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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수필 작법, 글쓰기 , 기타 ] 비평 수필이론 등

수필쓰기에 있어서 상상력의 수용과 창작성

by 자한형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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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쓰기에 있어서 상상력의 수용과 창작성 / 박양근

우리는 무엇으로 보는가. 사물을 본다면 진정 보는 것인가. 작가로서 본다고 할 때 무엇을 이해한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은 작가의 본분이자 문학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수필가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전에 무엇보다 생각하는 사색가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문학쓰기에서는 대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글의 등급이 달리지기 때문이다. 문단에서 살아남는 자는 문단권력을 쥔 자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공간과 관찰하는 대상을 남다르게 해석하는 문필의 힘을 가진 자이다. 문학쓰기에서 상상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수필이라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필은 무엇인가를 요약하면 체험의 상상화이고 소재의 의미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작법은 배우려 하지만 생각하는 방법으로서 상상력을 알려하는 수필가는 드물다. 글은 쓰는 시점은 펜을 쥐거나 문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때가 아니다. 글을 쓰기 전에 이미 망막(網膜)과 심벽(心壁)에는 써야할 내용이 상상에 의하여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펜이나 커서의 이동은 머리와 가슴에 각인된 내용을 되새김하는 행위에 불과할 따름이다.

노드롭 프라이는 일찍이문학의 구조와 상상력에서 상상력을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있음직한 본보기(model)를 구성해가는 힘이라 정의하였다. 베이컨은 상상은 사실의 세계에 매이지 않고 사실들을 변형시켜 더 아름답게, 더 좋게, 더 다양하게 만들어 즐기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영국의 수필가인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상상의 즐거움>이라는 평론에서 감각의 대상이 없을 때에도 머릿속에서 여러 심상들을 융합하여 전혀 새로운 심상을 형성하는 능력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렇다면 상상은 대상을 인식하고 현실을 이해하고 우리가 쓰려는 이상 세계를 제안하려는 노력이다. 더 압축하면 상상은 변증법에 가까운 재인식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필창작에서 상상은 새롭게 보기에 해당한다. “새롭게는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묘사하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심미적 작업을 뜻한다. 이처럼 상상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선의 기능으로서 과학과 예술과 문학을 이루어내는 동력에 해당한다.

창작과 상상과의 관련성을 논할 때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시와 소설과 수필의 차이를 재확인하는 일이다.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가장 명료한 구분은 시는 이미지, 소설은 허구,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설명은 상상과 비상상으로 나누거나 문학과 비문학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이 아니다.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므로 상상의 문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는 상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단견에 불과하다. 문학과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 상상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차이가 있다면 시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소설은 허구를 바탕으로,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상상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수필은 체험의 전사(轉寫)이므로 상상의 문학이 아니라면 수필문학이라는 정의 자체가 모순된 것으로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다는 말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라고 하겠다.

상상과 창작성을 관련지을 때 고려할 문제는 대상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보통사람들은 육안으로 대상을 바라보지만 인문철학자로서 수필가의 해석방식은 남달라야 한다. 그 해석방식은 상상이라는 채로 걸리는 것이다. 수필가의 본분은 어느 타 장르의 작가보다 더욱 충실하게 대상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다. 수필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은 해석판 위에 놓인 기호에 해당한다. 오감이 다다르지 못하는 관념적인 것과 인류가 꿈꾸는 피안의 세계와 물리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우주도 일종의 기호이다. 모든 기호는 상상을 통해 해독된다. 작가가 지니고 있는 상상력이 대상이 지닌 의미를 밝혀준다.

수필 창작에 활용하는 상상의 방법은 끝임 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대상과의 소통방식으로서 질문은 무엇, , 그렇다면, 그리고 어디서가 포함된다. 수필가가 인문철학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물계와 인간계는 망으로 엮어져있음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수필도 언어망과 의미망과 인과관계의 망으로 구성될 때 진정한 문학성과 예술성을 확보해나간다.

