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석
할멈의 화장은 꽤나 꼼꼼하고 더뎠다, 내 앞에 놓인 술 주전자가 거의 바닥이 날 때까지도, 할멈은 여전히 분첩을 든 손을 바지런히 놀려댔다. 이마에서 양쪽 귀밑으로. 가슴패기에서 턱으로,,,,,, 얼굴의 언저리를 한바퀴 돈 분첩이 조금씩 조금씩 안쪽으로 옳아가고 있었다. 콧등까지 엷게 분칠을 한 다음 한바퀴, 또 한 바퀴.,,,, 할멈의 손놀림이 꽤나 조심스러운데도 이따금 분가루가 폴폴 날려 떨어졌다. 턱 아래로 잘디잔 눈이 내려, 치마폭에 작은 눈밭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곧 겨울이 되리라. 무심코 토담 너머로 들린 내 운길에, 가을걷이가 얼추 끝난 들판의 황량한 풍경이 비쳐들었다. 어느새 서녘으로 흠씬 기운 햇발이 처마 밑으로 비껴들고 있었다. 허물어진 담 그늘이 술상머리에까지 밀려와, 내가 걸터앉은 툇마루에 물결 무늬를 그려놓고 있었다. 가을이 저물기 전에 고향엘 다녀와야지, 달포나 벼르던 끝에 직장 일도 팽개치고 훌쩍 집을 떠나온 모처럼의 고향 나들이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렇게 장터 주막에 앓아 늙은 주모의 화장하는 꼴이나 지켜보다니,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어디 나들이라도 가시나요? 저녁 화장을 하시게---」
내가 목청을 가다듬어 두어 번 되풀이 물었을 때에야, 할멈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히물 웃었다. 정작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게 아닌데,,,,,, 가는귀가 먹어버린 할멈을 상대하려니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장날 같으면 간혹 뜨내기 손님이라도 들르니까 이럴 새가 없지. 하지만 무시 날에야 이 짓마저 하잖으면 심심해서도 죽고 말 게야.」
할멈은 희뜩머룩한 눈길을 잠시 내 쪽으로 던졌다가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동그럼한 분첩은 이제 할멈의 눈두덩에서 바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문지방에 걸쳐놓은 쪽 거울의 반사광이 할멈의 왼쪽 이마께에 얹혀 있었다. 그늘 속의 빛 기운을 받아들여 되쏘는 그 엷디엷은 반사광이 할멈의 손놀림에 따라 가늘게 떨리는 모습이, 좁은 툇마루를 건너질러 내 눈에 선연히 보였다. 거울 빛에 아직은 분가루가 덜 묻은 할멈의 눈두덩과 이마에 무수한 잔주름이 드러났다. 고 잔주름 속에 드문드문 녹두 알만하게 찍혀 있는 엷은 마마자국까지도. 희미한 거울 빛에도 눈이 시린 듯 할멈은 연신 양미간을 찡그리곤 했다.
「심심풀이라면서, 화장을 그렇게 힘들여 하시다니요?」
거을 속에 눈을 맞추느라 애를 쓰는 할멈이 안스러워 나는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글쎄, 오늘은 웬지 이 짓이 지겹지가 않구먼.」
내 목소리가 의외로 컸던지, 나를 흘끗 건너다본 할멈은 또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중얼거렸다.
「옳아, 지난밤에 큰 봉황새를 타구서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댔지. 젊은 시절엔 좋은 꿈자리 들고나면 영락없이 큰 손님이 들어 횡재를 했었댔지. 이젠 이렇게 육신이 사위어 용꿈도 개꿈도 다 부질없는 노릇일 테지만, 사람 마음은 늙으나 젊으나 매한가지야.」
할멈이 여전히 분첩을 놀려댔으므로, 나는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껌벅이고 또 껌벅였다. 그러자 할멈에 대한 안스러움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시계(視界)의 풍경이 여느 때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들었다.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힌 장터에는 통나무 기둥들이 녹슨 양철 지붕을 받치고 얼기설기 늘어서 있었다. 지붕 위에 드문드문 널린 빨간 고추들이 유난히 눈부셨다. 장터 중간쯤의 한 지붕 아래선 아이를 업기도 한 소녀들이 둘러서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먼지에 싸여 허공을 넘나드는 소녀들의 다리가 기둥들에 가려 도막나 보였다.
가건물 옆에 자리잡은 노천의 쇠전걸에는 빈 말뚝들이 제 키보다 긴 그림자를 채마밭 쪽으로 안아 뉜 채 여기저기 솟아 있었다. 제일 높은 말뚝 위엔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빨간 배때기를 얹어놓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그 고추잠자리의 날개가 기우는 햇살을 받아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렸다. 크고 작은 말뚝들을 멀거니 바라보던 나는 어깨를 으쓱 떨었다. 낯익은 웃음소리, 소 울음소리가 귀에 쟁쟁한 때문이었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조막만한 얼굴에 눈만은 유독 커서 흡사 소 눈알이 굴러다니는 듯하던 땅개 삼촌의 망령들이 땅 밖으로 성기(性器))만 내놓고 킬킬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는 말뚝 하나 하나가 땅개 삼촌이 되었다가 점박이 암소 가 되었다가 하면서 나를 향해 몰려오는 것이었다.
