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2년, 스물둘의 동분을 생각했다. 매일 같이 술에 절어 제대로 된 가장 노릇 한 번 안 해본 아버지, 그런 아버지 대신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깥일 해야 했던 어머니, 거기에 줄줄이 딸린 식구들까지. 그 구질구질한 생활이 싫어 언니 집으로 도망치듯 오긴 했지만, 머무는 공간이 바뀌었다고 동분의 삶이 버라이어티하게 변화하진 않았을 거다.
밥벌이해야 했던 어머니 대신해 동분은 일찍부터 막내 여동생을 돌봤다. 동분이 국민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뒤로도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집안 살림을 보태왔다. 그렇게 스물둘이 되었다.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동분은 그때 어떤 미래를 꿈꿨을까.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삶이 대단하게 혹은 눈부시게 빛날 거라고, 스스로에게 기대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런 동분 앞에 송일영이라는 사람이 서 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운명과 우연을 넘나들며 어쨌건 지고지순하게 동분만 바라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결혼하자고 했을 때 동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또한 모를 일이다.
1982년 5월, 청주에서 살림 합치자마자 사진관 가서 찍은 사진.
형편이 어려워 이때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꼭 죽고 못 사는 사랑만이 사랑은 아닐 거다. 어떻게 세상의 모든 사랑이, 혜은이의 노랫말처럼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오를 수 있을까. 같이 있지 못해도 참을 수 있고, 보고 싶을 때 못 봐도 눈멀지 않는 사랑도 있을 게다. 사랑에 정답은 없을 테니. 그렇기에 동분 또한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그러엄~! 그래도 그때는 정말로 니네 아빠를 사랑했지. 막상 살아 보니 ‘꽝’이었지만. 호호호. 엄마가 니네 외할아버지를 보고 컸잖냐. 맨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월급봉투는 술집에 다 갖다주고, 그것 때문에 울 엄니가 얼마나 고생했게. 근데 니네 아빠는 지금도 그렇지만 성실한 거 하나만큼은 알아주는 사람 아녀~! 그런데다가 술도 안 마시고. 맞어, 그러고 보니까 그게 컸어. 니네 아빠가 이날 이때까지 술 마시고 사고 친 적은 없잖어. 그래서 결심한 거지. 아,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그래도 고생은 안 하겄구나. 그런 믿음직한 모습을 사랑했던 거여.”
질질 끌어왔던 운명의 시간과 비교하자면 연애 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불과 두어 달 남짓. 얘기했듯, 송일영은 동분을 두고 청주로 떠날 수 없었다. 하여, 먼 거리를 출퇴근하며 이사를 미루던 상황. 동분 마음을 확인한 이상, 하루빨리 동분과 청주로 가고 싶었을 것.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래도 아쉬우니, 그때의 연애 이야기를 잠시 따라가 보자.
“엄마는 그 당시 다니던 공장 그만두고 잠깐 쉬던 상황이었어. 그러다가 니네 아빠랑 정식적으루 연애를 시작했던 거니께, 시간이 좀 남았지.”
한편, 송일영은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꿀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말이 좋아 지사장 수행비서지, 하는 일이라고는 아침 일찍 지사장 집 앞으로 가 지사장을 회사에 모셔다드리고, 중간에 큰 볼일 없으면 퇴근 때까지 ‘대기’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송일영과 데이트하기 위해 동분은 이따금 시외버스를 타고 청주로 갔다. 오전 11시쯤 송일영을 만나 함께 점심 먹고, 청주 시내를 돌아다녔다. 옷 구경도 하고, 다방에서 차도 마셨다. 오후 6시쯤 송일영이 다시 회사로 돌아가 지사장을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오면, 함께 포니1을 타고 신탄진으로 퇴근했다.
그 시절을 송일영은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는 니네 엄마가 아빠를 더 사랑했었지. 맨날 시외버스 타고 아빠 만나러 왔었으니까. 허허허.”
물론, 동분 의견은 다르다.
“웃기시네. 몇 번 안 갔거든? 흥~!”
그런 나날이었다. 이 세상 모든 햇살이 스물둘 동분과 스물여덟 송일영 정수리로 쏟아지던 나날. 그날의 석양도 그렇게나 아름다웠다고, 동분은 기억한다.
“붉으스름 하니, 뭔가 좀 묘하게 감동적이더라고. 조수석에 앉아서 하염없이 차장 밖을 바라보고 있었지. 신탄진에 거의 다 올 때쯤이었나? 니네 아빠가 내 손을 슥 잡더니 이런다. 청주 가서 같이 살자. 그게 다여~!!! 니네 아빠가 그렇게 무드가 없어. 이날 이때까지 장미꽃 한 다발 사준 적 있는 줄 아냐?”
탄탄대로를 걷던 두 사람 관계에 제동을 건 이가 있으니, 바로 동분의 작은오빠다. 이 시점에서 잠시 동분의 형제자매 관계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처음에도 언급했듯, 동분은 5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첫째는 동분보다 여덟 살 많은 동순. 동분와 송일영을 연결한 바로 그 언니다. 둘째는 동근.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를 대신한 실질적 가장이었다. 송일영 때문에 동분이 늦게 들어왔던 날, 동분에게 매질을 한 바로 그 큰오빠다. 이즈음 큰오빠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돈 벌러 떠난 상태였다. 셋째는 동운. 동분의 작은오빠로,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와 사우디로 간 큰오빠 대신해 이즈음 집안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섯째 현희. 동분이 업어 키운 바로 그 막내 여동생이다.
그럼, 동분의 작은오빠는 왜 두 사람 결혼을 반대했을까. 송씨 집안의 구구한 내력은 두 번째 에피소드 <젖을 뺏길 줄은 생각도 못했지>편(링크)(에서 충분히 설명했지만, 까먹은 사람도 있을 테니 다시 옮겨와 보자.
