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용
누님이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누님의 생애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누님은 성악가나 무용가, 여의사나 대학 교수로도 흘륭히 성공할 수가 있었을 것이고,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해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평탄한 생활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인을 회상하는 자리래서가 아니라 누님은 그렇게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주와 특출한 미모, 팔등신의 몸매 그리고 덕성(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을 지니고 있었다.
누님이 여학교를 졸업한 것은 8.15해방을 한 해 앞두고서였다. 소학교 일 학년에서부터 여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수석을 지켜온 누님은, 그해 봄 여학교를 졸업하자 조선 사람으로서는 좀체로 들어갈 수 없다는 일본의 무슨 고등 여자 사범학교 입학 시험에 어렵지 않게 합격을 했다.
"이년아, 난 지지배는 소학교 위루는 공부를 시켜서는 안 된다구 생각허는 사람이여. 헌데 니년 재주가 하 비상해서 윗 학교에 보내기루 한 것이니, 오래비처럼 쓸데없는 짓거리 해가지구 학교 기숙사대신 감옥소에 들어 앉을 노릇일락 아예 말어."
아버지가 누님을 일본으로 떠나 보내면서 말했다,
"아부지, 걱정 마세요. 전 연애를 하믄 했지 섣부른 독립 운동 따위는 안 할래요."
누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연애? 이년아, 연애 거는 것두 섣부른 독립 운동이나 마찬가지루 신세망치는 짓거리여. 연애 건다는 소식만 들리믄 그 당장 학비 끊을 테니 근줄 알거라."
"잘 알았어요."
"미국 비행기 폭격이 갈수록 심해 진다는디 난 공부구 의구 하나 안 을갑다. 그저 조심해라. 몸 조심해여."
어머니가 눈물을 찍어내며 하는 말이었다,
"엄마, 우시기는. 엄마나 몸조심하세요. 엄마가 우시니까 엄마가 딸 같구 제가 엄마 같잖아요?"
그렇게 일본으로 공부하러 떠난 누님은 여름 방학에 좀 더 세련되고 아름다워진 얼굴에 생글생글 웃음을 담고 돌아왔다, 하지만 여름 방학이 끝난 뒤에도 누님은 일본으로 떠나지 않았다.
"미국 비행기가 더 극성스러워져 공부하는 시간보다 방공호 속에 들어가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다는데 가기는 어딜 가느냐. 쉬었다가 전쟁 끝나거던 공부 계속하거라. 공부하러 가서 폭탄에 맞아 죽느니보다 공부 않구 살아 있는 기 부모 마음 편케 해주는 노릇이여."
어머니가 누누이 말렸다.
"엄마는 내가 뭐 부모한테 효도할려구 세상에 태어난 줄 아세요? 좋아요. 일본 안 가겠어요. 허지만 효도하려구 그러는 게 아니구, 시집 빨리 가려구 그러는 거예요."
누님이 장난치듯 말했다.
"이것아, 말 만한 지지배가 함부로 입 놀리는 게 아녀. 나이가 그만하믄 철든 소리 흉내라두 내 보거라,"
어머니는 눈을 흘기셨지만, 그보다는 누님이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에 마음 놓이시는 것 같았다.
"뭐 먹구 싶은 것 해 주랴?"
금세 풀어지셨으니 말이다.
내 친척 아저씨뻘 되는 분의 얘기로는 그 해, 여름 방학이 끝난 뒤에도 누님이 일본으로 떠나지 않은 것은 미국 비행기의 공습이 무섭다거나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기 못해서가 아니라 형님의 일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일본 동경에서 대학에 다니던 형님이 조선 독립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일년 동안 징역을 살고는 풀려나, 그 무렵 고향집에서 연금 당한 처지와 같은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조선 사람 형사가 사흘도리로 찾아와 전 번에 뒤졌던 형님의 책장을 다시 뒤지고, 이미 우체국에서 뜯어보았을 텐데도 새로 온 편지를 내 놓으래서 읽어보곤 했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은 형님의 책장에서 책도 마음대로 바꿔 끼우지 못했고, 배달된 편지는 뜯어본 뒤에도 어디 도망가지 않도록 꼭꼭 묶어 간수하곤 했다. 누님은 그런 형님의 처지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글쎄올시다. 하기는 전혀 엉뚱하거나 터무니없는 해석은 아닐 것이다. 형님이 일본 병정으로 끌려갈 뻔한 것을 막아 준 사람이 결과적으로 누님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무렵 형님은 일본 병정으로 끌려가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병정으로 데려가기가 적당치 않다고 판단했다면 징용으로라도 끌어갈 것이다. 보기 싫고 위험스러운 존재를 빈들빈들 놀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주위의 젊은이들이 하나둘 끌려갔다. 언제 형님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 아버지는 형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지만 형님을 위해 광부 자리를 수소문했다. 내 고향근처에는 커다란 광산이 두 군데나 있었다. 전쟁에 필요한 물자가 생산된다고 해서 광산에 다니는 사람은 징병이나 징용에어 면제받고 있었다. 아버지는 순사부장한테 가서 청을 들여 보았지만 허사였다.
"최 선생님, 아들내미 병정 안 내 보낼려고 그러시는 거지요? 신성한 전쟁입네다. 꼭 이겨야 할 전쟁입네다. 온 국민이 자진해서 전쟁에 참여해야 할 이 시국에 병정에 뽑혀 가지 않을려고 대학공부까지 한 사람을 광부 노릇 시킬려구 하시다니요? 더구바 댁의 아드님은 근신중이 아닙네까? 허지만 좋습네다. 최 선생님 말씀이니 어려운 부탁 말씀이지만 들어드리지요. 헌데 조건이 있습네다. 아드님을 광산에 넣어드리는 대신 최 선생님의 땅을 모두 나라에 헌납하시든가, 아니면 따님을 정신대에 보내 주십시요. 어떻습니까 ? 사흘 안에 대답해 주십시오. 순사부장 놈이 여우같이 눈웃음 치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놈들. 잡아가든지 말든지 맘대루 하라지. 전쟁터에 나간다구 다 죽는 건 아니니까.”
아버지는 비록 자식의 목숨이라도 애써 모은 땅 전부와는 바꿀 수가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하기는 아버지의 땅은 물려받은 부모 유산보다도 더 귀한 것이었다. 듣기로는 내 할아버지는 바듯한 자작농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왜정 초기에 심상학교라고 부르는 국민학교 과정을 겨우 마친 뒤 할아버지에게서 농사 짓기를 강요당했다고 한다. 향학열에 불이 붙은 아버지는 할아버지 몰래 집을 도망쳐 나와 춘천에 있는 농림학교에 들어갔다. 그 당시는 신식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드물어 학비를 주어 가며 학생을 모집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춘천 농림학교를 졸업하고 금융조합에 취직해 군(郡) 금융조합 이사를 지낸 것까지, 십 오 년 동안 받은 월급으로 땅을 사고 늘궈 고향에서 제일 가는 부자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자수성가였다.
