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 -최승호-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있는 흙을 베풀어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고슴도치의 마을>(1994)-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관념적, 사색적, 명상적
◆ 특성
① 대상을 의인화하여 대상의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②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보여줌.
③ 수미 상관의 구조를 통해 주제를 부각시킴.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 역설법
* 때때로 바람은 ~ 공터에 꽃을 피운다. → 바람으로 인해 꽃이 피는 공터(자연의 변화와 생성의 순간)
* 공터는 말이 없다. → 존재의 생로병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임.
* 그들의 늙고 시듦에 ~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 변함없이 운행하는 공터
* 밝은 날 ~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 공터의 순환적 · 자연적 원리
* 흔적을 지우고 있다 →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운행하는 공터
* 아마 흔적을 ~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 수미 상관의 구조를 통해 의미를 강조함.
◆ 제재 : 공터 → 화자가 통념과 달리 새롭게 바라보는 대상임.
◆ 화자 : 공터의 우주적 원리를 말하는 이
◆ 주제 : 공터의 우주적 · 자연적 질서
[시상의흐름(짜임)]
◆1~2행 : 공터를 지배하는 고요
◆3~4행 : 빈 듯하면서도 차 있는 공터
◆ 5~12행 : 변함없이 운행하는 공터
◆13~18행 :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공터
◆19~20행 : 공터를 지배하는 고요
[이해와감상의 길잡이]
이 시에는 나직한 가운데 사방으로 뻗어나가 독보하는 힘이 들어 있다. 옛날에 나는 이것에서 질시나 좌절보다는 존경을 느꼈었다. 평생 이런 시를 써볼 수 있을까, 하고. 무심한 듯 섬세한 시인의 눈이 모래알의 움직임을 살피고, 보이지도 않는 바람들을 본다. 꽃이 피고 도마뱀은 기고 새들은 왔다가 간다. 빈 듯하다 생명으로 일렁대는 공터는 우리가 머무른 세계의 다른 이름일 터이다. 하지만 생명은 일었다가는 지고, 사물들은 입을 다문다. 공터는 역시 빈 곳이다. 그런데 빈 것은 없는 것인데도 이곳을 다스리는 존재가 있다고, 그것이 '고요'라고 시인은 말한다. 고요는 무상의 제왕이다. 시인의 눈은 이렇게 안 보이는 것도 보고, 더 안 보이는 것도 본다. '법'이라 하든 '도'라 하든 형언하면 사라져 버리는, 고요라고밖에 달리 말하기 어려운 공한 것이 만상의 배후에 서 있다. 고요로 열고 고요로 닫는 스무 줄짜리 우주. <시인, 이영광>
◆ 더 읽을거리
이 시의 대상은 '공터'이다. 아무도 없는 여름 한낮 그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 앉아 시인은 적요와 적멸이 아니라, 동그란 세모와도 같은 역설적인 텅 빈 충만을 지켜보고 있다. 고요의 지배 아래 공터에는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풀씨들을 던져 꽃을 피우는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 또 거기에는 밝은 날 지나가는 도마뱀과 스쳐가는 새발자국과 빗방울과 그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이 있다. 그러나 공터는 이 존재하는 것의 고통스런 생로병사에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저 흙을 베풀고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이 공터에는 어떤 흔적조차 오래가지 않는다. 그 흔적은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알들'로 지워져 버리기 때문이다. 고요 아닌 그 어떤 것도 공터를 지배하지 못하고 고요만이 왕인 것이다.
이 시에 내재된 기본적인 상상력은 유추이다. 하나의 대상을 구축함으로써 넌지시 다른, 정작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대상을 환기시키는 상상력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 곧 공터를, 고요가 지배하는 공터를 통해 시인이 건네고자 하는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터라는 대상의 즉물적인 세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세계임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구체적인 단서는 '늙고 시듦'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생로병사의 인생의 사고(四苦)를 의미한다. 더욱이 이 시 전체 흐름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항대립을 넘어서 있다는 점에서 현저히 불교적인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텅 빈 충만'이라는 역설적인 세계인식이 도처에서 드러나며, 따라서 이 시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인간적 세계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살이인 것이다. 이 세상살이를 한 차원 높은 '빗방울'을 내리는 하늘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지독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 세상에서 삶의 진정한 주인이란 오히려 적요와 적멸뿐이라는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인식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거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그 삶의 흔적인 생의 자취란 잠깐 남기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의 발자국이자 조만간 작은 모래알로 지워져 버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유추적 상상력보다 더욱 선명한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은 관찰로서의 상상력이다. 그 관찰은 보이지 않는 '고요'를 보게 할 뿐만 아니라 '붐비는 바람, 잠드는 바람'도 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알들"이란 관찰은 얼마나 정교하고 놀라운가. 그 미세한 움직임조차 또렷이 형상화함으로써 시인은 이 세계의 놀라운 추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고재종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