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현
허허(許虛) 선생의 저택인, 즉 우리 집은 왜 그런지 그 집의 구조부터가 자못 심상칠 않았다.
흡사 무슨 옛날 얘기 속에 슬며시 등장하는 요술 단지처럼 항시 우리 집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사뭇 환상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환상적 이 란 말보다 실은 좀 기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는리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집은 종래의 집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은 설계로 하여 연신 그저 절묘한 형상을 취하고 있는지라 어찌 보면 우리 집은 섭섭하게도 전혀 인간의 집 같질 않은 기괴한 인상마저 풍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집의 혁명이랄까.
하지만 우리 집은 기왕의 집을 혁명화하여 좀더 살기 좋은 인간의 집으로 승격한 것이 아니라 흡사 우리 집은 인간을 생식하는 그런 어떤 이름 모를 괴물의 사령실과 같은 기이한 형자를 이루고 있다는 데서 나는 항시 우리 집을 바라볼 때마다 문득 가슴을 거슬러오는 뭔가 이 섬뜩한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탈이라는 것이다.
우선 우리 집은 집의 그 외형부터가 그렇다.
허허 선생의 집 하면, 첫째 둥글고 보기란 듯이 하여튼 집의 그 전후좌우와 상하를 구별할 아무런 표시가 없어 무작정 그저 둥글게만 생겨먹은 그런 어이없는 집이 파릇파릇 금잔디가 자르르 아름답게 깔린 수천 평의 그 엄청나게 넓은 대지 위에 홀로 썰렁하니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아마 누구나가 한번쯤은 일종의 우주 공항과 같은 것을 연상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다.
뭔가 지구의, 아니 이 코리어의 보물을 강탈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부단히 이착륙하는 대기권 밖의 어느 괴물체.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인간을 상대로 한 인간의 집이 아니라 미안하지만 그것은 인간과는 전혀 그 체온과 맥박의 수가 다른 그런 어떤 괴물의 은신처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부득불 나는 그 집을 드나들 때마다 늘 철렁하고 가슴이 배꼽 밑으로 내려앉는 느낌이어서 기우뚱하고 몸의 중심이 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형편이었으나 그러나 다행하게도 나의 부친인 허허 선생의 생각은 아마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지가 않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그는 그 집이랄 수도 없이 기이하게 생겨먹은 일종의 괴물체에 대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상스런 흠모의 정과 함께 어이없게도 그는 그 집의 운명에다 자신의 목숨마저 걸고 있는실정인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 집의 그 준공식(竣工式) 전(典)에서 보여준 그의 태도가 단적으로 잘 증명하여준다.
소위 그 저명 인사이신 허허 선생답게, 다시 말하면 그가 재계와 정계에서 점하고 있는 그 막중한 비중에 추호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말 그날의 준공식전은 일대 성황이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것은 일개 어느 건축물의 준공식이었다느니보단 차라리 뭔가 천지를 진동케 하는 그런 무슨 거대한 기구류의 빛나는 시동식(始動式)이었다는 편이 훨씬 더 근사한 표현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종전의 집들처럼 지층에다 깊이 뿌리를 박은 채 온종일 그저 무턱대고 서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제 주인의 뜻대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재주를 가졌으니 말이다.
움직이는 집. 그렇다. 그러나 어찌하여 움직이는 재주만이 우리 집의 전부이겠는가.
우리 집의 내부에 자리잡은 그 웅장한 조종실을 한번 훑어본 사람이면 아마 누구나가 한참동안 그 현란한 시설에 도취되어 벌린 입을 닫지 못할 것이다. 수백 마력의 동력(動力)을 조종하는 각종의 그 다양한 계기(計器)와 컴퓨터. 또한 그 계기와 컴퓨터에 연결된 아, 그 수많은 버튼들. 제가끔 특색 있는 색깔로 아름답게 몸을 치장한 각종의 그 크고 작은 버튼들을 하나하나 골라서 누를 때마다 우리 집은 실로 변화 무쌍한 조화를 부리는 것이다. 안의 구조와 겉의 형태가 수시로 번거롭게 변동한다. 단층이 어느새 이층 혹은 삼층으로 변하는가 하면 나의 서재가 그리고 영사실이 문득 호화스런 무도장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순간 견고한 금속성의 벽면(壁面) 전체가 온통 그저 투명한 유리로 변질되는가 하면 때론 그 둥근 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분수대로 돌변하여 가지고는 사면팔방으로 시원스런 물줄기를 뽑아 올리기도 하는 것이다.
장관(壯觀)이었다.
이렇듯이 경탄을 절한 일종의 신비스런 요술단지나 다름없는 우리 집의, 아니 그 괴물체의 장엄한 시동식에 즈음하여 그때 허허 선생의 태도는 실로 가관이었다.
집의 준공을 축하하는 잔잔한 선율이 주변에 가득 감돌고 오색의 영롱한 고무 풍선 사이사이로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하늘을 나는 가운데 은빛으로 눈부시게 단장한 예의 그 둥근 집이 앞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순간 허허 선생의 가슴을 덮친 감격의 분량은 아마 그의 의식을 흐려놓기에 족했던 모양이다.
