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석
국화빵 무늬로 깨져나간 변소 유리창 구멍을 통해 굵은 눈발이 날리는 바깥이 내다보인다. 나는 궁둥이에 선뜩한 냉기를 느끼며 내리는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소쿠리같이 둥긋한 배를 앞세우고 골목어귀에서 국화빵을 구워내던 아내.
아내의 해산은 어찌 되었을까. 조무라기들의 코 묻은 돈과 국화빵을 바꾸어 쥐던 아내의 거친 손하며. 몸을 녹이려고 간간이 화덕을 붙안느라 이마에는 검고 굵은 땀방울을 매단 채 놀이터와 학교 쪽을 힐끗거리던 아내. 분만일이 가까왔는데도 풀빵구이를 계속하던 아내의 인내심을 나는 차라리 이브의 원죄로 돌리고. 평온한 낯으로 철거덕거리며 돌아가는 인쇄기 소리를 들으면서 일에만 충실하려고 애썼다. 판(版)을 건 대로 박혀 나오는 인쇄물이 등뒤에 쌓이듯이 우리 부부의 노력이 쌓여지고 또 쌓여지면 세월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보내올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정말 무엇일까. 나는 단지 그것만을 위해 생겨난 사람처럼, 한 장씩 뱉어지는 인쇄물을 손으로 받아내고 또 받아냈다. 그 인쇄된 종이 장이 아내의 얼굴이 되었다가, 풀 빵이 되었다가, 조무라기들의 고사리 손이 되었다가 스러진다. 기계가 멈춘 것이다. 아니, 내가 환각에서 깨어난 것인가.
다시 국화빵 무늬의 창구멍이 눈에 들어온다. 설탕 덩어리 같은 함박눈이 여전히 어지럽게 창구멍을 메우며 흩날리고 있나. 절로 군침이 돈다. 그러고 보니 어젯저녁과 아침. 두끼나 잇달아 거른 채다. 나는 꿀꺽, 침을 삼킨다. 점심 시간이나 퇴근 후 아내의 포장 마차에 들르면, 아내는 언제나 국화빵 네댓 개를 접시에 담아선 설탕을 듬뿍 흩뿌려 주곤 했다.
아내가 친정에 간 날부터 이곳 산동네 들머리께에 서 있는 빈 포장막이 눈에 선하다. 맛나니 국화빵. 내가 산동네와 이웃한 공단(工團)의 쓰레기장을 뒤져 찾아낸 페인트 통을 가져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어가며 포장막 거죽에 쓴 그 모양 없는 글자들은 지금쯤 눈가루에 덮여 행인들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출산 후 기동을 할 정도만 되면 포장막을 다시 열 것이라고, 아내는 입버릇처럼 뇌곤 했다.
눈발은 이제 드세어져, 유리창 구멍은 온통 백색으로 차단되어 있다. 나는 벽 쪽으로 귀를 기울여본다. 때르릉, 얼핏 전화벨 소리가 귓바퀴에 감기는 것 같아 나는 벌떡 몸을 일으킨다. 여보, 나예요. 여기 마장동 시외 버스 터미널이에요. 앙상하게 마른 핏기 없는 손목으로 전화기를 받쳐 들고 서울에 돌아왔음을 알리는 아내의 푸르뎅뎅한 얼굴이 공중 전화 복스의 유리창에 어른거린다. 나는 바지를 추스르며 귓바퀴를 세워보다가는 도로 무릎을 꺾는다.
환청과 환영을 동시에 겪은 나는 심한 어지럼증으로 이마에 손을 얹는다. 전화기는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공장 구석께 인쇄기름 때가 잔뜩 낀 책상 위에 놓여 있어, 변소에 앉아 있노라면 경기 들릴 정도로 크게 울리곤 했으니까 그건 분명 환청일 것이다. 빌어먹을, 아내는 왜 여태껏 소식이 없을까? 어서 친정에서 돌아와 새 생명을 시원스레 부려야 할 텐데. 친정바닥도 제 입 건사하기에 빠듯하다보니 입원비를 두르지 못하여 끝내 그곳에서 부리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어. 둘이 누우면 한 치 틈조차 없는 써늘한 단칸 셋방에서 탯줄을 제 손으로 끊는 한이 있더라도 아내는 설 전에 꼭 돌아온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시린 손을 양 볼기짝에 붙이고 있던 나는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꼽으며, 새삼스레 아내가 서울을 떠난 날을 셈해본다. 하루, 이틀------분만 예정일이 하필이면 대목에 걸려서 친정에 가기에도 어정쩡하게만 되었다고 푸념을 해대던 아내가 마지못해 포장막을 닫고 집을 비운 지도 벌써 여드레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문득 오늘이 섣달 그믐임을 떠올렸다. 내일이 바로 설날이니 오늘은 틀림없이 돌아오리라 여겨졌다. 입원비는 이미 마련하여 아내의 양쪽 버선발에 끼워준 장모가 설 떡가래며 부침개며 쌀 됫박이라도 싸 안겨주려다 보니. 오늘까지 딸을 붙잡아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렴. 설을 남의 집에서 쇨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며 나는 히죽 웃는다. 마치, 푸르죽죽하니 부황 든 얼굴에다 장모를 닮아 도토리 같은 뾰족턱하며 유독 아랫부분만 살아 있는 듯 큰 함지 입에 웃음을 문 아내가 방금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기라도 하는 듯, 나는 잠시 행복한 환영에 사로잡힌다.
