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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 여행, 해외 여행, 등 ]

동암묘(사당) 수호신은 사도세자 2[서해랑길 2]

by 자한형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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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묘(사당), 수호신은 사도세자 2/윤한철(6,7,8,9,10/ )

[윤한철의 서해랑길 6]

해가 서쪽 하늘에서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늦은 오후,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둑방길을 돌아서니 목적지 청계마을이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번잡했던 목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전개되었다. 파란 하늘, 푸른 들판 그리고 연녹색으로 물들어 가는 산. 여행의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그네 여행 감성에 젖어 들었다. 목포에서는 목적이 있는 탐방객 기분이었는데, 비로소 자유로운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청계마을 강둑에서 본 초봄 풍경

노랗게 핀 유채꽃 길을 따라 흥얼흥얼 흥겹게 청계면 소재지에 도착했다. 바로 숙소를 정하고 인근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운한 음식이 당겨 김치찌개를 시키고 옆자리를 보니 대부분 소고기 육회비빔밥을 먹고 있기에 얼른 김치찌개를 취소하고 육회비빔밥으로 바꿔 주문했다. 알고 보니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걸어야 할 길이 만만찮기 때문이었다.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을까, 두리번두리번 찾아도 문을 연 식당은 없었다. 식당 출입문에는 '일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마침 일요일이었고, 면 소재지치고는 엄청나게 큰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아침 요기를 했다. 길 맞은편엔 국립목포대학교가 있었고, 토론회와 심포지엄 등등 플래카드가 많이 걸려 있는 것으로 봐서 학생 모집을 걱정하는 지방대학 같지는 않았다.

개울을 따라 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부지런한 사람들과 목례 인사를 하고 지나치기도 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유채꽃은 샛노랗고, 개울가 선버들과 수양버들은 연초록 잎이 싱그러웠다. 4월의 봄 아침은 아름답고 상쾌했다. 갈대 무더기, 잎마저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빈 몸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도 4월의 봄을 장식하는 조연 같았다. 마침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나풀나풀 앞장서서 날아가고 있었다. 꿈속 같은 아침 여행길이었다.

톱머리 해변

산책 나왔다가 고사리를 꺾는 동네 사람과 몇 마디 얘기도 하고, 깨끗한 한우 축사도 지나고, 빈들 사이로 난 농로를 지나니 멋진 바다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이는 수평의 바다 풍경, 막힘이 없어 시원했고,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방조제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회 맛이 좋기로 이름난 감성돔이 잡힌다고 했다. 톱머리해수욕장 너른 모래 갯벌에는 부모와 함께 나온 어린애들이 뭔가를 잡으면서 놀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 휴일을 맞아 사람들은 봄을 즐기고 있었다.

무안공항 관제탑이 보이는 찻길을 걷다가 무안갯벌낙지 직판장에 들어갔다. 아직 점심시간 한참 전이라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 무안에서는 낙지요리를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에 가던 길을 되돌아 들어갔다. 벌써 두 팀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낙지비빔밥은 맛있었다. ()여행가는 아니지만 어제저녁 육회비빔밥에 이어 낙지비빔밥까지 무안의 별미를 먹어보았다는 뿌듯함도 생겼다.

계산하고 나니 머리를 짧고 단정하게 깎은 중년의 여사장이 커피를 한 잔 건네주면서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도보 여행을 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고 하면서, 삶은 달걀 3개를 드리고 싶은데 받아주겠냐고 조심스레 얘기해서, 고맙게 받았다. ​​

양파와 마늘밭

12시쯤 서해랑길 21코스 시작점에 도착, 운남면으로 들어섰다. 운남면은 무안군에 딸린 복주머니처럼 생긴 꼬마 반도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지금까지 걸어온 서해랑길과는 크게 달랐다. 넓은 들판에는 온통 양파와 마늘밭이었다. 짙은 초록의 양파밭과 옅은 초록의 마늘밭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논은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았고, 강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고추 종을 심고 있는 노부부가 있어, 농사짓는데 물이 부족하지는 않으냐고 물었더니, 신기하게도 아무 데나 땅을 파면 물이 나온다고 했다. 옛날에는 보리와 고구마를 주로 심었는데, 요즘은 보()에서 물을 당겨와 물이 더 풍부해져 여러 작물을 재배한다고 했다.

동암묘(사당)

바닷가 어촌마을에 사당이 있었다. 서해랑길을 걸으면서 처음 본 사당이었다. 해파랑길, 동해 바닷가를 걸을 때는 곳곳에서 사당을 만났는데, 남파랑길과 서해랑길에서 사당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사당 정면에 큰 소나무가 떡하니 막고 서있는 것이 특이했다.

