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문상
이번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그렇게 여름이 끝나갈 즈음에 입사동기인 이 전무의 부친상 부고가 왔다. 병원은 성주효장례식장이라고 했다. 월요일이라 텃밭에서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박 회장으로부터 부고를 보냈다고 해서 전화를 받았다.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곧바로 집합지와 시간 등을 협의해야 했다. 일단 문상을 갈 사람은 다섯 명이었다. 문제는 중부고속도로의 만남의 광장이냐 경부고속도로 상의 만남의 광장이냐를 놓고 실랑이를 하다 결국 중부로 결론지었다. 다섯 명이 다 집이 구구각색이니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 집에서 차를 끌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박 회장은 곧바로 출발해서 우리 아파트로 오기로 했다. 오후 3시에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약속을 정했다. 맨 먼저 나타난 이는 파주에 사는 이 부장이었다. 다음으로 나타난 이는 고양에 사는 차 교수였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이는 또 다른 분당의 이 부장이었다. 커피를 한잔하고 출발했다. 마지막 이 부장은 맨 뒷좌석을 차지했다. 차안에 공간이 좁아 어쩔 수 없이 다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평일의 고속도로라 막힘은 없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번 휴식을 했고 목적지에는 7시쯤에 도착했다. 상가에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즐비한 조화였다. 일렬로 정렬된 것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다섯 명이 문상을 하고 식사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예상대로 문상객이 엄청났다. 이 전무가 인심을 잃지 않았음을 느껴볼 수 있었다. 농협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문상객과 더불어 경북지역출신의 현직에 있는 사람들도 즐비했다. 우리는 잠시 앉았다가 상가를 나왔다. 상가에는 지역의 터줏대감격인 최 국장이 먼저 와 있었다. 장례식장의 맞은편에 고기집이 있었다. 모두들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주를 한잔하며 회포를 풀었다. 고인은 86세라고 했다. 2년 전 경운기를 몰고 가다 경운기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몸을 다치신 것이다. 그리고 2년 정도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다 돌아가신 상황이었다. 나는 운전을 해야 했기에 식사만 하고 술은 마실 수 없었다. 셋은 만남의 광장에 차를 주차해 두었고 박 회장은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해둔 상태였다. 거의 11시 30분쯤에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다. 주당으로 손꼽히는 이 부장은 만남에 광장에 도착할 때까지 결국 술을 깨지 않아 대리기사를 불러서 차를 가지고 귀가했다. 그래도 거의 여름이 끝자락이라 더위가 한 풀 꺾인 상황이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관혼상제를 무척이나 중요시했다. 관과 혼은 자식을 위해 부모님이 해주시는 것이고 상제는 자식이 부모님을 위해 받드는 식이다. 다음날에는 다른 동기들이 문상을 갔다. 축협의 강 상임이사와 예천에 낙향해 살고 있는 황 부장이 문상을 간 것이었다. 이번에도 최 국장이 외부에서 온 문상객들을 대접했다. 동대구역 부근의 연탄불고기 집이었다. 대구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권 사장도 함께했다. 이 전무의 문상이 있는 뒤 며칠 후 모임의 회원이 모친상을 당했다. 이번에는 홀로 조문을 위해 홀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례식장은 예천장례식장이었다. 부고를 받고 집에서 오후 세시쯤에 출발을 했는데 단양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황 부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문상을 간다고 했더니 자신도 문상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다행히 장례식장이 같은 곳이었고 상주가 동일인이었다. 일단 장례식장에서 같이 만나기로 약조를 했다. 황 부장과 상주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입관을 하던 중이어서 제대로 문상을 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준비가 되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준비가 된 다음 문상을 하고 식사를 했다. 안동지방의 주메뉴인 문어가 빠지지 않았다. 황 부장은 배추전도 소개를 했다. 유명한 요리라 했다. 얼마 전 TV프로 <수미네반찬>이란 프로에서 배추전을 직접 요리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배추전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였다. 아주 얇게 전을 부치고 배추의 결을 따라 찢어서 먹고 간장에 찍어먹는 식이었다. 경북에서 유명한 전이었다. 모임의 사람들은 다음날에 문상을 할 것이라고 했다. 고인의 사위는 공교롭게도 농협안산공판장 부장장이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이였는데 황 부장도 알고 있었고 친구의 동생이라고 했다. 나와 황 부장은 문상을 마치고 도청부근의 번화가로 가서 다시 회합의 시간을 가졌다. 황 부장의 집 근처여서 집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친구의 권고는 집에서 하루자고 오후 점심식사를 하고 귀경하라는 것이었다. 회합의 시간은 거의 두 시간쯤 경과했다. 문상과 회합을 끝내고 나니 거의 10시경이 되었다. 이제는 귀경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비가 내리는 악천후의 상황이어서 만만치 않았다. 폭우가 쏟아져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야간이어서 그런지 화물차도 많았다. 최대한 속도를 조절하며 방어운전을 하려고 했다. 웬일인지 올해는 부고가 그렇게 많은 듯했다. 친구들의 부친상이 많았다. 부산도 두 차례 다녀왔다.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느낄 만큼 나이가 든 증좌이리라. 모든 분들이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이번에 문상을 가면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로 49제에 관한 것이다. 49제는 49일째에 제사를 지내는 것인 줄로 알았는데 확인해 보니 아니었다. 매 7일마다 제를 지내고 그것이 49일째 되는 날에 최종 마무리가 되는 날이었다. 고인이나 망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데 소요되는 기간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이승을 떠나 염라대왕 앞에서 이승의 삶에 대한 평가내지 판단을 받는 날이 49일째라는 얘기도 있다. 결혼식과 장례식은 인간이 겪어야 하는 인생사의 두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의 원칙은 가급적이면 문상은 꼭 가보려 한다. 결혼식은 축복의 자리여서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라고 생각되지만 말이다. 항상 느끼는 부분이지만 문상을 가보면 상주의 삶이 반추되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세상인심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장례문화든 변치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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