미안하지만 그는 전혀 제정신비 아닌 상태에서 옆에 선 어느 귀빈의 한쪽 밤을 그만 짝 소리가 나도록 까닭 없이 한대 후려치더니,
「역시 최고로군. 암, 최고야.」
혼자서 숨가쁘게 탄복하듯 말하곤 아, 그는 느닷없이 잔뜩 까치발을 뜨면서까지,
「만세.」
하고 턱없이 목청껏 만세를 부르던 것이 아닌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디까지나 그날의 주격인 허허 선생이 사회의 핵심 멤버답질 않게 완전히 체통을 잃은 상태에서 돌연 식순에도 없는 만세를 부르며 영 끓어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자, 그때 당황한 사람은 비단 옆에 섰다 공연히 밤을 맞은 어느 귀빈이나 혹은 사회를 보던 어느 낯익은 인사뿐이 아니었다.
그의 자식인 나를 위시로 해서 그 자리에 도열한 가계 각층의 그 높으신 귀빈들은 모두 다 아연한 눈초리로 부친의 그 약간 경망스레 보이는 동작을 한참 멍하니 관망하다가 아무래도 그들은 이대로 가만히 있다는 것이 허허 선생에 대한 적절한 예절이 아니라고 판단했음인지 실은 그때 누가 신호를 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부친의 뒤를 따라 우람한 만세소리가 흡사 무른 함성과 같이 요란한 기세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만세. 만세, 만세.」
아, 그 수천 평의 우아한 우리 집 정원을 휩쓸고 장안의 높은 빌딩들을 헤치며 멀리 산 너머로까지 아련히 메아리치던 그 장엄한 만세소리가 뭔가 유종의 미를 거두듯 은은한 여운을 남기며 절도 있게 멈추려 하자 순간 부친의 흥분은 그 절정에 육박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웬지 꼭 애들이 장난하듯 제자리에서 몸을 잽싸게 한바퀴 링 돌리더니 갑자기 자식인 내 앞으로 달려와 허겁지겁 두 손으로 나의 한쪽 손을 사뭇 으스러져라 하고 곽 잡던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왈 악수라는 것인 모양이었다.
흡사 일선의 어느 지휘관이 공을 세운 예하 장병과 악수를 나누는 그런 유의 가열한 악수가 순간 나의 손에서 불꽃튀듯 하던 것이다.
정말 나의 손에서는 불이 붙는 것 같았다.
나는 당황했다.
도대체 내게 왜 이러시는가.
나는 부친의 들뜬 속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주변의 체면도 있고 해서 맘놓고 상 한번 찡그리지 못하고 그냥 손에다만 힘을 주며 아주 조용한 말씨로,
「아버님, 저의 손이 지금 몹시 아픈데요.」
그리고 슬그머니 손을 빼려 하자 부친은 섭섭하게도 내 말엔 아무런 반응이 없이,
「살았구나. 아, 이제 우린 살았어.」
영문 모를 말씀과 함께 사뭇 감격에 겨워 흐느끼듯 하는 자세로,
「하 하 하 하.」
흡족하게 웃던 것이다.
모를 일이었다.
제아무리 감격적인 장면과 충돌했기로서니 그래도 일상생활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대외적인 체면을 숭상하는 부친의 언행이 원 이럴 수가 있는가. 미안하지만 나는 부친의 정신상태를 약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진정하십시오.」
「뭐 이놈. 나보고 진정하라구. 하하하, 너 이놈, 우리 집이 방금 구르는 모습을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그러느냐? 시속 수백 마일로 달릴 수 있는 우리 집의 비밀을 정작 네가 모르고 하는 소린 아니렷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뭐 잘 알고 있다구. 신통한 자식.」
「황송하옵니다. 아버님. 」
「황송하고 지지고 그런 것을 죄다 알고 있는 놈의 태도가 왜 그리 트릿하냐 이 말이로다. 알아듣겠느냐? 그럼 한바탕 어서 춤이라도 추어보려무나.」
그리고 아버님은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어조로 또 한번 살았다는 사실을 실감해보기 라도 하려는 듯,
「이젠 살았구나.」
하고 후, 안도의 숨을 내쉬시는 것이 아닌가.
오랫동안 고투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제 겨우 사(死)를 물리치고 생(生)과 손을 잡은 듯싶은 희열감이 온 누리에 끓어 번지는 아마 그런 추세인 모양이었다.
하여튼 이상한 현상이었다.
