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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현대수필3

51. 마지막 수업

by 자한형 202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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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구양근

나의 28연간의 교수생활을 마감해야 할 날이 갑자기 다가왔다.

정년을 한 학기 남겨놓고 홀연히 국가의 부름을 받은 탓에 약간 앞당겨 교수생활을 마감해야 할까 생각했다. 학교가 가까워오자 가슴이 뛴다. 부랴부랴 할 말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옳지, 그 말을 해야지.”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큰 뜻을 품지 않음을 항상 불만으로 여겨왔다. 나의 그 당부의 말을 오늘 학생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주기로 했다.

강의실을 들어선 나는 오늘이 나의 마지막 수업임을 선포했다. 학생들이 갑자기 웅성대기 시작한다.

학생 여러분! 오늘은 기나긴 내 교수생활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날입니다. 저는 오늘 이 예기치 못한 고별강의에서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꿈을 가지라! 는 한 마디의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방의 C대학에서 3년간 근무하고 우리 대학으로 옮겨와서 2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C대학은 우리 대학보다 수능점수가 훨씬 낮은 대학입니다. 그런대도 그 대학에서는 장관도 나오고, 많은 국회의원도 나왔으며, 판검사가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이렇게 역사가 깊은 대학인데도 단 한 명의 장관도 나오지 못했고, 국회의원 한 명도 나오지 못했으며, 판검사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대학이 있나 놀랐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아! 우리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 없었구나, 꿈을 심어주지 못한 것은 첫째 여러분의 부모님의 잘못입니다. 에이! 여자애가 뭐 공무원 시험이나 보고 교사자격증이나 하나 따면 되지, 이런 식의 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교수분들도 그런 유사한 태도로 여러분을 대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책임은 여러분 자신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자인 내가 뭐. 이렇게 자학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생각들일랑 모두 털어버리십시오. 여러분은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여대 졸업생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약간 더 불리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며, 내가 이런 대학을 하나 짓고 싶다면 지어질 것이오, 나는 중문과 학생이기 때문에 중국에 진출하여 우리의 고토 고구려를 찾아오겠다. 혹은 간도 정도는 꼭 빼앗아 오고야 말겠다 한다면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꿈이란 것은 처음 들어서는 좀 황당한 것입니다. 좀 웃기는 것입니다. 들어서 황당하거나 웃기지 않으면 그것은 꿈이 아닙니다.

나는 대학생 때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날로 노트에 써보며 몇 번이고 소리 내서 읽어보겠다는 것이 제 계획이었습니다. 외국어도 한국어도 그런 식으로 하니 거의 다 외워졌고 100점 맞고 1등이 되었습니다. 그까짓 것 외기 시작하니 한 학기 동안 배운 분량이 몇 페이지 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또 한중일 삼국에서 대학을 하나씩 졸업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랬더니 실지로 한중일 삼국에서 대학을 하나씩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문사철(文史哲)을 골고루 하는 학자가 되겠다고 혼자 다짐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제 논문을 다시 돌아보니 문사철에 관한 논문이 골고루 발표되어 있지 뭡니까.

대만에 유학을 떠날 때는 단돈 2백 불을 비상금으로 넣고 간 것이 저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2백 불이라고 해보았자 지금 우리 돈 2십여 만 원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나는 그 돈으로 5년간의 유학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거기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때는 문자 그대로 고랭 한 푼도 없이 떠났습니다.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동경에서 어디 한번 죽나보자 하고 일부러 비행기표 이외에는 한 푼도 휴대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웬일입니까. 죽기는커녕 나처럼 온 사람들을 위한 온갖 장치가 다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이디고 절대 죽지 않게 사회구조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일본에서조차 내 돈 단돈 10원 하나 들이지 않고 현지조달로 5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학교를 졸업하고 무조건 중국이나 미국으로 맨손 쥐고 뛰어가 보십시오. 정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확실히 보증합니다.

하여튼 저는 그렇게 하여 교수가 되고 학장이 되고 총장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독일 공관장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대통령이 독일공관장으로 점을 찍었다고 해서 공관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외교통상부에서 치르는 소위 대사고시라고 하는 그 어려운 영어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저는 그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저는 영어란 평생 피해 갈 수 없는 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어공부를 해 둔 것이 효험을 발휘한 것입니다.

이제 저는 꿈꾸기가 두렵습니다. 꾸었다 하면 다 이루어져 버리니까요. 대사라는 직분도 제가 무척이나 하고 싶어 하던 꿈 중의 하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대학교 때 부전공으로 외교학을 했고, 또 대학교 때 모교에서 주관하는 모의 유엔 총회에 두 번이나 참석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모교는 그때 미스터 엠배서더(Mr. Ambassador) 선발대회가 있었습니다. 그 엠배서더가 무척 되고 싶었지만 저는 키도 작고 생긴 것도 이 꼴이어서 그것만은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런데 그 가짜 엠베서더는 못됐지만 진짜 엠배서다가 되어 다음 달에 대만으로 떠나야 합니다.”

나의 열변(?)이 지속되고 있는데 누가 교실 문을 노크한다. 문을 열어보니 내 행동반경을 알고 있는 인문대 학장이 큰 꽃다발을 하나 들고 들어선다. 학장의 나에 대한 과찬의 말에 학생들의 눈은 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각오를 다지는 학생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주먹을 지긋이 쥐는 학생도 보인다.

책을 펴라 하고 나의 특기인 중국어 원강을 시작하였다. 빠르고 유창한 중국어로, 너희들도 꼭 이렇게 되라고, 너희들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나는 150분 수업을 완전히 다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