그 자수성가를 위해서 아버지는 또 다른 일체의 모험을 피해 왔다고 했다. 자수성가라는 오직 그 목적 바나 때문에 아버지는 삼일 운동 때 만세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자수성가가 교육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공부시킬 생각을 가지고 계셨지만, 한편 섣부른 짓거리로 학교에서 퇴학당한 형님 같은 사람을 어리석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 그렇게 덜된 자식과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땅덩이 전부와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땅덩이 절반과도 바꿀 수가 없었을 것이다. 순사부장의 말이 비록 농짓거리나 야유였대도 말이다.
"오빠, 어디 깊은 산골에 들어가 숨어 있지 그래요?"
누님이 넌지시 말했다. 형님은 말없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한 달에 한 번쯤 내가 슬그머니 찾아가서 돈을 전해 두면 될 것 아니우."
"먹구 살기 어려울까봐 그러는 게 아니야."
"그럼 뭣 때문이우? 형사들 감시가 심해서 ?"
"내가 도망쳐 가지구 숨어 지내는 데 성공했다구 치자. 그 때문에 집안 식구들이 치를 곤욕은 어떡하구?"
"오빠는 마음이 너무 약해. 그 약한 마음으루 무슨 독립 운동을 한다구 그랬우? 우선 나부터 살고 보는 거야. 그런 강한 정신 지닌 사람이라야 진짜 독립 투사도 될 수 있는 거유."
"돼 먹지두 않은 소리 집어치워!"
"좋아요, 간곡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데야 낸들 어쩌겠우? 그럼 얘기 바꿔서, 순사부장이라는 작자 혹시 나한테 딴 생각이 있는 것 아닐까? "
그리고는 누님은 우습다고 웃어댔다. 형님은 누님을 잠시 노려보다가 똥은 피하는 것이라는 듯 나가 버렸다.
"이것아. 주둥아리는 함부로 여닫아두 되는 줄 아니? 느 아부지가 이 자리에 기셨드라믄 주리틀려."
어머니가 주먹을 움켜쥐고 쫓아갈 차비를 하듯 하며 닦아 세웠다. 누님은 무안한 기색 하나 없이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엄마, 내가 순사부장 녀석 코를 납작하게 눌러 줄까?"
"그래두 주둥아리 못 다물어?"
"거짓뿌렁 아니에요. 제가 일본에 있을 때 우리 군(郡) 경찰서장 아들하구 사귀었걸랑요. 우리 집이 즈 아부지 경찰서장 하는 군에 있다니까 금세 친해지데요. 그 경찰서장 아들을 슬슬 구슬러 가지구 우리 동네 순사부장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는게 어때요?"
"이 간나야. 주둥아리 못 다물어? 다듬이 방망이 워디 갔니? 이 간나, 주둥아리를 짓두들겨 놔야지 안 되겠다."
충청도 사람인 어머니 입에서 간나라는 욕이 나온다는 것은 어머니가 정말로 화가 났다는 소리였다. 누님은 여전히 생글거렸지만 잽싸게 몸을 일으켜 방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한데 며칠 뒤, 광산에서 통지가 왔다. 형님에게 온 통지였다. 광산에서 형님을 채용하기로 했으니 일차 나오라는 것이었다. 집안식구들이 어리둥절해 가지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혹시 아버지가 땅을 헌납하겠노라고 왜놈 순사부장 앞에 허리를 굽히셨나 해서였다. 허지만 아버지의 눈도 영문을 몰라 다른 식구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쨌든 형님을 광산으로 보냈고, 광산에 다녀온 형님은 기분이 좋았다,
"사무를 보든지 광부 노릇을 하든지 맘대루 하라는군요. "
"맘대루 고르라면야 사무를 보지 누가 광부 노릇을 하겠다던?"
"무식한 사람은 사무를 볼 수 없으니까요. "
"따는 그렇구만. 영문을 모르면서도 모처럼 잔치 차린 기분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이튿날 아침 일의 경위가 드러났다. 순사부장이 꺼불꺼볼 찾아온 것이다.
"최 선생님, 광산에서 통지 온 것 받으셨읍네까? 본서 서장님의 특별한 지시가 계셔서 계가 아드님을 광산에 천거했습네다. 듣자하니 서장님께서 최 선생님 따님의 청을 받아 그런 지시를 하셨다는데 서장님과 따님은 어떤 관계신지요? 앞으로는 종종 따님께 제 청탁두 부탁 올려야 될까봅네다. 일전의 결례는 너그럽게 잊어 주시기 바랍네다."
순사부장은 아부하는 것인지 야유하는 것인지 아리숭한 말을 하고 돌아갔다.
"순사부장 놈이 지꺼리구 간 소리가 뭐냐?"
아버지가 대뜸 누님을 불러 앉혔다,
"전번에 엄마한테 말씀 드렸어요. 일본 가 있을 때 구국 학생횐가 뭔가 하는 학생들 모임에서 생각잖게 경찰서장 아들을 알게 됐지 뭐예요. 같은 조선 땅에다 같은 군에 산다니까 고향 사람 만난 것 같다면서 제법 고향 선배 노릇을 하러 들잖겠어요? 집에 온 뒤로 잊어버렸었는데 오빠 일이 생기니까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가 부탁해 본 거예요."
"니가 읍으루 갔었단 말이냐? 그것두 조선 지지배가 왜눔 사내를 만날려구 말이여?"
"아부지도 참, 그럼 고만한 부탁을 할려는데 찾아가지 않구 어떡해요?"
"오래비를 살릴려구 한 노릇이라니 헐 수 없는 일이다. 허지만 그 뿐이렸다?"
"예, 아부지. 맹세코 그뿐이에요."
"내 원 세상 살다보니 별 노릇을 다 보겠구나."
아버지는 그쯤으로 끝내고 사랑으로 나가셨다.
허지만 형님은 새삼스럽게 자기 방으로 누님을 불러들여갔다. 장지문을 통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려나왔다.
"너 그 왜눔하구 연애하니?"
"왜눔하구 연애하은 안 되우?"
"언제부터니?"
"연애한다는 소린 안 했어. 연애하면 안 되느냐구 물었을 뿐이우."