입가에 머문 웃음도 잠시뿐, 내 얼굴은 이내 차갑게 굳어진다. 꼭 와야 한데이, 이 자슥아. 설 팔월 명절만큼은 객지에서 쇠지 말고 집에 와서 니 애비 제삿상을 들어야 한데이. 다섯 형제 중에서도 예닐곱 터울이나 걸러서 막내로 둔 내게 유독 정을 쏟던 어머니의 암팡진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이미 칠순이 가까와 남달리 일찍 굽은 허리, 쪼글쪼글한 뺨, 갈라터진 손등과 손바닥에 달린 몽똑한 손가락들이 갈퀴가 되어 심장을 후비는 것 같아, 나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어깨를 맥없이 늘어뜨린다. 나는 한 해에 두 번 명절이랍시고 고향에 들를 때면 네댓 형제들이 엉덩이만 깔아도 곽 차는 토막 방에서 알밤을 까면서 신물나게 듣곤 하던 어머니의 얘기를 떠올린다.
「막내야, 이 자슥아. 니를 달덩거리 같이 낳기는 했는데 내사 젖이 있어야제. 니 형들 멕일라다본께,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은 나물건덕지뿐이었으니 뻔한 노릇이제. 근 보름을 젖꼭다리를 물려 약행주 짜듯 해봤지만 기별도 안 가는지 니는 마른 울음만 짜지, 나는 나대로 젖꼭다리가 아파 눈물을 쏟고. 피난갔다와서는 한 때 그렇게 흔하던 우유도 그땐 와 그리도 귀하던고 몰라. 니는 가재미 개마냥 말라비틀어져가기만 하구 우짤 도리가 있어야제. 이때마냥 설대목 밑이었제. 한날 밤에 니를 안고 누버 젖을 빨리믄서 눈물만 그렁거리는 판인데, 그 날 따라 갑재기 소 목방울 소리가 유독 내 가슴을 저미는기라.
나는 미친 년마냥 벌떡 일어나 방문을 밀어 제끼며 밖으로 나갔지. 봉당에 놓인 아무 바가지나 하나 집어들고, 젖먹이 암소가 있는 집치고는 젤 가까운 박 참봉네 집으로 갔지러. 그 집 마구간에 기어 들어가 젖을 한창 달게 빠는 송아지를 밀쳐가며 젖을 짠기라. 지북(제법) 짰다 싶자 집으로 와설랑 숟가락으로 니를 퍼먹인기라. 주리던 끝이라, 흡사 구름봉 올라가는 산골짝의 물레방아가 물 되넘기는 소릴 내며 잘도 샘키더구나. 한 번 짰더만 이튿날 점심때꺼정 멕이겠데. 그날 밤에두 박 참봉네 마구간에 가구, 또 가구, 맨날 갔지러. 한 보름쯤 그랬더니만 니가 지북 인간 꼴로 돼가는 거 같더만. 근데 하루는 그만 얄궂은 일이 생기뿌릿지. 그날 밤에두 내가 송아지와 씨름하며 젖을 짜는데 대문깐에서 에헴, 하고 참봉 어르신네 기침소리가 나지 않겠남. 망할 놈의 영감탕구, 그냥 사랑방으로 가잖쿠 마구간에다 대고 핫바지를 까 내리더니 철철. 오줌을 안 누나. 그 줄기가 내 얼굴에 그대로 내리꽃히잖겠남. 어어 시원타, 시원타. 씨(혀)가 만발이나 빠질 영감탕구, 시원키는 저만 시원혔나, 나두 시원혔지. 주막에서 골패짝 돌리며 꿀밤묵에 탁걸리 잔이라도 걸쳤는지 오줌줄기가 와 그리두 살시던지 말이다. 눈을 딱 감구 다 맞고 있을라니 울컥 분통이 터지길래 눈을 떠뿌릿지 뭐. 고게 어둠구석에서도 희멀쑥한 것이 달랑, 코 앞에서 대룽거리는데 도무지 환갑 지낸 영감탕구 것 같지가 않더라니까.
