸린 수행 차였지만.
“엄마는 차를 잘 모르잖냐. 니네 아빠 말로는 그 당시 신탄진에서 포니1은 니네 아빠가 몰고 다니는 그거 딱 한 대였데. 그때가 1982년이니까. 아무튼 그때 니네 아빠가 벌써 스물여덟이어서 그런가, 스물네 살 때 가다마이 입고 빗질하면서 엄마 꼬시던 때랑은 또 좀 다르더라고. 원래도 말이 많은 양반은 아니었는데, 더 점잖아진 것 같기도 하고. 니네 아빠 얼굴이야 뭐 처음 봤을 때부터 나쁘지 않았지. 지금 생각해 보면 모래시계의 이정재 같은 느낌이었던 거 같어. 직업도 이정재랑 비슷하고, 분위기도 그렇고. 과묵하면서도 샤프한 느낌 있잖어. 알지? 그런 데다가 월급도 25만 원이나 받는다고 하니까. 야, 그게 40년 전 얘기여. 지금으로 따지면 500만 원 돈이여. 엄청 큰돈이었지.”
1982년 3월 대청댐에서, 짧은 연애 기간에 찍은 유일한 사진.
뒤로 보이는 차가 송일영이 끌고 다녔던 포니1이다.
그날의 석양을 기억한다
‘나쁜 놈’으로 낙인찍혔던 사람과 어떻게 연애하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을까? 나로선 그 감정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또한 “그냥 운명인가 보다, 하고 만난 거지 뭐.”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아무리 우연적인 만남이 몇 차례 반복됐다 해도, 서로의 집안이 얽히고설킨 관계여서 의지와 다르게 떠밀린 부분이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운명’으로 눙치고 넘어가기엔, 감정의 점프가 너무 큰 거 아닌가?
'딴지일보 연재물 ( 일본이 선진국이었던 이유9)' 카테고리의 다른 글
61년생 정동분5 (1) | 2023.06.07 |
---|---|
정동분 4(2/3) (1) | 2023.05.17 |
그리운 나의 아버지, 어머니 (0) | 2023.05.05 |
편견과 선입견이 꼰대로 만든다 (0) | 2023.04.20 |
61년생 정동분3 (1) | 2023.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