"깊은 관계가 아니라면 어떻게 조선 여자의 그런 청을 받구 애비를 설복시킬 수가 있겠니?"
"오빤 인텔리답잖게 세상 일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난 모욕을 느낀다."
"오해하지 말아요. 오빠나 나나 아부지와는 다른 세대니까 하는 말인데, 내가 오빠를 구하려구 모종의 희생을 감수했다구 생각하우? 미안하지만 어림두 없어요. 나는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이우. 부모건 형제건 나 아닌 사람을 위해 필요 이상의 자기 소모 같은 건 안 해,"
"네 행위를 어떻게 해석하면 되겠니?"
"해석을 록 해야 된다면 참고삼아 얘기하겠어. 나는 내 매력을 남성들에 게 시험해 보구 싶은 생각이었우. 그런 목적을 위해 오라의 일이 안성맞춤의 기회였다는 것 뿐이야. 오빠가 혜택을 입었다면 내 일을 수행해 가는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굴러들어 온 것일 뿐이에요. 이 답답하구 심심한 세상 에 나같이 젊은 여자가 해 볼 만한 오락이 이런 것 말구 뭐가 있겠우? 만에 하나라두 오라가 나한테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오빤 오빠 위해 살구, 난 나 위해 사는 거야."
"심청이 또 한 사람 나왔구만."
"코웃음 나와요. 좋두룩 생각하구려."
어쨌든 형님은 사무직을 택해 가지고 광산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것으로 집안의 근심거리는 없어진 뜻했다, 한데 얼마 뒤부터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느이 누나 쪽발이 눔의 뭐래믄서?"
이렇게 대놓고 아이들이 나를 놀렸는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결코 적지 않은 이 면 소재지 사람들의 입에 몇 차례씩 오르내린 뒤일 것이다. 이윽고 어느 날 내 큰아버지뻘 되는 일가 어른 한 분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헛소문일 테지만 하두 사람마다 지꺼려 대길래 알려 주려구 찾아왔네."
누님이 읍내 경찰서장의 첩 노릇을 한다느니, 경찰서장 아들하고 뒷살림을 차렸다느니 하는 소문이 파다하게 떠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경찰서장하구 그 아들이 자네 집에까지 찾아왔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큰아버지는 힐책하듯 물으셨다.
"경찰서장이 제집 문 앞꺼정은 왔었읍끼요. 형님두 아시다시피 제가 재산 좀 있다구 해서 이번에 소방대 분대장인가 하는 걸 저눔덜이 억지루 떠맬기질 않았습니까? 지난번 방공 연습인지 소방 연습인지 할 제 경찰서장이 독려하러 왔다가 잠시 저와 마주 선 일이 있었습지요."
"그야 있을 법한 일 아닌가? 허지만 헛소문이라두 시집가기 전 색시 애한테 그런 소문 붙어다니믄 이로울 것이 하나두 없어. 각별히 조심하게나."
큰아버지는 이쯤하고 돌아가셨지만, 소문이란 라르고 무서운 것이라 싶었다, 소방 연습 때 우리 집 앞에 참관석이 만들어졌었다. 연습이 끝나고 경찰서장이 아버지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서장님 아들놈 일루 폐가 많았습니다."
아버지로서는 인사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 별말씀을. 아드님이 불경(不敬)하려는 걸 도와드렸습니까? 광산 일두 어떤 일 못지 않게 황제 폐하와 대일본 제국을 위해 일하는 것 아닙니까? 최 선생님두 이렇게 황국을 위해 일하시는 분, 오히려 제 쪽에서 감사를 올려야죠. 따님더러 가끔 놀러오시라구 전해 주십시오. 똑똑한 따님 두셨습니다."
잠시라야 이렇게 인사말을 주고 받은 것뿐이었다. 경찰서장의 뒤를 다리를 저는 청년 하나가 따라다녔는데, 그 청년이 경찰서장의 아들이었을까.
이러고 저러고 간에 큰 아버지가 다녀가신 날부터 누님은 집안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다 큰 처녀애가 나돌아다닌 탓으로 생긴 소문일테니까 두문불출하고 집안에 꼭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퇴근하고 돌아온 형님은 사무직을 그만두고 광부가 되어 땅굴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무보지 말구 광부 노릇하라구 그러던?"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하구 싶어 그랬어요."
"위험하구 힘든 굴 속으루 들어가구 싶었다는 얘기냐? "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쓰기 싫은 글씨나 쓰구 앉았으려니 소화두 덜 되구 골치두 아프구 내서요."
"흥 평양 감사두 저 싫으면 그만이니까."
형님은 밥도 몇 숟갈 안 뜨고, 자기 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오빠 자학하는 거유? 하, 하. 우습다."
누님이 따라 들어가서 말했다.
"우습다니? 설마설마했더니 불 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랴, 로구나?"
"아부지가 금족령을 내려서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사실은 요즘 그 절뚝발이 경찰서장 아들이 열이 지나치게 올라 있거든. 아부지 금족령이 그 작자 열을 식혀 줄 거야. 허지만 요즘 동네 굴뚝에서 나는 연기는 순사부장 녀석이 화풀이 삼아 광고 종이 태우는 연길 거야. 절뚝발이 열이 좀 식거든 순사부장 녀석 코를 다시 한번 눌러줄 생각이에요."
"너 왜 나를 자꾸 괴롭히니?"
"오빤 지나치게 공동 운명체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수. 오빠 따루 나 따루래두. 내 일을 오빠 일에 지나치게 연관시키지 말아요."
"넌 지금 위험한 줄타기를 하구 있어. 결국에 가서는 패배할 운명을 지닌 줄타기를 하구 있는 거란 말이다."
"오빤 아직두 줄에서 떨어지는 걸 패배라구 생각하구 있우? 패배는 줄에서 떨어지는 순간적인 일이 아니라 줄타기 자체를 포기할 때만 돌아오는 거야. "
"너 정말 미쳤니 ?"
"오빠, 광부 노릇하겠다구 한 것 취소해요. 사무직에서 광부루 옮겨간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닐 수가 있우? 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 나 자신의 생을 즐기구 있는 거유. 오빠가 나를 멸시하는 것두 싫지만 쓸데없이 죄책감을 느끼구, 자학 속에 빠지구 한다면, 난 오바를 쓸모없구 귀찮은 존재루 생각할 거야. 다시는 이런 뎡고 안할래요."
"주둥아리 닥치구 이 방에서 썩 나가! 내가 병정으루 끌려가야 하는 건데. 망할 놈의 세상."
