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어령
나는 하나의 공간(空間)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宇宙)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 .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孤獨)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永源) 한 세월(歲月)과
무한(無限) 한 공간(空間)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生存)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 .
태양(太陽)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證人). . .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生)의 욕망(慾望)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大地)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色彩)가 죽어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生命)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忘却)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理由)를. . .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拒否) 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引力)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運行)과 파동은
같은 질서(秩序)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 > 현대수필3' 카테고리의 다른 글
83. 홀로 걸어온 길 (0) | 2022.01.27 |
---|---|
82. 해가 떴다, 나도 이슬 차며 길을 나서야겠다 (0) | 2022.01.27 |
80. 풍경 뒤에 오는 것 (0) | 2022.01.27 |
79. 진정한 행복 (0) | 2022.01.27 |
78. 잠자리 전쟁 (0) | 2022.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