그라고 나니 넌더리가 나서 그 집은 쳐다보기조차 싫어서 이튿날부터는 구장네 마구간으로 갔었구만. 그래저래 겨울도 가구 봄도 가누, 니가 툭실하게 살이 오르더구나.」
나는 뜨거워진 눈가를 식히려 이를 악물고 용을 쓴다. 잊고 있었던 작업을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 변비에 걸려 뒤보는 일을 겁내던 참이라. 저 안으로 떼밀려 들어갔던 덩어리가 긴장을 푼 사이에 한꺼번에 터져 나오자 볼기가 화끈거린다. 나는 짐짓 엉뚱한 생각을 하려 애쓴다. 하지만 늘 보아온 변소 안의 풍경은 좀처럼 상념의 실마리를 다른 곳으로 돌려주지 않는다. 썩어 너덜거리는 판자 출입문을 끼고 있는 시멘트벽을 더듬던 내 눈길은 결국 왼쪽 벽 귀퉁이에 달린 유리창에 머물고 만다. 네모진 나무창틀 속에 낀 창유리엔 여전히 눈발이 퍼붓는 하늘이 갇혀 있다. 먼지가 앉은 유리를 통해 보이는 그 광경은 누에떼들이 꼼지락거리는 것 같고, 그 가운데의 유리가 깨진 부분은 국화빵 무의 모양의 횐 헝겊으로 기운 것 같아, 그 전체는 한 폭의 추상화를 연상케 한다, 가까스로 배설물을 쏟아낸 나는 이마에 돋아난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치고는 조심조심 몸을 일으킨다. 배설 뒤면 따르는 항문의 통증을 침착하게 다독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변소를 나선 나는 공장 문을 향해 어기적거리며 걷다가는 우뚝 걸음을 멈춘다,
시계(視界)를 메운 하얀 풍경이 너무나 낯설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는 연신 눈썹에 얹히는 눈송이들을 손으로 떨어내면서 사위를 둘러본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공지(空地)에도. 그 끝에 가로놓인 골목길, 판자 집 지붕마다에 달린 굴뚝들, 그 위에 얽혀서 공단 쪽에서 불어오는 연기에 그을리던 전보대며 전보줄. 어제까지만 해도 시커먼 연기를 뿜어 올리던 저 아래 공단의 크고 작은 건물들, 층층을 이루며 유난히 눈부시던 산꼭대기 동네의 장독들과 울긋불긋한 빨랫가지들, 나에게 늘 우울증만 안겨주던 그 모두가 순백의 너울을 쓰고 눈발에 흔들리고 있다. 십여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살아온 그 넌덜머리나는 풍경이 하나같이 하얗게 표백되어버린 설경에서, 나는 다소 마음이 안온해짐을 느낀다. 내 가슴이 참으로 오랜만에 누리는, 그나마 짧은 순간에 그림자처럼 드리웠다가 걷히는 평화가 다습게 내 마음을 적신다. 하나님, 오늘도 이처럼 양식을 주시어 감사하나이다.
점심때마다 보리밥에 장아찌가 담긴 도시락을 앞에 놓고 입버릇처럼 외던 보조공 경구의 말을 나는 입술로 잘근거린다. 사장은 어제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직원에게 두 달치 밀린 급료 중에서 떡값 정도를 쥐어준 후 늘상 곱씹던 불경기 타령만 늘어놓았다. 경구보다 세살 아래의 견습공인 인수와, 사환 겸 경리인 미스 정, 세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목땜을 하여 고향으로 가게 하고는, 사장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일까지는 반 달치 급료나마 주선해보겠노라고 내게 말했다. 김 기사가 첫아일 낳는데 입원비라도 보태 쓰게 하는 것이 사장의 도리이자 체면이 아니겠느냐는 말도 후렴으로 달았다. 경기가 조금만 풀리면 공장장으로 승격시킬 복안을 갖고 있으니, 어렵겠지만 간부가 좀 참고 지내야 되지 않겠느냐는 그럴싸한 말로 내 어깨를 쳐주기까지 했다. 인쇄소가 문을 열 때 급사로부터 시작한 기름 밥 먹기 십여 년의 세월을 나는 그런 식으로 속으며 살아왔다.
사장이 속인 것인지, 세월이 속인 것인지, 내가 자신을 속인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사장이건 아내건 좌우간 기다려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나는 다시 그 기다림의 인내를 익히기로 다짐한다,
나는 발목을 눈 속에 빠뜨린 채 그새 조금은 낯익어진 하얀 풍경을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다. 여전히 내리붓는 눈발 사이로 나는 아내가 달려오고 있을지도 모를 길을 눈어림한다. 판자집들 사이를 요리조리 더듬어 아내의 포장막이 있는 산동네 들머리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질어질 눈앞이 흐릿해진다. 눈을 부릅뜨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끝내 시계는 검은 티 한 점 없는 백지장으로 표백되어 버리고 만다. 그 망막한 설원(雪原) 한가운데에 어머니가 혼자 오두마니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어머니의 등뒤엔 발자국들이 찍힌 눈길이 꾸불꾸불 휘돌아나가 산골짜기 사이로 꼬리를 감추고 있다. 눈 진창에 점심때꺼정 읍내에 닿을라면 싸게 싸게 가야 헌다. 가서 우쨌든가 알뜰히 해서 잘살아야 한데이. 나와 아내도 마주 손을 흔든다.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보곤 하여도 어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마침내 어머니가 까만 점이 되어 사라져버릴 때, 나와 아내는 멀리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산마루를 넘는다. 지난해 이맘때 고향에서 혼례를 이르고 설까지 쇠고서 떠나을 때, 어머니는 그렇게 십리가 넘는 길을 배웅했었다, 눈길. 바퀴가 푹푹 빠지는 비탈길을 버스가 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는 도로 미끄러져 내린다. 버스는 끝내 발동이 꺼지고 승객들은 발이 묶이고 만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온 아내는 복통을 참지 못해 눈 위를 뒹굴다가 무거운 배를 주린다. 난데없는 고고성이 적막을 깨뜨린다. 흩뿌려진 피가 눈 위에 선연히 붉다. 핏방울들은 하나씩 하나씩 은회색의 비둘기가 되어 눈밭 위를 날아오른다. 마침내 순백의 천지는 새들의 나래짓으로 꽉 차버리고,,,,,,.
