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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칼럼(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등

안목/달관

by 자한형 2024.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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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5/배철현

안목(眼目) ; 사소함과 단순함 속에서 아름답고 거룩한 것을 찾는 능력

승화(昇華)된 인간은 과거에 연연해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삶에서 과거를 제거했기 때문에 기억할 수도 없다. 그것은 마치 꽃을 찾아 훨훨 날아가는 나비가, 애벌레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마치 내가 세상으로 나오기 전에 10개월 정도 있었던 어머니 뱃속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과 같다.

전혀 새로운 상태로 진입한 인간은 과거라는 편견과 자신의 발전을 저해하는 습관을 끊은 지 오래다. 과거라는 추상이 만들어낸 유물이 교리敎理이며 이념理念이다. 인간은 자신이 동의한 적도 없고 고백한 적도 없는 과거의 교리와 이념의 노예가 되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먼 옛날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풀기위해 만들어 놓은 임시방편臨時方便을 우리는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장식하여 우상처럼 떠 받든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색안경을 착용하여 세상을 보려한다. 위대한 개인은 색안경을 벗어 던지는 자다. ()는 오늘 여기에 자신의 눈앞에 등장한 당면한 문제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시하고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자다.

위대한 개인은 한마디로 안목眼目을 지닌 자다. ‘안목이란 자신에게 당장 떨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인생은 언제나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두 갈래 길의 연속이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란 시의 내용처럼, 두 길 다 좋아 보여, 두 길 다 걸어 보지 않고는, 어느 길이 더 나은 길인지 미리 추측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가야할 길을 안다. 자신이 이끄는 대중의 의견들은 항상 분분하고 동시에 상충된다. 대중은 서로 상충하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원한다고, 그 방안이 옳을 수 없고, 소수가 주장한다고, 그 방안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여, 깊은 성찰을 통해 그 방안을 도출시켜야한다. 지혜로운 침묵이 그를 인도할 것이다. 지혜로운 침묵을 통해 산출되는 신의 선물이 안목이다.

안목에 대한 탁월한 비유가 복음서에 등장한다. 한 농부가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천국天國을 발견하였다. 예수는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마태복음> 13.44에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한다:

천국은 마치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사람이 이를 발견하면, 숨겨 두고 기뻐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안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보물을 인식하고 발견하고 소유하는 실력이다. 농부가 보물을 발견한 장소는 금은방이 아니라, 자신이 땀과 눈물을 통해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일상인 밭이다. 그는 자신이 사시사철 땀을 흘리는 노동의 현장인 밭에서,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였다. 보물은 원래 숨겨져 있기 때문에 값비싸다. 보물이 흔하다면, 그 가치를 잃는다.

농부는 자신이 밭을 갈다 쟁기에 걸린 물건이 돌인지 아니면 보물인지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 자신의 밭에 그런 보물이 발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소중하고 귀한 것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고 세뇌 당해왔다. 우리 교육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생존-장비는 내 안에 잠재된 어떤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겨 습득되는 저 밖에 존재하는 재화, 명성, 혹은 힘이라고 설교한다.

교육이란 영어 단어 에듀케이트’educate의 어원이 지칭하듯이, 교육이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어떤 것을 ’(e-)으로 인도하는’(ducare) 체계적인 훈련이다. 내가 내 마음 속에 발견한 것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보물寶物이다. 그 보물은 자기-신뢰이며 자기-확신이다. 이것은 일시적이고 이기적인 오만과는 다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자신만을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타인에게 친절하고 겸손하다. ‘안목이란 자신이 발견한 원석을 갈고 닦아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정성이다.

농부에게 밭이란 그의 일상日常이다. 일상은 보통사람들이 어제하던 일의 반복이며 그냥 지나치는 모든 것들이다. 위대한 개인은 일상을 남다르게 본다. 안목은 위대한 작곡가나 화가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감정사가 해석에 사용하는 도구만이 아니다. 안목은 일상에서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아 보는 단순하고 사소한 것들을 유심히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보려는 의지다. 매일 매일 다가오는 인생을 생경하고 낯설게 보는 연습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지닐 수 있다.

안목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것을, 나도 보려는 욕심이 아니다. 안목은 남들이 지나친 것을, 남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이다. 안목은 드러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것, 숨겨진 것, 은닉된 것을 발견하고 응시하는 내공이다. 2세기 그리스도교 영지주의 문서인 <도마복음서>는 보물을 찾는 열정을 담은 어록이 있다. 영지주의는 기원후 1,2세기 지중해 지식인들의 그리스도교 이해로, 예수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 사상이었다. 기원후 4세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제국종교가 되면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사라졌다. 100년 전 고고학자들이 이집트 낙-함마디라는 장소에서 콥트어(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단계언어)로 기록된 영지주의 파피루스를 발견하여 그 사상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도마복음서> 어록 2번은 은닉된 것을 발견하는 안목을 수련하는 단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을 찾는 사람은, 그것을 찾을 때까지 찾는 행위를 멈추지 말아야한다.

