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의 삶
어느 날 은둔자는 길은 떠난다. 60Km나 떨어진 바이칼호수가의 오두막집을 향해서간다. 조그만 차에 6개월 치의 식량을 싣고 떠난다. 책과 보드카와 커피만 있으면 된다고 여겼다. 6개월간의 은둔자의 삶이 시작된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눈 속에 보드카를 던지는 것이다. 2월에 갔는데 3개월이 지나 눈이 녹으면 보드카를 찾을 수 있으리라. 40세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틀에 밀, 옥수수 등 곡물을 놓고 그것을 창가에 놓는 것이다. 그러면 새들이 와서 모이로 그것을 먹는 것이다. 오전에는 독서를 한다. 가져간 책은 까뮈, 니체, 쇼펜하우어, 그리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 등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일상적인 것에 매달린다. 장작을 패야하고 물도 길러야 한다. 오로지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 1.5m의 두꺼운 얼음을 뚫어야 물도 얻을 수 있고 식량을 위한 물고기의 낚시도 가능해진다. 문명의 이기와도 결별이다. 전기도 수도도 없다. 간간이 개들이 지나가기도 한다.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의 삶이다. 아무도 방해하는 이 없고 대화를 나눌 이도 없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고 고독과의 대화이다. 눈 위에 시를 쓴다. 봄이 하얀 겨울을 몰아낼 수 있다. 가상의 친구를 상정해 놓고 그와 대화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겨울 산행을 나선다. 눈이 푹푹 빠지는 산길을 올라 정상에 오른다. 로빈슨 크로소우와 같은 삶을 영위해 보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바꿔보기 위해서였다. 산은 나의 감옥이다. 숲은 나의 왕국이다. 고독은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는 유일한 연인이었다. 망원경을 목에 걸고 산에 오른다. 얼음은 살아있다. 그것이 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깨고 그 속에서 자연의 신비를 경험한다. 눈의 결정체 속에 우주의 방정식이 속에 숨어 있을까.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서 삶의 이치를 깨우친다.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엿보는 것의 즐거움이 있다. 3월이 되자 60Km 떨어진 친구를 찾아 떠난다. 3월이 되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채비를 해서 길을 떠난다. 스케이트로 얼음이 언 바이칼 호수를 통과해서 2박 3일간의 여정을 통해 인근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이들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식사를 함께하며 세상사는 얘기를 나누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얻고 구해서 다시 또 2박3일간의 여정을 통해 오막살이로 돌아간다. 중간에 1박을 하면서 버려진 오두막에서 하루를 보낸다. 체스를 두면서 지루함을 이겨낸다. 비숍의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백팀이 흑팀에 패하고 만다. 중간에 얼음을 보관하고자 하는 어부들을 만난다. 그들은 3계절 동안 쓸 얼음을 채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2박3일간의 여행 끝에 세르게이 부부를 만난다. 그들은 자연보호구역에서 기상관측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이웃에 사는 기상관측소 직원 레나에게서 늑대를 쫓아낸 얘기를 듣는다. 어느 날 바깥으로 나가보니 소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궁금해 했는데 보니 뒤에 늑대들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레나는 분노해 늑대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다. 그러자 늑대들은 도망가고 소들도 다시 늑대를 공격하기 위해 방향을 바꾼다. 4월이 되자 바이칼 호수의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산림경비원이 개 두 마리를 두고 간다. 아이크와 배카다. 이제는 동무가 생겼다. 5월이 되자 바이칼호의 얼음이 갈라진다. 곧이어 6월이 되자 계절의 변화가 완연하다. 생명의 약동을 느껴볼 수 있다. 침묵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라는 그런 제목의 책을 써 보고 싶다. 의식이 시작된다. 개미는 활동영역을 넓혀간다. 보드카를 찾았다. 이제는 생동하는 대지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다. 허무주의자는 바이칼 호수에 찾아온 봄의 생기를 이길 수 없다. 자살도 생각했고 그렇게 실행할 꿈도 꾸었지만 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세상의 심오함과 아름다움을 다 탐험하지 못하지 않았지 않는가. 위로가 되는 부분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이리라.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주어진 것을 즐기고 매순간을 축복으로 여겨야 한다. 7월이 되었다. 체념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낚시다. 바늘에 고기가 걸릴 수도 있지만 허탕일 때도 부지기수다. 이제는 세상에 열정적인 연인들로 가득하다. 곤충, 나비, 장수하늘소 등 삶의 의미를 찾아 노력하는 이들의 정성이 갸륵하다. 등산을 갔다. 생명의 약동을 새롭게 느꼈다. 곰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먹을 것을 찾고 부양가족의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8월이 되었다. 삶이란 덧없는 것이다. 자작나무에 흔적을 남기고자 어록을 새긴다. 하늘에 안부를 전해다오. 다음은 호수가 돌에 문장을 새긴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굴곡 가득한 삶은 살고 싶다. 영원한 그림자에 닿기 전에 빛을 맛보고 싶다. 오두막은 실험실이다. 잉크, 담배, 술이 필요하다. 이제 개 두 마리는 산림경비원에게 맡겼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떠난 것이다. 내가 은둔자의 삶을 보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바이칼 호수를 간다는 것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VTR을 봤다. 그중에 한 개가 은둔자의 삶이었다. 하나는 바이칼호수에서 오믈이라는 생선을 낚으며 생활하는 어부들의 삶이 담겨진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로 여행한 러시아문학 교수의 여행기였다. 마지막은 은둔자의 삶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얘기가 있었다. 고독함 속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던 은둔자의 삶 속에서 삶이란 것이 어떤 의미라는 것을 깨우쳤을 은둔자의 절대 고독에서 인간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양에서는 불혹이라고 얘기했다. 40세가 되면 미혹됨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떤 유혹에도 중심을 잡고 자신의 소신 또는 철학에 의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리라. 아주 짧은 6개월 동안의 삶이었지만 자신과의 독백, 대화, 삶에 관한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은둔자는 6개월간의 바이칼호수가 오두막집에서의 생활을 통해 시간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후일담을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