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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수필 작법, 글쓰기 , 기타 ] 비평 수필이론 등

정임표의 수필론

by 자한형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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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표의 수필론/

"수필이란 작가의 내면에 끓어 오르는 감정이나 생각을 문학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진솔하게 표현하되 한 차원 높게 형상화 시킨 산문 -"

*수필을 정의하기 위해 애쓰다 나름으로 내린 결론일 뿐이며 정설로 확립된 것은 아님. 왜 문학적인 기법을 써야 하느냐는 것은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져 오랫동안 기억되게 하기 위해서 이며, 왜 한차원 높게 형상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한가 하면 개인사이지만 거기서 보편성과 진리성을 획득(공감대 형성)할 수 있어야만 독자를 위한 작품성(작가용이 아닌 독자용)을 얻게되는 때문이라 생각 함.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1) 자기 생각과 감정을 속인 글(이게 가장 나쁜 짓 임)

2)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빌어서 쓴 글

*자기 마음을 드러내어 쓰려니, 부끄럽고 낯간지러워서 1),2)처럼 쓰는 경우가 대부분 임,

3) 문학적 기법이 동원되지 않은 사실적인 글

4) 자기 입장이나 생각을 설명하거나 개인 적인 한 풀이에 그친 글

5) 저급한 차원의 글

은 우선 수필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임.

이정도만 골라 내어도 우리 수필이 한단계 업 될 것이라 생각 함, 독자들은 이미 이것을 알고 있음.

내친 김에 상상력에 대해서 몇 가지 더 설명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잠시도 생각을 쉬지 않는 존재 입니다. 입을 다물고 있다고 말이 없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는 끝없는 생각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요. 잠들어서도 생각을 멈추지 못하니까 꿈까지 꿉니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 인간의 머릿속에는 본원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지요.

그 비좁은 곳에다 작가인 당신의 생각을 집어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상대방의 머릿속에서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부터 중지시켜야 하겠지요.

타인의 머릿속에서 일고 있는 잡다한 생각들을 어떻게 해야 중지 시킬 수가 있나요?

그게 바로 수필의 서두, 첫 문장이지요.

요령이 부족한 사람은 많은 말을 해야 상대방이 알아들을 것으로 착각 합니다만 실제는 그 반대지요. 타인의 생각을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유도하려면 그의 생각이 내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 오도록 해야 합니다. 마치 피리 부는 소년 뒤로 온갖 동물들과 사람들이 뒤 따르듯이-.

어떻게 해야 내 생각의 뒤를 그들의 생각이 따라 올까요?

궁금증을 증폭 시켜야 갰지요. 어떻게 해야 궁금증이 커질까요? 작가가 적게 말할수록 궁금증은 더 커지지요. 궁금증의 크기에 비례해서 독자들의 상상력도 커지지요. 궁금증이 몰고 오는 상상력 때문에 다음 이야기가 어찌 전개될 것인지 기다려지는 것이지요.(이게 문학의 생명입니다.)

멍청한 작가들이 교장 선생님 말씀 같은 뻔 한 이야기나, 앞질러서 결과를 다 설명해 주는 과잉친절을 베풀어 버리니 더 이상 상상할 게 없는 독자는 책을 내팽게 쳐버리지요.

뛰어난 작가는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허를 찌르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요. 허를 찔린 독자들은 거기서 무릎을 치며 탄복하는 것이지요.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은 옛날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 가는데, 가끔씩 깜짝깜짝 놀래어 주던 할머니를 회상 해 보세요)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용을-" 경제 원칙입니다.

"최소의 표현으로 최대의 상상력을-" 문학의 원칙입니다.

아픈 말씀이지만 인간의 상상력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분들은 작가로서는 아직 미달이니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합니다.

작가가 되고나면 교육자나 철인이나 현자가 된 양 글을 쓰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저는 작가란 위대한 철인도 위대한 종교인도 결코 따라오지 못하는 대 자유인이란 생각을 합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부정적인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도록 묘사한 대표적인 사례는 흥부전에 나오는 놀부의 성격 묘사가 있습니다. 이 표현 때문에 놀부는 만인(독자)으로부터 세상에 없는 죽일 놈으로 규정되어 버립니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입니다.

"술 잘먹고 욕잘하고, 게으르고 쌈 잘하고.

초상난 집에서 춤추기, 불난집에 부채질 하기.

해산한 집에서 개잡기, 장터에 가서 억지 흥정하기,

무죄한놈 뺨 치기, 빚 값에 계집뺏기

(중략)-

다된 흥정 깨놓기.비오는날 장독열기, 남의 제사에 닭 울리기.

한길에 함정(구멍)파기,물동이 이고오는 여자 귀잡고 입맞추기,

배고파 우는아이 냄새나는 발구락 빨리기.우는 아이 똥먹이기 -"

우리는 일상사에서도 이런 부정적인 상상력을 동원시키려는 대화의 기법을 자신도 모르게 많이 사용합니다. 자신과 싸운 친구를 다른 친구에게 설명하면서 '그 녀석 누구에게는 이러이러한 행동을 했고 또 누구에게는 이러 이런 짓거리를 했다'는등 싸움의 본질과는 상관 없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 놓지요.

추가로

"k는 차를 몰고 북한강변을 달렸다. 옆자리에는 40대 초반의 여인이 타고 있었고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진 사이로 간혹 모텔 간판이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K의 아내는 집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이렇게 쓰면 "K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쓰지 않아도 독자들의 상상력에 의해 K가 묘령의 여인과 지금 이상한 짓을 하러 가는구나 하고 부정적인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수필에서는 과잉감정을 걸러 내라고 하는데 과잉감정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고, 지나친 과장법을 쓰면 수필의 근본 성격인 사실성을 약하게 하니 피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