우리가 언제는 살아 있었지, 그럼 죽어 있었단 말인가.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지상의 온갖 영화를 혼자서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그 누구보다도 인생을 곰지게 그리고 정정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허허 선생의 발언치고는 정말 말 같지 않은 시시한 말이었다. 순간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간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부친의 그 시시한 발언에 당당히 저항이라도 하듯,
「왜 언제는 수리가 어땠는데요?」
하고 적이 마땅찮은 어조로 급히 의문부(疑問符)를 찍자 부친은 참 기가 차시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원, 자식이 저리도 철이 없어서야.>
속으로 부친은 분명히 그렇게 개탄하듯 퍽 측은한 눈매로 날 잠시 바라보시더니 웬지 부친은 돌연 정색을 하고 내 귀에 바싹 입을 갖다대셨다. 역시 자식이란 애물이라서 그런다. 아비된 도리로서 자식인 너에게만은 뭔가 부득이 진실을 증언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그런 진지한 태도였다. 순간 나는 마음이 숙연해지던 것이다,
「아버님, 무슨 말씀이 있으십니까?」
「무슨 말씀이고 지지고 너 이놈 때가 지금 어느 땐 줄을 정녕 모르고 있단 말이냐?」
귓속말로 엄중히 꾸짖듯 물으시는 부친의 말씀에 나는 몹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나만을 위한 중대한 성명이 있을 듯싶던 부친의 그 진지한 태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아주 하찮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까짓 지금 때가 어느 때라는 사실쯤은 눈과 귀가 있는 자는 누구나 다 알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조금도 서슴거릴 필요가 없이,
「모르고 있었다니요. 원 아버님두.」
하고 질문이 워낙 쉬워서 원망스럽다는 투로 말하자,
「오, 그래, 그럼 너도 알고 있었단 말이냐? 신통한 자식, 그럼 어디 한번 말해보렴.」
부친의 어조는 더없이 자애로왔다.
「예, 그야 뭐.」
「그야 뭐 어쨌다는 거냐?」
「그야 뭐 때는 바야흐로 민족 중흥을 위한 근대화 작업이 착착------」
그리고 나는 다음 말이 얼른 이어지질 않아서 좀 머뭇거리는데,
「착착 좋아한다. 빌어먹을 자식.」
부친은 완전히 기대에 어긋난다는 양 툭 쏘아붙이듯 말하고, 내 쪽에서 아주 고개를 싹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부친의 표정엔 나에 대한 실망과 노기(怒氣)의 빛이 한데 뒤섞이어 아주 음산한 색조가 번져나는 듯싶었다.
나는 당황했다,
혹시 내가 문제를 너무 경시한 탓으로 그럼 나의 대답이 빗나갔는가.
「아버님, 그럼 왜 제 말이 틀렸습니까?」
얼떨결에 흘러나온 나의 물음에 그러나 부친은 아무런 말씀이 없이 뜻밖에도 그 냉랭한 태도를 바꾸어 입가에 빙긋이 미소를 지으시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 미소는 남의 가슴을 흐뭇하게 감싸는 성질의 그런 온기를 품은 정상적인 미소가 아니라 웬지 남의 가슴을 더욱 착잡하게 헤치는 그런 유(類)의 복잡한 내용을 담은 미소라는 데서 나는 영 마음이. 개운하질 않았다. 말하자면 남의 결함을 확인한 토대 위에서 자신의 승리를 예견하는 투의 3.런 남에 대한 경멸과 또한 다행함이 동시에 곁들인, 즉 허허 선생 특유의 그런 감질나는 미소였다.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직도 이 세상에 너와 같이 어수룩한 백성들이 허다하게 존재하는 탓으로 이처럼 세상살이가. 아니 돈벌이가 왜 수월하다는 양 희희낙락해 하는 부친의 표정 앞에서 나는 부득이 지금 때가 어느때냐는 부친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부친이 노리는 과녁과는 영 빗나갔다는 사실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불행하게도 나의 대답에 대한 잘잘못을 확실히 가려내기 위해 부친에게 뭘 더 여쭈어볼 기회를 누릴 수가 없었다.
