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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by 자한형 2026.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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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에 걸쳐 찍었다아흔 노학자의 일상 & 유주현  

인문학 다큐 기이한 생각김우창 교수·최정단 감독

철학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강연을 그대로 찍을 순 있지만, 학자의 관념적인 텍스트를 미학적인 영상물로 번역한다는 건 다른 문제다.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던 최초의 인문학 다큐멘터리 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21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됐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됐고, 배급사를 물색 중이다. 사유의 주인공은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김우창(89) 고려대 명예교수다. 2018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 학회인 아카데미아 암브로시아나 정회원으로 선정됐고, 2022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인문학의 거목이다. 문학과 동서양철학, 과학·정치·예술 전방위로 사유의 지평을 펼쳐 왔기에 피에르 부르디외, 오에 겐자부로 같은 세계적 사상가들이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그의 머릿속을 적잖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풀어낸 건 제자 최정단(58) 감독이다. 2004년부터 한 손에 카메라를 든 채 스승을 따라다녔고, 오직 이 영화를 찍기 위해 회사를 차리고 젊음과 재산을 갈아 넣었다. 그 순수한 열정은 웬만한 아이돌 팬덤이 무색한데, 개인적인 이유는 아니다. 온 세상이 K컬처에 열광하지만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시대를 ‘K철학으로 돌파하자는 제언이다.  

김우창(오른쪽) 고려대 명예교수와 그의 철학을 담은 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21년 만에 완성한 최정단 감독. 김정훈 기자

폭설이 내린 겨울 아침. 가파른 계단에 쌓인 눈을 치우며 구십 노인이 조심조심 발걸음을 뗀다. 대문을 열고 신문을 줍더니 다시 계단을 힘겹게 올라 물기를 털고 신문을 펼친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해 이렇게 끝난다. 대단한 볼거리는 없다. 김우창 교수와 부인이 40년 넘게 살고 있는 서울 평창동 주택은 정원이 밀림처럼 우거졌고, 실내엔 선대부터 쓰던 낡은 가구와 책들이 빼곡하다. 이 오래된 집을 중심으로 부부가 보내는 아날로그한 노년의 일상을 보고 있자니 빔 밴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떠오른다.

집안은 계단도 많고 보수할 곳 천지지만 이사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 세계적 수학자 김민형 워릭대 교수 등 자녀들의 걱정도 아랑곳없다. 검소한 성품 때문일까. 집안 구석구석을 비추는 카메라를 따라가며 깨닫는다. 이 집은 40년의 기억을 품은 공간. 장성한 손주가 어릴 적 그린 그림 같은 가족의 흔적에 온기가 감돈다. “기억이란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현재를 풍부하게 하며 주체적인 지속을 보장해주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라는 김 교수의 철학 그대로다. 밀림 같은 정원 또한 자연에 기술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되는 삶을 살 때 행복할 수 있다는 생태주의 그 자체다.

심미적 이성’ ‘구체적 보편성’ ‘생태주의등으로 요약되는 김우창의 사유와 언행일치한 삶이 담긴 영화다. 그런데 20년 넘게 걸려 완성된 영화를 그는 볼 생각이 없다. “내 얼굴을 내가 봐서 뭐하겠어요. 애인 될 사람한테나 보여줘야지(웃음), 내가 무슨 흥미가 있겠어. 20년을 찍었대봤자 난 90년을 살았는데요.”()

김 교수 한문이 우리 뿌리인데 안 배우면 쓰나

왜 이렇게 제작 기간이 오래 걸렸나요.

최정단=“초기엔 강연 아카이빙이 목적이었어요. 번개 맞은 듯한 깨달음을 주는 선생님의 보석 같은 말씀들이 날아가 버리는 게 아까워 기록을 하다 보니 알리고 싶어졌죠. 한국 대표 석학을 대중은 전혀 모르잖아요. 강연만으론 영화가 안되는데 일상을 못 찍게 하셔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세월이 갔어요. 막판에 일상을 공개해 주셔서 겨우 완성했죠.”

김우창=“보통사람 사는 게 다 똑같아요. 사건·사고가 있어야 영화가 될텐데, 일상이 무슨 영화가 되나요. 허락한다고 종이에 사인한 적은 없는데 이렇게 됐네요.”

=“5분 찍으면 나가라고 하시니 멋진 앵글도 잡을 수 없고,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 카메라 들고 눈치 보며 혼나면서 찍었죠. 인간 김우창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자투리라도 모아서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야말로 심미적 이성아닌가요.

=“심미적 이성이란 이성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저절로 아름다운 것이 되는 거죠. 가장 간단한 이성이 수학적 계산인데, 돈 계산만 하다 보면 답답해서 못살아요. 사람이 좋아하는 건 감각적인 아름다움이고 그 근본이 심미적인 건데, 그것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이성을 추구하게 되죠. 돈을 벌면 집을 꾸밀 수 있잖아요. 서울이란 도시를 아름답게 잘 지어 놓으면 구경하러 많이 오고, 그러면 돈도 더 벌고 권력도 생깁니다. 돌고 도는 거죠.”

