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관의 선택
무릇 인생에 있어서 세 가지 선택이 있다고 안병욱 교수가 얘기한 바 있다. 직업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인생관의 선택이다. 인생관이란 인생이란 무엇이냐. 사람은 어떻게 살아냐 하느냐 등에 관한 사고나 자세를 뜻한다. 인생관에는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유물론과 유심론, 무신론 등이 있다. 비관주의는 염세주의 허무주의, 무상관으로 나눠지는데 인생관은 그 사람의 기질과 성격 또 환경과 시대에 영향받고 지배된다고 할 수 있다. 가치관과는 차이가 있다. 가치관은 어떤 대상에 관해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점이다. 인생관은 주어진 세계 속에서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관점이다.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가치관은 형성된다. 대학생활을 하던 때 한참 선배 선생님 등을 찾아다니면서 질문을 하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자아가 한창 형성되고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방향설정을 위해 고민하던 때였었다. 인생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생을 살면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어떤 신념을 갖고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등이었다. 인생의 목적을 위해 가져야 하는 자세는 무엇이고 태도는 무엇인가. 정말 열정은 넘쳤지만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것에 관해서는 몰이해했던 때였다. 무엇을 위한 삶을 살 것인가에 고민하던 때였다. 직장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책하면서 한 가정을 이루고 삶을 영위하고 생을 가꾸었던 일생이 한참 지났고 30여 년이 흘렀다. 이제는 60 중반에 접어들었다. 혹자는 그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링컨은 인생 40세가 되면 자기의 얼굴에 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고 공자는 50이 되면 천명을 알게 된다고도 했다. 60이면 귀가 순해진다고도 해서 이순이라고 했다. 70이 되면 종심소욕 불유거라고도 했다. 해석하면 자신이 아무리 행동하고 실행하는 부분에 관해 법도와 도리에 어긋남이 없어진다는 식이다. 요즘에는 그렇게 권고하기도 한다 50이 되면 인생관도 바꿔야한다는 얘기다. 인생을 네 시기로 나눈다면 초년 중년 장년 말년인 셈이다. 초년은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이고 중년은 인생의 일하고 자녀를 교육시키고 뒷바라지하던 때이고 생의 황금기일 것이다. 장년은 50대 후반부터 70대 중반정도가 해당될 것이다. 계절로 비유하자면 가을이리라. 작자 미상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시도 있다. 나는 나에게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반추하고 자문하며 향후의 삶을 다짐하고 꼽씹는 내용이다.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 중략 과연 얼마나 인생을 충실히 살았는지에 관해 자문해보면 보람 있었던 일도 있을 것이고 후회가 되는 부분도 많으리라. 아무튼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가졌던 그 인생을 살면서 터득한 지혜 등이 함축된 인생관을 한마디로 축약해서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예를 하나 들면 이런 것이 있다. 아들이 이혼을 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그렇게 열심히 다녔던 종교에서 결별을 고했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축원하고자 종교생활을 했었는데 그런 것들이 한없이 부질없고 의미가 없어진 셈이었다. 나는 과연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는가. 어떤 신념으로 생을 살았고 어떻게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60여년을 보냈는가. 내가 가졌던 철칙은 무엇이었는가.. 중국 당나라 시대 선승 임제 선사의 말씀 중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말씀이 있다. 자기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라라는 의미이고 바로 머무는 그 자리가 진리의 자리란 말씀이다. 자식을 위한 삶도 부모를 위한 삶도 제대로 된 삶의 방식이 아니란 식이다. 자기가 주체적으로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정도라는 얘기다. 내가 간직한 인생에 대한 정의는 인생이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란 얘기다. 그리고 인간은 불안에 안주하지 않는다 라는 말씀이다. 사람은 결국 안정을 갈구하고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과 애를 쓰고 안정된 상태를 희구한다는 얘기다. 또다른 명구는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했던 얘기다. 그는 11살에 인질로 가서 성인이 될 때까지 그렇게 인질생활을 통해서 엄청난 애로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종적으로 전국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셈이다. 인내의 화신이었고 오랫동안 천하 통일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킨 이였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가는 것이다. 언제나 탄탄대로 내지는 좋은 길만 행복한 행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곤궁한 때를 기억하고 항상 그것을 준비하고 대비하라는 얘기다. 역경에 처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식이다.
시험에 들게 되었을 때 자신의 생각대로 꿋꿋하게 삶을 영위해 나가는 지혜를 가져야 하리라. 사람을 구분하는 것에 그런 것이 있다. 된사람, 든사람, 난사람이란 것이다. 된 사람은 인격적으로 성품이 좋고 훌륭해 타의 모범이 될만한 그런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든사람은 학식이 많은 사람이다. 난사람이란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평판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덕을 쌓아서 명예를 갖춘 이로 존경받는 이는 된 사람일 것이다. 지식이 많고 학력이 높은 이를 이르는 든사람은 덕망보다는 학식이 많은 이를 이르는 것이고 난사람은 일가를 이룬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이들을 일컫는 것이리라. 영혼의 정화를 이루려는 삶을 살고자 했다. 영혼의 정화는 성천 유달영 선생의 슬픔에 관하여 라는 글에서 나온다.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져야 할 자신을 다독이며 하늘에 간구하는 기도문 같은 것에서 절대자에게 요청한다. 끊임없는 슬픔을 통해서 자신의 영혼의 정화를 이루게 해달라고 하는 얘기였다. 참으로 숭고한 마음자세이고 태도이고 인생을 사는 자세로 보인다. 그분의 제자(題字) 중에 선위지보 일생용지유여(善爲至寶 一生用之有餘)란 것이 있었다. 원문을 소개하면 선위지보 일생용지유여 심작양전 백세경지무궁(心作良田 百歲耕之無窮)이다.
해석하면 착함은 가장 귀한 보배지만 평생을 써도 남아돌고 마음은 좋은 밭인데 백 년을 갈아도 다함이 없다. 인생관의 선택 그것은 어떤 때에 누구에게나 갖고 있는 신념이고 철학이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로서 확고하게 정립된 것일 것이다. 60여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의 인생관은 뭐냐고 한다면 그렇게 심오하고 거창한 것으로 생각되는 그런 것은 없는 듯하다. 정직하게 살아라. 수복강녕 유호덕 주어진 여건과 상황 속에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려라.(盡人事待天命) 착하게 살아라. 감사하면서 살아라. 겸손하라. 최선의 선은 물이다 (上善若水) 교학상장(敎學相長) 등의 평범한 얘기 중에서 절실하게 피부에 와닿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