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나는 지난 여름 그러니까 76년 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 시골로 내려갔다. 동생들이 한발 먼저 내려갔고 조금 후에 내가 갔다. 8월의 무더위가 기세를 부린 후 조금 지난 때였기에 밤에는 그래도 좀 기온이 내려갔다. 그리고 또 고향에는 주위에 산이 높아서 입구가 한 곳 뿐이었고 큰 연못도 하나 있었다. 조상들은 본래 고성에서 왔다고 했다. 동족부락은 아니어서 친지들은 거의 없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거의 날이 저물고 난 뒤였다. 버스에서 내려 부산 대도시에서 마시던 공기와는 사뭇 달랐다. 비록 밤이어서 산뜻한 시원함은 맛보지 못했어도 어느정도 짜릿한 기운은 맛볼 수 있었다. 아주 고요한 세상에 온 그 중국의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면서 홀로 들길을 걸어서 갔다. 전기는 들어왔다고 했으나 가난한 동네여서인지 가로등도 없었고 집사이에 불빛이 간간히 빛나고 있을 따름이었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두려운 마음을 달래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좋고 물맑은 고향 길을 천천히 걸어서 고향집으로 갔다. 대문에 들어섰음에도 인기척이 없다. 방문을 열자 동생들과 사촌동생 그리고 백모님이 TV앞에 모여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가 나타나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골의 정겨움이 묻어났다. 집에서 늘 보던 동생들도 고향에서 마나니 참으로 새롭고 반가운 얼굴이었다.
나는 곧 사랑방으로 내려가 88세의 노령으로도 거뜬히 젊은이 못지않은 일을 해내시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도 손자를 보시고 손을 잡으시며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할아버지의 손톱 마디마디마다 굵은 인생의 관록을 지닌 인간역사를 이끈 그 위대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또다시 큰 방으로 와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냈다. 밤늦게 나는 할아버지 방으로 와서 이불을 깔고 누웠다. 막 잠이 들려는 찰나 소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아무일도 아니려니 하고 잠을 청하려는 순간 백모님께서 할아버지께 큰 소리를 질렀다. “ 소 저것이 새끼 낳으려는 것 아닙니까?” 할아버지께서 얼른 일으나셔서 옷을 챙겨입고 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나왔다. 나도 덩달아 따라 나왔다. 마당에 나오자마자 곧 소는 새끼를 뱉어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새끼를 낳은 어미소를 바라다 보았다. 어미소는 곧 새끼를 그의 그 억센 뿔로 죽은 듯이 누워 그의 몸이 물에 빠진 생쥐모양으로 해 있는 그의 가여운 새끼를 뿔로 들이받아 그의 외양간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와 백모님이 나와 함께 그 어미소가 하는 모양을 바라다 보고 있었는데 참으로 가관이었다. 외양간으로 데리고 온 어미소는 새끼를 계속해서 혀로 핥았다. 인간들도 저렇게 하지는 않으리라 여기며 인간의 모성애와 흡사하다고 생각하며 오늘날 어머니들이 과연 저 동물만큼 새끼를 보살필까 의문을 품었다. 그러다가 그렇게 자기의 애정을 다바쳐 그 새끼를 혀로 핥았으나 그래도 죽은 듯이 있는 새끼에 화가 치밀었는지 어미소는 계속 그 억센 뿔로 구석으로 새기를 몰아놓고 들이받는 것이 아닌가. 마치 링 위에서 고양이가 궁지에 몰린 생쥐를 다루듯이 그 불상한 갓태어나 새끼를 말이다. 그 참 알 수 없는 어미소의 행태였다. 이럴 때 내가 동물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었다면 좀 더 안전하게 새끼를 정신차리게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여겼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보다못해 그 성난 어미소가 들이받는 새끼 소를 구하기 위해 외양간 안으로 들어가셨다. 사람도 자기를 먹여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할만큼 어미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참 들이받은 탓인지 소뿔이 빠져버려 피가 나고 있었다. 극도로 당연히 피를 본 소는 흥분이 되었다. 그 위험한 상황 속에 있는 외양간으로 들어가신 할아버지는 새끼소를 외양간 중앙으로 몰아서 내 놓았다. 할아버지께서 외양간에서 나오는 순간 어미소는 할아버지를 내치진 않았으나 새끼를 들이받으려 하면서 옆의 할아버지 등을 들이 박았다. 할아버지는 외양간 가장자리에서 소에게 들이 받쳤다. 겨우 정신을 차리시고 외양간을 빠져나왔다.