그새 눈은 내 머리와 어깨 위에 수북이 쌓여 있다, 그만한 무게에도 중압감을 느낀 나는 어깨를 흔들어 눈을 털어버린다. 떡 함지를 머리에 인 아낙네들이 서넛 재잘거리며 눈발을 헤치고 내 앞을 지나쳐간다. 함지박 위로 허연 김이 오르다 떨어지는 눈꽃송이에 눌려 스물 스물 사라져버리는 모양을 눈여겨보며 나는 마른침을 삼킨다. 불현듯 시장기가 돌아 나는 허리를 접으며 두리번거린다. 사장이 기숙사라 부르는 단칸 살림방의 판자 문이 눈에 띈다. 아내가 친정에 간 뒤로 내내 채워둔 자물쇠에도 눈이 소복 얹혀 있다. 공장 건물 뒤편에 슬레이트 지붕을 잇대어 얹고 벽돌로 대충 바람벽을 만든 그 방은 들창 하나 없어 대낮에도 불을 켜야 했으며, 여름에는 한증막 같았고 겨울에는 연탄을 지펴도 한데나 다름없었다. 돈을 받지 않고 그 방을 쓰게 한 대신 사장은 건물 관리와, 서울에 일가붙이라곤 없어 공장에서 기거하는 인수의 빨래며 단골 밥집이 쉬는 날의 식사를 떠맡겼으므로 나로서는 셋방이나 진배없었다. 봉지쌀도 바닥이 난 지 이미 오래여서 보나마나 빈 그릇들만이 차가운 빛을 되쏘고 있을 부뚜막이 상기되자, 나는 공장 맞은편의 단골 밥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밥집의 유리창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고 만다. 밀린 외상값 때문에 어젯저녁 주인 아줌마와 실랑이를 벌였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밥집 출입문 앞에 눈을 뒤집어쓴 채 옹송그리고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는 커다란 누렁이를 마주 쏘아보다가는 발걸음을 돌린다.
별 수없이 공장으로 되돌아온 나는 입구에 선 채 한동안 움직일 줄을 모른다, 늘 보아온 공장 안의 살벌한 풍경이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며, 목구멍 저 안으로부터 설움 같은 덩어리가 치민다. 쓸개즙이라도 올라왔는지 입 안에 괸 쓴 타액을 시멘트 바닥에 뱉는다. 내가 바칙온 젊음이 이토록 좁고 음습한 공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빙글 눈물이 돈다. 눈가에 괸 눈물을 손등으로 훔친 나는 마치 대결이라도 하듯 눈을 부릅뜨고 실내를 휘둘러본다. 이 역시 오래 전부터 내 몸에 밴 버릇이다. 급사, 견습공, 보조공 시절을 거치면서 나는 줄곧 출근 때마다 출입문께에 서서 공장 안의 풍경과 눈싸움을 벌였고, 그 대결에서 나는 언제나 승리를 거뒀었다. 그렇지. 무슨 일이든 우선 눈싸움에서 이겨야 해, 하고 나는 중얼거린다. 청중 앞에 선 연사는 시선으로 먼저 청중을 압도해야 하는 법이지. 단상에 올라서서 경례를 한 후 눈을 부릅뜨고 청중을 한바퀴 휘둘러보아야 해. 물론 연설 전에 경례를 할 때엔 네가 취할 수 있는 한 최대의 경건한 마음을 청중에게 보내야 하지. 그러다 돌연 태도를 바꾸어 청중 전체를 단숨에 집어삼킬 듯한 강한 시선을 좌에서 우로 천천히 돌리는 거야. 처음으로 청중 하나 하나와 만나게 되는 그 대결에서 이기지 못하면 네 웅변은 벌써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해. 국민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나에게 웅변을 가르쳤던 삼촌의 훈계는 지금까지 나의 생애를 지배해온 셈이다. 중학교 삼 학년 때 면내 학교 웅변대회가 열렸었다. 차례가 되어 단상에 오른 나는 청중 속에서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여학생을 발견하는 순간, 삼촌의 훈계를 그만 잊고 말았다. 주전자와 물 컵이 놓인 교탁에 시선을 잠시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질러 나머지 절반 가량의 청중을 제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한번 삼 등을 했을 뿐, 나는 교내, 면내, 군내 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그 녀석 눈길 하나는 사람 잡아먹도록 똘똘하게 생겼구만. 집안이 구차하여 벽촌 중학도 겨우 마친 해에 무작정 서울로 와서 밥벌이 일터를 찾던 중 어쩌다 갓 차린 이 인쇄소에 입사를 할 때도. 나는 사장을 청중 다루듯 훑어본 덕분에 급사로나마 채용이 되었던 것이다. 자꾸 그런 눈으로 보시면 무서워요. 그러잖아도 첨 김 기사님을 뵈었을 때 무서워서 혼났다구교. 아내는 나와의 연애 시절에 몇 번이나 그런 말을 했다. 그 당시 단골 거래처의 사환으로 인쇄소에 들락거리던 아내를 용케 붙잡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눈싸움에서 이겨낸 덕분임을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실내의 한가운데에 마치 녹슨 탱크같이 육중하게 엎디어 있는 시커먼 인쇄기를 노려보던 나는 곧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오늘은 내가 졌어, 하고 중얼거린다. 다시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던 눈길이 출입문 한 쪽 구석께에 놓인 책상 위의 전화기에 가 멎는다. 그제서야 나는 인쇄기가 돌지 않는 오늘의 상대는 오직 저 전화기뿐임을 깨닫고는 눈을 부라린다. 현기증이 일어 눈앞이 흐려지면 다시 안면에 전신의 힘을 모아 눈을 부라진다. 그러나 전화기 역시 차디차게 식은 덩어리로 내 앞에 놓여 있을 분이다. 내가 지다니, 이래선 안 되는데. 인쇄기에고 전화기에고 아내의 둥긋한 배가 자꾸만 겹쳐 떠올라 오늘의 눈싸움은 내 참패로 끝나고 만 것이다. 나는 참담한 기분이 되어 비척거리며 전화기가 있는 구석께로 간다. 현기와 시장기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육신을 가누기가 어려울 정도다. 어쨌든 전화기만은 지켜야 해. 아내와 사장, 사장과 아내 - 두 사람 윤이 저 전화기를 잠깨울 수가 있어. 내 안 깊숙이에서 터져 나오는 부르짖음이다
나는 책상과 난로 사이에 놓여 있는 군용 간이침대로 가 낡은 담요 속으로 기어든다, 변소에 가기 전 내가 십구공탄 하나를 갈아넣은 난로는 휑하니 넓은 실내를 덥히기에는 그 열기가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나 난로가 그저 거기 놓여 있다는 사실이 내 속에 작은 위안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나는 그쪽으로 머리를 두고 담요 속의 오그렸던 사지를 조금씩 펴나간다, 누구에게서든 전화는 와야 해.