끝내 총각 귀신이 되고 만 삼촌은 곧잘 사추리를 드러낸 채 돌배나무를 흔들어 대곤 했다. 우리 집 살림 밑천이던 점박이를 산에 풀어놓은 뒤였다. 나 혼자 가재를 잡다가 심심해져 귀에 익은 방울소리를 쫓아가 볼라치면 삼촌은 으레 돌배나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땟국에 절어 까매진 삼베 바지를 발목에 감고선 나무를 흔들며 킬킬 웃어댔다. 나는 풀숲에 엎드린 채 숨을 죽였다. 가슴이 뛰었다.
저러다가 삼촌이 끝내 미쳐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애가 탔다, 삼촌의 눈에 핏발이 서고. 나무가 더 세게 흔들렸다. 그럴 때면 삼촌의 눈빛은 부근에서 풀을 뜯다 느닷없이 흔들린 돌배나무를 치떠 보며 긴 울음을 빼무는 점박이의 눈과 흡사했다. 작은삼촌이 저렇게 무섭고 큰 것을 숨기고 있다니. 삼촌의 사추리에 달린 그것은 어린 내 눈엔 말뚝만큼이나 커 보여서, 그 뒤론 나는 삼촌 곁에 얼씬거리기가 겁났었다. 여자의 볼기처럼 곰살궂게 갈라진 돌배나무의 맨 아랫 가지에도 못 미치는 삼촌의 별명은 땅개였지만 난장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정말 난장이였다니.
장이 서지 않는 무시날의 장텃것은 볼수록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그새 더 길어진 말뚝 그늘들이 불쑥 나타난 돼지 때문에 흔들렸다, 젖꼭지가 땅에 닿을락 말락 하는 돼지의 샅에서 거품 같은 것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게 작대기를 든 중늙은이가 허겁지겁 장판에 뛰어들었다. 콩자루를 걸머지고 씨돼지를 먹이는 웃마을 방앗간 집까지 우리 암퇘지를 몰아 가느라 낑낑대던 삼촌을 뒤따르며 나는 괜스레 신이 나 했었다. 중늙은이는 아무 데나 코를 쑤셔 박는 돼지를 몰아 장터 맞은편의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서슬에 획 몸을 솟구친 고추잠자리가 말뚝에 도로 앉으려는지 허공에서 자맥질을 해댔다. 그러다가는 쇠전걸에 잇대어 둘러쳐진 탱자나무 울타리로 날아가 앉았다. 울타리 너머 채마밭에는 김장용 남새가 탐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아내의 툭실한 장딴지 같은 무우들이 싱싱한 무청을 달고 열병식을 하듯 늘어서 있었다, 언제나 나를 한 뼘쯤 내려다보는 서울의 아내는 이 시간에도 장정처럼 길쭉하고 튼실한 다리로 비좁은 구멍 가게 안을 분주히 맴돌 것이었다.
「당신 할아버지가 난장이였다면서?」
아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내 키를 넘어 화폭 위에 떨어졌다, 내가 그리던 간판 속의 난장이들이 눈을 번쩍 뜨는 것 같았다. 나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치며 붓자루를 입에 물었다. 그 통에 검정 페인트 물감이 한 방울 화폭에 떨어졌다. 하필이면 마무리에 고심중이던 주인공 난장이에 떨어져 어이없이 큰 배꼽을 만들었다. 그 배꼽이 흘러내려 아직 바지를 입히지 않은 사타구니께에 묘한 생김새를 이루어놓았다. 땅개 삼촌이 떠올랐다. 킬킬킬.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던 난장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화폭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이 난장이 , 어른 난쟁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나를 에워싸고는 손가락질을 해댔다. 사방에서 터지는 웃음소리에 고막이 윙윙거렸다.
「난데없이 그 무슨 소리야?」
키 얘기라면 그만 주눅이 들고 마는 나는 몸을 움츠린 채 가까스로 돌아섰다.
「아니 그럼, 당신이 그걸 몰랐다는 거예요?」
「글쎄, 지금 형편이 그렇지 않구?」
그때까지만 해도 농으로만 받아들였던 나는 간판을 망친 책임을 아내에게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 아저씨께서 다녀갔었어요. 그분이 저한테 거짓말을 하셨겠어요?」
「재당숙께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억 속에 묻혀 있었던 가무잡잡한 얼굴 하나가 되살아났다. 내 웃대의 혈육으로 살아 계시는 분은 그 재당숙뿐이었다.
난장이 일가족의 갖가지 표정이 담긴 화폭은 언제 말썽을 부렸느냐는 듯이 좁고 긴 간판실의 안쪽 벽에 얌전히 기대어져 있었다.
