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적, 무고誣告 -/배철현 “정의를 저해하는 가장 위험한 악이 무고죄”
개인이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면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고
시기가 악의로 바뀌면 ‘무고’가 등장
바빌론에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
‘무고’를 일삼는 사람부터 응징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는 새로운 정치형태가 태동하고 있었다. 민주주의(民主主義)다. 자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는 투표를 통해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투표를 통해 자신들을 대표해 도시를 이끌 리더를 뽑는다. 개개인은 누구에게도 이양할 수 없는 자신만의 법적인 권리인 ‘이소노미아’(isonomia)를 지녔다. 이소노미아는 모든 시민들이 평등하다는 사상이다. 시민들은 참여와 공존, 배려와 숙고를 통해 투표라는 시민권을 행사함으로써 도시의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소노미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동정치에 쉽게 움직이는 ‘데모크라티아’(demokratia), 즉 ‘민중권력(또는 민중지배)’으로 변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년)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과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지도자로서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는 ‘데모크라티아’가 대부분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후보를 리더로 뽑는 선동정치의 늪에 빠진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시민과 민중들의 정신적 고양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선동주의로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페리클레스는 대중의 정신을 일깨우는 특별한 ‘의례’를 고안했다. 바로 ‘비극 공연’이다. 그는 그리스 최초의 비극인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을 기원전 472년에 무대에 올려지도록, 모든 경비를 지원하는 후원자가 되었다. 대중이 정신적으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몇몇 독재자들이 조절하는 전체주의로 타락하고 말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은 시민을 계몽시키는 오늘날의 신문, 방송, SNS 등의 미디어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오늘날 미디어가 진실한 정보의 전달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미디어는 공정성과 형평성의 측면에서 매우 추락하였다. 그들은 국민의 편을 가르는 선봉장이 된 지 오래다. 개인(個人)이어야 할 시민은 SNS 등을 통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뉴스의 세례를 받고 신도가 된다. 그는 점점 자신은 선하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지닌 상대는 악으로 나누는 환상에 빠져, 극단적이며 편향적인 대중(大衆)으로 전락한다. 특히 요즘 같은 선거철에 우리 미디어는 상대방을 악마로 만드는 ‘허위사실 고발’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뉴스 패널에는 그럴듯한 인사들이 나와서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애써 인정하지 않고, 상대 진영의 인물에 대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퀘이커 교도 메리 피셔를 마녀로 재판하는 청교도들. 미국화가 T. H. 마테슨 (1813-1884), 유화, 1853, 97.8 cm x 137 cm, 셀럼 피바디 미술관 소장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는 한 사회의 정의를 저해하는 가장 위험한 악을 ‘무고죄(誣告罪)’라고 판단하였다. 무고(誣告)란 한자 뜻풀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건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혹은 상대방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무녀’가 말하는 거짓말을 듣고, 그것을 진리하고 확신한다. 그런 후, 무모하게 상대방을 고소한다. 특히 요즘과 같은 IT시대에는 누구나 상대방을 음해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메시지를 쏟아낼 수 있다. 그 결과 무고죄가 난무한다. 개인이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면, 시선을 외부로 돌려 타인을 부러워하거나 숭배한다. 시간이 지나 그마저 지치면 시기하고 질투한다. 시기가 악의로 바뀌면 ‘무고’가 등장한다. 예수를 메시아라고 환영하던 유대인들이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라고 빌라도에게 소리친 군중과 동일인이다.
우리 나라에선 소위 ‘타진요’ 사건이 무고죄의 대표적 사례다. 악의를 지닌 인간들이 ‘타진요(타블로에서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그룹 에픽하이 멤버 타블로가 미국 명문대학 스탠포드 대학 졸업장을 위조했다는 것이다. 그가 대학 졸업장을 제시해도, 소용이 없었다. 시기의 대상인 타블로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들은 익명을 보장받는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온갖 의혹을 제기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괴롭혔다. 타블로와 타진요 간에 법정공방이 오가는 동안 타블로 아버지는 암투병으로 돌아가셨다. 더욱더 놀라운 점은 국민의 30%가 이들의 주장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이 법전을 번역하기 위해, 가장 먼저 쐐기문자 원문 그린다. 그런 후 한자 한자 로마자로 옮겨놓는다(자역). 그런 후 이 자역에 문법적인 해석을 거쳐 해석한 발음을 적고 (음역), 번역을 한다. 다음은은 제1조항에 대한 자역, 음역, 그리고 번역이다.