그들이 그것을 찾았을 때, 당황하여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런 후 그들이 (한동안) 혼란에 빠진 상태를 유지하면, 자신들이 발견한 세계를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만물을 지배할 것이다.”

안목은 일생의 사소함과 단순함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것을 찾는 능력이다. 안목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은, 환경을 탓하고 운명을 탓한다. 자신의 불운을 야기한 장본인은 자신뿐이다. 안목을 지니는 자는 보고 또 보는 사람이다. 그 반복적인 응시를 통해 대중이 볼 수 없는, 공동체가 가야할 길을 선명하게 보는 자다. 그는 듣고 또 듣는 사람이다. 반복적인 자기청취를 통해, 내면에서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확신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다.

<도마복음서> 어록 3에서 천국의 위치를 정확하게 집어준다.

당신의 리더들은 당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천국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새들이 당신들보다 앞서 이미 천국에 가 있는 셈입니다.

또 당신의 리더들에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천국은 바다 속에 있습니다.’

그러면 물고기가 당신들보다 앞서 이미 천국에 가 있는 셈입니다.

천국은 당신들 안에 있고, 천국은 당신들 밖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리더들은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고 싶어 하는 천국을, 대중들이 갈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 높은 하늘이나 깊은 바다에 있다고 호도한다. 그러나 위대한 리더는 삶에 대한 깊은 묵상과 성찰을 통해, 대중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천국을 깨닫게 유도한다. 리더는 안목을 통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느낄 수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예술가다.

, 여기 안목의 숭고함을 그린 그림이 하나 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안개바다 위에 있는 방랑자>(1818)라는 그림으로 리더의 안목과 결기를 숭고하게 표현하였다. 학자들은 최근에 뒷모습만 보이는 이 모델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그는 나폴레옹과 전쟁을 벌인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위해 전쟁에 참가하다 전사한 특수요원 대령 프리트리히 고트하드 폰 브린켄Friedrich Gotthard von Brincken이다. 그는 평상시 독일 드레스덴 남동쪽에 우뚝 솟은 엘베산맥을 관리하던 산림청 최고관리였다. 그는 1814년 프러시아-니폴레옹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이 그림은 본 브린켄에 대한 웅장한 비문인 셈이다.

폰 브린켄은 깊은 녹색 외투와 긴 부츠신발을 착용했다. 그는 안개가 낀 산맥들을 조용하게 내려 보고 있다. 오른 손으로 바위위에 걸쳐놓은 지팡이가 그의 몸을 지탱한다. 그는 경치에 몰입하여 황홀경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검고 갈라진 바위위에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경치를 온몸으로 포옹하고 있다. 이 그림 전체의 중심점은 그의 정중앙에 위치한 가슴이다. 그의 가슴은 이 그림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중심이다.

프리드리히는 논리, 이성, 질서를 기반으로 한 18세기 계몽주의를 무너뜨린 1789년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담았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인간의 가슴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창작의 영감이 되는 감성, 상상력 그리고 숭고함을 발굴해냈다. 그는 폰 브린켄의 뒷모습을 그렸다. 폰 그린켄은 이 그림을 보는 우리다. 프리드리히의 아바타인 폰 브린켄, 그리고 폰 브린켄이 된 우리, 그리고 우주가 합일合一되는 순간을 그렸다. 승화된 개인은 자신만의 일상이라는 거룩한 산에 올라 남다른 안목을 훈련하는 자다. 그리고 그 안목을 자신의 몸에 지닌 자다.

<안개바다 위에 있는 방랑자>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 유화,1818, 94.8 cm × 74.8 cm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달관6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여섯 번째 글의 주제는 달관(達觀)이다.

달관(達觀); 국민영웅 군견 달관이가 국민에게 던진 질문은

요즘 나는 온통 달관이생각뿐이다. 달관이는 실종된 조은누리를 발견하여 실의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에서 감동과 희망을 준 군견 셰퍼드다. 개는 인간의 가장 충실한 친구로 야만적인 인간을 문명적인 인간으로 견인하였다. 기원전 4만년경,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빙하로 덮힌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같은 유인원들과 경쟁하고 있었다. 동물과 유사한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 문화적인 인간 문명을 구가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로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도움 준 은인이 있다. 바로 회색 늑대였다가 인류와 동고동락을 시작한 사육된 늑대, 즉 개였다.

프랑스 남부 아르데쉬에서 발견된 쇼베동굴 벽화는 인류는 더 이상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존재의 의미로 여기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자비, 정의, 배려와 같은 가치를 존재 의미로 삼아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남긴 최초의 벽화들이 존재한다. 쇼베 동굴에는 인간의 진화 과정을 밝혀주는 중요한 발자국이 있다.