「그래요, 마을 사람의 결혼식에 오신 김에 들르셨대요. 근데 대절 버스가 기다린다구 약주도 변변히 들지 못 하구 방금 가셨어요. 전 가게가 비어서 빨리 가보아야겠어요?」
오랜만에 어려운 걸음을 한 재당숙의 안부를 물을 겨를도 없이,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을 한 채 간판실을 나가버렸다. 하지만 정작 어이없어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 묘하게도 다음에 상영할 프로인 -난장이 시리즈-물의 간판을 그리느라 끙끙거리던 참인 나로서는 정말 어처구니없이 겪는 난장이 수난인 셈이었다. 여남은 발이나 되는 화폭의 다른 부분은 다 채워놓고선, 주인공 난장이의 표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점심까지 거른 채 애꿎은 붓자루만 잘근 거리는 판에 아내가 불쑥 들이닥쳤던 것이다.
재당숙이 다녀간 뒤로 달포 가까이 나는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엎치락뒤치락 하다 잠든 꿈자리는 내 피붙이들이 한데 얼려 법석을 떠는 통에 그야말로 귀신 잔치마당처럼 어수선했다. 이미 타계한 키다리 할머니와 아버지, 땅딸보였던 삼촌과 어머니,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 게다가 내가 그린 극장 간판의 난장이 식구들,,,,,, 그네들이 대가 자란 시골집 마당을 메우며 한바탕 꽹과리 판을 벌이는 꿈을 꾸고 나면 내 몸은 으례 식은땀으로 후줄근히 젖어 있곤 했다. 내 가슴속에 항시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서 익어가던 화농(化膿). 알듯 말듯하던 그 정체가 재당숙이 일러준 말 한마디로 곪아 터져 버린 형국이라고나 할까. 다른 아이네 아빠는 다들 엄마보다 크던데, 아빤 왜 작아요? 난 키가 작아 맨 앞줄에만 앉으니까 안경을 끼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연년생으로 국민학교 상급반에 다니는 아이들까지도 꽹과리 판에 끼어들어 깔깔거리는 거였다. 별로 달갑지 않은 우리 집안 얘기를 하필이면 아내로부터 전해 듣다니. 작은 키 때문에 상대방 가족한테 번번이 퇴짜만 먹다가, 우격다짐 끝에 겨우 얻어걸린 짝이 지금의 아내가 아닌가. 사십 밑자리 깔아논 마당에 새삼스레 그따위 족보나 캐서 새장가라도 들겠다는 거예요, 뭐예요? 집을 나서는 내 등에 대고 쏘아붙인 아내의 말마따나, 몸소 확인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낼 수도 없는 심경이었다.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생각다 못해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휴가청원서에 써 던지고, 어제 아침 부랴부랴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던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든 해부터 예닐곱 해 동안 한둘씩 죽어 나가 폐가가 되다시피 한 고향집을 팽개치고 서울에 간 지도 어언 스무 해가 가까왔다. 그 동안 선산을 지키는 재당숙네에 결혼 인사차 아내랑 한번 들른 뒤론 발길이 끊긴 터였다. 그러고 보니 근 십 년만에 밟은 고향 길이 하필이면 어릴 때 묘제를 지내느라 무덤밖에 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의 신상 문제 때문이라니.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목청을 돋우었다.
「화장은 그만하시고, 술이나 한잔 드시지요.」
그러나 찌푸린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할멈은 여전히 귀찮아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술잔을 비우고는 다시 주전자를 기울였다. 버릇대로 쉬엄쉬엄 마셨는데도 취기가 일었다. 그새 산마루 위에 걸린 해는 할멈의 치마폭에까지 양지를 만들어놓았다. 할멈은 이제 분첩 대신 솔을 들고 입술에 연지를 바르고 있었다. 진기가 빠져 부르튼 듯한 입술을 내밀곤 하며, 누렇게 바래고 몽그라진 솔로 연지를 묻혀서는 열심히 문질러댔다. 할멈의 귓바퀴를 스치고 등뒤로 달아난 쪽 거울의 반사광은 벽에 걸린 옷가지들 위에 반달을 그리고 있었다, 해지고 때묻은 치마저고리며 속곳들이 너저분하게 휘늘어져 있는 모양은, 어릴 적에 쳐다보기조차 꺼려했던 서낭당을 생각나게 했다. 오가는 학교 길에 있는 서낭당은 내겐 상여 집 다음으로 두려운 곳이었다. 색색의 헝겊조각들이 꽂힌 새끼줄을 둘둘 감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잔솔밭에 우뚝 솟아 있었다. 반쯤은 말라죽은 윗가지에 얹힌 빈 까치집은 더욱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별안간 터진 개의 비명이 해거름의 고요를 휘저어놓았다. 가마솥들이 걸려 있는 장터 구석께에 아이들이 둘러서서 떠들고 있었다. 아이들의 돌팔매질에 흘레 붙은 개 한 쌍이 우물터 쪽으로 주춤주춤 밀려나고 있었다. 물을 긷던 아낙네들이 두레박 물을 개들에게 끼얹으며 시시덕거렸다. 장터를 에운 농가들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가닥이 하늘빛을 배경으로 더욱 하얘 보였다. 서서히 놀이 어려들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 젖무덤처럼 늘어선 먼 산들 사이에서 나온 두 가닥의 철로가 들판들 가로질러 장터 쪽으로 뻗어 있었다. 두어 시간 전에 내 생가가 있는 대밭골 역에서 이십 리쯤 떨어진, 면소재지인 이곳 밤골 장터로 나를 실어다준 철로였다.