자역 (1행) šum-ma a-wi-lum(2행) a-wi-lam (3행) ú-ub-bi-ir-ma(4행) ne-er-tam(5행) e-li-šu(6행) id-di-ma(7행) la uk-ti-in-šu(8행) mu-ub-bi-ir-šu (9행) id-da-ak
음역 šumma awīlum awīlam ubbirma nērtam elīšu iddīma lā uktīnšu mubbiršu iddâk(한글발음: 슘마 아윌룸 아윌람 웃비르마 네르탐 엘리슈 잇디마 라 우크틴슈뭇비르슈 이닥)
번역 “만일 자유인이 다른 자유인을 고소하여 살인죄로 고소하였으나,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를 고소한 사람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함무라비는 바빌론을 고대근동의 제국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성문법을 제정하였다. 바빌론 시민들을 갈라치기 하는 최악의 관행에 대한 강력한 법 조항을 맨 처음에 두었다. 바로 ‘무고죄’에 관한 형벌규정이다. 그는 제1조항에서 5조항까지 무고의 판례와 그 형벌을 다루었다.
제1조항: 살인에 관한 무고죄
“만일 자유인이 다른 자유인을 살인죄로 고소하였으나,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를 고소한 사람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제2조항: ‘주술무고죄’
“만일 한 자유인이 다른 자유인에 대항하여 주술(呪術)로 고소하였으나, 그의 유죄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고소인은 강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만일 강이 그를 집어삼키면 피고소인은 그의 집을 취할 것이다. 반대로 강이 그 사람의 무고혐의를 벗겨주면 그는 원래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그가 주술로 고소한 사람은 사형에 처해 질 것이다. 강으로 뛰어든 사람, 즉 고소인은 그 피고소인의 집을 취할 것이다.”
제3조항: ‘증거무고죄’
“만일 한 자유인이 (재판에) 거짓증거를 가지고 나타나 그가 자신이 한 이야기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재판이 목숨과 관련한 재판이라면 그 자유인은 사형에 처할 것이다.”
제4조항: ‘물건무고죄’
“만일 그가 곡식이나 금전에 관련된 증거를 가지고 나오면, 그는 재판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제5조항: ‘잘못된 판결을 내린 판사 관련 무고죄’
“만일 재판관이 재판을 진행하여 판결을 내리고 문서를 작성하였지만 후에 자신의 판결을 수정하였고 사람들이 그가 내린 판결에 수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면, 그는 그 판결에 관련된 손해의 12배를 지불해야한다. 더욱이 그들은 그를 판결하는 자리, 그 모임으로부터 지위를 박탈할 것이다. 그는 돌아와, 다른 판결에서 다른 재판관들과 앉지 못할 것이다.”
한 조항 한 조항이 간결하고 강력하다. 함무라비 법전의 모든 조항은 판례법(判例法)이다. ‘만일’이란 아카드어 접속사 ‘숨마’로 항상 시작한다. ‘만일’로 시작하는 종속절에, 사건의 상황과 고소내용을 제기하고, 주절에 그 제기된 고소 내용에 대한 판결이 간략하게 소개된다. 제1조항 종속절에 등장하는 고소자는 ‘자유인’이다. 자유인은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왕족과 귀족을 포함한 상위 10%를 이르는 용어다. 바빌론에는 왕족이나 귀족 땅을 빌려 노동하고 세금을 내는 소작농이 50%였다. 전쟁포로나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세금을 지불하지 못해 노예로 전락한 하층민들이 40%를 구성했다.
그러므로 제1조항은 자유인과 자유인간 고소 사건이다. 한 자유인이 다른 자유인에게 ‘살인죄’를 제기하였으나,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 경우다. 그 후에 주절이 간략하게 따라온다.
“살인죄를 제기하였으나,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 고소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함무라비는 바빌론에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근절해야 할 첫 번째 조치로 ‘무고’를 일삼는 사람들을 극형으로 응징했다. 3800년이 지난 현대사회, 특히 대한민국은 ‘아니면 말고’식의 이른바 ‘무고남발공화국’이다. 만약 함무라비시대였더라면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 근거없이 멀쩡한 사람을 인격 살인하는 ‘무고’는 중죄다. 대한민국에서 무고를 근절하려는 정신계몽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해 걸어가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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