=“K대중문화가 핫해졌지만 철학도 내세울 때가 됐어요. 큰 사상가의 존재가 그 나라 문화의 척도인데, K사상을 대표하는 분이 김우창 선생님이잖아요. 외국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칠 교재가 없어서 선생님이 50년 전에 쓰신 궁핍한 시대의 시인을 번역 중이에요. 선생님은 이미 2018년 암브로시아나에서 K컬처 르네상스를 예견하셨죠. 한국에도 동서양과 철학·정치·문학·과학을 다 아우르며 글 써온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K컬처 르네상스의 저력이 뭘까요.

=“우리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에 열린 문화라는 게 중요한 사실이죠. 역사학자 조지프 니덤은 중국이 하나의 나라가 된 걸 유감스러운 일로 봤어요. 서양보다 과학이 발달했던 중국이 통일 이후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성장하기 어려웠다는 거죠. 유럽은 데카르트 같은 사람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생각을 전파했잖아요.”

AI시대에 인문학이 위기라고 합니다.

=“한문을 못쓰게 되니 우리 문화의 뿌리가 약해진다 생각해요. 한문이 중국 문화인 줄 알지만 중국 사람도 일부러 배워야 되는 게 한문이죠. 우리는 집안에 누가 죽으면 한문으로 문집을 낼 정도로 한문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그게 우리 뿌리이자 원천이거든요. 근본을 알게 해야 인문학도 발전할 겁니다. 일본이 한참 성장하다가 1920년대 이후 인문학에 관심을 가졌는데, 모두가 정치·경제에만 몰두해 인문학을 등한시 하니까 그걸 보충하려는 움직임이 나온 거죠. 우리도 위기가 새로운 출발점이 될 테죠.”

최 감독에게 스승 김우창은 늘 어려운 존재다. 한때는 멀리서 보이면 도망갈 정도였지만, 자살충동에 시달리던 20대 시절 김우창의 글에서 구원을 얻었다. “세상 의지할 곳 없을 때 선생님 말씀을 만났어요. 삶에서 고통은 불가피하고, 고통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제란 걸 알았죠. 선생님 글에는 고통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시의 영혼이 있거든요.”()

김우창 다큐멘터리 & 정영기

인문학자의 업적은 대부분 책으로 정리하여 기념한다. 그런데 한 영화감독은 김우창 교수(고려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의 사상과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다. 그는 최정단 영화감독이다. 김우창 교수의 제자인 그는 2004년 김 교수의 정년퇴임 출판기념회를 카메라로 찍기 시작한 이후 2014년 영화사를 설립하여 김우창 다큐멘터리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를 제작하고 있다. 현재는 5월 전주영화제를 시작으로 영화제에 출품해 올해 하반기에는 해외영화제에도 다큐를 소개할 예정이다.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더라도 수 억원의 돈이 들어가는 다큐멘터리를 16년째 진행하고 있다니 놀랍다. 그것도 인문학자의 사상과 삶을 영상으로 만들고 있으니 인문학을 공부하는 필자로서도 당연히 관심이 가는 일이다.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우리나라 인문학자에 대한 최초의 다큐멘터리이다. 해외의 경우 철학자 `질 들뢰즈의 A to Z`와 유명한 슬라보예 지젝의 `지젝!`이 있다.

최 감독의 제작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최 감독은 김 교수의 깊은 사유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진주아파트 방화와 살해 사건을 예로 들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인문학의 공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인문학자 김우창 교수의 삶이 담긴 다큐를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얘기하였다.

영화에는 한 고등학생이 김우창의 책을 읽고 자살하려던 마음을 접고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는 내용이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한 대학교수가 본인이 김우창의 글을 만나지 못했다면 엄청나게 타락했을 거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중심을 잃기 쉽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 체하면서 살려고 한다. 스스로 느낀 삶의 진실이 아니라 세상에서 좋다고 높이 치는 것들을 추구하면서 헛된 명성을 쫓는 가짜의 삶을 살고 있다. 김우창 교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들은 어떠한 삶의 지침 혹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 감독에게는 다큐 제작의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난해한 책이나 딱딱한 강의가 아닌 수려한 영상을 통해 인문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 감독은 다큐를 통해 한국인문학자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한국인문학이 제 3세계 변방 학문에서 한류 돌풍의 신근원지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김 교수를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의 인문학자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석학으로서의 김우창의 면모는 외국의 작가, 사상가들과의 교류에서 드러난다. 일본을 대표하는 좌파 지식인 가라타니 고진은 김우창과 본인의 생각이 뚜렷이 다름에도 김우창을 존경한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두 분 중 한 분이 한국의 김우창이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로 꼽히는 `아카데미아 암브로시아나`20181019일 밀라노에 있는 암브로시아나 도서관에서 임명식을 열고 김우창 교수를 학회의 새로운 정회원으로 선출했다.

민음사는 김우창 전집 19권을 발간하였다. 전체 15000쪽이므로 한 권 당 790쪽 정도가 되니 보통 책 40-50 권 정도의 분량이 된다. 이런 방대한 저작을 통해 김우창 교수는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분야의 서구이론을 소화해서 우리사회와 삶의 문제들을 깊이 있게 사유하고 성찰하는 사상가로 활동하였다.

필자는 1978`궁핍한 시대의 시인`을 서점에서 구입해 읽었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은 전집 중에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일제 시대 활동했던 만해 한용운을 말한다. 당시 방법론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물음에 대하여", "나와 우리"를 읽으며 글의 긴 호흡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이한 생각의 바다를 항해하는 김우창의 깊은 사색의 눈을 통해 나와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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