여덟 살에서 열 살 정도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맨발자국과 늑대 혹은 큰 개로 추정되는 동물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늑대가 인간에 의해 사육되면서 개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1만 년 전 중국과 중동 지방에 인간이 기르는 최초의 개가 등장했다고 추정할 뿐이었다. 그러나 쇼베 동굴에서 발견된 이 발자국들은 그것보다 훨씬 전인 28000년으로 추정된다.

쇼베 동굴에 남겨진 동물의 발자국은 야생 늑대도 개도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제 막 사육을 시작한 단계이므로 이 동물을 편의상 늑대-로 부르기로 하자. 이 늑대-개는 인간이 주는 먹이로 다른 야생동물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고, 인간은 늑대-개가 그를 지켜주어, 밤에 편히 잘 수 있었다. 인류가 아마도 저녁에 편히 자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이때였다.

인류는 늑대-개와 협동하면서 사냥의 최강자가 되었고,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심지어는 안 보이는 세계, 사후세계를 상상하여 발명하였다. 나는 은누리를 발견한 달관이를 보고 쇼베동굴의 늑대-개가 생각났다. 나는 잠시 달관이가 되어 조은누리양을 구출한 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다음은 그 상상력의 내용이다.

나는 201212, 셰퍼드로 태어났다. 온몸이 검은 색이란 사실을 최근에 거울보고 알았다. 20142월 말, 추운 겨울에 군인들이 나를 찾아와 군용트럭에 태워 어디론가 데리고 가고 있었다. 나는 철망달린 트럭 뒤 칸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들이 나를 식용견으로 여겨 무시무시한 장소로 팔러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소문으로 인간들이 동료들을 잡어 먹는다는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 (대한민국은 지상에서 유일하게 개(식용) 농장이 있는 국가다.

겉으론 문명국가인 척하지만, 대한민국은 개고기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다. 식용견을 키우는 견사를 보면 비위생적이기 짝이 없다. 우리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으면서 까다롭게 어디서 어떻게 도축되었는지, 위생검증을 받았는지 따진다. 적어도 위생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검증시스템이 있다. 그러나 식용견은 국가의 관리를 벗어나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도축 했는지 알지 못한다. 식용견을 먹는 행위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위해危害행위다.)

나는 튼튼한 치아로 철망을 끊고 달리는 트럭에서 뛰어내려 근처 산으로 도망쳤다. 후에 내가 탈출한 곳이 중앙고속도로 어디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눈 덮인 근처 야산에서 하루를 보냈다. 한 밤 중 공포는 무시무시했다. 춥고 배고프고 가끔 다른 야생동물들이나 유기견들의 발자국 소리는 내 존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야산은 험한 곳이다. 그곳엔 인간들이 수없이 설치한 가혹한 덫이나 올무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조만간 그들이 유인한 미끼에 끌려 꼼짝없이 잡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야산에서 비참하게 홀로 죽어가거나, 혹은 새벽마다 트럭을 몰고 유기견을 찾아다니는 개장수에게 잡혀 인간들의 밥상위에 올려 질 것이다.

나는 후회했다. 그 선량하게 생긴 군인들을 믿지 못해 도망친 내 자신이 미웠다. 그 다음 날 아침, 산 저 밑에서 어제 나를 찾아 온 군인의 체취가 내 코로 슬며시 들어왔다. 나는 집중하면 바람을 타고 오는 800미터 반경 동물의 냄새를 모두 구분해 낼 수 있다. 그 군인의 목소리도 점점 가까이 들렸다. 어제 만난 그 군인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내가 살아야 할 남은 생을 위한 최선이라고 판단하였다. 나는 그 군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 군인은 가출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가 간 곳은 육군 제1군견교육대다. 이곳은 많은 개들이 들어와 군대에 필요한 탐지-수색견으로 훈련받는 장소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에 네 시간씩 훈련을 받았다. 매일 매일 일정한 음식과 운동으로 나는 군견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 교육대에는 매년 200마리 정도의 군견 후보들이 태어나고 입소하지만, 군견으로 발탁되어 실제 군대에 배치되는 개들은 극히 일부다. 이곳에서 태어난 유견들은 탐색견이 되기 위한 시험인 물품 소유욕과 사회성들을 심사받는다. 그러나 탈락되면 안락사 처리되었다. 나는 어제까지 같이 놀던 친구들이 부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의 도움으로 인간이 오늘날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인간이 야속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나는 그런 헛된 죽음을 부당하게 당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참가하였다. 훈련사 핸들러들의 요구를 금방 간파하고 완벽하게 완수하였다. 그들은 나를 달관達觀라고 불렀다. 나는 핸들러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읽어 버렸다. 그들이 보상 음식을 주기 때문에,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최선인 후각을 발전시켜 훌륭한 군견이 될 것이다. 나는 훈련을 마치고 운이 좋게 극히 일부만 선택된다는 군견으로 발탁되었다. 나 때문에 선택받지 못해 탈락되어 헛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친구들을 위해, 나는 군견으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였다.