그때 부친은 그 감질나는 미소와 함께 이미 나한테선 완전히 시점(視點)을 옮기어 온통 식순을 무시하고 갑자기 내빈들을 향하여 자, 우리 오늘같이 좋은 날에 만사 제폐하고 어서 먹고 마시며 춤추는 일에 충실하자고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먹고 마시며 춤추자는 부친의 말씀이 그때 고성능 스퍼커를 통하여 흡사 무슨 축포(祝砲)처럼 정원 가득히 울려 퍼지자 그만 삽시에 그날의 그 준공식전은 일대 찬란한 연회장으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가지각색의 술과 노래와 춤과, 그런 것들이 합작하여 사람들의 가슴을 사뭇 들뜨게 하는 바람에 그만 축사니 축가니 축시니 하며 잔뜩 차려놓은 식순을 채 절반도 처리하지 못한 채 집의 그 준공식은 어떻게 유야무야하게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그러나 그후에도 계속 집을 상대로 한 부친의 홍분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그것은 집을 찾는 부친의 그 빈도로 보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문제였다. 전 같으면 잘해야 그저 네댓새 간격으로 집에 한 두 번 들를까말까 하던 부친이 예의 그 괴물체와 같은 새로운 집을 장만하고나서 부터는 하루가 멀다하고 그저 번한 틈만 있으면 집에 들르시곤 하니 말이다. 순 대리석으로 그 주변을 화려하게 치장한 집의 입구에 부친이 들어서면 집은 용케도 얼른 제 주인의 내방을 알아차리고 번번이 환영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자전과 공전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지구의 동작을 모방해서 그러는지 집은 삥그르르 스스로 몸이 돌면서 서서히 산책하듯 정원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조용히 부친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면 부친은 우선 환호성으로 답례하듯 급히 두 손을 높이 쳐들고 기쁨에 겨워 거의 넋 나간 사람처럼 입을 딱 벌린 채 그는 이상하게도 집 주위를 몇 바퀴건 그저 빙빙 돌면서 도무지 안정세(安定勢)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딱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부친 혼자가 아니고 집 자랑을 위해 몇몇 손님들과 동행일 경우엔 그는 결코 집 밖에서 그렇게 꼴사나운 꼴을 하고 오래 지체하는 법이 없이 곧장 서둘러서 집안에 들어서게 마련이었다. 집안에 들어선 그는 대개의 경우 비서들을 물리치고 그가 손수 손님들을 위해 집의 구조와 성능에 관한 브리핑에 임한다. 그는 우선 손님들을 조종실에 안내하여 조종실장으로 하여금 우리 집이 발휘할 수 있는 각종의 묘기를 실수 없이 연출케 한 다음, 모두들 손님들이 집의 그 경이스런 동작에 탄복하여. 선생님 축하합니다, 하고 진정으로 허허 선생에 대한 선망과 경의의 정을 표시할 즈음이면 그는 자못 득의에 찬 어조로 우 리 집의 그 건축 내용에 대해서 설명한다. 물론 그가 설명 중에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우리 집엔 소위 그 국산이란 물품이 하나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구태여 -국산-을 하나 찾자면 집이 놓인 저 수천 평의 대지뿐이랄까. 집의 설계는 미국인이, 또한 내부시설은 일본인이. 그리고 각종의 기계류를 포함한 일체의 건축자재는 세계 도처에서 제일 좋은 것만을 골라 구입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부친은 늘 더 없는 자부심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 순서로 집의 그 현란한 내부구조를 손님들과 함께 일일이 돌아보고 나서 맨 마지막엔 소위 그 -허허 박물관-에서 시간을 오래 지체하게 마련이었다. -허허 박물관-이란 주로 그가 지금까지 점철해온 자신의 생애를 남들이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그와 관련된 각종의 자료를 진열해놓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자칭 허허 박물관에는 그 동안 그가 나라와 기타 단체들에서 받은 실로 가지각색의 공로 훈장과 트로피 그리고 임명장이며 상패 등이 연도(年度)와 월별(月別)로 아주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보관하고 있는 물품은 뭐니뭐니 해도 회중용 금시계였다. 그가 군수로 재직하던 일제(日帝)시 무슨 부상(副賞)으로 일황(日皇)한테서 직접 받았다는 그 회중용 금시계는 왕년의 영화를 말해주듯 아직도 녹슬지 않고 정정히 그 윤기(潤氣)를 간직하고 있었나. 부친은 으례 그 금시계 앞에서 여봐란 듯이 손님들을 한번 휘둘러보며, 당시 아마 한국인으로서 그 숱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직접 천황한테서 이런 상품을 받은 자는 이 외에 몇몇 그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라는 주석을 단 후 그렇잖아도 너무 불러서 탈인 그 두꺼운 배를 더욱 두드러지게 앞으로 쑥 내밀어보는 버릇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허리 둘레와 수명과는 반비례한다는 어느 의학 박사의 소견을 듣고 늘 그것이 고민이라던 부친이 무엇 때문에 그까짓 배를 함부로 쑥 내밀어보는 버릇쯤을 얼른 고치질 못하는지 그건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더욱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문제는 역시 부친이 예의 그 손님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 과정에 있어서 웬지 가장 중요한 골자를 늘 빼먹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주인의 뜻대로 변동하는 집의 그 신비한 내부 구조에 관해선 일일이 시범을 해 보일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을 가하는 그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그토록 흥분케 한 집의 그 신나는 속도에 관해선 일언반구의 언질이 없이 끝내 입을 다문 채 그냥 집을 나서곤 하는지 그 점은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답답하게도 집의 준공식이 끝난 그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나의 그러한 궁금증을 해소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부친과 단둘이 한가하게 접촉할 기회가 좀처럼 내게 주어지질 않는 탓이었다. 