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랑과 죄’와 20년대 경성/오창은
조선신궁서 경성을 바라본 ‘식민지 권력의 시선’을 드러내다
서울토박이 작가 염상섭(1897~1963)의 타계 50주기를 맞아 한국작가회의 한국근대문학유산사업단 소속 연구자들이 1920~1950년대 경성과 서울이란 공간에 남은 염상섭 작품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문학기행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남산에 세워졌던 조선신궁 계단에서 내려다본 1930년대 경성의 모습. 성곽 바깥으로는 왜인주택이 들어섰고, 멀리 북악산 아래에는 한옥들이 보인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산에 세워졌던 조선신궁 계단에서 내려다본 1930년대 경성의 모습. 성곽 바깥으로는 왜인주택이 들어섰고, 멀리 북악산 아래에는 한옥들이 보인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성 유람의 명소, 조선신궁
회현 자락을 통해 남산을 오르다보면 백범광장에 이르게 됩니다. 백범광장 주변은 독특한 공간입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성지였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항일운동 기념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도 있고,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도 있습니다. 조금 위쪽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백범광장과 남산 분수대가 있던 자리에 조선신궁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의 상징적 공간을 독립운동가들의 동상과 기념관으로 봉인한 셈이지요. 이는 마치 수치스러운 역사를 지우기 위해 현재의 영광스러운 기념물로 채워 넣은 것과 같아요.
조선신궁은 일본의 식민지 조선 통치의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신궁의 제신은 일본 건국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와 메이지(明治)천황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신궁 건립은 거대한 프로젝트였어요. 일본의 국가 종교인 신도를 이식하기 위한, 그리고 식민지 지배질서 속에 조선을 위치시키기 위한 기획이었지요. 조선총독부가 조선신궁 건립에 들인 공은 대단했습니다. 일본 최고의 신사 건축 전문가인 이토 주타(伊東忠太)를 초청했고, 부지 선정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남촌 뒤편을 적절한 곳으로 결정했습니다.
조선신궁은 1925년 10월15일 건립 기념 진좌제(鎭坐祭)가 치러졌습니다. 경성역과 경성운동장 완공날짜도 조선신궁 진좌제에 맞춰졌다고 하네요. 경성역 완공과 함께 조선신궁에 보관될 신체가 일본에서 출발해 부산을 거쳐 열차편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신궁이 일제강점기 내내 경성을 대표하는 명소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신궁은 경성역·남대문·덕수궁 등과 함께 경성 관광의 중요한 방문지였습니다. 서울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과시하는 특별한 성소로 취급되었습니다. 권력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시각화하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신궁은 일제 식민통치 권력의 힘을 과시하는 상징이었던 셈이지요.
1920년대 경성 풍경을 그린 <사랑과 죄>
염상섭의 대표 장편소설인 <사랑과 죄>는 바로 조선신궁이 건립되어 경성에서 제국의 공간 권력이 권위를 획득해 나가던 즈음이 배경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조선신궁의 풍경을 적절한 필치로 묘사해내고 있지요. 염상섭은 <사랑과 죄>를 동아일보 1927년 8월1일자부터 1928년 5월4일자까지 총 257회 연재했습니다. 염상섭이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생활하다가 1926년 1월19일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창작한 작품이기도 하지요. 그는 2년 동안 도쿄에서 하숙 생활을 하며 이 소설을 썼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이해춘과 김호연, 그리고 류진입니다. 이 세 청년은 각각 다른 사상적 지향을 지니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교감하지요. 이해춘은 한일합방에 책임이 있는 이자작의 아들로 민족주의 사상을 가졌고, 변호사 김호연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을 도모하는 사회운동가입니다. 류진은 대부호 류택수의 아들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회의하는 회의주의자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인물배치는 식민지 시대 사상적 유행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으로도 보입니다. 여성 인물로는 지순영과 정마리아가 등장합니다. 지순영은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김호연을 도와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인물입니다. 지순영과 대립하는 인물인 정마리아가 인상적입니다. 정마리아는 세련된 모던걸이면서 식민지 권력과 결탁한 타락한 인물이지요.