「송(宋)씨 집안 안주인, 그러니까 동분 시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훗날 90세까지 무병장수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가는 그날까지 하루 담배 두 갑씩 태우면서 둘째 며느리 괴롭히는 재미로 살았다나 뭐라나. 여하간 그 팍팍하던 시절에도 새벽 닭 울기 무섭게 일어나 찬물로 머리를 감고, 참빗으로 곱게 쓸어 올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바로 온 집안 문과 창문을 열어 제치고 이불을 죄다 걷어와 탈탈 털어 마당에 널어놓은 후에야 아침을 시작했다고 하니, 그 꼬장꼬장한 성질 더 말해 무엇 할까.
그 집안에 아들이 셋인데, 삼형제 모두 그 꼬장꼬장한 성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첫째는 툭하면 주먹질이요, 막내는 허구한 날 술이었다. 그나마 둘째가 사람 구실을 좀 했는데 핏줄은 타고난 거라, 그 성질은 어디 안 갔다. 하여, 그 동네는 물론이거니와 옆 동네,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송씨 삼형제라고 하면 혀부터 찼다. 지나가던 개도 그들을 보면 꼬리를 바짝 내리고 벌벌 떨다가 끝끝내는 오줌을 지렸다나.」
신탄진이라는 촌 동네가 무슨 워싱턴이나 런던이 아닌 이상에야, 한 다리 건너면 친구요, 선배고 후배였다. 더욱이 동분 작은오빠와 송일영이 겨우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니, 동분 작은오빠도 송일영을 비롯한 송씨 삼형제를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모양. 작은오빠가 동분에게 그러더란다.
“야, 동분아. 동네 사람들은 송씨 집안 삼형제 가운데 그나마 둘째가 괜찮다고들 하는데, 내가 그 송일영이라는 사람, 오가며 안면이 좀 있걸랑? 근데 그 사람도 성깔 보통 아니여. 너 인마, 아무튼 간에 그 집안으로 시집가면 인생 조지는 줄로만 알어. 큰형도 외국 나가 있는 판에 뭐 급하다고 서둘러. 다 동분이 너 생각해서 하는 얘기니께 쓸데없는 소리 말어.”
가장 노릇하는 작은오빠가 반대하고 나선 거다. 그런 시절이었다. 이때 송일영은 정면 돌파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동분에게 그러더란다. 작은오빠를 한 번 만나서 설득해 보겠다고. 동분과 작은오빠, 송일영이 식당에 마주 앉았다. 동분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날 니네 작은외삼촌이 술만 안 취했어도 엄마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몰랐던 건데……. 에휴~!”
유전이라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송일영은 살면서 술이라는 걸 마셔본 역사가 없는 사람인데, 그 피가 고스란히 그의 작은아들이자 이 글을 쓰는 송주홍에게 왔다. 인생을 술로 허비한 동분 아버지 핏줄은 고스란히 동분의 작은오빠가 물려받았다. 송일영과 마주한 동분 작은오빠는 밥술 뜨기 전부터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나는 이 결혼 반대요.”
“아니 왜 반대야!”
“아무튼 나는 형님이 싫어요.”
“아니, 그러니까 왜~!”
두 사람이 실랑이하는 사이, 동분 작은오빠는 점점 혀가 고부라졌다. 술 한 잔 입에 안 댄 송일영은 정신이 점점 맑아졌다. 식사 끝내고 다방으로 자리 옮겼을 때, 동분 작은오빠는 이미 만취 상태였다.
“니네 작은외삼촌이 한창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니네 아빠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더니만, ‘동분아, 나가자.’ 이러는 겨. 그날 진짜로 영화를 찍었다니께. 니네 작은외삼촌은 비틀비틀하면서 쫓아오지, 니네 아빠는 내 손을 잡아끌면서 도망가지. 엄마도 에라 모르겄다, 니네 아빠 손 꼭 잡고 냅따 뛴 거지. 호호호. 너 그, 신탄진에 한일병원 알지? 그 자리가 옛날엔 야트막한 산이었어. 니네 아빠랑 나랑 그 산으로 막 뛰어 올라갔다니까? 호호호. 그렇게 멀리 돌아서 다시 신탄진으로 들어온 거여. 헐레벌떡하면서.”
작은오빠를 따돌리기 위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산으로 뛰어 올라가던 두 사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드레스 입고 결혼식장에서 도망쳐 나오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졸업>. 그 영화 마지막 씬처럼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 설렘과 떨림, 이제부터 믿을 건 오직 상대방뿐이라는 굳건한 마음 같은 거. 아마도 그런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서로의 손을 더욱 맞잡았던 건 아닐까.
“엄마 손을 얼마나 꼭 잡고 뛰던지, 나중엔 손가락이 다 얼얼하더라니까. 니네 아빠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여. 이대로 이 사람 집에 보내면 놓칠 수도 있겠구나. 신탄진 시내로 다시 돌아와서 숨을 고르는데, 니네 아빠가 그러더라? 오늘, 같이 있자고.”
그날, 동분과 송일영은 마침내 ‘역사’를 썼다. 다음 날 아침, 집에 돌아온 동분은 어머니를 붙잡고 이렇게 얘기했다.
“엄니, 이제 다~ 끝났어. 어제 그 사람이랑 외박도 했고, 잠을 안 잤으면 모르겄는데 잠을 잤기 때문에 이제는 같이 사는 수밖에 없어.”
1993년. 살림 합친 지 10년여 만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1993년. 결혼식 직후, 부산 태종대로 2박 3일 신혼여행.
이때는 부산 태종대가 신혼여행의 메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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