조심스레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사당 안은 보지 않고 그냥 물러 나왔다. 왠지 모를 으스스함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당산나무 잘못 건드리면 동티난다고 들었던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사당은 동암묘였고,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오후 4시쯤 예약해두었던 영해 마을 펜션에 도착했다. 바닷가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휴일 다음 날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주변에 식당이 전혀 없어 저녁과 내일 아침 거리로 라면 2개와 햇반 1개를 사고 여사장에게 김치를 좀 부탁했더니, 고맙게도 달걀 2개를 더해 김치를 두 끼 먹고도 남을 정도로 푸짐하게 담아 주었다. ​​

세찬 비바람으로 23코스 포기하고, 운저리초무침 보리밥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 바다는 어떻게 다른가?

[윤한철의 서해랑길 7]

아침 7, 흐리고 안개비에 바람마저 세차게 불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강풍 특보까지 내렸다. 그래도 갈 길이 멀기에 길을 나섰다. 그런데 마을을 벗어나고 들판길에 들어서 얼마 가지 못해 비마저 세차게 뿌리기 시작했다. 바닷가고 산이 없는 평야 지대이다 보니 세찬 비바람에 맞서 계속 걷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펜션으로 다시 돌아와 940분 노선버스를 타고 운남면 소재지까지 갔다. 서해랑길 23코스는 포기했다.

편의점에서 서해랑길을 걷는 젊은이를 만나 동행을 하게 되었다. 비바람 때문에 한 코스를 스킵하게 돼 아쉬웠는데, 뜻밖에 그 덕분에 좋은 인연이 생겼다. 세상사는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젊은이는 30대 중반, 전남도청이 있는 남악 신도시에서 친구와 둘이서 김밥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일요일까지 열심히 일하고 월요일과 화요일은 혼자서 서해랑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MZ세대 젊은이였다.

작년부터 도보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여행 중 동행자를 만나기는 처음이라면서 인터뷰하듯이 여러 가지 많이 물어왔다. 해파랑길과 서해랑길을 걸을 때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걷고, 남파랑길을 걸을 때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야 해를 등지고 사진이 선명하다고 했더니, 크게 동감하고 좋은 팁을 줘서 고맙다고 했다. 2시간쯤 동행하다가 헤어졌다. 사진여행이 목적인 젊은이와 도보여행이 목적인 나와는 걷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엄지손가락처럼 툭 튀어나온 조금나루도 지나고 낙지 공원도 지났다. 비 그친 오후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자투리땅에 옥수수며 토마토 모종을 심고 있었다. 아마 손주들이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오후 3시가 지나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혹시 브레이크 타임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식당 여사장이 권한 이름도 생소한 운저리초무침 보리밥을 주문하고, 막걸리도 한 병 시켰다. 운저리는 이곳 갯벌에서 많이 잡히는 망둥어라고 했다. 막걸리 식초로 무쳤다는데 간이 좀 셌지만, 남김없이 싹 비웠다.

황토밭 그리고 구름의 마을

이곳 풍경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모든 풍경은 눈높이에서 다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낮은 구릉이었고 산마저 언덕 같았다. 마을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고 걷다 보면 교회 첨탑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마을이 따라 나타났다.

들판은 푸른 양파밭과 붉은 황토밭이 대부분이었다. 빈 황토밭에는 모종을 심기 위해 검은 비닐이 덮여있었다. 마침 모종 심기 작업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2년 전에 미얀마에서 왔고 호박 모종을 심고 있다고 했다.

갯벌도 지금까지 봐온 다른 지역 갯벌과 달랐다. 짙은 회색의 질퍽한 뻘밭이 아니라 누런빛의 비교적 단단한 갯벌이었다. 심지어 어떤 곳은 푸른 들판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해초가 갯벌을 덮고 있는 듯했다.

들판 같은 갯벌

오후 늦게 홀통 마을에 도착했다. 펜션 주인은 4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었다. 서울 출신인데 부인의 고향인 이곳으로 귀촌했다고 했다. 부인을 참 잘 만났다고 칭찬하고 얘기를 나눠보니 손님 중에는 이곳을 남프랑스 같다고 하신 분도 계셨다고 했다. 아마 높은 산이 없고 밭 필지가 다른 곳에 비해 매우 넓기 때문인 거 같다고 하면서, 펜션 옆 얼갈이 무밭은 한 필지가 만 평이 넘는다고 했다.​​

안개가 내려와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아침이었다. 조용하기 그지없는 곰솔 방풍림 길에는 은은하게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갯내음도 은은하게 느껴졌다. 나에겐 구린내 나는 퇴비 익는 냄새가 향수를 자극하듯이, 짜릿한 갯내음은 향기처럼 다가왔다.

