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 중식 --- 충렬사 --- 국립고궁박물관 ---- 101 빌딩 --석식 -- 호텔)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췄다. 4시 40분까지 신대방삼거리역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가야했다. 부산하게 채비를 하고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캐리어, 중형 끄는 가방, 그리고 각각의 손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나선 것이다. 아들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연휴때에도 4일간 집을 비웠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시간보다 10분쯤 일찍 도착했다. 공항버스는 서울공고를 지나고 공군회관을 지난 후 여의도를 지나 88로 접어들었다. 손님은 좌석을 꽉 채울 정도였다. 88부터는 일산천리였다. 아침이 아직 밝아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컴컴한 상태였고 부부간에 같이 앉아서 가지도 못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기도 했으나 여의칠 않았다. 이번에 새로 생긴 제2터미널로 가야 했기에 한참 시간이 더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 여행사에서 알려준 3층 하나투어 출국장으로 갔다. 예정시간이었던 6시 30분보다 10여분 일찍 도착이 되었다. 곽사장은 이제 막 버스에서 내렸다고 했다. 우리가 곽사장 부부의 서류까지 챙겨서 B구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곽사장을 만났다. 서류를 전해주고 줄을 섰는데 수속 창구가 달랐다. 또다시 끝쪽 구역으로 가서 모니터를 통해 전자발권을 해서 짐을 부치는 수속을 하고 출국수속을 마쳤다. 아직까지 출발시간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았다. 면세점에 들렀다. 처음에는 수정방을 찾았는데 매진되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발렌타인 21년산을 샀다. 9시가 출발시간이었는데 비행기 정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서 거의 30분이 지체되었다. 부부가 이산가족이 되었다. 옆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좌석을 바꿨다. 본래 비행기 좌석은 잘 바꿔주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다행이었다. 곧 아침 기내식이 나왔다. 식사를 하고나니 그래도 조금은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북새통을 이뤘던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니 그나마 좀 혼잡이 덜했다. 11시 30분쯤에 타이페이 공항에 도착이 되었다. 안소영이라는 가이드가 피켓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팀은 이미 도착해서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곧이어 일행과 합류했다. 지난 8월의 몽골, 러시아 여행이후 6개월 만의 해후였다. 새로운 부부도 한명 있었다. 곧바로 버스에 탑승해서 점심을 먹으러갔다. 정식으로 가이드가 자기소개를 했고 대만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을 했다. 만두, 닭고기, 계란말이 등 현지식이었다. 식사 후 본격적인 관광이 시작되었다. 처음 간 곳은 충렬사였다. 애국지사들의 위패, 흉상 등이 모셔져 있었다. 날씨가 갑자기 악화되어 비가 내렸다. 미리 준비한 사람은 우산을 썼고 일부는 버스에 있는 낡은 우산을 사용했다. 일부는 우산의 살대가 부러져 애를 먹기도 했다. 입구에는 위병들의 교대식이 진행되기도 했다. 아주 절도있는 동작으로 교대식을 진행했다. 사진을 찍었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꽃들이 만말해 있는 상황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이라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봄을 맞이할 것으로 여겨졌다. 일부 소철나무 등은 잎이 거의 말라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고궁박물관이었다. 70만점이 전시되어져 있다. 세계 4대 박물관에 들어있을 정도다. 가이드의 안내와 설명이 이어졌다. 이어폰을 꼽고 혼잡한 속에서도 가이드의 안내를 들을 수 있었다.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실감날 정도였다. 취옥백채, 육형석, 모공정, 상아투화운룡문투구, 옥병풍 등 이루헤아릴 수 없는 명작들이 즐비했다. 결코 명성이 헛되지 않았다. 루브르를 보았던 것과는 또다른 감흥을 주었다. 다음은 101타워에 올랐다. 다른쪽 건물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로 5층까지 가서 다른 통로로 빌딩의 5층 입구로 갔다. 처음에 줄을 서서 기념사진 촬영부터 했다. 포토샵을 해서 기념사진을 87층에서 판매를 한다는 설명이었다. 곧바로 사진의 모습이 TV화면 모니터로 확인이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안내요원이 있었다. 거의 82층을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37초 정도였다. 천정에는 네온사인이 밤하늘의 모습을 수놓고 있었다. 북두칠성 정도를 구분해 볼 수 있었다. 시간이 거의 해질녘이어서 사방분간은 큰 것만 겨우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중심추 윈드 댐퍼 라는 것이 매달려 있었다. 엄청난 크기였고 황금색이었고 커다란 구모형으로 매달려 있으면서 건물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지진방지시설이라고 했다. 지상에서 조금씩 이동을 시켜 88층에서 조립해서 매달았다고 한다. 무게 660톤 직경이 5.5미터나 된다. 1.2센티미터 정도 이동이 되었다고도 한다. 우리 생의 윈드 댐퍼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위에서도 기념촬영을 했고 아래쪽에서도 살펴보았다.