벨이 울리면 팔만 뻗어도 전화기를 집을 준비는 돼 있으니까 제발 울리기만 해다오. 나는 지금 너무 외롭고. 앞으로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모르는 그 외로움의 사슬이 두렵게 느껴진다. 별 수없이 잠이나 자야겠다고 체념해본다. 어제 오후 직원들이 차례로 설을 쇠러 나간 뒤로 지금껏 그랬듯이 지리한 기다림과 외로움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잠, 잠뿐인 것이다, 어제는 그래도 밤늦게 까지 거래처에서 심심찮게 전화가 걸려왔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달라지다니. 나는 규정에 의해서 엄격히 지켜지는 인간사회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좋으니 한번 울렸으면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일방적인 바람일 분이다.
나는 눈을 감고 양손을 다리 사이에 낀 채 미이라처럼 누워 있다. 어서 잠들어야 해. 현기와 추위와 허기, 걱정과 불안들로부터의 도피처는 수면뿐이라고 애써 자위하는데도, 내 소망을 저해하는 상념의 불씨는 잘 다독거려놓은 화로 불처럼 쉽사리 거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겨우내 화로 불을 꺼뜨리는 법이 없었다.
지금쯤은 객지에서 하나둘 모여든 형들이 그 화로 불을 에워싸고, 제각기 살아가는 어려움을 애써 감추려고 오손도손 생활담을 펼쳐놓고 있을 테지. 잔 칼로 알밤의 보늬를 깎는 형들의 굵은 머리통을 곁눈질하며, 어머니는 쌀보다 수숫가루가 많이 든 떡가래를 썰면서 또 막내 타령을 늘어놓을 테지.
누군가가 세차게 흔드는 서슬에 나는 맥없이 눈을 뜬다. 난 송장 치는 줄 알고 혼겁먹었다구. 단골 밥집 뚱보 아줌마의 얼굴이 서서히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이봐요, 김씨. 도대체 어쩔 작정인가? 남들은 다 고향 찾는다 어쩐다 바쁜 판에 종일 잠만 자고 있다니. 오늘까지 준다던 외상값은 콩 구워먹고 해 넘길 작정인가? 아줌마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듣기에는 내 귀가 너무 맥이 빠져 있다. 나는 도로 눈을 감는다. 쯧쯧, 사장인가 오장인가 기다려야 한다더니, 이러다간 대목에 초상나겠네. 점심때가 되었는데도 잠만 잘 거야? 뚱보아줌마는 혼자 지분거리다가 제풀에 지쳐 문께로 간다. 김씨, 그러다가는 정말 숨 넘어간다구. 내가 끓여놓을 테니까, 와서 라면이나 한 그릇 들라니까, 쯧쯧. 문이 닫히고, 나는 다시 잠의 수렁 속을 헤맨다, 기동을 해야겠다는 것은 의식뿐이고, 순두부처럼 흐물흐물한 육신은 말이 닿지 않는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나는 온몸이 서늘히 식어드는 한기에 언뜻 눈을 뜬다. 식은땀이 마르는 촉감이 살아 있다는 실감을 느끼게 한다,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치고 부시시 몸을 일으킨다. 땀이라도 빠지니까 외려 심신이 한결 가뜬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으스스한 한기를 감당하지 못해 담요를 둘러쓴 채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난로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난로 위에 라면이 담긴 남비가 하나 얹혀져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다. 허겁지겁 불어터진 라면을 먹어치운다. 그러나 뱃속에는 더 큰 동공이 뚫려 더욱 허기지다. 귀퉁이가 찌그러진 남비에 겹쳐 외상값 타령을 하던 뚱보아줌마의 두툼한 입술이 떠오른다. 해는 넘기지 않아야 할 텐테, 하고 중얼거린다.