아침 바다 풍경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에서 느끼는 바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언젠가부터 도보여행 중 불쑥불쑥 떠오르는 화두가 되었다. 불현듯 안갯속 바닷가를 걷는 도중에 묘한 생각이 뚝 떨어졌다.

해파랑길 동해바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고,

남파랑길 남해바다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걷고,

서해랑길 서해바다는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걷는다.

그런데 서해 바다는 지난 밤새 짙은 안갯속에 연인처럼 몰래 다가와 있었다.

지도, 솔섬, 사옥도, 증도를 향한 설렘의 여정

기자명 이재욱 기자 입력 2024.05.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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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칠면초가 자라는 갯벌, 태평염전에서는 3개의 태양 볼 수 있어

[윤한철의 서해랑길 8]

515일 아침 730, 신안 지도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이른 아침인데도 빈자리는 2자리뿐이었다.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에, 마침 초파일 휴일을 맞아 나들이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가는 여성 라이더도 3명 있었고, 트레킹 복장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남성도 2명 있었다.

여행의 묘미는 떠날 때의 설렘이다. 무엇이 있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설렘. 지도, 솔섬, 사옥도, 증도. 신안 북부 권역 4개 섬 23일 여행은 그 설렘에 가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지도에서 바로 솔섬으로 넘어가고, 사옥대교를 건너 사옥도를 걷고, 증도대교를 건너 증도를 한 바퀴 돌아 나와, 다시 지도를 한 바퀴 트레킹하는 코스였다. 처음 가보는 곳이기에 설렘이 컸고, 섬 여행지로서 이름난 곳이기에 기대 또한 컸다. 지난달 무안 운남반도와 해제반도 여행에서 본 색다른 풍경의 아름다움이 강렬했기에 신안의 섬 여행에 대한 기대 역시 한껏 부풀어 올랐다.

정오 무렵 지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교통이 좋아졌다지만 먼 곳이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본 식당으로 갔다.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소머리곰탕을 주문했다. 섬 여행을 하는 동안 비릿한 바다 냄새 실컷 맡고 주로 해산물 음식을 먹게 될 것이고, 그러면 육고기가 그리울 것 같아 미리 먹어두자는 심산이었다. 오래전에 알고 지냈던 남해 해녀들은 만날 때마다 해산물 요리가 아니라 돼지 삼겹살을 먹자고 했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칠면초가 자라고 있는 갯벌

왼편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갯벌이 펼쳐진 방조제 길을 걸었다. 이곳 갯벌은 지난달 걸었던 무안 운남과 해제의 갯벌과는 느낌이 달랐다. 황토지대인 운남과 해제 갯벌은 토사가 쌓여 들판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질퍽한 진흙 뻘밭이었다. 군데군데 붉은 칠면초가 자라는 풍경에서는 순천 와온 해변이 연상되기도 했다.

낮은 숲 언덕을 넘으면 새우양식장이 나타났고, 해안 모퉁이를 돌아가면 염전이 나타났다. 바다를 막아 만든 간척지가 논밭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새우양식장과 염전으로 이용되는 것도 특이했다. 백색 비닐로 덮인 퀀셋형 하우스도 눈길을 끌었다. 검은 차양막이 덮인 전복 치어 양식장과 비슷한 구조였는데, 천일염 간수를 빼고 숙성하여 맛있는 소금을 만드는 곳이었다.

드디어 이번 섬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증도를 건너는 증도대교에 도착해, 커다란 농게를 형상화한 증도대교 준공 조형물 앞에 섰다.

농게는 신안군의 1004개 섬, 1734km의 리아스식 해안선과 378의 청정 갯벌에서 서식하며, 천사의 섬 신안군의 청정 이미지와 섬 발전의 바램을 상징합니다.

증도는 신안천일염의 주요 산지로 2007년 아시아 최초 슬로우시티(slow city)로 지정받은 곳입니다.