근년에 생겼다는 철로가 마을 귀퉁이를 꿰뚫고 지나간 대밭골은 너무도 변해 있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진을 치고 놀았던 동네 앞의 연못을 메운 자리에는 새마을 회관이 두개의 깃발과 확성기를 이고 서 있었다. 동구 쪽만 배고는 삼면이 사시절 푸르렀던 대밭은 간 곳 없고 그 대신 갓 지은 비닐 하우스들이 바람 먹어 팽팽한 배를 안고 엎디어 있었다. 달라진 것은 그뿐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낯설었다.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한 골목 양켠에 텔레비전 안테나를 단 신식 벽돌집들이 들어차 있었다. 어제 해질녘에 대밭골에 다다른 나는 그 속에 파묻힌 재당숙네의 낡은 기와집 -내가 태어나 잔뼈를 굵힌-을 찾느라 애를 먹었었다.
재당숙의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일쑤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기동을 할 때면 긴 치맛자락이 유난스레 버석거리던 할머니가 등뒤에서 서성이는 것만 같았다. 놋주발을 두드리는 것처럼 카랑카랑하던 기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십자 창살에 창호지를 바른 문짝이며 봉창, 굽은 대들보와 서까래를 드러낸 천장이 며. 통나무를 질러 만든 시렁이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뭐니뭐니 해도 새파란 나이에 홀로 되어 품팔이로 두 자식 먹이고, 어깨 너머로 서당글 배워 가르치고 한 네 조모님이야말로 보통 분이 아니셨다. 맏이 장가들여 너를 얻었을 땐 나뭇짐을 지고 골목골목을 쓸고 다니셨단다.」
재당숙의 말마따나,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겐 과분한 배필임엔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난장이 주제에 꺽다리 아내가 품안에 들지 않는다고 난봉을 부려 가뜩이나 기우는 종가를 거덜냈다는 얘기를, 난 생전의 할머니한테건 누구한테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네 조부님께서 한때 정을 붙였던 그니가 시방도 밤골 장텃걸에서 술장사를 한다지. 지금은 논어 몽그라졌지만 젊었을 때는 뭇장꾼들을 호렸을 만큼 미인이었댔지, 나두 한창때는 술청 구석에 끼어 앉아 쌈짓돈깨나 축내기도 했지만서두.」
재당숙이 잠자리에 든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난장이와 키다리가 붙안은 어색한 몰골의 환영을 지우려고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새참 때가 넘어 잠이 깨어 선산을 둘러볼 때까지만 해도 곧장 서울로 가리라던 발걸음이 엉뚱하게도 이리로 향했던 것이다.
할멈은 이제 눈 화장을 하고 있었다. 하얗게 센 속눈썹까지 하나하나 세듯 하는 정성스런 손질이었다. 화장품을 덕지덕지 타른 할멈의 양쪽 눈썹은 색종이를 오려붙여 놓은 것처럼 새까맸다. 이제야 화장이 끝나는구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할멈이 곤지까지 찍는 바람에 나의 기대는 깨져버렸다. 할멈이 머리가 돈 것이나 아닌지 의아스러웠다. 막 깔려들기 시작하는 어스름 속에 옹송고리고 앉아 이마에 붉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모습은 괴기스런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들판 끝에서 기적이 길게 울었다. 기차는 순식간에 들을 가로질러와서는, 농가들에 가려 지붕만 보이는 역사 뒤로 꼬리를 감추었다. 할멈은 잠시 귀를 기울이더니, 서둘러 화장도구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벌써 저녁때가 되었구랴.」
툇마루로 나선 할멈이 느리게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어둠살이 내리는 장터를 둘러보더니 나를 향해 히물 웃었다. 큰일을 해냈다는 자랑기가 담뿍 밴 그런 표정이었다.
「자, 한잔 드십시오.」
나는 할멈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이렇게 말하며, 때를 놓칠세라 가득 채운 술잔을 내밀었다.
「나더러 들라구? 젊은이가 인사성은 밝구먼.」
할멈은 기다렸다는 듯이 상머리에 앉으며 술잔들 받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목소리는 앙칼지고 쨍쨍했다. 할멈이 잔을 비우는 사이 기적이 다시 일었고, 덩이져 오른 뿌연 수증기가 지붕 위의 잿빛 하늘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저놈의 소리는 늘 애간장만 녹이는구먼. 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는데도, 웬놈의 기차는 다녀쌓는지, 원.」
시원스레 트림을 하고 난 할멈이 푸념을 했다. 내가 얼른 주전자를 기울였지만, 잔은 반밖에 차지 않았다. 주전자를 든 채 나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손님에게 심부름을 시켜서 어쩌누.」
잔을 비운 할멈이 등허리를 두드리며 계면쩍게 웃었다. 나는 할멈이 턱짓으로 가리키는 대로 부엌으로 갔다. 이미 어둡스레해진 부엌에서 나는 라이터 불을 몇 번이나 켜댄 끝에 겨우 술동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주전자를 채워 돌아왔을 땐, 할멈이 술상을 방으로 옮겨 놓은 뒤였다.
