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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현대수필3

56. 고독

by 자한형 2022.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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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문

 

 

화려한 네온 빛에 왁작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에서, 아는 이도 없

고 갈 곳도 없이 떨고 있는 고아는 고독하다. 아내를 잃은 다음, 가족도 친구

도 없이, 무거운 다리를 끌고 혼자 시장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고 돌아와야

하는 노인의 지팡이가 고독하다. 자정이 넘어도 외로이 불이 밝혀져 있는 노

처녀의 아파트가 고독하다. 모든 사람들의 규탄을 받으면서, 사형대를 향하

여 발걸음을 옮기는 죄수의 축 늘어진 목이 고독하다. 이스라엘인들의 폭격

과 탱크의 공격을 받고, 마치 쥐구멍에 몰리듯, 베이루트의 한 구석에 밀리

면서, 세계를 향하여, 같은 아랍인들을 향하여, 반응없는 마지막 원조를 호

소하면서, 혼자서 쓰러지고 죽으면서, 밀려나가야 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인류의 도덕적 양심을 애절하게 외치면서 나치가 만든 가스실에 끌려가 죽어

야 했던 수백만 유태인들은 고독을 경험했다.

고독은 남들의 나에 대한 무관심을 의식할 때 생기는 경험이다. 사람으로

서 나는 사회적 동물이요, 따라서 나는 남들과 함께 남들 속에, 이해 관계를

맺고 상호 보존의 관계를 맺고 산다. 그러면서 내가 남들의 도움을 꼭 필요

로 하는 극한 상황에서 나는 흔히 남들의 무관심을 발견한다. 나는 내가 혼

자라는 것, 사회적 동물이면서 근본적으로 하나의 개체로서 혼자 존재해야

하는 실존적 존재, 비사회적 존재임을 의식한다. 남은 차다. 사회는 냉혹하

. 나는 혼자다. 아무도 나를 도와 주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낀

. 광장의 고독이 있다. 나를 대신해서 어떤 이가 생겨날 수 없다. 나를 대

신해서 살아 줄 아무도 없다. 그 아무도 나 대신 죽어 줄 수는없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 와서, 혼자 살다가, 혼자 기뻐하고 혼자 괴로워하다가,혼자 죽

는다.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인 고독만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냥 인

간으로서, 모든 사회적인 차원을 넘어서, 보다 더 가혹한 고독을 체험한다.

사회적으로 고독을 느끼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 해도, 나는 이렇게 사는 나

의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 나는 어째서 태어나서, 어째서 죽어야 하는가?

이렇게 존재하는 나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 죽음 앞에서, 누구나가 피

할 수 없는 이 필연적 사실 앞에서,우리의 시선은 초월적 세계로 쏠리며,

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부른다.우리는 사회적으로만 만족할 수 없다. 궁극적

삶의 의미, 궁극적 구원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차원에서 종

교적 세계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구원을 찾는 인류로서의 우리는

다 같이 아무리 밤하늘이 아름답고 화려해도, 아무리 산과 바다의 경치가 장

엄해도,크리스마스 이브에 혼자 거리를 방황하는 고아이며,아내를 잃고 혼

자 시장에 가는 노인이며,노처녀의 아파트에 늦게까지 켜져 있는 램프불이며

이스라엘인들의 폭격에 쓰러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찬란한 밤하늘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무관심할 뿐이다. 지나가는 바람이 우리의 부르짖

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쏟아지는 비는 우리의 슬픔을 씻어 주지

않는다. 불러 보고 또 불러도 하나님은 말이 없고, 기도하고 또 빌어도 절대

자는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우리를 도와 주지 않는다. 우리

를 상관해 주는 아무것도 없다. 인류는 혼자다. 로마를 태울 만큼 고독했던

네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오지도 않는 '고도를 기다리면서' 저녁놀을

지켜 보는 베케트의 비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우주 안에서 인류는 고독하

.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인간이 '집을 잃었다'는 하이데거의 말은 절실하

.