---증도대교 준공 상징 조형물

친환경농업의 섬’ ‘자전거의 섬’ ‘별빛을 볼 수 있는 섬’ ‘금연의 섬’ ‘자동차가 없는 섬으로 만들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염전과 소금 창고

수평의 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염전, 태평염전이었다. 원래 갯벌이었던 곳을 매립해 염전을 만든 곳이었다. 19536.25 전쟁 후 실향민의 정착과 소금 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염전이라고 했다. 끝없이 펼쳐진 네모반듯한 염전 그리고 일렬로 쭉 늘어선 소금 창고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CNN에서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야 할 아름다운 Top10’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소금밭 낙조전망대에서 보는 낙조가 장관이라고 했다. 하늘, 바다, 그리고 염전을 붉게 물들이는 3개의 태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3개의 태양을 볼 수 있다는 태평염전

태평염전 안에는 소금박물관, 염생식물원이 갖춰져 있으며 소금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염전이 만든 이색적인 풍경을 경험하면서, 소금과 갯벌에 대한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소금 카페에 들러 소금과 염초를 뿌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유네스코·람사르 지정 갯벌과 우전해수욕장의 조변석개(朝變夕改)

짱뚱어다리 건너지 못한 아쉬움보다 안내문 없는 것이 더 섭섭

[윤한철의 서해랑길 9]

흐리고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곤 하던 날씨였는데, 서쪽 하늘부터 개기 시작했다. 옅은 해무에 쌓여 있던 갯벌은 햇볕을 받아 윤기마저 느껴졌고, 멀리 갯벌 너머로 새빨간 지붕이 유난히 돋보이는 섬마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붕만 빨간색으로 통일했는데도, 마을 풍경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계속 눈길을 주면서 걷다 보니 안내판이 나타났다. 바다 위 꽃봉오리 같고 해당화가 가득해 화도라고 불리는 섬마을이었다. 화도로 가는 노두길은 1.2km나 되었고, 만조 때는 물에 잠긴다고 했다.

갯벌 넘어 보이는 화도 마을

갯벌이 그 모습을 확 바꾸었다. 낯선 행성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길을 따라 움퍽움퍽 골이 파였고, 갯벌의 두께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깊어 보였다. 지금까지 봐온 비교적 평탄한 모습의 갯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갯벌이 바다 생물의 보고라고 하지만, 죽음의 수령 같다는 두려움이 들 정도로 경외(敬畏)스럽게 느껴졌다.

2021726,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갯벌을 세계유산으로 선정했다. 생물 다양성의 보존과 멸종 위기 철새의 기착지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평가받았다. 해당 갯벌은 신안, 보성·순천, 고창, 서천 등 4개 갯벌이며, 그중 신안 갯벌이 가장 넓으며, 증도 갯벌은 람사르 습지로도 지정되었다.

오후 6시가 지나 우전마을에 도착했다. 짱뚱어네식당에서 짱뚱어탕에 막걸리 1병을 주문했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고 영업을 종료했다. 식당 주인의 소개로 민박집을 정하고, 우전해수욕장으로 나갔다. 마침 해가 서쪽 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에는 무서울 정도로 거센 파도가 계속 밀려왔다. 깜짝 놀랄 광경이었다. 적막하게 느껴졌던 갯벌을 보며 걷다가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대하니 증도의 전혀 다른 얼굴을 보는 듯했다.

이른 아침의 우전해수욕장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바닷물이 물러나 넓은 백사장이 생겼고, 흰 파도가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어제저녁 거친 바다의 모습은 누그러졌지만, 쉴 새 없이 생겨나는 너울을 보니 그간 봐온 서해답지 않고 동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백사장 모래는 부드러웠지만 단단해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적한 백사장 위를 중년 여성이 성큼성큼 맨발로 걷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해송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었다. 숲의 모양은 한반도를 닮았고, 10만 그루에 달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숲 경연대회에서 수상(受賞)한 숲이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숲속에 또 대나무 방풍 펜스가 처져 있었다. 해송 숲속에는 산책로가 있고, 대나무 방풍 펜스 밖에는 임도가 있었다. 산책하기에 너무 좋은 길이었다. 산책코스는 4개 구간, 9.1km에 달했다. 해수욕장 모래사장 위를 걷다가, 해송 숲 산책로를 걷다가, 대나무 펜스 밖 임도를 걷기도 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고, 솔바람 소리를 맞으며 걷고, 나비의 날갯짓을 느끼며 걸었다.