「술꾼들은 다들 촛불을 찾더구만,」
내가 천장에 매달린 전구를 흘끗거리자 할멈이 히물 웃었다. 나는 잠자코 할멈이 따라준 잔을 비우고는 도로 건넸다.
「젊은이가 웬 술을 그리 옹골차게 마시누, 나야 술을 팔아 좋긴 하지만------」
마다 않고 받아마시는 할멈은 점점 수다스러워졌다. 나는 잔을 비울 때마다 할멈에게 권했다. 그러면서 내 뜻대로, 술기운이 가는귀 먹은 할멈의 굳어진 혈관을 시원스레 뚫어주기를 바랐다.
「대밭골의 난장이, 공 생원을 아시는지요?」
술잔이 몇 순배 더 돈 뒤, 나는 애써 참고 있던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아니나다를까, 할멈은 마시던 술잔을 내려 놓으며 나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었다.
「대밭골의 난쟁이 어른 말이죠, 오래 전에 돌아가신------」
나는 얼른 손을 들어 내 머리맡을 가리키며 시늉으로 설명을 보태었다. 그러고는 초조하게 반응을 기다렸다. 할멈을 더 취하게 해서도, 덜 취하게 해서도 헛일이 되고 말 거라는 생각이 더욱 가슴을 죄었다.
「대관절 젊은이는 뉘신데 케케묵은 일을 다 들치누?」
할멈은 별일 다 보겠다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졌다. 내가 대밭골에 살긴 하지만 난장이 공생원과는 무관한 사이라는 것, 볼일이 생겨 장터에 나왔다가 술 생각이 나서 우연히 들렀다는 것 따위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 나랑 깨가 쏟아지게 살림을 차리다시피 한 양반을 모를 턱이 있남. 그 양반 내 치마폭에 싸여 전답깨나 날렸더랬지. 나야 돈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섰으니 찬 밥 더운 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구 말야.」
눈가가 발그레진 할멈의 입에서는 술술 이야기가 풀려 나왔다.
「이태 남짓 죽자사자 들락거리더니만, 밑천이 바닥났던지 발길이 뚝 끊기더군. 하지만 난 그 시절엔 쌔고쌘 게 남정네였으니까 아쉬을 것도 없었지. 한데, 희한한 것이, 그 양반의 뿌리 하나만큼은 여느 남정네 못지 않더라니깐, 후후,,,,,,」
할멈은 어울리지 않게도, 손끝으로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오목한 양 볼에 잔주름이 물살처럼 번지며, 덩이진 분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입김에 촛불이 일렁이며 그을음을 피워 올렸다.
내가 물수제비를 뜰 때면, 수면에는 으례 잔물결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연못가로 번지곤 했다. 종일 들판에서 살다시피 하는 양친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난 동네 앞의 연못물에 수제비를 뜨거나, 못 둑 비탈에서 앙감질을 하며 놀았다. 할머니는 내가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챌까봐 동글납작한 물수제빗돌을 주워 나르느라 연못가의 탱자울로, 개울가로 종종걸음을 쳤다. 그럴 때면 할머니의 어깨는 더 굽어 보였다. 큰 키를 죽이려고 짐짓 그랬던지 어쩐지, 할멈의 양어깨는 안 쪽으로 휘어서 걸음새가 늘 위태로와 보였다. 할머니와 씨름하다보면 어느새 날이 저물고, 땅딸막한 어머니가 아버지 것보다 더 실해 보이는 지겟짐을 지고 동구 길을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든 해 가을, 그 연못에 땅개삼촌의 퉁퉁 불은 시체가 떠오르고 부터는 난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른이 훨씬 넘어도 남의 입에 혼사말 한번 오른 적 없는 삼촌이 무슨 살맛이 있었겠느냐고 수군거렸다.
「얘기가 났으니 말이네만, 난 부지런히 모은 돈으로 장터에서 젤 큰 -밤골옥-이란 요정을 차렸지. 어느 해 대보름 대목장이 선 열나흗 날이었지. 밤늦게까지 손님 치다거리를 하고 전을 거두는 참인데, 웬 장정 하나가 쑥 들어서며 어서 술상을 차리라고 큰소릴 치지 않겠어. 내가 머뭇거리자 그 젊은이는 대뜸 웃저고리를 들치더니 허리에 두르고 있던 보자기를 끌러 내 치마폭에 던지는 게야,」
나는 이제 볼까지 발그레진 할멈이 엉뚱한 얘기를 꺼낸다 싶으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나는 할멈 앞에 놓인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그 사이에 내가 두어 번 부엌엘 들락거렸으므로 주전자는 묵직했다.
