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 장영희
가끔, 무심히 들은 한마디 말, 우연히 펼친 책에서 얼핏 본 문장 하나, 별 생각 없이 들은 노래 하나가 마음에 큰 진동을 줄 때가 있다. 아니, 아예 삶의 행로를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어느 잡지에서 목포의 어느 카바레 악단에서 트럼펫 연주를 하고 있는 있는 유 선생이라는 사람이 쓴 수기를 읽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절도, 강간 등 범죄를 짓고 10여 년간 감옥을 들락거리다가 어느 날
아홉 번째 다시 감옥으로 후송되는 경찰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때 마침 라디오에서 김세화의 '눈물로 쓴 편지'가 흘러 나왔다.
''눈물로 쓴 편지는 읽을 수가 없어요. 눈물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눈물로 쓴 편지는 고칠 수가 없어요.
눈물은 지우지 못하니까요 ...''
순간 애잔한 그 노랫소리가 그의 영혼의 지축을 흔들었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자신이 너무나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회한의 눈물이 쏟아졌다. 후송차에서 내릴 때 그는 새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모범수가 되어 각종 갱생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여러 악기를 배웠고, 지금은 행복한 가장으로 쉬는 날이면 아들과 함께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연주회를 가진다. 유 선생은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모르지만, 그 노래는 내 영혼의 구원자였다.
그 노래를 듣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 감옥에 있거나 아니면 이 세상에 해만 끼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라고 수기를 맺고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한 일' 이것은 영국 빅토리아조의 대표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쓴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의 주제이기도 하다.
베니스의 실크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 피파는 1년 중 단 하루 있는 휴가 날 아침, 한껏 희망과 기대에 차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의 노래' 또는 '봄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영어교과서에 자주 인용되는 시는 사실은, 긴 시의 제일 첫 부분이다.
계절은 봄이고
하루 중 아침
아침 일곱 시
진주 같은 이슬 언덕 따라 맺히고
종달새는 창공을 난다.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하느님은 하늘에
이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다.
피파는 이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네 사람의 삶을 동경하며 차례차례 그들의 창 밑을 지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피파가 부와 권력을 기준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사실 제각기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피파의 노래는 사실 이들의 영혼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불륜을 범하고 살인까지 한 오티마와 세발드는 피파의 노래를 듣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 자백하기로 결심하고, 속아서 창녀의 딸과 결혼한 줄스는 아내를
버리려다가 피파의 노랫소리에 새로운 사랑을 발견한다. 또 난폭한 폭군을 암살하려던 계획을 포기하려던 루이기는 피파의 노랫소리에 다시 자신의 이상과 사명을 깨닫는가 하면, 속세의 악에 항복하려던 늙은 성직자는 피파의 노래를 듣고 자신을 재무장한다.
날이 저물고 자신이 네 사람의 영혼을 구한 것도 모른 채 피파는 단 하루뿐인 휴가를 헛되이 보낸 것을 슬퍼하며 고달픈 내일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든다.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우리는 누구나 불행하기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걸 얻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고 남보다 더 큰 권력 한번 잡아 보겠다고 세상은 늘상 시끌벅적하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행복의 조건은 결국 우리들이 획일적으로 갖다 대는 잣대 돈, 권력, 명예 등과는 상관이 없다는 주제를 전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내내 행복을 추구하지만, 막상 우리가 원하던 행복을 획득하면 그 행복을 느끼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이다. 일단 그 행복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에 관한한 우리는 지독한 변덕꾸러기이고 절대적 행복, 영원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을 그토록 원하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다. 간혹 피파처럼 자신이 남에게 준 행복을 깨닫지 못할 때도 있다. 행복은 어마어마한 가치나 진정한 가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작은 순간들 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은연 중에 내비친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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