형님은 이튿날부터 사무직원이 아닌 광부로서 광산에 다녔다. 땅굴 속에 들어가 노동하기 때문에 먼지와 때 투성이가 된 얼굴과 작업복, 그런 것에는 일체 마음을 쓰지 않는 듯 그 모습 그대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괴롭고 심각한 표정은 잦아든 대신 웃음도 말도 잊은 듯했고, 잠깐잠깐 피로감만이 물그늘처럼 어렴풋 미간에 어리곤 했다. 누님은 형님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 숨죽여 웃어대곤 했다. 누님은 갇혀 지내면서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농담 같은 진담인지, 진담 같은 농담인지 아리숭하면서도 번득번득 날 선 말들을 서슴없이 뱉아 놓으며 집안을 활개치며 돌아다녔다.
"너 내가 우리 속의 짐승처럼 꼼짝없이 갇혀 있다구 생각하니? 난 내일이라두 당장 풀려날 수가 있어. 너 볼래?"
누님이 나에게 장난치듯 눈웃음치며 말했다
"흥! 어디 한번 풀려나 보라지."
"내기 할래? 군밤 열 개 맞기다."
"좋아."
누님은 아버지 어머니가 방에 안 계신 틈을 타 어디론지 조용조용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이튿날 순사부장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최 선생님. 여성들의 방공 훈련과 계몽 교육을 위해 따님과 같이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을 대일본 제국에서는 필요로 합네다, 따님이 활동을 하시도록 최 선생님께서 협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네다."
순사부장의 말을 아버지는 거부할 핑계가 없었다
"늦두룩 쏴댕기지 말구 볼 일만 끝내구 바루바루 들어와야 해. 아버지는 이렇게 누님을 풀어 주셨다.
해방이 되었다. 억눌려 지내던 마음들이 만세 소리로 터져 나왔다. 등화 관제로 밤마다 암흑 천지가 되었던 거리에 전등불을 집집마다 내걸고, 쏟아져나곤 사람들이 무더기무더기 모여 앉아 주렸던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어느 날 누님이 거리에 나갔다가 성난 사람들에게 쫓겨 헐레벌떡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왜놈 쪽발이 경찰서장하구 붙어먹은 매국노 화냥년을 끌어내다가 짓밟아 죽여라!"
사람들이 외치면서 대문 안으로 밀려들어오려고 했다. 마침 아버지가 안 계셔서 형님이 사람들을 막아섰다.
"여러분. 고정하시구 제 말씀 들으십시오. 제 누이동생이 만에 하나라두 여러분 말씀과 같은 행실을 했다면 그것은 오빠인 저를 구하기 위해섭니다. 독립 운동을 하다가 잡혀 일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구 나온 저를 왜놈들은 다시 전쟁터루 끌어내다가 개죽음을 시키려 했습니다. 형사들의 감시가 심해 도망칠 수두 없는 처지에서 제가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는 길은 광산에 들어가는 것뿐이었습니다. 허지만 독립 운동을 한 까닭으루 광산에서두 저를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전쟁터에 끌려가게 되 제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 제 누이동생이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저를 구해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짓밟으시려거든 저를 짓밟으십시오."
"그건 옳은 말이여."
형님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한 마디 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호응이 일어나며 그 세력이 사람들의 분노를 압도해 갔다, 결국 누님을 쫓아왔던 사람들은 흐지부지 물러가고 말았다.
누님은 방안에서 밖으로 귀를 기울이며 재미있다는 듯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것아, 뭐이 좋다구 웃어? 넌 이 근처에서 시집가긴 인제 다 글렀어,"
어머니의 말이 끝나면서 형님이 아직도 창백한 얼굴빛을 하고 들어왔다.
설치는 사람들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단단히 혼이 난 모양이었다.
"오빠, 엄마가 그러시는데 난 인제 시집가기는 다 틀렸대요."
누님은 여전히 생글거리며 말했다.
"내 탓이냐?"
형님의 대꾸였다.
"천만에. 내가 한번 오라를 구해 줬구, 오빠가 한번 나를 구해 줬으니 인제 오빠와 나 사이엔 서로 빚이 없어요. 오늘 일 고맙다구 안 해두 되지?"
"내가 너한테 빛을 갚았다구 한다면 그것두 너한테 돈을 꾸어 가지구 갚은 것 같은 느낌이구나."
"오빠, 가령 우리 두 사람이 공모자의 관계에 있다구 가정한다면 빛이니 뭐니 하는 생각 벗어던질 수 있을 거야?”
"공모자라니?"
"우리 둘이 공모를 해서 나는 오빠를 독립 투사로 만들었구, 도라는 나를 독립 투사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된 성녀(聖女)루 만들었다구 생각하잔 말이우.”
"농담이냐, 야유냐?"
“이런 때 농담이나 야유를 할 수 있다면 성녀가 아니라 마녀게."
“……”
"오빠 화났우? 나 거리에 좀 나갔다 올께. 인제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테지?"
"이것아!"
어머니가 소리쳤지만 누님은 이미 대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누님은 서너 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돌아왔다. 친구들의 집을 찾아 다녔노라고 했다.
"백성들의 마음이란 변화 무쌍하면서두 단순해. 아침까지만 해두 나를 피하구, 적의를 품은 눈으루 바라보더니 반나절 사이에 가엾다는 듯 바라보면서 나를 받아들이는 거야. 며누리나 올캐 감으루는 적당치 않지만, 좋은 애 착한 애임에는 틀림없어, 하는 투였다우. 재미있는 건 청년들이야. 전에는 나를 자기들보다 한 단계 위에 올려 놓구는 감히 접근할
생각두 못 하더니, 인제는 자기들과 같은 단계루 떨어져 내렸다구 생각했는지 제법 접근할 기미를 보이잖우? 불쌍하구 가소롭더군."
"까불지 말구 근신해."
형님이 말했다.
그날 밤 누님은 아버지한테 머리끄뎅이를 끄들렸다. 그리고 누님에게는 두 번째로 금족령 이 내렸다,
누님을 회상하는 자리에서 형님도 곁들여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이렇게 누구에게 곁들여서가 아니라 독립된 (형님 회상)을 할 생각이지만.