「돌돌 말려 떡가래 같은 그 보자길 풀어봤지. 아니나다를까 돈이, 그것도 큰돈이 다발로 들어 있었으니 내 심정이 어떻겠어. 난 술상을 차려 들이게 하고 이부자리를 폈지. 이튿날 자침에 넌지시 물었더니, 대밭골에 산다더군. 어제 해거름에야 소를 팔고 돌아가는 참인데, 발걸음이 무심코 이리로 놓이더라는 게야. 난 얼핏 짚이는 게 있어 그 젊은일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아 글쎄, 허위대만 컸지 생김새며 눈매가 난장이 양반하고 어찌 그리 닮았겠누. 술값만 제하고 돈 다발을 돌려주긴 했지만, 이 바닥서 늙다보면 별난 일도 다 겪는다니까.」
나는 슬그머니 외면한 채 술잔을 비웠다. 술기운 탓인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순하고 말이 없는, 그저 덤덤한 인상으로 박혀 있었다. 일솜씨며 마음씀씀이가 야무진 구석이 없다고 어머니에게 지천이나 듣던 아버지는, 그래도 장구춤 하나는 일품이었다. 명절이면 벌어지게 마련인 꽹과리 판에서 아버지가 훤칠한 키에 춤옷자락을 날리며 장구를 안고 춤 마당을 돌아나가면 구경꾼들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삼촌이 살았을 적엔 으레 그의 곱사춤이 한 몫 끼어 신명을 돋우었다. 땅딸막한 삼촌이 꽹과리 장단에 맞춰 주저앉을 듯 말 듯하며 춤꾼들 사이를 헤칠 때면, 사람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까지 글썽거리곤 했다.
내가 오 학년이던 해 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꽹과리판은 영 시들해지고 말았다. 윗마을 골짜기에 보(褓)를 매는 공사판에서 품팔이를 하다 양친은 함께 변을 당했다, 해토(解土)머리라 파나가던 산기슭의 흙더미가 별안간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파묻혔다. 운 좋게 지게 밑에 깔린 어머니만 목숨을 건졌으나 몇 달을 넘기지 못했다. 할머니가 병간을 하던 그 동안은 갖가지 약초와 삭은 인분(人糞)을 달이는 씁쓸하면서도 구린 냄새 때문에 코를 막다시피 하고 지냈다.
「원, 내 정신 좀 봐, 모처럼 손님이 오셨는데, 이러구만 있다니.」
멀거니 촛불을 바라보던 할멈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웃목으로 가서 벽장문을 열더니. 보퉁이 하나와 거문고를 꺼내 왔다. 보퉁이보다 먼지가 짙게 앉은 거문고는 그나마 줄이 두개나 끊겨 있었다. 상기된 할멈의 얼굴에 번지는 은은한 미소를 난 가슴을 죄며 지켜보았다.
할멈은 거문고를 방바닥에 놓고 보퉁이를 낀 채 벽 쪽으로 돌아앉았다. 보퉁이의 매듭을 푸는가보았다. 그러더니 돌연 걸치고 있던 낡은 털쉐터며 덧저고리, 겉치마를 훌훌 벗어 던지는 거였다. 나는 눈을 내리깐 채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할머니가 술상머리에 와 서는 기척에 나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이럴 수가? 난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이처럼 달라 보일 수가 있다니. 얘기로나 듣던 여우에게 흘린 것이나 아닌가 깊어. 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람으로, 그것도 곱게 단장한 색시로 곧잘 둔갑한다는 늙은 여우. 나는 눈을 껌벅거렸다. 모란꽃 무늬가 맞물린 빨간 치마와 파란저고리를 받쳐 입고,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는 굵고 긴 비녀까지 지른 할멈은 영 딴사람 같아 보였다. 아른거리는 촛불에 비친 모본단 치마저고리가 더욱 화사해 보였고, 칠보 족두리며 옥비녀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저고리의 품이 조금 헐거워 보이긴 하지만 알맞은 키에 혼례복을 차려입은 모습은 초례청에 오른 신부 같았다.
「한창 때 장만한 거니까 삼십 년도 사십 년도 더 됐는가 보구만. 나 혼자 가끔 걸쳐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손님 앞에서 입어 보기는 처음인걸. 웬지 나도 모르게 입어버리긴 했지만, 새파란 젊은이 앞에 이 무슨 망령이람!」
할멈의 진지한 표정으로 봐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할멈이 돌연 내게 취한 괴이쩍은 행위에 대해 갚음이라도 하듯 짓궂게 되물었다.
「젊었을 땐 손님 앞에서 자랑삼아 더러 입으셨을 테지요-」
「그 시절엔 좋은 낭군 만나면 진짜로 입는다구 벼르고 벼르다가 먼지만 쟁였지. 그러다 늙고 보니 나 보고 싶어 찾는 사람이 코빼기도 안 비치니 그럴 새가 없었구먼. 장날이 돼도 마루에 걸터앉아 잔술이나 마시구 가는 눈먼 장돌뱅이나 제 발로 올까, 이렇게 술상 놓구 마주앉기도 시에미 죽고 첨인걸. 그나저나 옷깃만 스쳐두 연(緣)이라는데, 술벗까지 돼 주었으니 이렇게라두 보답을 해야잖겠남.」
할멈은 보란 듯이. 양손으로 소매끝을 쥐고 몸을 틀며 한껏 눈웃음을 담았다. 그 모습은 흡사 앙증스런, 한 마리의 늙은 고양이 같았다.
