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생 정동분 6/꼬마목수
대하소설로 태교를?
만화방에서 세계를 여행하며 이야기 수집했던 만담꾼 꼬꼬마. 동아책방에서 수많은 소설과 시를 탐독했던 문학소녀. 딱 거기까지였다. 동분은 열여섯부터 쉴 틈 없이 공장에 다녔다. 가난한 집안 형편을 거들어야 했다. 그러다 송일영과 결혼했다. 그때부터는 세상의 거센 풍파를 온몸으로 때려 맞았다. 차분히 앉아 책을 읽는다? 당시 동분에겐 사치였다. 그럴 시간이면 차라리 모자란 잠을 더 잤다. 그 정도로 고단한 삶이었다. 그러다 겨우 여유 찾은 게 둘째 임신했던 1986년이다. 동분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그때가 어떤 상황이었냐 하면, 니네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면서 니네 형이랑 니네 사촌 누나랑 사촌 형까지, 애들 셋을 엄마가 다 키울 때였지. 니네 큰아빠는 여전히 감옥에 있었고, 큰엄마는 집 나가서 여전히 안 돌아왔을 때니까. 그뿐이냐? 니네 삼촌은 날이면 날마다 술 먹고 들어와서 난동 피우고. 그래도 애들이 다 유치원 다닐 때여서 낮에는 시간이 좀 남았어. 또 너 임신했을 때라 니네 할머니가 엄마를 좀 덜 괴롭히기도 했고.”
동분은 오랜만에 다시 책을 폈다. 이때는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 황석영의 『장길산』 등 주로 열 권짜리 대하소설을 읽었다.
“너는 여명의 눈동자가 드라마인 줄만 알지? 아녀~! 그게 원래는 대하소설이었어. 엄마가 그거 읽으면서 얼마나 울고 웃었다고. 그거뿐이냐? 너 임신했을 때 아무튼 간에 대하소설 무쟈게 읽었어. 하루 죙일 읽으면서 저녁때 니네 아빠 오기만 기다렸다는 거 아니냐. 니네 아빠가 일 끝나고 집 올 때마다 한 권씩 빌려다 줬거든. 그러면 다음 날 또 하루 죙일 읽는 겨. 호호호. 태교가 뭐 별거냐?”
1986년. 작은아들 주홍 임신했을 즈음의 26살 동분.
이때 동분은 대하소설을 많이 읽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편 송일영, 동분, 동분이 업어 키운 조카와 큰아들 주성.
과연 그렇다. 엄마와 나의 놀라운 평행이론은 계속 이어진다. 내 나이 스물네 살 때다. 막 복학한 참이었다. 집이 가난해 어떻게든 장학금 받아야 했다. 방법은 하나였다. 시험을 잘 봐서 ‘성적우수장학생’이 되는 것.
드디어 시험 기간. 필사즉생 각오로 노트를 펼쳤다. 공부 시작하려던 그때! 도서관에서 빌려놨던 조정래의 『태백산맥』 1권이 하필이면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왔다.
왜 늘 그런 걸까. 공부만 하려고 하면 어수선한 집이 신경 쓰이고(그래서 괜히 청소하게 되고), 이제 진짜 시작해야지 하면 친구한테 전화가 오고(그럴 때면 꼭 통화가 길어지고), 오늘은 무조건 밤샌다는 각오로 책상 앞에 앉으면 평소엔 보지도 않던 EBS 다큐멘터리가 세상 재밌게 느껴지는 기이한 현상 말이다.
그 당시 난, 안 그래도 책에 미쳐서 살 때였다. 아는 사람은 아는 것처럼 『태백산맥』은 소설이 아니다. 마약이다.
‘워밍업 할 겸 조금만 읽고 공부 시작할까?’
‘그래 딱, 여기까지만 읽고 진짜 공부 시작한다.’
‘오케이, 진짜 더 읽으면 내가 짐승이다, 딱 이 페이지만 읽고 시작하자.’
그렇게 1권 읽고, 2권을 읽었으며, 3권을 막 읽고 있는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창밖을 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망했구나…….”
그때의 그 허탈하고 비참했던 심정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이래서 태교가 중요한가 보다.
여하간 엄마 뱃속부터 대하소설 읽었던 작은 아들이 1987년 5월, 드디어 태어났다. 이놈의 작은아들이 나중에 커서 교복 입은 채로 담배 꼬나물고, 밥 먹듯 가출을 해댔다. 그래도 기자로 일하면서 결혼까지 성공해(?) 겨우 엄마를 안심시키더니만, 어느 날 갑자기 이혼하고 노가다를 뛰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6년째다. 그렇게 여전히 제 잘난 맛으로 사는 통에 엄마 속을 단단히 썩이고 있으니, 그 문제적 작은 아들이 바로 본인이다. 동분과 작은아들 송주홍, 애증의 모자(母子)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다뤄보기로 하자.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무슨 놈의 책
동분은 아주 옛날부터 작은 아들에게 동아책방 시절 얘기를 몇 번이나 들려줬다. 감수성 풍부했던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 말이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물었다. 당신 인생에서 동아책방은 어떤 의미였는지.