형님은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을 하면 적당할 것인가. 형님이라고 해서 한 마디로 묶어 말할 수는 없다. 내 고향은 삼팔선에어 직선 거리로 백 오십 리 정도. 함경도에 가까운 강원도 땅에 위치해 있다. 해방이 되자 물러가는 일본 사람들의 뒤를 쫓아 소련 군대가 밀려 들어왔다. 그러자 지주들의 토지가 남김없이 강제 몰수되었다, 지주의 아들로서 내 형님처럼 지주의 토지가 몰수되는 것을 환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형님은 어느 자리에서 지주의 토치를 몰수하는 것은 조선 땅에 낙원을 이룩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연설까지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노여움을 산 것은 물론이었다,
"이눔아. 니 애비가 그 땅을 어디서 훔쳐온 줄 아니 ? 그 땅은 내가 사들이지 않았으문 왜눔 손아귀에 들어갈 땅이었어. 허리띠를 줄이구 옷을 기워 입으은서 악착스레 돈을 와 가지구 땅을 사 늘쿠ams서, 난 속으루 그래두 이만큼은 왜눔들 손에서 조선 땅을 되찾아왔느니라구 자랑하며 지냈어. 헌데 그 땅을 돈 한푼 주지 않구 사그리 뺏아가는게 옳은 일이라구? 그래 어째서 그 짓이 옳은 일이냐?"
"아버님. 그게 다 우리 조선 사람 모두가 잘 살아 보자구 하는 노릇입니다. 나라에서 왜 아버님 공을 모르겠습니까? 해방이 되어 나라를 되찾았으니 새루 시작하는 마음으루 모든 재산을 모든 백성이 골고루 나눠 갖자는 거지요 뭐.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 아버님이 나라에 기부하시는 셈치시구 땅을 내놓으시면 나라에서두 아버님 평생 동안 양식 걱정 안 하시두룩 해드릴 겁니다,"
"이눔아, 내 땅 내 놓구 남한테 밥 빌어 먹으란 말이냐?"
"그게 아니래두요, 아버님."
아버지와 형님의 논쟁은 끊일 줄을 몰랐다.
"오빠, 이북 땅에서 출세할 생각이우? 난 어째 으시시한 게 이남 땅으로 넘어갔으면 싶은데 아부지는 늘그막에 어딜 가느냐구 죽어두 내 땅 위에서 죽겠다구 고집이시구."
어느 날 누님이 말했다.
"우린 고향에서 새 나라 세우는 일을 거들어야 해."
형님이 대꾸했다
"정 오빠 생각이 그렇다면 말이우, 아버지하구 쓸데없는 말다툼할 시간에 소련어를 배워요."
"그래두 아버님을 설득해야지. 아버님 입장두 생각해서 충격을 덜어드려야 하잖겠니?"
"아부지를 무시해 버려요. 무시가 아니라 배반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면 배반해 버려."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 부모 형제 사이에 그런 살벌한 말이 끼어드는 걸 난 거부해."
"그럼 오빠는 또 실패해요."
"우리가 하려는 일은 개인의 성공을 전제루 한 게 아니야."
"답답해라. 어쨌든 좋아요. 나 요새 소련어 배우기 시작했거든. 오빠두 같이 배워요."
"급할 것 없어. 배우게 되면 배우지."
누님 말대로 형님은 오래지 않아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는 젊은 패거리들 속에서 떨어져 나왔다. 형님이 자진해서 떨어져 나왔는지 밀려났는지는 알 뚜 없는 일이었다. 반반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이 없어진 형님은 집에서 빈들빈들 놀다가 철원에 있는 고급중학교 교사로 취임했다. 영어 과목과 역사 과목을 맡았노라고 했다. 형님의 얼굴에서 다시 활기가 도는 듯했다. 하지만 고급중학교 교사 자리도 6개월 남짓에 그만두고 말았다. 파면 당했다는 것이 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해방시켜 주거나 원조를 제공해 주는 데는 반드시 어떤 저의가 개재돼 있기 마련이다."
역사 시간에 학생들에게 서양사를 가르치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한 일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형님은 보안서에 수없이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다가 파면을 당하고 만 것이다. 형님의 왜정하의 대학생 시절 좌익 운동에 가담한 일이 있었지만 그 이력은 별로 참작되지 못한 듯했다, 형님은 한층 침울해지고 말이 없어져 가지고 집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공부를 더 하려고 평양으로 간다는 소문을 남기고는 집을 떠났다. 이남으로 넘어간 것이다. 얼마 후 경기도 S시에서 중학교 교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은밀하게 전해져 왔다.
형님이 떠나간 얼마 뒤부터 수리 집에는 점점 더 심한 박해가 가해졌다. 누님이 보안서원에게 끌려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새삼스럽게 왜놈들에게 갈보짓했다는 트집을 잡아 민족의 명예를 더럽힌 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체포해 간 것이다. 누님은 풀려나지 못하고 군(郡) 보안서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아무런 손도 쓸 힘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구나 하는 생각뿐 몸부림 한 번 제대로 쳐 볼 처지도 못 되었다.
그 무렵 우리 집은 백성들의 피를 빨아 지주가 된 악질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푸줏간에서 고기 사 먹을 권리마저 빼앗긴 형편이었다. 물론 집도 몰수당해 우리 집 소작인 노릇하던 농부 가족이 안채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우리 식구는 곁방살이하듯 사랑채 방 하나를 겨우 차지하고 지냈다. 집에서 아주 몰아내지 않고 사랑채에나마 살게 된 것은 사정을 두어서가 아니라 옛 소작인이 주인으로 들어앉은 집 사랑채에서 곁방살이를 시킴으로써 수모를 주려는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로서는 실수나 다름없었다. 우리 식구는 옛 소작인과 함께 살게 된 덕분에 굶주림을 면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즈이가 안채를 떡 차지하구 있어서 죄송스럽기 끝이 없습니다만서두, 생각하믄 얼매나 다행한지 몰라유. 남의 눈에 뜨이지 않구 양식을 노나드릴 수가 있게 됐으니께유. 밤에는 슬그머니 안채 방 두개를 비워놀 테니 들어와 주무세유."
옛 소작인의 말이었다.
그렇게 서너 달을 지냈을 것이다. 벌어들이는 사람이 없는데도 끄떡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보안서에서 수상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윽고 조사를 나온 보안서원이 내막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우리 식구는 거처를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번에는 낯선 광부가 차지하고 있는 집 사랑방이었다. 우리 식구는 당장 끓여먹을 쌀지 없었다. 아버지가 면 인민 위원회 사무실 소사로 나가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여성 동맹 사무실 청소직으로 채용되어 겨우 굶어 죽기는 면할 수 있었다,
"느이덜이 아니믄 당장에라두 죽고 싶다."
남아 있는 우리 삼 남매를 보시며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그렇게 또 해가 바뀐 어느 봄날이었다. 우리 식구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소련군 지프차 한 대가 와서 멎었다. 문이 열리고 소련군 고급장교 한 사람이 내리는가 했는데 뜻밖에도 누님이 그 뒤를 따라 내리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누님은 일년 전 보안서원에게 끌려가지 않았는가.