내가 배치된 곳은 32사단 기동대대다. 나는 이곳에 배치된 지 6년이 넘는 최고참이다, 며칠 전(201982) 한 중요한 임무가 떨어졌다. 지난 723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가족들과 등산하던 조은누리양이 실종되어 10일이나 지났다는 것이다. 군인들이 5700명이나 투입되어 근처 산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은누리를 찾지 못했다. 내가 야산에서 혼자 지낸 경험을 상상하면, 은누리는 어린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건장한 성인도 이 더운 날씨에 홀로 야산에서 3일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쭉 흘렀다. 은누리는 5년 전 추운 겨울 야산에서 숨어있던 나였다. 그녀가 어떻게 홀로 열흘 동안 버티고 있을까? 그녀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희미하지만, 나는 은누리를 찾고 싶었다.

우리는 한조가 되어 은누리가 길을 잃은 최초의 지점에서 수색을 시작하였다. 32사단 기동대대 박상진(44) 원사, 매일 동고동락하며 나를 훈련시켜주었던 김재현 일병, 그리고 내가 한조다. 우리는 태양이 중천에 떠올라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대낮에 수색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은누리와의 연락이 끊어진 최초지점인 충북 청주지 가덕면 무심천 발원지에서 코를 쫑긋 세웠다. 내 조상은 원래 북극과 같은 추운 지방에서 살던 회색 늑대였다. 우리는 추운지방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몸을 털로 무장하여 겨울을 나곤했다. 온몸에 털은 진화를 통해, 생존을 위한 최고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더운 날씨에 우리의 털은 인간이 겨울에 입는 모피코트와 같다. 나는 이 모피코트를 입어 땀으로 열을 발산하지 못해 혀를 길게 내밀고 헐떡거리며 은누리의 옷에서 맡은 체취를 기억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은누리의 체취가 나는 쪽은 마을 쪽이 아니라 오히려 등산해야하는 가파른 산쪽 이었다. 나와 김 일병이 앞서고 박 원사가 뒤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산에 남아 있는 은누리의 체취를 따라 거의 700m나 등산하였다. 동물은 체내온도가 3도 이상 올라가면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너무 지쳐 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마다 김 일병과 박 원사가 나에게 물을 주며 격려하였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은누리의 체취를 더욱 강하게 맡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은누리를 발견하였다. 오후 240분이였다. 나는 온몸이 낙엽으로 덮였지만 은누리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고 그녀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임무를 완수했다. 그래서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보고동작報告動作 자세를 취했다.

보고동작이란 찾던 대상을 발견했을 때, 내가 취하는 행동으로 앉는 자세다. 앉는 자세는 엉덩이와 뒷발을 땅에 붙이고 앞발은 곧게 뻗은 후, 그 대상을 가만히 보는 행위다. 보고동작이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했을 때, 내 자신에게 바치는 존경의 표시다. 보고동작에는 말이 없다. 나는 은누리를 찾았다고 멍멍 짖지 않는다. 나는 침묵沈默했다. 김 일병은 나의 동작을 보고, 은누리를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낙엽이 은누리의 온몸을 가린 상태다. 자연이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거의 데려갈 찰나였다. 김 일병은 박 원사에게 알렸다. 박 원사는 달려가 은누리를 확인하고 물었다. “누리야! 누리야!” 은누리는 희미해지는 정신을 모아 입을 겨우 열어 말했다. “.” 이제 박 원사는 은누리를 덮은 낙엽을 걷어내고 물을 조금씩 먹였다. 이들은 이제 700m가 넘은 가파른 산을 내려와야 한다. 나는 이들이 걸어 내려가야 할 길을 터주고, 박 원사와 김 일병은 은누리를 번가라 가면서 업고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잃었던 은누리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나에게 오늘 하루를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다. 은누리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쉰들러스 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이 생명을 구해준 쉰들러에게 선물한 반지에 적힌 인용구가 생각났다. <탈무드> 미쉬나 산헤드린 4.5에 등장하는 문구다.

유대인들이 오스카 쉰들러에게 선물한 반지

한 사람을 구하는 사람은 온 세상을 구한다.”

은누리를 구출한 사실이 알려져, 기자들이 몰려왔다. 수십명이 카메라를 들고 나를 사진 찍는다. 나는 저 멀리 산을 바라보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으로 물었다. “당신 인간들은 누구 한명을 구해본적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