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문자는 상인들이 발행한 ‘상거래 영수증’4/배철현
진흙을 손바닥에 올려
일정한 모형으로 만든 후
갈대 줄기로 철필을 만들어
마르지 않는 진흙 위에
갈대 철필을 눌러 그림 표시
토판 문서 영수증
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전’ 전시 중
1. 장물(贓物)에 관한 규정
함무라비 법전은 무고(誣告)와 절도(竊盜)에 관한 조항 후에 범죄 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남의 물건, 즉 장물(贓物)에 관한 조항을 다루고 있다. 매매계약은 자신의 소유를 타인에게 매도하고 타인은 소유권에 대한 대가를 지급했다는 영수증 혹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기원전 18세기 아카드어 쐐기문자를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상대방의 물건을 몰래 훔친 후,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 많아 매매계약 확인은 바빌론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큰 문제였을 것이다. 토판문서 영수증을 발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매도자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담보(擔保) 혹은 증인(證人)이었다.
후대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가 등장하기 전에 수메르인들은 토판문서를 이용하여 영수증을 발행하였다. 쐐기문자가 새겨진 토판문서는 그 후 3000년 동안 사용되었다. 수메르와 아카드어는 무자비하게도 육백 개 이상 음절문자로 구성되어 있어 오로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서기관만이 쓰고 읽을 수 있었다. 고대 오리엔트의 왕들 중에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유일한 왕은 아시리아 제국의 아수르바니팔 2세 정도였을 것이다.
함무라비시대, 영수증이 없는 상황에서 물건의 소유에 관한 분쟁은 빈번했을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의 장물에 관한 규정인 11조항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만일 물건의 주인이 그 물건이 그 자신의 소유라는 사실을 아는 증인을 데리고 오지 못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그는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그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필자는 이 장물에 관한 조항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인류가 발행한 최초의 영수증의 발행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고 싶다.
2. 문자의 등장
글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세상은 자신을 채울 아무것도 없는 공허일 것이다. 문학, 과학, 역사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문명, 특히 현대문명과 문화는 문자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역사 이전 시대, 즉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문자사용이다. 문자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 인류를 야만에서 문명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다르다. 인간은, 아니 동물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몸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한다. 특히 자신이 의도한 바를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눈, 몸짓, 눈짓, 발짓, 표정 등을 동원하여 표시한다. 혹은 당장 눈앞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동의한 ‘음성’ 기호를 동원하여 의중을 표시한다.
30만 년 전 아프리카 북부에서 처음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는 먹을 것을 찾아 10만 년 전경에 오늘날 중동지방으로 이주한 후 5만 년 전엔 유럽으로 들어간 침입종(侵入種)이었다. 당시 유럽에 자리를 잡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들과 경쟁하다 4만 년경 호모 사피엔스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꾼 동물이 등장한다. 바로 늑대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늑대(Lupus canis)와 운명적으로 만나 협력하여 각각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와 개(Lupus canis familias)로 변모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늑대와 전략적인 계약(契約)을 맺고 동고동락하면서 다른 유인원들을, 특히 네안데르탈종을 멸절시키고 만물의 영장으로 등득한다. 개가 인류의 거주지를 특히 밤에 지켜주기 때문에 편히 잘 수 있었고 인류와 개는 함께 사냥을 나가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었다.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시점은 빙하기가 끝난 일만 년 전이다. 유럽에 거주하던 인류는 지구 전체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중동지방으로 남하한 인류는 기원전 6000년 전 처음으로 일정한 지역에 촌락을 이루며 살기 시작한다. 마을보다 큰 초기 도시형태가 등장하였다.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 여리고에서 큰 성벽을 발굴하였다. 초기 도시 형태의 모습이다. 도시라는 장소는 있었지만, 도시 안에 거주하는 인간을 하나로 묶는 끈이 없었다. 가시적인 끈이 문자(文字)이며 비가시적인 끈이 문화(文化)다.
문자는 기원전 3300년경에 오늘날 이라크 남부에 등장한다. 이곳에서 태고부터 흘러 내려온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은 높이 5000미터의 아르메니아 고원 지대에 위치한 아라랏 산에서 발원하여 페르시아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두 강은 바빌론 지역에서 점차로 수원이 얕아져 자주 범람할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만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늪지대를 형성하였다. 사방에는 돌은 없고 온통 진흙뿐이었다.
3. 최초의 영수증
최초의 문자는 상거래 영수증이었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진흙을 손바닥에 올려 일정한 모형으로 만든 후에 갈대 줄기를 세로로 잘라 철필을 만든 후 아직 마르지 않는 진흙 위에 갈대 철필을 눌러 그림을 표시하였다. 이러한 토판문서들은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에 즉시 돌처럼 견고하게 굳는다. 이런 경화로 한번 문자가 쓰인 토판문서를 다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토판문서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아직도 이라크의 남부에는 인류의 초기 문화를 기록한 수많은 토판문서들이 고고학자들의 삽을 기다리고 있다.
토판문서에 기록된 최초의 영수증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에 전시 중이다.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우룩 도시국가의 행정당국인 신전이 ‘쿠심’이란 맥주를 만드는 양조자에게 발행한 영수증(領收證)이다. 신전은 그에게 맥주를 양조하기에 필요한 맥아와 보리를 빌려주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영수증을 우룩 신전에서 발굴해 냈다. 최초의 문자를 기록한 자들은 신의 영감을 받는 사제나 골방에서 명상하고 있는 학자가 아니라 매일 매일 먹고 살기 위해 시장에 돌아다니던 상인들이다. 다음은 이 영수증에 기록된 쐐기문자에 대한 필자의 자역과 번역이다. (사진 ①, ② )
이 장부에 ‘쿠심’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쿠심은 맥주 양조자 한 명일 수도 있고, 혹은 맥주 양조를 하는 길드나 조합, 혹은 양조자들에게 곡식을 배부해 주는 신전관리일 수도 있다. ‘쿠심’은 기원전 3400~3000년 사이에 보리와 양조에 관련된 인물로 등장한다. 개인이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최초로 등장한 역사적 인물이다. 우룩에서 발굴된 토판문서들 중 18개가 그의 이름을 언급한다. 이 토판문서에 등장하는 ‘쿠심’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보리, 곡식, 맥아를 상징하는 물건이거나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정교한 말을 위한 부사, 형용사, 혹은 문장에서 품사를 알려주는 조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이 문서는 어떤 언어로도 읽혀질 수 있지만, 수메르어 문자가 기원전 2600년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수메르어로 읽는 것이 안전하고 타당하다.
이 장부는 지금부터 5000년 전 만들어졌지만, 문자가 무엇이고 숫자가 무엇인지, 특히 맥주가 인류의 삶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려주는 문서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창녀 샴하트가 야생 엔키두에게 문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맥주를 마셔야 한다며 아카드어로 ‘시카룸 나피슈툼 샤 마팀(shikarum napishtum sha matim)’ 즉 “맥주는 나라를 지탱하는 생명입니다”라고 말한다. 쿠심비문을 보니, 이 구절의 당위성이 실감한다. 다음 호에 영수증이 없는 장물에 관한 내용이 담긴 〈함무라비 법전〉 제9조항~13조항을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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