지금쯤 어느 감옥에 들어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누님이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눈앞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집 사랑방에서 곁살이를 하고 있는 거야? 세상에 내 원 참?"
말과는 달리 누님은 얼굴을 하늘로 추켜들고는 깔깔 웃었다.
"아부지는 어디 계시냐?"
"면 인민 위원회 사무실에서 소사일 하구 계셔."
"소사라구? 빗자루루 밑바닥이나 쓸어내구, 심부름이나 하는 소사 말이냐?"
누님은 다시 웃어댔다.
"그럼 엄마는 어디 계셨어?"
"여성 동맹 사무실에서 청소원으루 일하셔."
"내 원 참, 웃지 않을래두 웃지 않을 수가 없네."
누님은 웃음을 못 참겠다는 듯 얼굴을 하늘로 추켜들고는 다시금 요란하게 웃어댔다.
"인생 수업 많이 하시는구나."
웃음을 그친 누님이 이렇게 말하더니 소련군 고급 장교의 팔을 잡으면서 소련말로 뭐라고 지껄였다. 소련 장교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사람은 다시 지프차에 올랐고 지프차는 면 인민 위원회 쪽으로 굴러갔다. 지프차가 집 앞으로 돌아온 것은 불과 오 분쯤 뒤였다. 소련 장교와 누님을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프차에서 내리셨는데, 당당한 체격의 소련 장교와 화려하게 치장한 누님 앞이어서 그런지 더 추레하고 더 늙어 보였다.
"엄마, 빨리 짐 싸세요. 이런 데두 고향이라구 눌러 사시겠다는 거예요?"
누님이 발을 구르듯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는 듯 멍청하니 서 계셨다. 하지만 짐이라고 쌀 것도 없었다. 밥그릇과 수저와 밥솥 하나, 그리고 누더기 같은 포대기뿐이었다.
"저런 거 다 내동댕이쳐 두구 빈 몸으루 떠나세요."
누님이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식구들은 그날로 전철을 타고 철원으로 옮겼다. 누님이 살 집과 살림 도구를 마련해 주었다.
"그 동안 고생 많이 하셨으니 한 달쯤 푹 쉬세요. 며칠 뒤에 다시 올께요."
누님은 돈을 내 주고는 어디론지 가 버렸다.
소련군 장교와 함께 누님이 다시 우리를 찾아온 것은 일주일 뒤였다. 그동안 우리 식구들은 누님이 주고 간 돈으로 옷을 사 입어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누님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원기를 회복하신 것을 보더니 소련 장교를 소개했다.
"제가 보안서원에게 끌려 갔었잖아요? 백성들을 착취해 부자가 된 지주의 딸에다가 왜눔의 첩 노릇을 한 악질 반동분자라면서 감옥살이를 시킨다구 하는 것을 이 사람이 구해 줬어요."
"원, 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인사를 해야 할 텐데 말이 통해야지?"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누님은 소련 장교에게 뭐라고 하니까 소련 장교가 알아차렸다는 듯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사람이구만. 그래 지금은 한 사무실에서 일하구 있니?"
아버지가 물으셨다.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같이 살구 있어요."
누님이 대답했다.
"집에서? 그럼 내외간이여? 아무튼 이왕 부부가 되었으니 백년해로하거라."
아버지가 덕담을 하셨다. 덕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전과 같으면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인가. 누님이 다시 소련 장교에게 뭐라고 말하니까 이번에는 얼굴에 함박 웃음을 담으며 아버지에게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아부지, 여기서 좀 쉬시다가 이남으루 넘어가세요."
누님이 불쑥 말했다. 우리 식구들은 깜짝 놀라 소련 장교를 곁눈질해 보았다.
"괜찮아요. 이 사람 조선말 못 알아들어요. 아무래도 이남이 살아가시기 편할 것 같아요. 외가집두 그 쪽이구, 또 오빠두 그쪽에 가 있구요. 참 오빠한테 무슨 소식 없어요? 오빠 보구 싶다."
누님은 형님이랑 온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살던 시절을 회상하는 듯 밝고도 서글픈 웃음을 얼굴에 떠올렸다.
우리는 철원에서 한 달 동안 머물러 있다가 연천으로 옮겼다. 삼팔선을 넘기 위해서는 연천으로 옮겨가는 것이 지름길이었다. 철원을 떠나기 전 누님은 퍽 많은 돈을 장교 모르게 어머니 치마 밑에다 밀어 넘겨주었다.
"삼팔선을 착 넘어서면 전곡인가 하는 데서 이남 돈으루 바꿀 수가 있대요. 이북 돈 십 원에 이남 돈 이십 원씩 바꿔 준다더군요."
누님이 말했다.
"너는 어떡하구? 이쪽에서 눌러 살 생자이니?"
어머니가 눈으로 누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으셨다.
"제 걱정은 마세요.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뭐."
누님이 말했다.
우리는 연천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러 있다가 삼팔선 넘겨주는 길잡이를 사 가지고 밤을 타서 삼팔선을 넘었다.
누님 말대로 삼팔선 바로 남쪽에 돈 바꿔 주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누님이 준 이북 돈을 이남 돈으로 바꿔 가지고 동두천까지 걸어와 하루를 묵고, 기차편으로 형님이 중학교 교편 생활을 하고 있는 경기도 S시로 갔다.
"아버님, 어머님, 이게 꿈은 아니지요? 다시는 아버님 어머님을 못 뵙나 했는데------" 형님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형님은 한 동안 말없이 동생들 머리를 쓰다듬다가 문득 생각난 듯
"향숙이는 왜 안 보입니까?"
누님을 찾았다.
"그러잖아두 향숙이가 오래비 보구 싶다구 하더구나."
어머니가 누님의 소식을 대충 형님에게 들려주었다.
"거기서 병 들어 죽거나 굶어 죽는 건데 걔가 건져서 삼팔선을 넘겨 줬X1."
"제가 향숙이한테 도큰 빛을 진 것 같구만요."
형님은 누님을 생각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형님은 단칸 셋방에서 낯선 여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혼자 살기가 불편하기두 하구 해서 부모님 허락 없이 장가를 들었습니다."
형님 내외가 부모님께 큰 절을 올렸다.
"잘했다, 잘했어."
절을 받으며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말씀하셨다.
누님이 준 돈을 보태 방 두 개 짜리를 얻어 이사를 했다, 우리는 고향에서 단간방 생활을 해 온 터여서 별로 불편한 줄을 몰랐다. 아니 두려움이 사라진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우리 끝의 삼 남매는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난날의 고통을 급속하게 잊어 갔다.
