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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의 향기 (5권)

주름

by 자한형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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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주름 이란 소설은 박범신 작가의 작품이다. 1999년에 나왔던 침묵의 집이란 소설을 세 번째로 깍아서 만든 작품이다. 한 주류회사의 자금담당 이사이 김진영은 어느날 갑자기 권태로운 일상에서의 일탈을 꾀한다. 와이셔츠의 단추에 실밥이 풀리고 그것에서부터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아내에 무척이나 이례적으로 화를 내고 출근을 한다. 퇴근을 하는 시간에는 공교롭게도 비가 내린다. 노란 우의를 입고 가는 한 여자를 쫓아서 그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녀는 화실로 들어간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는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그녀가 화가겸 시인이라는 천예린이라는 이였다. 김진영이사는 며칠 후 그녀의 시낭송회에 참석한다. 낭송회가 끝나고 시인의 차를 운전하게된 그는 그녀와 바다를 보러 떠난다. 외박을 몰랐던 충실한 가장이었던 김이사는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녀는 그보다 4년이나 연상이었다. 딸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경혜였다. 화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강변이 보이는 그녀의 아파트에 출입하게된 이사는 공금까지 횡령해서 그녀를 도왔다. 그런데 그녀는 김진영이사와는 별도로 또하나의 젊은 화가를 애인으로 두고 있었고 그를 돕기위해 김진영에게서 돈을 빌려왔었던 것이었다. 남편의 바람에 화가난 부인은 그녀를 만나기도 하고 그들의 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 애써보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고 예술적 연주회 전시회 등을 쫓아다니며 문화생활을 즐긴다. 그녀는 한 신부를 파계시킨 장본인 이기도 했었다. 2년여의 동거 후 그는 결국 다시 성당으로 되돌아 가기도 했다. 그들의 사랑은 달콤했고 황홀한 기분을 맛보게 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잠적해 버리고 만다. 아파트는 팔렸고 그녀의 딸이 운영했던 화실도 문이 잠겼다. 어느만큼의 세월이 흐른 후 그는 그녀가 나이로비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자 그는 그녀를 쫓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품는다. 그리고 그는 재크나이프를 산다. 그는 공금을 횡령해서 일부는 집에 두고 나이로비행을 감행한다. 케냐였다. 킬로만자로의 표범이 사는 곳이고 만년설이 있는 곳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케냐에 도착한 김이사는 이제 그녀를 만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의미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다음으로 전해진 그녀의 행선지는 모나코의 카사브랑카였다. 그가 가보니 그곳은 영화 카사브랑카의 무대였던 곳이었다. 그 카페에서는 아직도 영화주제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어느날 피아노 연주자는 김진영을 위해 연주를 한다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그것은 천예린의 부탁에 의해 짜여진 각본처럼 연출된 내용이었다. 길거리를 걷던 중 그는 날치기를 당하고 빈털터리가 된다. 그리고 범인을 쫓다가 엉뚱한 아이를 다치게 하는 우를 범하고 그것을 벌충하기 위해 노역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2주정도의 노역으로 그는 그 배상을 채우지만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40여일동안 더 노역을 감내한다. 그리고 여비가 마련되자 다시 천예린을 찾기위해 그녀를 추적한다. 그녀가 간 곳은 북해 쪽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파리를 거쳐 영국으로 가고 영국을 거쳐 스코틀랜드 북쪽까지 간다. 그리고 그 북쪽끝 부근에 있는 오크니 섬에서 그녀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당초 그녀를 죽여버리고자 했으나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서 그는 그녀를 용서하고 단죄를 단념한다. 그녀는 투석을 하고 병원 치료를 하지만 결국 온몸에 종기가 나고 열꽃이 피어나는 고통에 휩쌓인다. 그러자 그는 그 피고름을 핥아내고 정제시켜간다. 자신에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극복하기 어려워진 그녀는 결국 자살을 감행하지만 그가 그녀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긴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결국 그녀의 권고를 받고 그곳을 떠난다. 그가 간 곳은 이스탄불이었다. 그곳에서 온갖 잡일을 하며 생활하던 그는 어느날 그녀가 예전 그 신부에게 갔을 것으로 추측하고 그의 행방을 쫓아 간다. 그는 수도원에 있었고 행려병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는 결국 그녀와 같이 기거하게 되고 그녀의 몸상태가 점차 악화되어 감을 감지한다. 결국 그녀는 바이칼 호수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시작을 놓지 않았고 유언까지 다 한다. 유골을 어떻게 하고 장사를 어떻게 하라는 말을 남긴다. 김이사의 아들은 대학 3학년 시절에 아버지의 가출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는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소식을 듣게 되고 바이칼호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는 전예린씨가 죽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귀국을 종용하지만 봄까지만 있겠다는 답을 듣는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일을 당하게 된다. 그는 음성에 시골집을 사둔다.