온몸이 나른하던 식곤증이 한참 만에야 가라앉는다. 나는 버릇대로 호주머니를 뒤지지만, 어젯밤에 비운 담배 곽이 있을 리가 없다. 책상 위의 재떨이에서 가장 긴 꽁초를 골라 불을 붙인다. 손가락 두어마디만한 꽁초나마 재떨이에 남아 있는 것은, 어제 떡값 봉투를 나눠주면서 직원들을 구슬리느라 줄 담배를 피우던 사장이 내 눈치를 살피면서 거칠게 부벼끄곤 한 때문이다. 오른쪽 송곳니로 잘근거리는 사장의 끽연 버릇으로 필터가 납작하게 일그러져 있다. 필터를 떼어내고 종이를 찢어 말아 어렵게 몇모 금의 연기를 들이마시는 동안,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고 달래고 채찍질한다. 이제 남은 힘을 모아 최후의 기다림에 도전해야겠 다고.
나는 둘러쓰고 있던 담요를 발작하듯 홱 벗어 던진다. 이까짓 추위를 못 참다니. 눈밭에서 배를 싸안고 뒹구는 아내의 환영을 떠올리고는 중얼거린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하듯이 인쇄기를 한바퀴 둘러보고, 그 안쪽에서부터 벽을 따라 공장 안을 돌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지리한 시간을 메울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천천히 걷는다. 책상 앞에 다다른 나는 전화기를 들어 귀에 대본다. 위잉, 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통화가 된다는 사실에 적이 마음이 놓인다. 걸음을 떼 놓으려는 데 책상 위 구석에 죽어 있는 시계가 눈에 띈다. 새로운 일거리 하나를 찾아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시계는 열두 시를 갓 넘은 시각에 멈춰 있다. 어젯밤 내가 잠든 사이에 죽어버린 것이다. 시계 태엽을 감는다. 몇 시쯤일까? 난감한 기분도 잠시뿐, 난 씽긋 미소를 짓는다, 얼른 전화기를 집어든다. 하지만 선뜻 집히는 전화번호가 없다. 114. 내가 한마디도 하기 전에 안내양의 맑은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몇 시나 됐나요? 번지수가 틀려요. 찰깍, 단절 음이 뒤따른다. 나는 참담한 심정을 잠시 진정시킨 다음.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다이얼을 돌린다. 123-4567.여보세요.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터지는 젊은 여자의 싱그런 목소리. 어머, 당신이세요? 저, 곧 집에 들어갈께 염려 말아요. 나는 어리뚱하여 멍청히 서 있다. 여보, 화났어요? 가게문을 막 닫으려는데 동창 겟군들이 들이닥쳤지 뭐예요. 현정이 엄마, 태수 누나, 은성 살롱 김 마담,,,,,, 나는 여자의 교태 어린 변명에 간간이 끼어 드는 남자들의 낮은 목소리를 듣는다. 제기랄, 나는 무심코 뱉는다. 뭐라구욧? 여자의 목소리가 돌연 날카로와진다. 내가 이렇게라두 뛰니까 당신 밥이나 굶지 않는 줄 아세요. 암튼 곧 들어갈 테니까. 저물기 전에 베란다에 널린 빨래를 걷고 아궁이도 좀 살펴보라구요. 연탄불을 꺼뜨렸다간 각오하세요. 알아들었죠? 앙칼지게 다짐을 주는 여자의 연탄불이라는 말에, 나는 번쩍 정신이 든다. 아내를 기다리며 이렇게 지리해 하면서도,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얼른 통화를 끊고 연탄을 아끼느라 묵혀둔 방에 불을 붙여 넣어야지. 그게 아니구 미. 미안하지만 지금 몇 시나 됐나요? 아니, 뭐라구요? 시간 말입니다, 다, 당신은 도데체 누구세요?
그저 시간 좀 알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 참, 별꼴 다 보겠네. 네 시 반이에요. 찰칵. 나는 쓴웃음을 흘리며 시간을 맞춘다. 그런 다음 나는 부리나케 공장 옆에 딸린 창고로 달려가서 연탄 한 덩이를 날라다 난로에 갈아넣고 아궁이를 열어 젖힌다. 불이 웬만큼 붙으면 우리 방 아궁이에 갖다 넣기 위해서다.
나는 무슨 큰일이라도 한 듯 씨근거리며, 전화기의 신호를 점검'해보고는 다시 실내를 걷기 시작한다. 때르릉. 인쇄기가 놓여 있는 안쪽 벽을 끼고 돌 때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아, 드디어 소식이 온 거야. 아내일까, 사장일까? 달려가 전화기를 든 손이 가늘게 떨린다. 거기 최판돌 사장님 댁이죠? 풍진실업에서 선물을 전하러 가는 참인데...... 나는 맥없이 전화기를 내린다. 다시 여남은 바퀴를 돌고 난 나는 장만해두었던 일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 방에 연탄불을 갖다 넣고 난로에도 새 연탄을 한 장 갈아넣고 나니 더 이상 걷기조차 힘들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자니까 또 무료함이 엄습한다. 궁리 끝에 나는 사장 댁에다 전화를 걸기로 작정하고 다이얼을 돌린다. 김 기사세요? 여태껏 공장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다구요? 원 세상에. 글쎄, 아침에 돈을 변통해본다고 나간 사람이 아직 소식이 없잖아요. 낯익은 부인의 목소리에, 나는 잠자코 전화기를 내린다. 그사이 실내가 꽤나 어두워져 있다. 가뜩이나 좁고 어두컴컴한 실내는 유리창에 머문 엷은 잔광(殘光)마저 비껴버리자 무덤 속같이 고요하다. 나는 담요 속으로 기어 들어가 잠을 청한다.