가족도, 아내도, 친구도, 집도 없는 나만이 외로운 고아가 아니다. 하나님

에게 호소하면서 집을 잃은 인류만이 고독하지 않다. 고독한 우리를 태우고

구름 위를 떠돌기만 해야 하는 지구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 말이 없는 빈

공간을 떠도는 달과 해, 무한히 뻗은 공간 속에서 뜻없이 반짝이기만 하는

무수한 별들은 더욱 절실한 고독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약 인간

의 의식, 생각에 의해서 어떤 연관이 맺어지지 않았던들, 별들을 담고 있는

저 우주, 우주를 담고 있는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은 절대적 고독을 벗

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고독은 남의 무관심, 나의 고립성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고독은 자유의

발견을 뚯하기도 한다. 귀여운 외아들 이삭을 희생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받고, 도덕과 신앙, 아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엄격한 약속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 아들 이삭을 산으로 끌고 가 죽이려던 아브라함의 고독을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리새인들에게 끌려 십자가를 메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비틀거리며 올라가던 예수는 한없이 고독했을 것이다. 싸움터에서적군에게

잡혀 죽음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국을 배반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

기를 결심한 한 무명의 병사는 고독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까 말

까 주저하는 햄릿, 비록 좋은 의도를 갖고 있지만 이웃 할머니를 죽인 후 도

덕적 갈등에 빠져 경찰에 자신의 범죄를 자백할까 말까 고민하던 '죄와 벌'

의 주인공 라스코르니코프는 무척 고독했음에 틀림없다. 우리와 더 가까이

복순이와 결혼할까 아니면 숙분이한테 장가갈까를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젊

은이들, 서울대에 갈까 아니면 이화대에 갈까를 결정해야 하는 고등학교 졸

업반 여학생은 고독을 경험함에 틀림없다.

아브라힘,예수, 적군의 손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당하며 죽기를 결심하는

병사, 햄릿,라스코르니코프,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 젊은이, 학교를 선택

해야 할 여학생은 한결같이 그들이 선택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에 가서는 누

가 무엇이라 해도 각기 그들 자신이 선택해야 할 자유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

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혼자이다. 그들이 선택한 결과가 어

떤 것이든 간에, 그 책임은 오로지 그들 혼자만이 져야 함을 알고 있다. 결정

적 선택의 마당에서 아무도, 정말 그 마우도 그를 도와 줄 수는 없다. 하나님

도 도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라야 하는가 아닌

가의 문제는 하나님이 그를 대신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

만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따를까 아니면 아들

을 살릴까를 결정해야 하며, 예수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할 것을 혼자서만이, 오직 혼자만이 선택해야 한다.

무리 괴롭히더라도 배우자를, 학교를 선택해야 하며, 우리들의 병사는 아무리

외롭더라도, 조국을 등질 것인가 아니면 적군의 손에 혼자서 죽어야 하는가

를 결정해야만 한다. 고독한 결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고독은 우리가

그냥 사물이 아니라, 의식의 자유를 가진 존재임을 드러낸다. 자유롭게 때문

,아무리 도피하려 해도 도피할 수 없는 자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선택해야 하고, 그렇게 때문에 괴롭고, 그 괴로움은 궁극적으로 고독을

느껴야 한다. 이처럼 고독은 자유와 멀리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

고 있다.그것들은 인간의 이른바 실존적 상황의 두 가지 측면에 불과하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나, 나의 삶, 나의 행동, 나의 영광과 수치,고독

속에서 나는 나의 유일성, 유일한 존재로서의 나를 발견한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적나라한 자아,모든 껍데기를 훌훌 벗고 벌거벗은 대로의

자아와 처음 직면한다. 고독은 자아를 밝혀 주는 조명이다. 내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듯이, 아무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다. 내가 남을 대신해 살

수 있고, 남이 나를 대신할 수 있다면,그것은 나의 삶이지,그 대신한 사람의

삶이 아니다. 만일 남이 나 대신에 죽을 수 있다면, 그 죽음은 남의 죽음이

, 나의 죽음이 아니다. 내가 존재하는 한 나의 삶을 살고 싶으며 살아야 하

,나의 죽음을 죽고자 하며 죽어야만 한다. 나에게 나의 삶과 죽음은 유일

무이하며, 따라서 각기 나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귀엽게 호의호식

보호를 받고 자랐다 해도, 조만간 나는 국민학교에 가서 내가 배우고 남들과

경쟁하고 싸워야 하며, 시험을 보는 불안, 진학하는 기쁨을 내가, 나 혼자만

이 경험해야 한다. 아무리 귀중한 공주라 해도, 그녀를 대신해서 말을 배우

는 고충을 겪고,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불안을 대신할 수 없다.

