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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현대수필3

53. 말린 것에 대한 찬사

by 자한형 202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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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것에 대한 찬사 권현옥

모든 말린 것에 대한 찬사가 인다.

수분과 향 다 빼고 주검처럼 있다가 다시금 물속에서 전설처럼 살아나는 몸, 뒤척이는 다시마를 보며 생각한다.

살아나는 것은 말라있던 것인가. 말린 씨앗과 말린 해초와 말린 나물, 말린 생선과 말린. 그리고 말린 생각들.

냄비에 다시마 대여섯 개를 넣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다시마는 몸뚱이를 크게 뒤척였다. 말라서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다시마는 찬 통 속에서 몸끼리 부딪힐까 빳빳이 찌르며 밀어내더니 냄비 안에서는 끓어대는 물 등을 타느라 중심을 못 잡고 난리다. 요란스럽게 몸을 풀어 부드러워지고 있다. 굳은 몸을 펴가며 갈증을 다 해소한 다시마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는지 무게 있는 유영을 한다.

충분히 황홀했나 보다.

몸은 원래 모습을 찾았다는 듯 벌떡 살아나 파도와 함께 살았던 부드럽고 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조각마다 숨겨두었던 바다를 불러왔다.

나는 그것을 바다냄새라며 킁킁댄다. 향은 미미하여 시각으로 왔을 뿐인데 살아나는 바다로 다가가고 있다. 미안쩍은 마음이 든다. 다시마는 바다를 잃고 말라 있다가 끓는 물속에서 몸부림치며 제 향을 찾은 것인데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나의 바다를 부르고 있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상상이 일정을 계획한다. 떠나기 전, 숙소 정하기가 힘들었다. 호텔방에서의 바다는 하이그로시벽처럼 멀고 시릴 것 같았고 모텔에서 보는 바다는 친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어색한 관계일 것 같아서 민박집으로 정했다. 바닷가에 줄지은 민박을 정하는 일은 어려웠다. 집들의 등을 보고 차를 세워야 하는, ()과 우연의 행운에 맡겨야 했다. 바다와 지극히 가까운 거리, 허술한 민박집 앞에서 내리자 집주인이 득달같이 나타났다. 값을 치르고 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 귀를 때리는 파도소리에 잠시 발길을 멈춘 동안 일어난 일이다. 차라리 후련했다.

몇 발자국 떼면 바닷가다. 어둑해진 저녁 무렵이라 철썩 소리가 매섭게 들렸고 바닷물은 검었다. 바짝 가보니 다시마 동산이었다. 끊임없이 치대는 물살에 못 이겨 뿌리가 뽑힌 다시마가 척척 동료들 등에 올라타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바닷속에도 긴 허리를 세우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음습함이 출렁거리는 바다였다.

자리 잘못 잡은 건가, 시커먼 다시마만 잔뜩 있고.’

밤새 다시마 바다는 무겁게 철썩거렸다. 잠이 들기에는 소란스러웠고 귀 기울이기에는 규칙적이어서 몽롱했다. 잠도 못 들고 그렇게 쓸렸다 몰렸다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옆집 민박에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바닷가에 다시마를 한 가득 펼쳐놓고 말리고 있었고 한쪽에는 말린 다시마에서 모래를 털어 가위로 뚝뚝 잘라 부대에 담고 있었다. 부부로 보이는 그들은 매년 이렇게 한 달 간은 민박에서 지내며 다시마를 마련해 간다고 했다. 친지와 주변 사람과 나누어 먹는다고. 나는 그들이 이 다시마로 좋은 수입을 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함께 앉아 잠시 만지작거렸다. 바짝 마른 다시마에서 모래를 훑으니 모래는 미련도 없이 떨어져 나갔고 정사각형으로 잘린 다시마는 바다를 떠나려는 각오처럼 빳빳이 몸을 축소시키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항구에 가서 들어오는 배들과 생선을 구경했다. 전복죽을 사먹고 와 보니 아직도 두 부부는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 바닷가로 갔다. 파도에 견디지 못해 떨어진 다시마가 봉분처럼 올라와 쌓였다.

그 중 세 줄기를 주웠다.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두거나 집착하는 것을 싫어하는 터라 나 자신도 내가 정말 이걸 가져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두 부부가 좀 가져가라는 것을 극구 사양하고 내가 주운 세 줄기를 차에 널었다.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차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 햇살이 비릿한 냄새를 훔치면, 바람은 그것을 열심히 가져갔다. 다시마는 제 몸의 물기와 바다냄새를 날려 죽어가고 있는 순간, 내쉬는 숨 냄새가 대단했다. 대관령 고개를 넘어오면서는 고함을 지르는 듯했다.

말라서 살고자 하는 그 냄새의 힘이 서울까지 오는 길을 밀어주었는지 수월했다.

집에 오자마자 비릿한 다시마의 긴 허리를 빨랫줄에 척 걸쳐 놓았다. 나답지 않은 행동이 괜찮아 보였다. 다시마는 속으로 바다를 다 간직했는지 이제 순하게 마르면서 딱딱해졌다. 긴 집게 모양을 하고 미동도 않는 다시마를 걷었다. 가위로 손가락 마디만큼씩 뚝뚝 잘라 찬 통에 넣었다. 다시마는 가볍지만 날카로움을 보였다. 제 곁의 빈 공간을 조금씩 다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추억하고 자시 살아날 것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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