나는 잠들었다가는 깨고, 깨었다가는 다시 잠들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는지 모른다. 그 토막 잠 속에서 아내와 함께 커다란 새를 타고 함박눈이 내리는 하늘을 훨훨 나는 꿈을 꾸었다. 솟아올랐다가는 곤두박질치며 제멋대로 비상하는 새의 등허리에서 떨어질 듯 말듯 가슴을 죄면서도, 이상하게도 통쾌함과 전율이 교차하면서 새삼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였다. 오직 백설뿐인 창공은 자유분방한, 나와 아내만의 세계였다. 꿈을 곱씹던 나는 일어나 불을 켜고 시계를 본다. 11시. 낭패와 절망감에 몸을 부르르 떤다. 아내도, 사장도 기어이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 것일까. 허기는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젠 잠도 잘 만큼 자버린 판국에 긴 겨울밤을 어떻게 지새워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새 꿈은 길몽이라던데, 개 꿈을 꾸었나 보군. 나는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 멍한 기분으로 중얼거린다.
째깍째깍. 11시 10분, 15분, 20분,,,,,, 시계바늘의 냉랭한 금속음이 점점 크게 들리면서 심장을 난도질한다. 시계를 주시하고 있던 나는 내 안에서 들끓는 초조와 불안과 분노로 안절부절못한다. 육십 촉짜리 전구 아래 드러난 실내의 풍경이 처음 대하는 것같이 낯설기만 하다. 괴물처럼 엎드려 있는 인쇄기에 눈이 간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그리로 달려든다. 기계 앞에 버티고 서서 그 시커먼 덩어리 전체를 한눈에 넣고 노려본다. 기필로 이겨야 해. 한 해를 청산하는 그믐날의 이 마지막 싸움에서 진대서야, 이삼십 분 뒤면 닥쳐올 새해를 어떻게 맞이한단 말인가!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눈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그 덩어리는 한 동안 살아 있는 괴물처럼 눈 밖으로 달아나며 나를 비웃는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쓴다. 이마에 땀이 돋을 무렵에야. 마침내 그 거대한 덩어리는 제자리에 고정되고 차츰 작아지면서 깃든 고양이처럼 내 앞에 얌전히 엎드린다. 아아, 난 이겨낸 거야, 하고 부르짖는다. 운명을 건 싸움에서 끝내는 승리한 것이다.
히죽 웃으며 내가 전원에 스위치를 넣고 버튼을 누르자 인쇄기는 어김없이 작동을 시작한다. 기계소리가 실내의 대기 속에 고이 잠든 잉크냄새를 흔들어놓는다. 나는 작업 때의 버릇대로 들창코를 벌름거린다. 그 낯익은 냄새는 여전히 혈관을 달아오르게 하며 왕성한 작업욕을 불러일으킨다. 똥오줌 냄새가 달콤하게 여겨져야 진짜 농사꾼이 되는 법이야. 똥 장군을 지고 비탈길을 오르던 선친이, 똥바가지를 질질 끌며 뒤따르는 나에게 푸념처럼 내뱉던 이 말은 내가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유일한 훈계이다.
나는 얼른 구석에 쌓여 있는 종이를 한아름 안아다 쉴새없이 밀어 넣기 시작한다. 저쪽에는 한쪽 면이 온통 꺼먼 잉크로 칠해진 종이가 쌓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한 아름. 또 한 아름,,,,,, 나는 거대한 무기질 덩어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종이를 물어넣고. 돌리고, 뱉는 광경을 새삼스러운 듯 넋을 잃고 바라보며 서 있다. 아내가 아이를 낳는 것도 이런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인쇄기가 마치 아내의 배이기라도 한 듯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여느 때 같으면 장갑을 끼지 않고는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차갑던 쇳덩이가 그렇게 안온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일하는 동안만큼은 나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는데 눈가에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정신없이 종이를 밀어 넣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밀어내며 소리친다. 김 기사, 이게 무슨 짓이야? 사장은 부리나케 스위치를 쓰고 인쇄된 종이와 나를 번갈아 본다. 그러다가는 얼이 빠진 듯한 내 얼굴 앞에서 사장은 화난 것 같기도 하고 겁먹은 것 같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일그러진 표정이다. 사장을 맞바라보며 눈을 껌벅이자 양 눈에 맺혀 있던 눈물 방울들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다.
사장이 그 눈물 방울을 쫓던 시선을 거두고 헛기침을 두어 번 하는 참에,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내던지고 출입문께로 달려간다. 내가 전화기를 들자마자 터져 나오는 낯선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바퀴에 감긴다. 여보세요, 김길웅씨라고 계세요? 저, 전데요. 아, 마침 계시는군요. 여긴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인데, 댁의 부인이 지큼 해산을 하고 있으니 발리 오세요. 터미널 옆에 있는 공중전화 복스를 찾으세요, 아셨죠? 여자는 단숨에 말을 쏟아놓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나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김 기사, 무슨 일야? 집사람이 아일 낳았단 말예요. 나는 골목길을 내리뛰어 공단 입구에 이르러 지나가는 택시를 세운다.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 터미널 - 양손을 흔들며 외치는 내 목소리가 섣달 그믐난 밤의 분주한 거리를 울린다. 김기사, 돈을 가져가야지, 돈을. 바쁠수록 정신을 차려야 하는 법이야. 어느 틈에 뒤쫓아온 사장이 내 잠바 호주머니에 뭔가를 쑤셔 넣는다.