집 자랑을 위해 부친이 잔뜩 손님들을 인솔하고 나타나는 날은 말할 것도 없지만 홀가분하게 그가 혼자서 집에 돌아오는 경우에도 나는 좀처럼 그에게 접근할 용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개 때문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부친이 혼자 들어오는 경우 그는 도무지 안정세를 취하지 못하고 무조건 그저 집 주위를 몇 바퀴든 빙빙 돌다가 그래도 뭔가 회포를 다 풀 수가 없는지 이번엔 정원 한가운데 놓인 회전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가지곤 서서히 산책하듯 정원을 배회하는 집의 그 신통한 동작을 그저 몇 시간이건 계속 지켜보게 마련이었는데 그럴 때면 으례 수많은 개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부친을 감싸는 것이다. 무슨 수렵용이다, 완상용이다, 혹은 투견용이다, 호신용이다, 해서 개의 그 종류도 다채롭거니와 털의 색채며 몸의 형태 그리고 그 크고 작음에 있어서도 하도 가지각색이라 나는 도대체 우리 집에서 지금 개를 몇 마리나 기르고 있는지 그 확실한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거의 본능적으로 개를 싫어하는 나는 어느 날 개들이 나마저 제 친구로 오해하고 사뭇 꼬릴 치며 달라붙는지라 나는 좀 화딱지가 난 표정으로 우리 집에 고용되어 있는 수의사며 조련사를 향해 대관절 우리 집에 개의 수(數)가 몇이나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들은 한결같이 글쎄요. 한 삼십 마리쯤 될까요, 하고 영 자신 없는 대답을 하는 데에 나는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이없게도 이처럼 밤낮없이 개를 다루는 그 전문가들조차 정확한 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을 정도의 그 수많은 개들이 그저 허허 선생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달라붙는다. 평시에 개라면 겨우 보신탕 재료로만 알고 그 이상 별다른 의의를 개에게 부여하지 않던 그가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개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하게 되었는지 그 내력은 확실하지 않지만 하여튼 그가 개들과 불가분의 친교를 맺기 시작한 것은 역시 그가 사회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내면서부터였다. 모모 하는 세계의 저명한 정치인이며 실업인들이 어찌된 판으로 그저 개라면 환장한다는 소식이 빈번히 신문지상에 나돌고 동시에 개와 함께 찍은 그들의 사진이 곧잘 세인 (관긴)들의 입에 오르내리자 허허 선생은 아마 적지 않은 충격과 함께 바야흐로 세상은 개에 대한 애정과 또한 개에 대한 일가견이 없이는 남과 어울려서 도저히 무슨 요직을 담당하기가 퍽 어렵게 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런지 이제와선 허허 선생하면 문득 개가 연상되고 개 하면 즉시 허허 선생이 연상될 정도로 개와 허허 선생과는 일종의 분신과 같이 밀접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다고 캐가 지금 이 자리에서 몰상식하게 자식인 내가 싫어하는 개를 왜 부친이 좋아하느냐 하고 허허 선생의 고 취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자는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흉허물이 없는 부자지간이라 하지만 그래도 취미란 제가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어서 부친이 개를 좋아하든 혹은 소를 좋아하든간에 그걸 건방지게 자식인 내가 참견할 바는 아니지 않느냐. 그리하여 단지 내가 지금 저어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다름아니라 그렇듯 부친이 개들과 거의 광적일 정도로 친밀하게 지내게 되면서부터 섭섭하게도 부친의 몸에선 전처럼 친근한 부친 냄새가 안 나고 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었다. 밤이나 낮이나 그저 뻔한 틈만 있으면 개만을 끼고 도니 부친의 몸에 그 노리퀴퀴한 개 냄새가 절로 밸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그러나 나는 그 개 냄새만 맡고나면 금시로 비위가 메스꺼워서 온몸에 맥이 쭉 풀리곤 하니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남의 속을 뒤집어놓는 그렇듯 고통스러운 개 냄새를 인솔하고 개들과 함께 예의 그 회전침대에 번듯이 누워 집의 묘기에 고스란히 넋을 빼앗기고 있는 부친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문득 부친이 좀 원망스러워지는 것이다. 뭐든 잘잘못을 속속들이 다 털어놓고 싶게 친근감을 자아내던 왕년의 그 부드럽고 구수한 부친 냄새가 그리워서였다. 사실 우리가 지금 이 괴이한 집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만 하여도 허허 선생은 다소나마 그 부친 냄새를 간직하고 있었다. 어쩌다 개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지금처럼 그 농도가 그렇게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짙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따금 부친이 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 아무런 스스러움이 없이 그의 곁에 접근하여 곧잘 농조의 말을 교환하기도 했던 것이다.