상상력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로서 상호 기하학적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첫째는 대상에 내포된 근원에 대한 내향적 질문이다. 이를테면 무엇?”이다. “무엇은 오감이 포착할 수 없는 미지(未知) 그 자체로서 사랑의 근원, 미움의 근원, 존재의 근원, 아름다움의 근원, 죽음의 근원으로 나아간다. 이를테면 ()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새가 어디에서 날아왔으며 어떻게 비상하는가라는 궁금증을 연속적으로 끌어낸다. 마찬가지로 나무와 꽃의 씨앗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어떻게 흙에서 생성되는가. 겨울옥수수는 왜 죽음을 뜻하는가를 거듭 묻다보면 생물의 근원인 삶과 죽음조차 일치함을 인식하게 된다.

두 번째 질문은 우주를 향하는 외향적 질문이다. 제재가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원심력이 실린 질문으로 작가는 모든 사물은 자아이면서 타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의 유기적인 생태망을 자각하게 된다. “왜 촛불의 빛은 사방으로 뻗는가?”라고 연속적으로 묻다보면 명암, 냉열을 떠올리고 태양과 달빛조차 촛불을 중심으로 상호 연계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연꽃에서도 우주의 음성과 감지함으로써 두 번째 질문은 종국적으로 대상-우주-대상의 관계를 규명해준다.

세 번째는 대상에서 인간계로 건너오는 횡단적 질문으로 그렇다면에 해당한다. 인간과 대상간의 관계를 질문하다 보면, 대상과 인간이 우주라는 패러다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가령 새의 울음은 내겐 뭔가, 촛불은 나의 무엇을 비추는가와 같은 질문은 사물과 인간 사이에 호환성에 관한 해답을 준다. 횡단적 질문은 수필의 창작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사물의 근원과 우주를 향한 내적·외적 투시가 가능하더라도 인간의 삶과 연관시키는 횡단적 질문이 없으면 수필이 요구하는 상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네 번째 질문은 시공에 관한 질문이다. 대상과 우주와 삶을 결속시킬 때 작가는 자신이 처한 공간에 대한 질문도 하여야 한다. 시공에 대한 질문은 사물을 정확하게 조명하고 개성이 있는 관점을 구축하는 행위로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자각하는 것이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장소와 공간에 대하여 공간애(空間愛)를 갖는가. 소위, 이 푸 투안(Yi Fu Tuan)이 말한 공간자각인 토포필리아(Topophilla)를 가지는가, 반대로 공간혐오감인 토포포비아(Topophobia)를 느끼는가, 아니면 공간무감각성(placelessness)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대상에 대한 정서와 호불호의 스펙트럼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고향과 성장지는 애착을 기울이는 장소에 속하며 패스트푸드, 백화점, 지하철역 등은 무감각상의 대상으로 구분된다. 느티나무라도 고향 느티나무와 관광지의 느티나무에 대한 반응이 다른 것은 작가의 공간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간성에 따라 소재의 좌표가 달라진다는 네 번째 질문은 체화의 개성미를 좌우한다.

예술은 상상력으로 근원과 의미를 탐색하는데 목적을 둔다. 예술표현으로서 상상력은 교육으로 습득한 능력이든 생득적인 자질로 간주되든 인간의 본능적 공상과 다른 미적 가치를 가진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상상은 자유롭게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미적 활동이다. 따라서 문학의 상상력은 의식주라는 실용성과 무관하게 여러 방식을 수용한다. 작가정신이라는 기()로서 상상을 넓게 해석하면 관상, 연상, 환상, 착상, 발상 및 감수성을 포함하면서 작품의 미적 용량을 확대한다.

관상은 대상을 응시하고 풀이하는 관찰력을 말한다. 사람의 운명을 풀이하는 관상가처럼 작가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아니라 대상을 통찰하고 해부하는 혜안을 지닌다. 관상력을 가진 수필가는 대상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종합적인 성찰을 거친 다음에 해답을 찾는다.

착상은 작가와 소재간의 만남으로서 창작 동기를 일깨우는 순간적인 번뜩임에 해당한다. 수필의 착상은 나는 소재를 찾는다. 고로 존재한다는 적극적 반응으로서 참신한 글감과 새로운 의미를 찾는 정신작용이라고 하겠다.