짱뚱어다리 앞에 도착했다. 관광 안내판 곳곳에서 자랑하는 곳이기에 멋진 모습을 상상하면서 걸어 온 곳이다. 그런데 공사 중이었다. 황당하고 난감했다. 혹시나 다리 아래로 임시 다리가 놓여 있을까 싶었는데, 없었다. 뻘밭을 걸어 건널 수 있을까, 신발을 벗고 뻘밭으로 들어갔는데 거의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결국 되돌아 나와 이리저리 살피니 그제서야 서해랑길 리본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한참 거리를 돌아 증도면 소재지에 도착했다. 자랑하는 짱뚱어다리를 건너지 못한 아쉬움은 차치하고, 친절한 안내문이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멀리 증도면 소재지 마을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교회 첨탑 위 십자가 3개였다. 작은 섬마을에 교회가 참 많다고 생각하면서 걸었다. 그중 한 곳은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었다. 신안 섬의 어머니이자 전도사였던 문준경은 기독교를 전도하고 개척하다가 6.25 전란 때 공산당원의 죽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그녀의 순교가 헛되지 않아 증도 섬에는 마을마다 교회가 들어섰다. 증도관광안내소 해설사에 의하면 증도 주민의 87%가 기독교인이며,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으로 대부분 교회가 성결교회라고 했다.

증도 섬 서쪽 끝자락에 신안해저유물발굴 기념비가 있었다. 바다 가운데 유물 발굴 지점에 부표가 설치돼 있었다. 1975,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려 올라왔고, 그것이 해저에 잠자고 있던 보물 발굴의 계기가 되었다. 10년에 걸쳐 발굴이 진행되었고, 2만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침몰한 배는 중국 원나라에서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가던 무역선이었다.

해저 유물 건져 올린 신안 바다

증도의 서쪽 바다는 툭 틔었고, 과거 해상 교통의 중요 경로였다. 더 넓은 갯벌이 펼쳐진 동쪽 바다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전망대 데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어제저녁에 먹다 남긴 막걸리도 꺼내 마셨다. 그런데 막걸리 맛이 평소 마시던 막걸리에 비해 탁하고 진했다. 쌀 막걸리가 아니라 요즘 보기 힘든 밀 막걸리였다. 잊혀졌던 밀 막걸리 맛을 음미하면서 오랫동안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한반도숲의 임도

청보리 넘실대는 고갯길 넘고 농게 조형물 지나 거북섬으로

신안젓갈타운 벗어난 갯벌에서 붉은 카펫 같은 칠면초에 정신 팔려 길을 놓치다

[윤한철의 서해랑길 10]

오후 4시쯤, 솔섬 송도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송도항은 제법 큰 수협 위판장이 있는 어항이었다. 이번 섬 도보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항구이기도 했다. 위판 시간이 지나 한적했지만, 위판장 안에는 새우젓을 가득 담은 통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횟집에 들어가 혼자인데,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회덮밥만 가능하고 비싸다고 했다. 선택 여지없이 회덮밥을 주문했다. 그런데 양도 푸짐했고, 맛있었다.

솔섬 도로변 청보리밭

이른 아침 온화한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작은 고갯길을 넘었다. 청보리 이삭이 아침 햇살을 받아 꿈결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침 하늘 아래, 커다란 흰 집게발이 유난히 돋보이는 농게 조형물을 지나 나무 데크 탐방로를 걸어 거북섬으로 들어갔다. 거북섬은 갯벌 한가운데 외딴섬이었다. 사방으로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지도 주민들에게는 산책로였고, 외지인들에게는 갯벌 체험장이었다.

거북섬 다리, 농게 상징탑

한적한 신안젓갈타운, 시장 안쪽이 궁금해 들어가 봤다. 밖에서 볼 때는 썰렁했는데, 분주하게 장사를 준비하는 가게들이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커피 한잔하라고 권하는 사장의 말에 끌려 들어갔다. 손님이 많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인터넷 거래를 한다고 했다.

새우젓은 신안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고 최고라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요즘 잡히는 민어, 뱅어, 갑오징어가 좋다고도 했다. 도보여행하는 내가 궁금했는지 여러 가지로 많이 물어보고, 자기는 자전거로 주변을 휙 다녀오는 것이 운동의 전부라고 하면서 부러워했다. 고맙게도 식당을 소개받아 된장국을 곁들인 백반을 든든하게 먹었다.

신안젓갈타운

칠면초 갯벌

읍 소재지를 벗어나자, 지금까지 봐온 갯벌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붉은 칠면초가 온통 갯벌을 덮고 있었다. 갯벌 위에 붉은 카펫을 깔아 놓은 듯도 했고, 붉은 라벤더 평원 같기도 했다.

염생식물인 칠면초는 칠면조처럼 색이 변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꽃이 아니라 몸 전체가 붉은빛이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그 붉은색이 조금씩 변했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붉은 칠면초 바다 그리고 구불구불 흐르는 갯벌 위 물길. 그 광경은 장관이었다. 그런데 칠면초에 정신이 팔려 그만 서해랑길을 놓치고 말았다.

붉은 카페트 같은 칠면초 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