「석아, 너 이놈, 넌 도대체 어쩔 셈이냐 응?」
「아버님, 무얼 말씀이신데요.」
「너는 지금의 네 처지가 크게 만족하냐, 이 말이로다.」
「글쎄, 크게 만족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불만일 것도 없습니다만.」
「그럼 무고 무탈하다. 그런 말이냐?」
「글쎄올습니다, 아버님.」
「글쎄고 지지고 너 이놈, 너도 이제 나이 삼십이 아니냐, 남들은 삼십에 입지(立志)하여 세상을 휘어잡을 채빌 차린다는데 넌 도대체 그런 세상 속도 모르고 참 한심할 분이로다. 너도 알다시피 네 어머니를 위시하여 네 동생들은 이미 외국에 나가 모두들 웅지(雄志)를 가다듬고 있는데 앞으로 넌 도대체 네 인생을 어쩔 셈이냐. 외국도 싫다, 회사도 싫다. 사업도 싫다, 공무원도 싫다, 넌 맨날 그저 이렇게 싫다 소리만 무슨 염불처럼 반복하고 있으니 애비된 마음으로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야 이놈, 석아, 넌 정말 언제까지나 이렇듯 빈둥빈둥 놀기만 할 생각이니? 어서 말 좀 해봐라, 말 좀 해.」
역시 답답하다는 말씨였다. 어쩌다 너 같은 것이 다 이 허허 선생의 피를 이어받은 인간이 라니 참 가소롭다는 표정이었다.
「아버님 진정하십쇼. 제가 놀고 있다니 참 억울합니다.」
「아니, 그럼 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단 말이냐-」
「그러믄요. 전 항시 눈코 뜰 새가 없는 걸요.」
진심이었다.
「아니 왜?」
「바빠서 말입니다. 바빠서요. 죄송합니다.」
「이놈이 죄송하긴, 허허 참, 네가 정말 그렇게 바쁘단 말이지. 신통한 자식.
그래 뭘 하는데?」
「뭘 하느냐구요, 아버님 참 너무하십니다. 늘 허허 선생님을, 아니 아버님을 열심히 연구하는 중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경우 아버님은 잠잠히 누워 계시다가도 뭔가 사뭇 기대에 찬 어조로,
「뭐, 네가 날 연구한다구? 신통한 자식, 그래 뭘 어떻게 연구하느냐?」
그러면서 벌떡 일어나 앓는 것이 상례였다.
「글쎄요, 뭘 어떻게 연구하는진 자세히 모르지만 하여튼 그 동안 아버님이 쌓아오신 생애엔 제가 평생을 두고 연구해도 못다 풀 인생과 사회에 관한 그런 풍부한 자료가 가로놓여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버님 정말입니다.」
「암, 그야 여부가 있느냐. 정말이겠지. 너 이놈. 제법이구나. 아. 그래 지금까지 네가 연구한 성과는 어느 정도냐?」
「글쎄요, 요즘은 왜 고런지 아버님을 열심히 연구하다보면 아버님은 통 보이질 않고 발만 보여서 큰일이라 이 말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J
「아버님의 생애에 흡사 잘 훈련된 어느 의장대의 사열을 보는 것 같다, 이 말씀입니다.」
「허 이놈, 점점 모를 소릴 하는구나. 너 혹시 식욕이 없다더니 끼닐 걸러서 속이 좀 빈 상태가 아니냐?」
「아닙니다, 아버님. 정말입니다. 어쩌면 아버님의 생애는 그렇게도 시대(時代)의 구령(口令)에 발 한번 안 틀리고 착착 들어맞았는지 참 신비할 정도라 이 말이거든요.」
「오 그러냐. 기특한 자식. 그러구 보니 너도 뭘 꽤 생각하는 것이 있긴 있구나. 그래서?」
「예. 그래서 저는 앞으로 아버님의 일생을 한번 멋지게 소설로써 꾸며볼 생각입니다. 예, 아주 신나는 소설로요.」
「뭐 네가 소설을 ? 참 훌륭한 일이로다. 하하하. 그럼 네가 언제 소설 공부를 다 했었단 말이냐?」
「소설 공부는 한 적은 없습니다만, 아버님의 생애를 곰곰히 돌아보면 웬지 뭐든 자꾸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니깐요. 정말입니다.」
「그야 물론이겠지. 하하하, 그 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쭉 살펴보면 누가 보든 아주 극적이며 감동적인 장면의 연속일 테니까 말이다. 정말 나의 과거지사와 현재지사를 요리조리 엮어서 잘만 쓰면 낙양의 지가(紙價)가 올라갈 거다, 하하하.」
「낙양의 지가가 올라갈 것은 틀림없습니다만, 그러나 저는 요즘 한 걱정이 있어서 이렇게 선뜻 붓을 잡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버님.」
「뭐. 걱정이 ? 무슨 걱정?」
「제가 아버님의 일생을 소재로 해서 소설을 쓰게 되면 자식된 도리로 혹시 제가 아버님께 죽을 죄를 짓지 않을까, 그것이 큰 걱정이구만요.」
「너 이놈, 아주 별나구나, 하하하. 다, 애비를 글로 써서 빛내겠다는데 상은 못 줄망정 감히 네게 누가 벌을? 모를 소리로다.」
「하지만 아버지, 소설에서는. 사람을 즉 주인공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지 않습니까? 작자가 말입니다.」
