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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현대수필3

81.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by 자한형 202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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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어령

 

나는 하나의 공간(空間)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宇宙)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 .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孤獨)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永源) 한 세월(歲月)

 

무한(無限) 한 공간(空間)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生存)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 .

 

태양(太陽)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證人). . .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 욕망(慾望)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大地)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色彩)가 죽어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生命)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忘却)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理由). . .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拒否) 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引力)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運行)과 파동은

 

같은 질서(秩序)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