양친이 돌아가시자 할머니가 홧병으로 누워 지내다시피 한 서너 해 동안, 우리 집엔 별스레 도둑 고양이가 끓었다. 밤만 되면 어찌나 극성스럽게 울어대는지, 휑뎅그렁한 집 안이 온통 고양이 울음소리로 가득 차는 듯했다. 저녁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나는 이불을 둘러쓰고 할머니의 등에 붙어 잠을 청하곤 했다. 뒷간에 갈 때면 할머니에게 등불을 들려 앞서게 했다. 저놈들이 날 저승으로 데려갈려고 저러는구나. 어느 날 밤 할머니가 한숨 끝에 말했을 때,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승길이 멀구나, 어화능차 어화,,,,,, 양친을 닢 쌍상여를 걸머메고 나라비를 선 상두꾼들이 받아넘기던 만가(輓歌) 소리가 머리를 스쳐갔다. 이를 악문 채 등불을 켜들고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가 쉬엄쉬엄 부어 마시던 술병을 찾아 몇 모금 들이켰다. 마당귀에서 빨랫줄을 괸 장대를 빼 쥐고 부엌으로. 장독대로, 뒤안으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좇아 다녔다, 그러나 여기 다 싶어 살금살금 다가가 보면 어느새 멀찌감치 달아나. 아득한 허공에서 울려오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곳간 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그 자리에 꼿꼿이 굳어지고 말았다. 숨을 들이 삼켰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가마니 짝을 얹어놓은 시렁 구석에서 이글거리는 두개의 불덩이, 그건 분명 클 대로 큰 도둑고양이의 눈동자였다. 그 고양이가 슬며시 몸을 일으켜 헛간으로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난 영영 그 자리에 붙박여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묘제(墓祭)도 마친 늦가을, 내가 쑤어주는 미음 죽으로 버티던 할머니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궁이며 굴뚝 단속을 잘 해야 한다, 흑 고양이나 쥐라도 들라치면 시신이 벌떡 일어나서 저승길이 편치 못하게 되니라, 염을 마딘 재당숙이 종형들에게 일렀다. 저놈들이 날 저승으로 데려갈려고 저러는구나. 할머니와 도둑고양이가 번갈아 떠올랐다. 종형들이 짚단을 안고 안채를 한바퀴 돈 뒤에도, 나는 방에 들지 않았다. 몽둥이를 꼬나 쥐고 부엌으로 뒤안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지쳐 바람벽에 기댄 채 잠이 들고 말았다.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난 할멈은 거문고를 무릎에 걸쳐 안았다. 그러고는 야윈 손가락을 놀려 건성으로 조율을 한 뒤 줄을 퉁기기 시작했다. 잇달아 할멈의 입에서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알곰삼삼 고운 처니 (처녀)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담배씨만큼 보고 가소
많이 보면 병납니더
할멈의 손가락이 네 개의 줄 위에서 바쁘게 오르내렸다. 저고리의 소맷동에 테를 둘서 수놓은 국화 무늬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냉기를 머금은 골바람에 들국화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구름봉 산 굽잇길을 쉬어 오르는 할머니의 상여를 뒤따르던 내 짚신 발에 무수히 날아와 밟히던 그 꽃잎. 상여를 에워싼 울긋불긋한 종이꽃들이 서걱거리며 휘날리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웬지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도 막막했던 때문이었을까. 피붙이들이 훌훌 떠나고 홀로 남았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몇 해를 재당숙네에 빌붙어 지내다가 나는 도망치듯 대밭골을 떠나 서울로 가버렸다.
어느새 할멈은 일어나 춤을 추고 있었다. 장타령을,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술상을 껴안듯 하고 있는 내 둘레를 휘돌아 나갔다. 노랫가락에 맞춰 굼실거리는 할멈의 어깨 .허리 .엉덩이 짓에 둥긋한 양팔 소매가 허공에서 엇갈리고, 이따금 신명을 넣는 발짓에 하얀 외씨버선이 치맛자락 밖으로 살짝살짝 드러나곤 했다. 그 서슬에 자지러졌다가 다시 살아나곤 하는 촛불에 비친 할멈의 그림자가 창호지문에, 벽에, 천장에 너울거렸다, 나부끼는 긴 옷고름이 이따금 내 얼굴이며 목을 휘감았다. 할멈의 눈꼬리에 담긴 웃음이 불빛에 실려 흔들거렸다. 어지러웠다.
꽈광, 딩딩, 등등.... 꽹과리소리, 징소리, 북소리가 어우러진다. 난장이 할아버지가 깃발이 달린 장대를 잡고 겅중겅중 어깨춤을 춘다. 그 둘레를 장승같은 아버지가 장구를 치며 휘돌아 간다. 아버지의 고깔모에 달린 열두 발 상모가 크게 작게 원을 그린다. 상모끝의 부풀이가 보일 듯 말 듯 나비춤을 춘다.