「그야 물론이지. 아, 그래서 소설이 재미난다는 게 아니냐. 죽을 사람이 살기도 하고 살 사람이 죽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저는 도저히 소설에서 아버님을 살려낼 자신이 없거든요. 제가 따지는 세상 이치로 보아 아버님을 살려놓으면 영 제 글이 엉망이 될 것 같아섭니다. 모처럼 쓰는 제 글이 빛을 내지 못하고 엉망이 되면 아버님도 썩 좋으실 거야 없잖습니까. 」
「허, 이놈 봐라. 그렇다고 이 애비를 꼭 죽여야만 네 글이 빛난다는 법도 없잖으냐. 네 글재주가 문제겠지. 그렇잖으냐?」
「쳬,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글의 숨통인, 즉 만인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시대의 양심, 민족의 양심, 인간의 양심, 이런 거야 제 힘으로 어쩌겠습니까. 걱정입니다.」
「허 이놈, 점점 모를 소리로다. 야 석아, 글이란 정녕 그렇게 복잡한 거냐?」
「글쎄요. 복잡하다느니보단 때론 부자간의 정도 무시해야 할만큼 냉엄한 데가 있어서 탈이라는 거죠.」
「뭐. 냉엄하다구. 그렇다면 너 글공부 다시 해야겠다. 글이란 어디까지나 다정하구 유순해야 하는 법이야. 알아듣겠느냐?」
「예. 그러자면 아버지, 비용이 좀 필요한데요, 죄송합니다.」
「뭐, 비용? 얼마나?」
「그저 적당히요. 」
「뭐. 적당히 ? 너 아무래도 용돈이 떨어져서 지금껏 헛소릴 하구 앉았었구나. 빌어먹을 자식. 자 예 있다. 어서 썩 갖고 물러나지 못하겠니.」
「고맙습니다, 아버님.」
이리하여 나는 부친이 쥐어주는 그 적당한 양의 용돈에 의지하여 이곳저곳 거리를 기웃거리며 정말 어떻게 부친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부친을 소재로 하여 멋진 글을 한편 쓸 수 없을까 하고 골똘히 연구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늘 I~족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랐다.
부친의 흥분과는 칼리 미안하지만 아무리 훑어봐도 도무지 집 같질 않은 이 거대한 괴물체에 거처를 옮긴 이후 섭섭하게도 나는 허허 선생의 자제분답잖게 하찮은 용돈마저 떨어진 형편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부친과의 접촉을 가로막고 있는 예의 그 개 냄새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전혀 이 인간의 집 같질 않은 괴물체의 으스스한 모습을 주로 혼자서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그러자니 자연 나에게 배당되는 시간의 질(質)은 늘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었다. 시속 수백 마일을 자랑한다는 우리 집인지라 도대체 그 복잡한 기계실이 나사 하나라도 잘못되어 어디가 비끗하는 날이면 오호라,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호라 소리도 지를 새가 없이 언제 어떻게 채 골통이 박살날지도 모르지 않은가. 탓으로 나는 요즘 지층(地層)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이 노상 불안정한 자세로 땅위에서 맴도는 우리 집의 그 동그란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부지중 오싹 하고 소름이 다 끼치는 것이다. 흡사 고삐 풀린 무슨 맹수를 대하는 느낌이랄까. 하여튼 뭣이 조금만 잘못되는 날이면 금시로 그저 떼굴떼굴 재 앞으로 굴러와 나와 정면으로 충돌할 것 같은 착각을 영 버리지 못하는 소이였다. 집 안에 있거나 집밖에 있거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큰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듯 불안하고 으스스한 일종의 공포의 소굴에서 시급히 벗어나려는 마음으로 이따금 나 스스로가 허둥지둥 차를 몰고 무작정 거리로 내닫는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헛일이었다.
점점 집과 멀리 떨어질수록 더욱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시야에 움직임이 보이질 않으니 도대체 우리 집이, 아니 그 괴물체가 언제 어느 쪽으로 떼굴떼굴 굴러와 내가 지금 몰고 가는 이 세단을 납작하게 덮치며 달아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빴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대체 이 핸들을 어느 쪽으로 돌려야만 내 몸이 혀 종잡을 수가 없는 나는 흡사 미궁 속을 헤매듯 이리저리 함부로 가 그만 나는 번번이 교통질서의 장애물이 되곤 하는 것이다.
본의 아닌 누(累)였다.