간신히 합승을 얻어 타고 마장동 터미널 부근까지 와서 황망히 내린 나는 뒤돌아볼 경황없이 내닫는다. 저 쌍놈의 새끼 - 운전사의 욕설이 등판에 떨어진다. 허겁지겁 공중전화 복스 앞에 이른 나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얼빠진 듯 멀거니 바라보며 서 있다. 전화복스 주위에 여자들이 예닐곱 명 둘러섰고, 그 속에서 아내가 막 분만을 하고 있는 참이다. 내가 그녀들을 밀치고 뛰어들자, 아내의 한쪽 팔을 잡고 있던 젊은 여자가 말한다. 오셨군요. 이 할머니가 수고를 하고 계세요. 다른 쪽 팔을 잡고 용을 쓰는 아내를 독려하고 있던 할머니가 나를 올려다본다. 아아, 어머니. 내가 낮은 신음 소리를 입에 물었지만 분명 나의 어머니는 아니었다. 차돌처럼 뭉친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이 가느다란 목에 달랑 얹혀 있는 그 할머니를 내가 얼핏 어머니로 착각했을 뿐이다. 산모가 춥겠구만. 할머니의 말에 나는 얼른 잠바와 털 샤쓰를 벗어 아내를 덮어주고는 속내의 바람으로 엉거주춤 앉아, 아내의 머리를 들어 내 무릎 위에 얹는다. 그러고도 나는 자신이 마치 남의 일에 끼어든 것만 같은 어줍은 기분으로 새삼스레 주위를 둘러본다. 아내의 머리는 .바깥에 나와 있고 하반신은 전화 복스 안에 들어 있어 둘러선 여자들이 바람막이 구실을 좋이 하는 셈이다. 제각기 빛깔과 생김새가 다른 신발들을 겐 여자들의 아랫도리가 부근에 수북이 쌓인 눈빛과 가로등 불빛에 비쳐 더욱 눈부시다. 나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다가 끝내 할머니의 어깨 너머로 눈길을 던진다. 내가 새댁과 한자리에 앉아 왔기 망정이지 남정네랑 앉았으면 어쩔 뻔했겠수. 차가 눈 땜에 연착만 안 했어두 이 지경은 면했겠소만. 서울에 다 와서는 배가 아프다더니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여기 풀썩 드러눕는데 어쩔 도리가 있어야지. 할머니의 말을, 둘러선 여자들 중의 하나가 받는다. 그러게 말예요. 예정일이 넘으면 병원에 가서 주사라도 맞고 얼른 낳아야 하는 법인데, 이젠 여기서 낳아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어요. 글쎄, 예전에는 장보러 가다가도 낳구, 밭 매다가도 낳구 했지만 요새야 쌔고쌘 게 병원이니. 할머니가 중얼대는 바로 그 순간 끄응, 하는 아내의 신음소리에 섞여 응아, 하는 동그란 외마디 소리가 터진다. 와아, 하는 여인들의 함성에 이어 응아, 소리가 다시 연거푸 나고, 고추구나 고추, 할머니가 외쳐댄다. 빙 둘러섰던 여인네들도 다시 탄성을 지르며 손뼉을 친다. 희열에 들뜬 그 표정들이 유치원 생도들처럼 천진난만해 보여서, 나는 불과 반시간 전까지만 해도 삭막한 절망감으로 응어리져 있던 가슴이 봇물 터지듯 일시에 트이는 것같이 후련하다. 거기서 뭘 하는 거욧? 달려온 방범 대원 하나가 여인들의 어깨 너머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는 쩝쩝 혀를 차며 머리를 돌린다.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구급차를 불러야 할 게 아니요? 방범대원은 투덜거리더니 옆 전화 복스에 뛰어들어 전화를 건다.
희경 파출소죠? 나 방범대원 삼 호인데, 즉시 병원에 연락하여 마장동 터미널로 구급차를 보내주시오. 공중전화 복스에서 아이를 낳았단 말요.
얼마 후에 구급차가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달려오고, 우리 세 식구는 차에 오른다. 정초에 길바닥에서 났으니, 애는 틀림없이 명 길고 잘살 게로구만. 복 받거라, 아가야. 할머니는 어느새 옆구리에 보따리를 끼고서 손을 흔들고 있다.
나는 차 속에서 연신 머리를 주억거릴 뿐이다.
아침. 병원 대기실의 나무 의자에 드러누워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고 있다.
「설을 맞은 새벽 O시 5분경, XX동에 사는 김길웅씨의 부인 박순례씨가 마장동 시외 버스 터미널 부근에 있는 공중전화 복스에서 사내 아이를 분만하였다고 합니다. 구급차로 즉시 인근의 자혜산부인과 병원에 옮겨진 산모와 아기는 모두 건강하며, 설날 공중전화 복스 안에서 태어난 이 아기는 임술년 새해 들어 전국 최초의 신생아로 기록되어지고, 체신부장관은 그 아기에게 금일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