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의 생명력/ 김영중
이제 세상은 온통 푸르름으로 물들어 그 싱그러움을 분수처럼 뿜어낸다. 여름의 상징인 녹음, 그 푸른 기상이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온 대지의 열기를 하늘로 뿜어 올려 푸른 불꽃을 이룬다. 젊고 씩씩해 거칠 것이 없이 내닫는 젊은이의 숨결을 녹음 속에서 느끼게 한다.
공해 속에 나타나 지평선 가득 채우는 저 푸른 생명,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다. 눈에 시원함을 줄 뿐만 아니라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니 그 싱그러움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며 생기를 돌게 한다. 감사하는 마음 또한 솟아오른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저토록 푸른 푸르름으로 나타났는가, 신비스럽고 경탄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것도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저 푸르름 또한 무수히 많은 것을 인내한 열매로 푸르름을 갖게 된 것이리라. 몰아치는 폭풍을 이겨내야 하고 뜨거운 뙤약볕을 견디어 내야 한다.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높이만큼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캄캄한 어둠을 더듬어 수맥을 찾아가야 한다. 그 노고와 아픔, 또 그 고독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자연은 말이 없으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며 배움을 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고단하고 쓸쓸할 때가 참으로 많다. 서러움과 의로움을 느낀 적도 적지 않다. 때론 흔들리며 발밑이 무너져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절만감, 실의에 빠지기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나 혼자만이 소외된 것 같고 불행한 것 같아 죽고 싶은 자학의 시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여름의 녹음을 보면서 외롭고 고단하고 절망을 느낀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 본질 속에는 고독, 절망이 내재하여 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 생명인들 목숨을 부지하는 데 수월함이 있겠는가, 행복의 절정에는 불행의 그림자도 동반되고 즐거움 속에도 슬픔의 씨앗이 숨겨져 있음이다.
분주하고 부산한 여름날의 한가운데서 짙푸른 녹음은 최선을 다하여 절정의 삶을 사는 생명이다. 시간에는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있다. 현재의 이 순간이 다음엔 과거가 되며 미래는 곧 다음 순간 현재가 된다. 지금 이 순간 뜨겁게 사는 열정 없이는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 또한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여름날의 녹음은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삶을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그 푸르름 앞에 서면 권태나 나태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새로운 삶의 개안을 실감하는 순간이 되어 함부로 자기를 방비할 수 없다는 결의가 생긴다. 실로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이 여름 최선을 다하며 삶에 흔적을 남기는 일에 임하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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