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던 나와 백모님으로서는 이루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어찌 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백모님은 마을로 내려가서 무당과 마을의 청년들을 몇 명 불러왔다. 식계에서 밤 12시를 알리는 소리가 12번 울려퍼졌다. 할아버지 등에서는 긁힌 것처럼 피가 조금 배였고 별로 크게 다치시지는 않았다. “저런 망할 놈의 소를 봤나.” 라고 하시면서 큰 고함을 치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큰방으로 모시고 가서 간단히 치료를 해 드렸다. 아직도 새끼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청년 몇 명이 와서 어미소의 소삐를 다시 억센 동아줄로 메어 기둥에 묶었다. 축축하던 새끼소의 몸의 물기가 어미소의 혀로 핥은 탓인지 거의 다 말라갈 즈음에 새끼소가 드디어 일어났다. 아주 빠른 생명의 탄생과 성장이었다. 사람이라면 1-2년 아니 3-4년이 지나야 겨우 자기 대소변도 가리고 밥을 먹을 정도가 되는 것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었다. 저 하등동물인 소는 어찌하여 낳은 지 불과 몇시간 만에 완전히 자기 몸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서고 그 처음 생명의 울음소리를 힘차게 울부짖을 수 있으니 자연이란 이런점에서 대단히 신비로운 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미는 새끼가 가까이만 가면 뿔로 들이받으려 했음에도 새끼는 자꾸만 어미쪽으로 갔다. 무당은 곧 찬물을 한그릇 상위에 얹어놓고 열심히 뭐라 중얼거렸지만 어미소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그 큰코가 벌렁벌렁거리고 침을 질질질 흘리고 있었다. 백모님은 대문앞 돌담에 뱀이 있다고 했다. 나는 곧 깔비를 끌어모으는 긴 작대기를 가지고 후랫쉬를 비쳐보았다. 과연 손가락 굵기의 길다란 놈의 뱀이 슬금슬금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 뱀을 겨냥해서 작대기로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작대기만 부러지고 말았다. 재빨리 나는 마당으로 들아와 긴 지게 작대기로 다시 대문앞 담 옆에 가서 불을 비췄다. 아까 그 뱀이 기어가는 벽을 힘껏 내리쳤다. 뱀이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담벼락에서 떨어져 땅 위에 그 징거러운 배를 보이며 내동댕이 쳐지고 말았다. 섬뜻한 기분이 되어 계속 그 뱀을 내리쳤다. 그런 후 다시 마당으로 들어왔다. 아직까지도 무당은 혼자서 소 옆을 빙 둘러서 걸어가면서 뭐라고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소가 어슬픈 무당의 말을 곧이 들을리 없었다. 천지가 진동하는 울음소리를 울부짖었다. 어느새 자던 아이들이 마당에 나와 불빛 속에 그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미소의 하나의 생명을 탄생한 순간의 진통이었으리라 여겨졌다. 우리는 소를 그대로 두가 각각 자기방으로 돌아갔다. 나도 다시 사랑방으로 들었다. 그 때 괘종시계의 둔탁한 종소리가 3시를 알렸다. 조금 후 잠이 들었는데 밖이 어수선했다. 나는 곧 일어나 큰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불행하게도 백모님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고 눈을 감은채 숨난 쉬는 채로 큰방에 누워 계시지 않는가.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백모님의 먼 친척되시는 표선생님이란 분이 와서 곧 사람을 보내 의사를 불러오게하고 학교에 사람을 보내 박자형과 누님도 불러오게 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소가 한바탕 소동을 부리던 때에 백모님과 무당과 이웃사람들이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하던 중에 백모님께서 왼쪽에 앉아 계시다가 오른쪽으로 옮겨가시던 중에 갑자기 쓰러지셔서 정신을 잃으셨단다.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백모님의 사고에 울음을 터뜨렸다. 계속 마을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혀를 차며 백모님의 일을 걱정하고 슬퍼했다. 백부님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읍내에 있어 집에는 아이들과 할아버지 백모님 뿐이었다. 백모님의 자녀들은 모두 결혼을 한 딸들 넷이었다. 읍에서 의사가 간호사를 데리고 와서 주사를 놓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까지도 백모님은 깨어나시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중풍이었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서 백모님의 손을 만져보았다. 반신이 움질일 수 없었다. 아무리 혈액을 순환시키려 해도 되지 않았다. 잠에 누님과 박자형이 아이들과 함께 왔다. 