한데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형님에게 근심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정 말기 제가 감옥살이를 하구 나와 고향집에서 쉬구 있을 때 늘 저를 따라다니며 감시하던 조선 사람 형사 있었잖습니까?"
어느 날 형님이 아버지 앞에서 말을 꺼내 놓았다.
"그래 김 뭣이라고 하던 녀석 있었지."
아버지가 말을 받으셨다.
"그 사람이 여기 와서 경찰 노릇을 하구 있습니다."
"뭐여? 허지만 지난 일 캐낼 것 없다. 잊어버리구 허물 없이 지내믄 되는 게여."
"여기 와서 얼마 있다가 길에서 딱 마주치지 않았읍니까?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버님 말씀대루 이왕 지난 일 캐낼 것 없다구 생각했지요. 그 사람이 왜정 때 형사 노릇 안 했으면 어떤 다른 조선 사람이 그 자리를 메웠을 테니 말입니다, 헌데 이 사람, 제가 내민 손을 마지못해 잡으면서 몹시 어색해하더군요. 지난 일이 쑥스러워 그런가보다 생각하구는
"지난 일은 함께 잊어버리구 앞으루는 저를 고향 후배로 생각하시구 사랑해 주십시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헤어질 때 저를 쳐다보는 그 사람 눈이 아무래두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닷새쯤 뒤에 경찰서에서 호출장이 오지 않았겠습니까? 무슨 일인가 해서 갔더니, 그 사람은 눈에 띄지 않구. 어떤 낯선 형사가 앉으라구 하면서 제 지난 일을 캐묻더군요. 왜정 때 일본에서 대학 다닐 때 좌익 운동 한 일로부터 해방 후 고향에서 한 일. 이남으루 넘어오게 된 동기며, 교우 관계, 인척 관계,,,,,,마치 혐의자 다루듯 하는데 대답하느라구 땀났습니다."
"그 김 형사란 녀석이 시킨 짓이란 말이렷다. 그 녀석 여기 와서두 형사 짓하구 있냐?"
"그 계통이라지요, 아마? 허지만 평형사가 아니라 경위드군요."
"못된 녀석. 내 한번 찾아가 보랴? 지가 나를 보구두 그 따위 짓거리는 못 할 테지?"
"내버려두십시오. 그 사람이 된 사람 같으면 아버님이 안 찾아가셔두 사리에 맞게 일을 처리할 테구, 안 된 사람이라면 아버님이 찾아가시면 자격지심을 품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게냐?"
"서울로 전근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알고 보니 외가 쪽으루 저한테 오촌 되는 아저씨가 문교부 장학관으로 계시더군요. 부탁을 드려 왔습니다."
"그래 이남에 와서두 좇겨다녀야 한단 말이냐? "
"이남 땅두 아직 완전히 자리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 남쪽에 있는 산이나 섬들에서는 아직 공비들이 출몰하구 학생들이나 학교 선생들 가운데두 좌익으로 지목되는 사람들이 왜 섞여 있어서 경찰에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구 있습니다. 그 사람이 생각만 먹으면 저를 괴롭힐 꼬투리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 사람 가까이 있는 게 아무래두 거림칙해서 S시를 빨리 떠나구 싶습니다."
"어떻게 돌아가는 속인지 모르겠수나. 거 왜 이남 편에 똑똑하게 서서 큰 소리로 치지 그러느냐?"
"왜정 말기부터 해방을 거쳐 삼팔선 넘어오는 동안 꽤 지친 모양입니다. 몸두 마음두 쉬 피로해지군 해서 이것저것 신경 안 쓰구 얼마 동안 쉬구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
"으흠,,,,,,"
형님은 그 뒤로는 늘 불안해하다가 드디어 서울의 A중학교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다른 식구들도 형을 따라 서울로 옮겨갔다.
"어, 인제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구나."
형님이 모처럼 밝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왜 발 뻗고 살아 볼 사이도 없이 육이오 사변이 터졌다. 인민군이 삽시간에 서울을 점령해 버렸다. 피난 갈 사이도 없이 우리는 다시 북쪽 사람들의 손아귀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서울에 들어오기가 바쁘게 북쪽 사람들은 의용군이라는 명목으로 남쪽의 젊은이들을 싸움터로 끌어내 가기 시작했다.
"의용군에 지원해야 할까봐."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형님이 형수한테 말했다.
"싸움터에 나가게 될 텐데 지원까지 할 게 뭐 있어요?"
형수가 의아한듯 물었다.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의용군에 자원을 하면 죄를 면해 주겠다는구만."
"그게 자원이에요? 강요하는 거지."
"할 수 없지. 아버지 어머님 뫼시구 외가집에 가 있으라구."
형님이 결심이 선 듯 말했다.
우리 식구들은 그때 누님을 문득 생각해내고는 혹시 누님이 나타나 주지 않나 해서 기대로 가슴을 부풀렸다. 이럴 때 누님이 소련군 고급 장교와 함께 나타난다면 형님이 의용군 나가는 일을 그만둘 수가 있을 것이고. 다시 불안에 멀고 있는 우리 식구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말씀은 안 하셔도 누님의 출현을 은근히 기다리시는 눈치였다.
하지만 형님이 의용군이 되어 싸움터로 떠날 때까지 누님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하기야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누님이 어떻게 알겠는가. 아니 누님은 소련군 고급 장교를 따라 소련으로 들어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 다음에야 누님인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었다.
형님이 떠나가고 나자 우리 식구는 서울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서울을 떠나 터덜터덜 나흘을 걸어 충청북도 진천에 있는 외가집으로 갔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안 계신 외가집에서는 몰려간 우리 식구들을 대하고 눈을 크게 떴을 뿐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밀고 들어가듯 사랑채를 차지했다,
그곳도 이미 평화로운 농촌은 아니었다. 쳐내려온 북쪽 사람들이 들쑤성거려 놓아도시나 다름없이 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집집의 머슴들은 일할 생각을 안하고, 대청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벌렁 누워 콧노래만 흥얼거렸다.
그래도 주인은 후환이 두려워 말 한 마디 못 하고, 콧노래 잘 부르라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더운 밥을 지어다 머슴 앞에 바치곤 했다.
