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 응집, 잡초, 글 이야기-서봉수론<1>/ 타이젬
1. 자생自生autogenesis
"상대가 숨을 쉬고 있는 한 절대 칼을 버리지 마라!"
- 오카미 이토
바둑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가로세로 각 열아홉 줄을 그어 361개의 교차점을 이루고 있는 반위에, 두 사람이 흰 돌과 검은 돌을 번갈아 두어서 에워싼 집의 크기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라고 나와 있더군요.
맞는 거야? 그런 거야? 하지만 이따위 풀이에 만족하고 마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 이유는 '돌을 번갈아 두어 집의 크기를 견준다'라는 요식 절차만 가지고서는 바둑의 내막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둑의 사전적인 정의 어느 구석에서도 승부사의 다양한 기풍과 기기묘묘한 초식의 낌새를 눈치 채기는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대하와 같은 바둑의 곡절을 조그만 표주박 하나에 다 퍼담아 보겠다고 아무리 지랄 염병을 떤다한들, 결국 얼토당토아니한 몸부림이라는 사실만을 깨닫고 비관을 사게 될 것이 '뻔할 뻔'자로 보입니다.
<논어>의 '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三百 一言而蔽之 曰 思無邪)'라는 말은 공자가 <시경>을 평가한 말이라고 하여 널리 알려져 있고, 그 번역에 있어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시경의 시 삼백여 수를 한마디로 일러, 사상에 일말의 부정도 없다' 라고 번역하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렇듯 압축의 귀재인 공자가 바둑을 평가하면서, 바둑의 본질이 아닌 기능적인 면으로 접근한 것은, 바둑의 그 '정의 내리기 골 까는 오묘함'에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았습니다. 바로 그 오묘함 때문에 바둑은 사람에 따라 도도 되고 예술도 되고 철학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근자에 바둑이 스포츠로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바둑의 스포츠화가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은 발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앞에 두뇌(사람이 하는 일 치고 '대가리'를 사용하지 않는 일이 없을 터인데 유독 두뇌를 강조하니 외려 초협한 느낌마저 주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이 붙으면 일반적인 스포츠와는 뭔가 달라지는 것일는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경쟁은 스포츠를 성립시키는 중요한 요소이고, 바둑이 승패를 다투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바둑의 스포츠화가 일견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스포츠가 추구하는 것이 신체적 정신적 '유희'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국민우민화정책'으로 온갖 프로스포츠를 장려함으로써 '스포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있습니다. 물론 바둑도 유희입니다. 하지만 바둑에는 유희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들어 있습니다. 바둑이 스포츠로 자진하여 입대하는 것은 '그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스스로 격을 낮추는 자해행위인 것 같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자기가 별 볼 일 없다고 소리쳐 동네방네 소문내는 벨꼬라지라고나 할까요. 스포츠를 놓고 도와 결부시키고 철학과 결부시키고 예술과 결부시킨다면 얼마나 뒤통수 따가운 일이 되겠습니까? 흥행을 위한 자구책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런다고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저는 바둑의 스포츠화라는 편법보다는 바둑의 가치를 정립하여 위상을 높여나가는 정공법이야말로 시급하면서도 최선책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바둑은 바둑 그대로 놔둔 채 저변확대를 꾀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바둑의 세계화만 하더라도, 바둑이 독자적인 바둑으로 나아가며 다양한 각도의 접근을 허락할 때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가능하지 않을는지요.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을 훼손시켜 가면서까지 영역만 넓히려 드는 것은 자칫 존립 자체에 위협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일입니다. '느려도 황소걸음이다'라는 말은 적어도 바둑의 저변확대에 있어서만큼은 진리 같습니다.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을 허락하는 것도 바둑의 깊이다'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한 이야기치고는 좀 길어졌습니다만, 저는 바둑을 '전쟁'이라고 표현한 한 승부사에 대하여 '썰' 보따리를 풀어 놓으려고 합니다.
전쟁은 '무력행사를 수반하는 국가간의 쌈질'이 통념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개념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력을 전혀 행사하지 않아도 선전포고 여부에 따라 전쟁이 성립되며, 내란도 그 성격에 따라서는 전쟁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 개념과는 별개로, 전쟁관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물리적인 힘으로 적을 완전히 제압할 때 진정한 승리에 다다를 수 있다'라고 주장한 '미친개 몽둥이 찜질론'과 손자가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주장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설겆이 끝내기론'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선각자들의 전쟁관도 별로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는 이미 천오백여년 전에 정당한 전쟁론을 설파한 바 있고, 선각자들의 전쟁관은 전쟁의 정당성과 인본주의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현대의 전쟁은 전쟁의 정당성 따위는 미리 똥개에게 먹으라고 줘버렸다는 듯이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이라는 이름의 '오륜의 도'도 헌신짝처럼 팽개칩니다. 명분조차도 아전인수로 '작업'해 냅니다. 그 수단에 있어서도 정도와는 동떨어진 '극악무도'가 판을 칩니다.