발상은 인습적인 영상(These)을 버리고 새로운 상(Antitheses)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며 형식적 변이와 내용의 진화로 구분된다. 발상이 보여주는 새로운 상에는 IT시대의 퓨전수필, 대사 중심의 극적 수필, 그림과 글이 합친 수화(隨畵)산문, 칼럼과 에세이가 합친 저널리즘 산문, 동물을 화자로 삼는 수필, 죽은 자와 산 자의 탈 시간성 수필 등을 포함한다.

연상은 사물이 지닌 의미를 확장하여 해석하는 정신작용으로서 일반화에 의한 연상, 추상화에 의한 연상, 유사성에 의한 연상, 인접성에 의한 연상으로 구분되며 사물 간의 상호관계를 인식하는 가능으로서 상상의 일부이다.

환상은 로맨스가 갖는 팽창과 과장의 미학을 지향하며 수필이 체험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신비적이며 탐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작가의 잠재된 욕망과 무의식을 들추어낸다는 점에서 사이버리즘 시대에 적합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감수성(sensibility)외계의 자극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육안과 과학적 법칙이 밝히지 못하는 자연의 비밀을 풀어내는 감수성을 프랑스 문학비평가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오관을 통해 사물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철학자인 에머슨이 땅벌을 인간보다 지혜로운 노란 바지의 철학자로 예찬할 수 있었던 것도 대상이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이미지를 포착하는 감수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연은 무수한 기호라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도서관이다. 기호를 풀이해내는 상상은 자연속의 텍스트를 창작에 필요한 소재로 전환시켜낸다. 문학철학을 지향하든, 단순한 재미거리로 읽히든 수필은 우주라는 도서관에 소장된 대상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수필은 대상의 비밀스런 의미를 탐구하는 영적 대화라고도 부른다. 그 영적 대화를 촉진하는 기본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운문과 산문을 동시에 읽음으로써 상상을 입체화하는 것이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상상의 원리인 은유와 환유의 원리를 제공하며 좋은 수필은 의미와 문장의 원리를 가르쳐준다. 나아가 시는 이미지의 응용력을, 산문은 소재와 체험 간에 유기성을 찾도록 해준다. 시와 산문 읽기는 내용과 형식의 원리를 가르쳐준다는 점에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낯선 관찰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동일한 대상을 남다르게 보는 다면화가 필요하다. 낯설게 하기, 엇갈려 보기, 엎어보기, 누워보기, 뒤집어 보기라는 전복은 타성적인 수필에서 벗어나 낯선 의미와 주제를 갖도록 해준다.

셋째로, 대상을 다원적인 시각으로 살핀다. 사물의 미세한 특징까지 놓치지 않는 현미경 같은 눈, 보이지 않는 시공을 넘나드는 망원경의 눈, 소재가 지니고 있는 색깔, 냄새, 모양, 원소, 용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내는 프리즘과 같은 눈,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찾아내는 잠망경과 같은 눈, 사물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쌍안경과 같은 눈을 갖도록 한다, 이런 관점에 영성을 첨가하면 영감이 우러나는 문”(霙文)을 쓸 바탕을 가꿀 수 있다.

잘못된 길이 지도를 만든다라는 격언이 있다. 미답을 밟는 걸음이 새로운 길을 만들듯이 상상력은 낯설면서 새로운 작품을 낳는다. 문학적 공정으로서 수필을 만듦은 상상을 구현하는 해법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상상은 정신의 언어이고 정신적 해방이고 정신의 근원이라는 난해한 말을 굳이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것보다는 상상력은 작품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두께를 결정하는 동력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한다. 수필가가 수필이라는 정원을 가꾸는 농부라면 상상은 밭을 가는 호미, 쟁기. 경운기, 트랙터엔 해당한다. 그렇다면 어느 농기구가 가장 효율적으로 정원을 가꿀 것인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수필가 개개인의 창작력은 문장의 숙련도에 앞서 그가 지닌 상상력이라는 연장에 의해 좌우된다.

2010 한국수필가협회 심포지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