사람 수가 적어 월남 가족은 재빨리 노출되었다. 아버지는 곧바로 보안서에 끌려가 갇혔다. 월남자는 이남 출신 반동 분자보다도 먼저 인민 재판을 열어 처형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럴 줄 알았으믄 느이 고향에 앉아서 죽을 걸, 고생해서 삼팔선 넘어온 보람이 뭐야?" 어머니가 탄식을 하곤 했다. 자고 나면 인민 재판이 벌어지지 않나 해서 목을 빼 보고 귀 기울여 보곤 하는 노릇이 사람의 간장을 말렸다. 이럴 때 누님이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헛일인 줄 알면서도 우리 식구들은 다시금 애타게 누님을 기다려 보았다.
한데 기적처럼 지프차 한 대가 외가집 바깥 마당에 와 멎었다. 문이 열리고 인민군 고급 장교가 차에서 내리는가 했는데, 인민군 복장을 한 누님이 그 뒤를 따라 내리는 게 아닌가.
"누님!"
나는 목이 메어 불렀다.
"아부지 어디 계시냐?"
누님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보안서에 잡혀가셨어."
"엄마는?"
"궁금해서 보안서 근처에 가셨어."
누님은 말없이 인민군 고급 장교와 함께 지프차에 올라타고 면사무소 쪽으로 지프차를 몰았다. 차가 돌아온 것은 십 분쯤 지난 뒤였다. 인민군 장교와 누님의 뒤를 따라 몹시 초췌해진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프차에서 내렸다.
"인제 걱정 마시구 편히 지내세요. 그런데 오빠는 어디 갔어요?"
누님이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의용군에 잡혀갔단다. 니가 좀 일찍 왔으믄 더 좋았을 것을. 어여 방으루 들어가자. 어머니가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내며 말했다.
"오늘은 바빠서 금세 가 봐야 해요. 곧 또 찾아 뵙겠어요. 누님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어머니 손에 쥐어드리고는, 인민군 장교와 함께 지프차에 촌라 휑하니 떠나가 버렸다. 누님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짧았는지 도무지 허깨비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누님의 얼굴에 항상 꽃처럼 피어 있던 그 밝은 웃음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허깨비를 본 것일까. 멍청하니 서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 손에 들러있는 이북 돈을 보고서야 그것이 허깨비를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꾼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딸애 덕을 단단히 보는구만.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겨줬잖아?"
아버지가 비로소 정신이 든다는 듯 말하셨다.
"글쎄 말이우. 어떻게 그때마다 용케 알구 찾아오는지 모르겠어유. 지말대루 또 찾아올라는지?"
어머니는 눈물 흘리던 얼굴에 웃음을 떠올리며 대꾸했다.
누님은 팔월말경 잊어버릴 만할 때 한번 더 다녀갔다. 전 번에 함께 왔던 인민군 고급 장교와 함께였다.
"네 소련 사람 남편 잘 있니?"
인민군 장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버지가 궁금한 듯 물으셨다.
"그 사람과는 헤어졌어요. 소련으루 들어간 걸요 뭐. 누님은 지나간 얘기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그럼 지금은 혼자 사는 게냐?"
"뭐 그런 셈이에요. 그런데 아버지 전 다시 북쪽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
누님이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왜?"
"인민군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어요. 누구한테 말하지 마세요."
"그럼 이제 가면 다시 못 오는 게냐?"
"글쎄요. 오빠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는데,,,,,,=
"글쎄 말이다, 어디서 살아 있기는 한지?"
누님은 가족들의 얼굴을 쓰다듬듯 둘러보고 또 둘러보곤 하다가 떠나갔다. 그렇게 떠나간 누님은 가을이 깊도록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누님 대신 가을이 다 갈 무렵 형님이 돌아왔다. 형님은 머리가 빡빡 깍이어 선머슴애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쫓겨가는 인민군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대동강을 건너기 직전 틈을 보아 탈출해 나왔다고 했다, 형님이 탈출 같은 것을 다할 줄 알다니.
"아버님, 그래두 무사하셨구만요."
형님은 감개무량하다는 듯 말했다.
"무사하긴? 느 아부지가 잡혀가서 돌아가실 뻔한 것을 늬 동생이 와서 살려 놓구 갔단다."
"향숙이가 왔었군요?"
"인민군 높은 사람인가부더라. 그 사람하구 같이 지프차를 타구 와설랑 유치장에 갇혀 있는 느 아부지를 빼내 주구 갔어."
"걔한테 빛을 자꾸 지는구만요. 갚을 수가 있을는지 원."
형님은 학교에 가 봐야겠다면서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돌아온 형님은 풀이 죽어 있었다. 의용군에 자원해 갔었대서 학교에서는 형님을 복직시켜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 중학교 이외의 다른 어느 중학교에서도 현재로서는 채용을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장사나 해 먹구 살아야 하나? "
형님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좀 쉬거라."
어머니가 가엾다는 듯 말씀하셨다.
"우리 집두 아니구 외가집에서 마음 편히 쉴 수가 있나요?"
하지만 형님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외가집 추수나 거들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겨울이 닥치고, 중공군이 다시 쳐내려왔다. 형님은 계2국민병 영장을 받고 얼어붙은 눈길을 걸어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 해 겨울에는 눈이 일찍, 그리도 많이도 내렸다. 다행히 중공군이 충청도까지는 내려오지 못해 우리 식구들은 또 한 번의 피난을 면할 수가 있었다.
눈 쌓인 긴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 봄이 갔다. 중공군이 삼팔선 북쪽으로 밀려 올라가서 그 근처에서 밀고 밀리는 싸움이 치열한 그 여름, 형님은 국군 소위의 계급장을 달고 돌아왔다. 전선으로 가는 도중에 들렸다고 했다. 그때 형님은 서른 살이 넘어 있어 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될 나이였다.
"향숙이 소식 없지요?"
형님은 먼 하늘가로 눈길을 주며 누님의 소식을 물었다.
"아무 때구 또 생각지두 않게 불쑥 찾아올지두 모르지."
어머니도 형님을 따라 먼 하늘가로 눈길을 보내셨다. 먼 하늘가 산봉우리 위에는 뭉게 구름이 한가로이 머물러 있었다.
"향숙이 한 번 만나볼 수 있다면, 죽어두 한이 없을 것 같아요."
형님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야, 죽는다는 소리 말아라= 어머니가 펄쩍뛰듯 말했다.
형님은 일선으로 떠났다. 편지 올 적마다 누님 소식을 묻더니 두 달 만에 유골이 되어 돌아왔다. 아버지는 형님의 유골을 안고 외가집 산으로 올라가 유골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살랐다.
"향숙이년두 어느 산골째기에서 죽지나 않았는지?"
아버지가 형님의 불탄 유골을 이리저리 집어던지며 말하셨다.
그 후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누님으로부터는 아직도 소식이 없다. 위기에 처해 있는 누님을 구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