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시골에 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곳에 가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그리고 그는 시골집에서 기거하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날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는 급하게 시골로 내려온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망 경위를 듣는다. 그는 심장마비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읍내의 다방 아가씨와 정사를 하던 중 사망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전예린 그녀는 결코 김이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녀를 쫓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철저히 이용하고 활용하고 내팽겨쳐버리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면서도 둘은 처절할만큼 지독하게 서로를 탐닉했고 빠져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듯하고 그도 그녀의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듯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운명적이고 숙명적이었던 관계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듯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부분은 아무래도 천시인에게 빠져드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섹스를 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 시인에 대해 매력적인 부분이나 마력적인 요소가 있어야 할 것임에도 그것은 좀 아니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다. 나이도 훨씬 많고 그의 폐경도 다 지난 이로서 성적 매력은 차치하고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그런부분에서 마술적인 매력을 풍겨야할 텐데 그런 것에 관한 설명이나 해명이 좀 약한 것이 아닐까. 중년의 남자의 넋을 빼놓을 만한 그런 뭔가가 과연 무엇이었을까가 해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어떤 집착 인연의 끈 엮여진 운명에 의한 끌림이었을까. 도대체 해석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감각적인 부분에서 그 어떤 흔들림이나 끌림에 유혹되지 않을 충분한 연륜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있을 터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일탈한다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천명을 알 나이가 지나서 그렇게 물불안가리고 질풍노도와 같이 휩쌓여버리고 빠져버리는 부분에서 불가사이함이 있을 것인지 모를 일이다. 결코 그를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모든 것을 올인한다는 것에서 무척이나 무모해 보이고 그렇게 진정성이 느껴지지도 않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참으로 인간의 불가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부분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는 불같은 열정으로 삶을 다시 재투영시켰고 장년의 불꽃을 불사르고 갔다. 모든 지탄과 질시를 감내하면서 그가 과연 이루고 성취하고 느꼈던 것은 인간의 실존을 느꼈을까. 허망하고 무상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간게 아닐까 모를 일이다. 어제 한 모임을 갔었다. 그곳에서 한 분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이제 거의 60을 넘어 선 이였다. 마누라와 모든 관계가 끊겼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목석과 같은 관계가 연결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어떤 부분이든 상관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고 완전한 독립된 개체로서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각자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부부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오로지 그냥 이때까지의 정 때문에 마지못해 이어져 온 관계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랬다. 똑똑한 부인을 두는 것만큼 피곤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한다는 것이다.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배우자를 택하라는 것이다. 그는 그래도 충분히 세상을 살았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면서 노력했는데 이제와서는 아무도 그 노고를 알아주지 않고 그부분에 고마워하지도 않고 아버지니까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하는 부분에 안타까움이 일더라는 것이었다. 무슨 희망을 품을 수 있으며 어떻게 생을 영위할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남자 50대 중반이후의 삶의 진솔한 토로를 들었던 셈이었다. 그랬다. 이젠 우리가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질시될 때 장년의 남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은 결국 홀로 꼿꼿이 서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간단하고 쉽지 않은 일 같아 보인다. 김진영이 택한 길은 그여자를 전예린을 쫓아서 갈구하고 택하고 애증의 그림자를 밟아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삶의 실존적인 것을 구해보고자 떠났고 찾아보고자 했지만 결국에 남은 것은 허망한 삶이었다는 것으로 결론지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장년 남자여 자유를 찾아 비상하고 떠나라.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일 것으로 체화하면서 가슴 가득 차오르는 울분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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