누님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통곡을 하며 어머니의 옆에 앉아 “ 엄마. 엄마. 엄마.” 하고 어린애처엄 얼굴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몇 번을 불러보다 슬픔에 복받쳐 큰 소리로 한탄해 하며 그 많은 마을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울부짖었다. 그 슬픈광경을 어찌 눈물없이 보겠는가. 한평생 갖은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백모님이었다. 저렇게 비통하게 병마에 들게 했단 말인가. 뭇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운명이라는 것이 저런 것인가. 나는 그 방을 뛰쳐나와 작은 방에서 한잠도 자지 못한 잠을 보충했다. 딸만 넷을 낳아 키워 다 시집 보낸 그 장한 어머니가 어찌 이제 좀 편안하게 여생을 마치려 하는데 갑자기 병마가 찾아오니 안타까움이 컸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어찌 한 가려한 여인에게 이토록 참혹한 일이 벌어지게 하는가. 성경에서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땅에 떨어지는 것 만으로도 그 얼마나 큰 고통이고 희생인데 말이다. 하느님은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 구약에 나오는 것처럼 전쟁중에 법괘를 싣고온 소가 하느님의 백성쪽으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대한 소를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의 제물로 바치게 한단 말인가. 하늘이시여 부디 이 불쌍한 분을 구원해 주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고 간구했다. 다음날 아침 읍내에 있던 백부와 아들이 왔다. 아들은 들어오자말자 소리내어 흐므끼며 엄마를 불렀으나 백모님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심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의사였다면 이 고통을 해방시킬 수 있었을까. 이제 세상의 복락을 누릴 때가 되었는데 갑자기 병고가 찾아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후에는 부산에서 마산에서 딸 둘이 올라왔다. 두딸 모두 어머니의 병환을 슬퍼하는 것은 지극했다. 메마르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의한 슬픔은 극에 달했고 비통함과 애통함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아침에 나는 산에 올라가서 시골의 정경을 바라다 보았고 그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들여마셨다. 그렇게 해서 병을 앓게 되신 백모님은 여러 백약을 쓰고 효험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죄다 적용해 보았지만 이미 반신불수가 된 몸은 회복에 상당한 애로를 겪었다. 발병한지 3년이 지난 후였다. 조금씩 신경이 살아있는 부분으로 해서 기동을 하기도 했지만 온전하지 못했다. 3년의 병고를 거친 후 백모님은 운명하셨다. 딸들과 아들은 백모님이 운명하시자 지구가 세상이 떠나갈만큼 울부짖음이 천지에 진동하는 듯했다. 따라온 외손자들도 울부짖는 어머니를 따라서 울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찢어졌다. 백부님도 마음이 아프셨지만 담담한 기분으로 마당에 나와 먼 하늘을 쳐다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치 못했다. 할아버지도 오랫동안 동고동락해 온 맏며느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굶은 눈물방울이 눈가를 적셨다. 모두가 슬퍼했다. 집앞의 나무들도 주인을 잃은 슬픔에 생기가 없었다. 다음날에도 많은 문상객들이 찾아왔다. 고인을 추모했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3일장이었다. 장례가 곧 치러졌다. 상여를 따라가는 행렬이 상주들이 늘어섰고 긴 행렬을 줄지었다. 관을 메고가며 곡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뒤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애닲게 했고 슬퍼게 만들었다. 백부님도 뒤를 따르며 생전에 못다한 여러 일들로 많은 회한을 남겼고 눈물을 훔쳤다. 할아버지께서도 장례행렬을 따라 산으로 가셨다. 한 여인의 죽음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허무한 인생이란 생각이 갓 피어나는 꽃같은 젊었던 나에게도 절실함이 더했다. 장례를 마치고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나의 거주지인 부산을 향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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