2일차 ( 조식(호텔식)-- 금용천— 중식(현지식) --야류지질공원— 지우펀---스펀— 석식)
여행 2일차였다. 9시에 호텔로비에 집결해서 버스에 올랐다.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금용천이라는 노천온천이었다. 금산지역을 대표하는 온천이었다. 해수심청온천수를 이용했다. 청조6년 11월에 있었던 대지진 당시 발견되었다. 금용천이 포함하고 있는 온천수가 4가지 성분이었다. 해수, 탄산, 유황, 철이다. 닥터피쉬라고 불리는 물고기가 있는 탕이 별도로 마련되어져 있었다. 일반 동남아의 경우는 물고기 색깔이 짙은고동색이고 크기가 피라미 수준임에 반해 이곳은 금붕어처럼 붉은 색의 물고기도 섞여 있었고 크기도 훨씬 컸다. 일단 입구로비에서 수영복과 수영모를 대여해서 탈의실로 들어갔다. 남탕 여탕이 분리되어져 있었고 안쪽으로는 목욕탕이 별도로 있었다. 쑥찜 사우나와 증기식 사우나도 2층에 별도로 마련되어져 있었다. 온천을 찾는 사람이 우리뿐인지 손님이 없는 탓인지 많이 퇴색한 느낌이었다. 노천탕에는 각용 각색의 탕이 별도로 구획되어져 있었다. 온탕 열탕의 느낌이 나는 곳이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넓었다. 조그맣게 만들어진 곳에는 당귀, 인삼, 기타 여러 약재가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물의 색깔도 다양했다. 큰 타월을 하나씩 주었다. 귀중품은 라커에 넣고 20원 정도의 동전을 넣어야 키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로 치면 신발장처럼 조그많게 칸칸이 만들어져 있었다. VIP용은 별도로 있었다. 우리식의 사우나를 연상하면 될 것이었다. 한켠에는 샤워시설이 다른쪽에는 온탕, 냉탕 등이 있었다. 한시간 30분 정도 온천욕을 즐겼다. 단연 인기는 닥터피쉬였다. 각질제거에 좋다고 하니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온천을 마치고 버스로 이동했다. 지나온 야류지질공원이었다. 4대구경거리를 일컬어 예스진지이라고 한다. 예에 해당하는 것이 야류였다. 스에 해당하는 것은 스펀이고 진은 진과스, 지는 지우펀 이다. 우리의 관광에는 예스지까지만 되어져 있었다. 진과스는 예전 황금을 캐던 광산지역이었는데 지금은 관광지로 변했다. 야류공원의 입구에 있는 해산물전문 식당에 가서 중식을 했다. 밥이 좀 잘못되었다. 결국 가이드에게 항의해서 새로운 밥으로 가져왔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공원구경에 들어갔다. 1지구 2지구 3지구가 있었다. 1지구는 가이드와 함께 2지구는 자유롭게 관광하는 식이었다. 관심의 초점은 여왕두라는 바위였다. 이집트의 여왕 네페르티티를 닮았다고 한다. 입구에도 모형이 하나더 세워져 있었지만 실물을 보려는 이는 줄을 서야했다. 성질급한 한국인은 뒤로 가서 사진을 찍고 나왔다. 하트바위 아이스크림바위 촛대바위, 화석 등 곳곳에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쪽에는 어부인 듯한 이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다음의 목적지는 지우펀 거리였다. 우리식으로는 구분이었다. 9명의 사람이 공동생활을 영위한데서 유래되었다.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비정성시라는 유명영화였다. 탄광지였는데 퇴색하면서 관광지로 변신한 곳이다. 땅콩아이스크림 등 많은 먹을거리들이 있었다. 맨 끝자락에 위치한 산해관이란 찻집에서 차와 생맥주를 마시면서 환담했다. 기념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서로간에 기념촬영을 해주기도 했다. 멋모르고 사람수대로 차를 시켰는데 그 차는 한 주전자씩 나왔다. 물배를 채운셈이 되었다. 시간이 좀 지체되는 바람에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였다. 다음은 스펀이었다. 천등날리기를 하는 곳이었다. 철길위에서 날리는 것이었다. 다섯가지를 해야 하는 곳이다. 붓으로 소원을 적고 두쌍씩 한 천등을 날렸다. 직원이 기념촬영을 해 주었고 사인을 주었다. 등에 불도 붙여주었다. 네면의 소원을 돌려가며 기념촬영을 했고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등을 날린 후 또 촬영을 했다. 우리의 소원등 풍등과 유사했는데 재질이나 색깔 등이 달랐다. 크기도 무척 컸다. 거의 1미터 이상이었다. 다음의 관광지는 징안치아오였다. 도보용 현수교로 128미터에 달했다. 기념사진을 찍고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석식을 하러갔다.