아버지의 턱짓이 더욱 재빨라진다, 그에 따라 땅바닥에서 공중에서 숱한 굴렁쇠들이 하얀 바퀴무늬를 그린다. 그 굴렁쇠를 좇듯 땅개삼촌이 곱사춤을 추며 춤꾼들 사이를 누빈다. 손짓 , 발짓에 온몸을 떠는 삼촌은 비지땀을 흘린다. 엎어질 듯 자빠질 듯하면서도 그 율동은 신명을 띠어간다. 둘러선 구경꾼들의 달무리도 더욱 바삐 돌아간다. 꺽다리 할머니와 땅딸막한 어머니가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딩딩, 등등,,,,,, 풍물소리 드높아가고, 웃음소리 -고함소리 -노랫소리가 한데 얼려 가뜩이나 좁은 춤 마당이 어지럽다.
술잔 속에 어려드는 환영을 지우려고 나는 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재당숙의 말마따나 뜻밖에도 형제를 낳아 대를 잇게 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장구춤의 명수였던 아버지와 땅딸막한 키로 품을 팔아도 남보다 더 많은 알곡을 거둬들였던 어머니. 곱사춤을 잘 추었던 땅개삼촌,,,,, 그런데 나는? 기껏 안짱다리로 앙 버티고 서서 변두리 삼류극장의 간판이나 그리는 환장이 주제일 뿐이잖은가. 내 앞에 놓인 수많은 날들을 나는 무엇으로 버터내야 할 것인가.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애써 눈을 껌벅거렸다. 그러나 풍물소리는 여전히 귀에 쟁쟁했고, 춤 마당의 북새판이 눈에 아른거렸다.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는 아내마저도, 내가 낑낑대며 그렸었던 극장 간판 속의 난장이들까지도 한데 얼려 빙글빙글 맴을 도는 것이었다.
이제 할멈의 춤은 맥이 빠져들고 있었다. 몸놀림이 둔해질수록 일렁이던 촛불도 꼿꼿해져서 그을음을 피워 올렸다. 할멈 이 숨을 몰아쉬자, 목쉰 노랫가락도 마디마디 끊겼다. 할멈의 머리에 얹혀 있던 족두리가 벗겨져 뒷덜미에서 달랑거렸고, 방바닥에 떨어진 비녀는 치맛자락에 쓸려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이따금 풀어진 옷고름이 밟혀 비척거리는 할멈의 얼굴은 더욱 볼썽사나왔다. 흘러내린 땀으로 화장이 뭉개져 흡사 설날 밤에 앙괭이를 그려놓은 듯 얼룩 투성이였다,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연거푸 잔을 비웠다. 그러다가는 나도 모르게 술상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눈을 떴다. 동이 트는지 창호지문이 밝아오고 있었다. 목이 타는 듯했다. 버릇대로 자리끼를 찾아 몸을 일으키던 나는 이상한 느낌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랫배께가 묵지근했다, 이불을 걷어차며 주위를 둘러본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럴 수가? 술기운이 일시에 가시는 듯했다. 할멈의 한쪽 손이 내 바지춤을 비집고 들어 사타구니의 불두덩에 얹혀 있는 게 아닌가. 할멈은 내 한쪽 팔을 베고 고이 잠들어 있었다. 아직도 어둠의 껍질을 다 벗지 않아 회붐한 빛살을 잠옷처럼 두른 그 알몸뚱이는 정교하게 빛은 대리석의 조각품을 보는 것 같았다. 야윈 팔이 얹힌 밋밋한 젖가슴에 박혀 있는 두 개의 검은 점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할머니의 말랑말랑한 젖꼭지를 만지며 외로움과 무서움을 달랬던 그때의 촉감이 지금 눈으로 전해 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게로 뻗친 할멈의 팔을 살며시 들어 치우고는 일어났다. 할멈의 머리맡에는 치마 저고리며 버선짝이며 족두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줄이 다 끊겨버린 거문고는 방문께에 밀쳐놓은 술상에 기대어 엇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나는 널린 옷가지며 족두리를 챙겨 할멈의 머리맡에다 놓았다. 그러고는 호주머니에서 집히는 대로 돈을 꺼내 그 옷가지 위에다 놓았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거문고를 넘어 밖으로 나왔다. 우유 빛을 띤 엷은 안개가 걷히면서 장텃걸의 풍경이 또렷이 드러났다. 나는 어제 그랬듯이 쇠전걸을 가로질러, 다만 그림자가 없어진 말뚝 사이를 빠져 역으로 향했다. 근처 어디에선가 늦잠 깬 닭이 홰를 치며 우근 소리가 들려 왔다. 그제서야 나는 허기를 느꼈다.
노명석(盧命錫: 1947-1990)
경남 창녕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3년 <현대문학>에 {그믐 하룻날}과 {사육}이 추천되어 등단. 제1회 만해 문학상 수상. <1980년대 소설 그룹> 동인으로 활동.
주요 작품으로는 ‘용사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