<사랑과 죄>는 표면상으로는 이해춘과 지순영의 사랑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통속서사로 오해를 받아, 염상섭의 주요 작품에서는 제외되곤 했지요. 최근에야 이 작품의 내적 서사가 식민지 권력과의 갈등을 시대적 감각과 더불어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해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는 지순영이 ‘○○부인단의 두목 한희’의 영향으로 사회운동에 투신한 간호사로, 김호연과 동지적 관계를 형성해 ‘○○○단 내국총지휘’ 조직원으로 활동한 점이 거론되지요. 연구자들은 ‘○○○단’을 상하이에 본부를 둔 독립운동 단체로 보고 있습니다. 1920년대 3·1운동 이후 식민지 조선이 처해 있는 억압적 상황과 이에 저항하는 청년들의 정신세계를 형상화한 작품이 <사랑과 죄>입니다.
염상섭, 신궁의 문화권력 묘파해내다
그렇기에 <사랑과 죄>와 조선신궁을 연결해 읽으면 흥미롭습니다. 염상섭은 조선신궁에서 조망한 경성의 풍경을 작품에서 직접 언급합니다. “신궁 앞의 축대 위에서나 남대문 문루 위에서 내려다보면 할 일 없는 개미 새끼들이 달달 볶는 가마솥 바닥에서 아물아물하는 것” 같다, “서편에 기운 햇발은 세브란스 병원으로부터 역사터까지 한눈에 보이게 확 퍼졌다”고 했습니다. 경성 시내를 조망하는 이러한 시선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근대적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자신을 보여지도록 하고 자신이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식민지 근대 시선권력의 권능이었습니다.
염상섭이 주목한 것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통치권력이 군중을 동원하는 방식입니다. <사랑과 죄>에서는 조선신궁 신작로 공사 인부들의 시선을 통해 근대적 공간 재편을 이야기합니다. 도시의 스펙터클에 동원되는 민중과 그 풍경을 향유하는 이들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사랑과 죄>에는 조선신궁 신작로 정비에 동원된 인부들이 도시 경관의 변화를 풍자적으로 읊조리는 모습이 등장하는데요. 염상섭은 짐수레꾼의 소리를 인용해 “넓은 길엔 자동차요 좁은 길엔 외씨 가튼 발씨로 아장자장”이라고 썼습니다. 이는 신작로를 조성하는 것은 민중이지만, 그곳을 이용하는 이들은 따로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종의 풍자를 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새로운 권력은 두 가지 방식으로 공간권력을 구성합니다. 하나는 기존의 공간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조선신궁은 조선인의 반발을 살 수 있는 파괴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이질성이 강한 일본 신도라는 종교적 성격을 희석시키도록 경성 시내를 관람할 수 있는 높은 곳에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근대 공원으로 기능하도록 했습니다.
조선신궁이 일제강점기 경성 관광의 첫번째 코스였다는 사실이 이러한 근대적 스펙터클의 효과를 보여줍니다. 시선의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 바로 근대정치의 장소이기에, 염상섭이 포착한 식민지 경성은 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가 경합을 벌이는 문화정치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렇듯 <사랑과 죄>에 그려진 내적 서사가 ‘근대적 시선의 지배’와 ‘근대적 감성의 훈육’을 문화정치적 측면에서 묘파해냈다는 측면은 새롭게 평가돼야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
현대 메트로폴리탄 도시에는 상징적인 빌딩이나 타워가 있습니다. 서울에는 서울타워, 도쿄에는 도쿄타워, 상하이에는 동방명주 그리고 타이베이에는 타이베이101이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초고층 건축물은 모두 근대의 시선권력을 상징합니다. 그곳은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띄고, 동시에 도시 전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었습니다. 경성의 랜드마크를 남산의 조선신궁으로 설정했던 것이지요. 경성 여행자들은 경성역에 도착하면 남대문을 거쳐 조선신궁이 있는 남산에 올랐습니다. 시내 전체를 조망한 후 동대문, 창경원, 파고다공원, 조선총독부 청사 등을 관람한 것이지요. 조선총독부가 기획해 건립한 조선신궁은 식민지 지배권력의 과시욕을 보여주는 곳이며, 권력을 시각화한 공간이었습니다.
조선신궁의 공간은 역사 속에서 지워졌습니다. 식민지 지배의 흔적은 공간을 파괴함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를 망각하면, 그 아픈 과거는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현재 백범광장과 남산 분수대 일대에서는 옛 성곽 복원작업이 한창입니다. 서울시가 한양 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안목에서 조선신궁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도 함께 추진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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