'쥐를 잡는데 검은 고양이면 어떠하고 흰 고양이면 어떠하냐?'라는 '결과지상주의'가 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요. [흑묘백묘론] 이후 중국의 고도성장을 보노라면 그 효과에 대해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갈 데 까지 갔다'는 불안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자꾸 황폐해져 갑니다. 저는 경기가 사나워 '오까네봉급봉투'가 얇아지는 것보다는 정신이 망가져 '휴머니즘연금봉투'가 얇아지는 것이 나중에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무력을 동반하든 '알아서 기게 만들든' 상대를 제압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바둑을 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은 적절해 보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은 미리 아셨겠지만, 서봉수는 바둑이 전쟁임을, 자신이 그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사임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한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 왔다. 그것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최전방에서."
전쟁의 정당성이라는 측면으로 접근하였을 때 바둑은 이상적인 전쟁에 부합해 보입니다. 전쟁은 태생부터가 이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저는 기왕에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전쟁다운 전쟁을 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상적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바둑이라는 전쟁의 명분은 오로지 생존입니다. 그 명분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파도 위의 난파선처럼 흔들리지도 않으며 '가라'로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그 극단적인 약육강식의 생존논리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하지 않으며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를 구별하지도 않습니다.
바둑이라는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라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원초적인 명분 외의 다른 어떤 명분도 개입하는 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바둑이라는 전쟁의 수단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적수공권이라는 말 한 마디로 그들의 수단은 완벽하게 오픈 됩니다. 바둑이라는 전쟁에는 명예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명예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승부사가 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바둑이라는 전쟁은 그 어떤 전쟁보다도 가혹한 전쟁인 것 같습니다. 승리를 위하여 승부사는 무수한 함정을 피해가야 하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끝없이 번민해야 하며, 숨이 떨어지는 최후의 순간까지 오직 자신만을 믿고 싸워나가야 합니다.
부비트랩이 천지사방에 널린 정글 속에 버려지고 발바닥에 끈끈이가 붙은 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낼 여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다리 힘에 사활을 걸고 빛을 향하여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혹하지 않습니까? 길 목 길 목 사신이 진을 치고 있는 죽음의 전쟁터를 오직 자신의 두 다리만을 의지하고 헤쳐 나가야만 하는 그 절박함이.
자신의 고백처럼, 서봉수는 전쟁터의 최전방에서 처절한 승부를 거듭하여 왔습니다. 어느 승부사의 승부치고 치열하지 않은 경우는 없겠지만, 제가 서봉수의 승부를 치열을 넘어 '처절하다'라고 까지 느낀 것은 그의 이력과 그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입단 이전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 부실함에 말문이 막힙니다.
'만 나이 14세에 바둑을 접했고, 16세에 <전국고교생바둑대회>에서 우승하였고, 17세에 입단하였다'가 전부입니다.
어려서부터 신동소리를 들었다거나 고명한 스승 문하에서 수업을 받았다거나 해외유학으로 엘리트코스를 밟았다거나, 하다못해, 야심한 시각에 산책을 나갔다가 허방다리를 짚어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사경을 헤매는데, 느닷없이 10,000년 묵은 거북이가 나타나 번데기 한 알을 건네주기에 날름 먹어 치웠더니, 그 날 이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금강불괴(칼로 찔러도 안 들어갈 만큼 탱탱한 몸)'로 변하며 내공도 다섯갑자 이상 상승했다 '카더라', 다시 하다못해, 우연히 '걸뱅이' 노인에게 선행을 베풀었다가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무림비급을 전수받는 땡을 잡았다 '카더라' 정도의 이력이 나와 줘야만, 그의 입단 이후의 행보가 설득력을 얻을 터인데, 제가 과문한 탓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의 입단 이전의 이력은 더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바둑책에서, 서봉수가 입단 전에 한 절에서 공부하다가 '지금 하산하면 입단할 것 같다'는 감이 와서 즉시 하산하였고, 곧바로 참가한 입단대회에서 장원급제하였다는 일화를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서봉수의 일화가 맞긴 맞는지 그마저 자신이 없어집니다. 설사 그게 서봉수의 일화였다고 해도, 입산수도라는 이력이 저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의 입단 이전의 이력에서 비전을 읽기는 어렵습니다. 이창호가 14세에 타이틀홀더로 '입뽕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초라하기까지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입단 이후의, 그의 행보는 놀랍습니다.
그는 입단 3년차이자 2단인 19세에 파죽의 11연승으로 <명인전> 도전자로 결정되었고, <명인>이었던 조남철에게 3승 1패로 타이틀을 '쌔벼' 냈습니다.
조남철이 "서봉수의 단위가 3단만 되었더라도....." 하고 탄식하였다는 그 혁명적인 사건은 '사람이 개를 물었다'라는 하마평이 압권이었다는데, 그 말뜻을 정확히 모르는 저로서는 그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모반이 성공하였다' 정도로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19세의 [명인]등극은 그 파격성으로 말미암아 갑신정변이 그러하였듯, '삼일천하'를 넘기지 못 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서봉수는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리 4기 연속 수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서봉수의 호칭이 그의 타이틀 보유 여부와는 상관없이 [서명인]으로 통하는 것은, 그 때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의 성과 [명인]이라는 타이틀 이름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의 19세 [명인]등극은 아직까지도 한국 바둑사 10대 명승부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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