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교수직 내려놓고...고향서 미술관 새출발/ 이동백 기자
인생 이모작, 김대원 화백. 귀향 후엔 ‘영남 누정’ 그려. 안동 내 구곡문화 보여줄 것
김대원 화백이 자기 저서를 앞에 놓고 앉아 있다. 강병두 작가 제공
창산(蒼汕) 김대원(68) 화백은 경기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퇴직하고, 인생 이모작을 위해 고향 안동시 남서면 신평마을 아늑한 곳에 ‘김대원마술관’을 지어 귀향한 한국 화단의 중견 작가이다.
김 화백은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그리기를 좋아했다. 부모도 그가 그림 그리도록 뒷바라지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미술 동아리에 들어가 선배들을 따라 현장으로 나가 스케치하면서 그림을 익혔다.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경희대학교 교육대학 미술교육과에 들어간 그는 3학년 때 스승인 창운(蒼暈) 이열모 선생의 산수화풍에 매료되어 한국화의 길로 들어섰다. 훗날 자신의 호를 창산(蒼汕)으로 삼은 것도 스승과 관련이 있다. 스승의 호에서 ‘蒼’을 따고, 평소 흠모해 왔던 신산(心汕) 노수현 선생의 호에서 ‘汕“ 자를 취해서 지었다. ‘汕’ 자는 물고기가 헤엄친다는 뜻인데, 김 화백의 어머니가 꾼 태몽이 물이 가득 들어찬 마당에 잉어가 노니는 것이어서 묘한 인연이다 싶다며, 김 화백은 그 호를 오늘날까지 쓰고 있다.
◆ 작품 위해 한문학과 입학
대학원을 졸업하던 1982년에 ‘想’이란 제목으로 출품한 인물화가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상으로 입상한 데 이어 그 이듬해에 ‘여운’으로 우수상을 받음으로써 주목받는 화가로 화단에 데뷔했다. 같은 해에 안동대학교 미술학과 강사로 초빙되어 3년간 근무하다가 1988년에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후진을 양성하기에 이른다.
한편 김 화백은 뛰어난 묘사력과 세련된 필치로 우리의 산하를 과장 없이 진지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아 1995년에 제3회 월전미술상을 수상했다. 그즈음에 화가가 손재주만 부릴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한다는 월전 장우성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한문을 공부하기 위해 고려대학교 한문학과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조남권 선생이 운영하는 온지서당에 들어가 한문을 공부했다. 이에 힘입어 2010년에 ‘중국고대화론유편’을 번역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2012년에 ‘고려 시대 화론 연구’로 고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 소헌 정도준 선생에게 서예도 배웠는데, 서예를 익히느라, 논어와 맹자를 필사했다. 지금도 김 화백 미술관에는 그때 필사한 것을 묶은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귀향 후 그의 거처이자 작업실이 된 ‘김대원미술관’
◆ 귀향 후 미술관 건립.... 손때 묻은 ‘누정’ 주목
김 화백은 33년간의 경기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고 고향 신평마을로 돌아왔다. 2019년에 자신 소유의 땅을 돋우고 정리하여 80평짜리 작업실이 딸린 대지 8백 평에 연건평 2층짜리 미술관을 짓고, ‘김대원미술관’이란 이름을 붙여 오픈했다.
미술관은 동쪽으로 솟은 나지막한 산에 기대어 섰고, 전면에는 잔디가 깔린 널찍한 마당을 내어 시원한 느낌을 주도록 꾸몄다. 미술관 1, 2층에 전시 공간을 내어 향토성과 전통성이 짙은 소재를 서정적 필치로 담아낸 산수풍경화, 인물화, 동물화 등 김 화백의 대표작을 전시해 놓았다. 이들 작품 가운데 그가 특히 애착하는 작품은 경기도 양수리 수정사에서 내려다보며 두물머리 저물녘 풍경을 그린 ‘해질녘’이다. 이 그림은 가로 6m, 세로 1.8m의 대작으로 1991년에 완성한 수묵화이다. 김 화백은 미술관 안에 마련한 작업실에 거처를 정해놓고 그림을 그리면서 안동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안동으로 귀향해서 주로 그린 작품이 영남의 누정(樓亭)이다. 작년 10월에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영남의 누정,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를 주제로 그동안 그린 100점의 누정 그림을 전시했다.
김대원 화백의 청송 안덕의 ‘방호정’ 김대원 화백 제공
김 화백은 청량산 들머리의 고산정, 영덕 옥계계곡의 침수정, 예천 용문의 초간정, 청송 안덕의 방호정 등의 정자를 비롯하여 60여 누정을 찾아다니며 현장에서 스케치하여 그렸다. 그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은, 그래서 가능하면 수리한 흔적이 없는 누정을 찾아 그렸다. 즉 화가의 눈으로 본 누정이었다. 이것이 창산 김대원 화백의 귀향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김대원 화백의 장래 계획도 누정에서 시야를 넓혀가는 쪽에서 찾는다. 누정이 있는 풍경을 확장하다 보면 구곡문화와 맞닥뜨리게 된다. 안동만 하더라도 도산구곡, 하회구곡, 임하구곡이 있고, 영주의 죽계구곡, 성주와 김천 사이의 무흘구곡 등이 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들 구곡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줄 기회를 갖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김 화백이 그림 그리는 일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삶이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그림 그리기가 끝나고 붓을 씻은 후, 그는 김원길 지례예술촌장과 같은 이들을 만나러 승용차로 20여 분 거리인 안동 시내로 나온다. ‘인촌’ 같은 조촐한 곳을 찾아 맥주 한 잔을 사이에 놓고, 인생이라든지, 그림이라든지, 문학 이야기를 나눈다. 헤어질 시간이 남았으리란 짐작이 들면, 지난밤에 서쪽 하늘에 뜬, 반쯤 뜯겨나간 달을 쳐다본 사연까지 화제에 올린다. 그러고도 부족하다 싶으면 거리의 가로등 밑으로 나와 사족처럼 남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곤 아쉬움을 남긴 채 귀갓길에 오른다. 이 또한 창산 김대원 화백의 귀향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한편 김대원 화백은 귀향하면서 ‘귀천회(歸川會)’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귀천회는 안동 출신으로 타향에 나가 살다가 안동으로 돌아온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인구 감소로 몸살을 앓는 안동을 살리기 위해 귀천회는 ‘고향으로 돌아오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활동한다. 서글서글한 외모에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해 올 적엔 개성 넘치는 예술가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아름다운 귀향의 주인공 창산 김대원 화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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