탓으로 나는 이제 부득이 거리에의 나들이를 완전히 단념하고 오로지 집에서만 조용히 집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가슴을 조이는 긴장감이 나의 온몸을 팽팽히 잡아당기는 것 같은 일종의 아픔을 느끼며 흡사 나는 우리 집과 무슨 내기라도 하듯 집이 우측으로 움직이면 나는 얼른 좌측으로 비켜서고 집이 또 좌측으로 이동할 땐 나는 급히 우측으로 몸을 옮기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고역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오늘도 나는 아무리 조심을 사해서 요모조모 살펴보아도 도무지 사람을 사뭇 위협하는 그런 무슨 괴물체로밖에 보이질 않는 이 동그란 집의 면면을 유심히 관측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동그란 집의 어느 구석에 순간 부친의 입에서 체신 없이 -살았다-는 환성이 터져 나올이만큼 그처럼 부친을 반하게 하는 요소가 들어 있는지 참으로 궁금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잔뜩 용기를 내어 오늘따라 유독 아랫배에다 힘껏 힘을 주면서 집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물러섰다 다가섰다 해가며 한참 집의 동태를 자세히 좀 조사하는 판인데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일종의 거대한 지구의(地球儀)와 같은 우리 집이, 아니 그 엄청나게 큰 금속성의 괴물체가 어쩌자는 수작인지 자꾸만 내 앞으로 슬금글금 다가오는 게 아닌가. 전엔 좀처럼 볼 수 없던 수상한 몸짓이었다. 내가 우측으로 몸을 퍼하면 그도 우측으로, 내가 또 좌측으로 몸을 퍼하면 그도 좌측으로 날 추격하듯 따라온다. 야단이었다. 약간 겁에 질린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쳐서 내 앞으로 굴러오는 집을 힘껏 피하는데 집은 나보다 빠른 속도로 내 앞에 바싹 다가선다. 금시로 날 엎어누를 기세였다.
순간 나는,
「허 이거 미쳤어 -」
하고 신음하듯 중얼거리며 볼 것도 없이 전속력을 내어 멀리 정원 입구를 향해 달아나는데 집도 전혀 지질 않고 나와의 거리를 더욱 좁힌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사람 살렷!」
하지만 다행한 일이었다. 궁즉통이라더니 바로 그때 묘하게도 부친이 차에서 내려 정원 입구로 들어서시는 것이 아닌가. 반가왔다. 나는 허둥지둥 부친 곁으로 달려가서.
「아버지요. 저 집이, 집이!」
하고 소리쳤더니,
「아니, 왜 집이 어떤데, 자식두 원, 하하하.」
부친은 노상 유쾌하시다는 표정이다. 아니나다를까 문득 뒤를 돌아봤더니 집은 어느새 제자리에 선 채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좀 무안했다.
「아버님, 집이 막 제게로 달려들던데요.」
「뭐, 네게로? 하하하, 집이 아마 퍽 심심했던 모양이구나. 식구들이 없으니까 말야. 그래 아마 너하구 좀 장난을 치고 싶었던 모양이지, 하하하.」
「아니, 집이 장난도 치나요?」
「아 그럼, 우리 집이 못할 짓이 어디 있겠니, 하하하. 내 그래 오늘은 너한테 한가지 꼭 부탁이 있어 왔다. 자 이리 온.」
부탁? 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부친이 안내하는 대로 수백 가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오른 화원 속에 들어가 자릴 잡았다. 코를 가득 메우는 짙은 향기 탓인가. 신통하게도 부친의 몸에서 전처럼 개 냄새가 풍기질 않는 것이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부친이 의자에 앉자마자 어디서 수십 마리의 개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바람에 나는 가슴이 섬뜩했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었다. 부친은 정말 의외로 손수 개를 물리치시는 게 아닌가.
「아버님. 왜 개와 인연을 끊으셨습니까?」
「아니다. 왜,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질 않느냐. 그래서다.」
「참 용의주도하십니다, 아버님. 제게의 부탁 말씀이 그렇게 중대한 건가요?」
「글쎄다. 하여튼 내 단도직입적으로 너에게 말한다만, 때는 바야흐로 언제 꽝할지 모를 때가 아니냐.」
「꽝 하다뇨? 아버님 어디서요?」
「허 이놈, 답답하긴. 하늘에서 황 할지 땅에서 꽝 할지 그야 모르겠다만 하여튼 문제는 이제 우린 어디서 꽝 하든 그 광 소리와 동시에 집이 데굴데굴 구르기로 되어 있으니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 말이로다. 알아듣겠느냐?」
「예?」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도대체 아버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라니? 모르겠단 말이야?」
갑자기 부친의 말씀엔 격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글쎄올습니다, 아버님.」
「글쎄고 지지고 너 이놈, 맨날 우리 집을 바라보면서도 그걸 몰라? 세상에 원, 그런 눈칠 가지고 이 애빌 연구하겠다는 거니, 미련한 자식!」
순간, 부친의 두 주먹이 번개같이 내 골통을 향하여 내달렸다, 그와 동시에 골통이 알알해지면서 나의 골통에서는 정말 귀청이 찡 울리도록 꽝 소리가 났다. 아, 이게 바로 왐 소리구나. 나는 거의 자동적으로 상반신을 숙이면서 부르짖었다.
「아버님, 지금 꽝 소리가 났습니다.」
「뭐라구, 짜식!」
부친의 두 주먹이 또 한번 내 골통 위에 와서 꽝 하고 떨어졌다. 정말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아버님, 용서해주십쇼.」
순간 나는 또 한번 꽝 소리를 피하여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덮어놓고 용서를 빌면서 엉엉 목놓아 울었다. 처음으로 부친 앞에서 울어보는 서러운 울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