력을 갖고 있는 제왕이라 해도 그의 권세로써 그의 귀여운 왕자가 겪어야 할

사랑의 슬픔을 대신해서 해결해 줄 순 없다. 그러기에 란도셀 가방을 등에

메고 국민학교에 들어가는 꼬마, 배우자를 결정해야 하는 공주도 무척 고독

하게만 보인다.

고독은 자아의 진정한 모습,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를 발견케 한다. 고독을

경험하지 못한사람은 자기 자신을 진정한 의미에서 의식할 수 없다. 고독의

을 체험하지 않고, 우리는 자유를, 동물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의식

할 수 없다. 그래서 고독은 우리의 삶을 깊게 해 준다. 우리는 고독한 경험을

통해서 자아에 대한,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갖게 될 수

있다. 그러기에 고독을 모르는, 깊은 고독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피상적으

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이 저자는 큰딸

안티고네가 작은 딸 이스멘느와 더불어 보냈던 무도회의 얘기를 그린다. 무도

회에서 에몽이라는 젊은 남자는 모든 젊은 남녀들이 즐겁게 춤추고 있는 가

운데, 한 구석에 혼자 쓸쓸히 앉아 구경만 하고 있는 안티고네에 눈이 갔다.

더욱 아름다운 동생 이스멘느와 춤을 추었으면서도, 에몽의 마음을 끈 것은

구석에만 앉아 있던 외모가 아름답지 않은 안티고네였고, 에몽은 마침내 그

녀와 사랑에 빠져 약혼을 하게 된다. 놀기에 정신없는 사람들과는 달리 따로

떨어져 있던 안티고네, 그 안티고네의 고독이 깊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

.고독을 모르고 어찌 깊은 삶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한 번도 고독

에 빠져 보지 못했던 사람이 어찌 참다운 자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

다고 할 수 있겠는가 ? 고독에 젖어 보지 않았던 사람이 어찌 위대한 문학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깊은 철학적 사상이 고독을 떠나, 어찌 탄생할

수가 있겠는가 ?

하이데거는 잡담과 진담을 구별하면서,대부분의 우리들은 인생의 대부분

을 잡담으로 보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잡담은 진정을 전달하지 않으며,

실하지 않다. 그러므로 진실을 보여 주는 진담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대체로 참다운 자기를 의식하고 진실한 자기대로 살고 있

지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그냥 떠들면서 살고 있

, '실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존적 불안, 실존적 책임, 실존의 조건

으로서 고독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념대로 살기를, 즉 실

존하지 않고 군중의 틈에서 군중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우리는

실존적 인간이 아니라, 속물이 되기를 무의식 중에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고귀한 것은 고독을 거치지 않고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고독 속에서

자라고 피어나지 않는 인간의 열매는 고귀한 것이 될 수 없다. 고독은 문자

그대로 외롭지만, 고독을 모르는 마음, 고독을 모르는 군중은 더욱 허전하며

더욱 외로울 것이다.

고독은 풍요하다. 잠시 군중으로부터 떨어져서, 잠시 일상적 관심을 떠나

, 잠시 혼자서 파묻혀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자아를, 참다운 님들을,

들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생각해 보고 알게 될 것이며, 무한한 우주, 밑도

끝도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나의 존재의 의미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독 속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우주의 의미를 생각하는 고독한 인간이 있

기에, 밤하늘의 저 별들의 고독, 끝없이 비어 있는 우주의 공간의 고독은 다

소 덜 쓸쓸하고 덜 허전하고 덜 아파 보인다. 이처럼 고독은 깊고 방대하고

풍요한 뜻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아무도 없는 해변 모래 사장 위에 발자국

을 남기며 혼자 산책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고독을 상징하지만, 그것은 또한

한없이 흐뭇하고 아름답다. 해가 지는 눈 덮인 시골 논두렁에 우뚝 받치고

있는 한 마리 두루미의 한쪽 다리는 고독하지만, 그 발로 디디고 서 있는 검

은 줄이 찍힌 긴 목은 어쩐지 고상해 보인다. 상상 속에서나마 해변가를 혼

자 산책해 보지 못한 사람의 일생은 허전하기만 해 보인다. 상상 속에서나마

눈에 덮인 시골 들에 서 있는 한 마리의 두루미, 그 고독한 아름다움을 느끼

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너무나 삭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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