동분은 한참 고민한 끝에 이렇게 답했다. 그곳에서 시와 소설 읽으며 사랑을 배웠고,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그런 사유의 과정이 있었기에 비로소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그때 처음으로 내 미래를 고민해 봤던 거 같어. 내가 지금은 비록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도 못 다니고, 이렇게 책방 심부름꾼으로 지내고 있지만, 언젠가 형편이 나아져 다시 공부도 하고 대학에도 갈 수 있다면 국문과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멋진 시를 쓰는 문학도가 되고 싶었어.”
마당에 앉아 책 읽던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사람, 시와 소설 읽으며 사랑을 배웠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사람. 그런 애틋한 기억 때문일까, 혹은 못다 이룬 꿈 때문일까. 동분은 두 아들에게도 교과서 공부보다는, 독서를 권하는 엄마였다. 그렇다고 강요한 건 아니다. 책 읽고 있으면 슬며시 다가와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는 정도. “주홍이 책 읽는구나! 뭐 읽어?” 하고 관심 가져준다거나. 그런 엄마였다.
시간은 훌쩍 건너뛰어 대전 엑스포가 한창이던 1993년으로 간다. 동분 가족은 그때 처음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파트라고는 하지만, 사실 아파트라고 부르기 민망한 11평짜리 주공 아파트였다. 거실 겸 안방이 하나 있었고, 두 사람이 누우면 더 이상 공간이 없는 아주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서른셋이었던 동분은 그때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았다. 남편 송일영은 택시를 굴렸다. 부부에겐 초등학교 5학년 큰아들과 7살짜리 작은 아들이 있었다. 입에 겨우 풀칠하는 4인 가족이었다.
요즘이야 어린이를 위한 동화 전집이 워낙 흔하다. 중고서점과 당근마켓 등도 활성화되어 있어 얼마든지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그땐 상황이 달랐다. 하드커버 동화 전집이 귀했다. 가격도 매우 비쌌다. 부잣집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책이었다. 11평짜리 주공 아파트에 사는 동분 가족에겐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그땐 동화 전집 가지고 다니면서 방문판매 하는 아줌마들이 많았어. 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엄마가 돈이 어딨겄냐. 몇 날 며칠 고민하다가 외상으로 사는 겨. 그땐 그걸 월부라고 했어. 월부. 일단 책을 받고, 아줌마가 매달 와서 책값을 조금씩 받아 갔지. 엄마는 그렇게라도 니들한테 책을 사주고 싶었던 거여. 여하간 그렇게 책 산 날은 니네 아빠랑 대판 싸우는 날이었어.”
송일영은 동분과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가난하게 살지언정 빚은 지지 말자는 게 송일영 이었다.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무슨 놈의 책이냐면서, 책이 밥 먹여주느냐고, 동분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책 때문에 니네 아빠랑 얼마나 많이 싸운 줄 아냐? 그렇게 싸우다가 엄마가 지면 다음 날 아줌마한테 전화해서 도로 책을 가져가는 거고, 어떻게든 엄마가 이기면 그 책을 지키는 거고. 그렇게 몇 번 사줬던 거 같은데? 너 어릴 때 동화 전집 많이 읽지 않았냐?”
분명히 기억한다. 디즈니 동화 100권과 만화로 읽는 한국의 역사 20권, 세계 위인전 60권. 운동장에서 공 차고 노는 걸 좋아했던 형과 달리, 난 지독할 만큼 책 읽는 걸 좋아했다. 하여, 180권 모두 7살 꼬마가 독차지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에 책이라고는 그 180권이 전부였다. 난 하드커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그 책들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나중엔 내용을 전부 외워버릴 정도였다. 그러니, 그 180권이 지금의 날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엄마가 그러했듯, 나 또한 그 책들을 읽으며 세상을 조금 알 수 있었고, 그보다 많은 걸 상상해 볼 수 있었으므로.
1993년 작은아들 주홍 7살 때.
동분이 사준 하드커버 동화 전집 한창 읽던 시절,
대전직할시 수학경시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이때만 해도 신동 소리 들을 정도로 머리가 영특했지만, 현재는 노가다꾼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엄마의 빛나는 투쟁이 있었다. 이제 와 보니 과연 그렇다. 동분은 남편과 싸워 세 번 이겼고, 11평짜리 주공 아파트에 하드커버 전집을 기어코 180권이나 쌓았다. 엄마 말이 옳았다. “너 글 써서 먹고사는 건 다 엄마 덕분이여.”라던 말.
1995년. 11평 주공아파트 살던 시절 부부동반 여행 가서 찍은 사진.
이 시절, 동분과 남편 송일영은 아이들 교육 문제로 자주 부딪혔다.
아, 엄마가 국문과를 꿈꿨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럼 내가 국문과 들어갔을 때 기분이 남달랐겠네?”
“그럼~! 엄마 꿈을 대신 이뤄준 것 같아서 엄청 기뻤었지.”
“왜 그땐 얘기 안 했어? 진작 얘기하지.”
“뭘 그런 걸 얘기허냐. 다 옛날 얘기인데, 쑥스럽게.”
살며 평생 효도 한 번 못 할 줄 알았는데, 효도 한 번은 한 셈이 됐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2012년 작은아들 주홍 대학 졸업식 때 찍은 사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주홍은 동분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해 국문과를 졸업했다.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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