3일차( 홍모성--- 단쉐이 ---서문정--- 중식 --- 발마사지---용선사 ---화시지애 야시장—석식(샤브샤브))
여행 3일차였다. 실질적으로 여행의 마무리되는 날이다. 첫행선지는 단쉐이에 있는 홍모성이었다. 정식명칭은 홍마오청이다. 1629년 스페인에 의해 건립된 요새였고 후에는 영국의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이 거쳐간 요새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자랑하고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언덕위에 위치해 있다. 네덜란드인을 빚댄 붉은 머리털의 의미를 가졌다. 옆에는 진리대학이 있었다. 집사람이 화장실에 간 사이 가버려서 길이 어긋났다. 입구에서 기다렸는데 집사람은 다른길로 내려갔다. 하는 수없이 찾으러 들어갔으나 허탕이었다. 집결지에서 겨우 조우할 수 있었다. 다시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 목적지는 단쉐이였다. 항구도시였고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었다. 이 강이 타이페이까지 연결되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 유명했다. 예전에는 강을 가로질러 배를 타는 코스도 있었는데 2016년 세월호 사건이후로는 배를 타는 관광코스가 사라졌다. 길 양옆으로 먹을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군것질거리로 유명한 것은 테단(간장에 졸인 계란), 위완탕(어묵탕), 대왕 오징어튀김(오징어를 통째로 튀긴 것을 잘라서 컵그릇에 담아 판매), 대왕카스테라 등이었다. 오징어 튀김과 대왕카스테라를 샀다. 오징어 튀김은 인근 강가에서 먹었다. 카스테라는 집결지 부근의 평상에서 앉아서 스타박스에스 테이크아웃한 커피와 같이 먹었다. 윤사장은 딸들을 위해 우산을 기념으로 사기도 했다. 입구에는 역이 있었고 자전거 주차시설도 있었다. 다음은 서문정이었다. 우리로 치면 명동이나 강남쯤이었다. 방향별로 가로등의 색깔이 달랐다.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 등 다양했다. 우연찮게 그곳을 돌아보다가 부산순두부집이란 곳을 발견했다. 한국음식들을 파는 한국식당이었다. 기념으로 촬영을 해 두었다. 붉은 가로등 열에 있었다. 영화관이 즐비했고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어떤 국수집 같은 곳에서는 컵에 국수를 팔았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는지 인근의 거리에서 모두들 국수를 먹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같으면 상상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한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식당의 지하로 들어갔는데 온통 낙서투성이었다. 한국사람들이 한 모습에 놀랄뿐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한국의 연예인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남희석, 김상희, 젊은 남자탤런트 성훈, 이연복셰프 등이었다. 다음의 일정은 중식을 먹으러 갔다. 요리는 두부, 숙자나물, 계란찜, 브로콜리, 생선요리, 야채, 돼지고기 등 열가지쯤의 요리가 나왔다. 고추장을 뿌려 먹기도 다. 식사를 마치고 찾은 곳은 발마사지 숍이었다. 손님이 만원이어서 15분쯤을 버스에서 대기했다가 들어갔다. 숍 입구에는 뿔달린 사슴의 박제모형이 위치하고 있었다. 마사지사는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제법 나이들어 보이는 분도 있었다. 광고지 같은 것을 두 장 주었다. 부위별로 지압위치를 설명한 것 등이었다. 한쪽은 8명 다른쪽은 12명이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다른 방에는 누워서 받는 곳도 있었다. 매너팁으로 천원을 주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용선사였다. 타이베이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향을 하나씩 받아서 기도를 하고 뒤쪽으로 갔다. 각종 신들이 있어 그것에 맞게 찾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시험합격을 위해 문창대군에게 기원을 하고 빠져나왔다. 설을 지난 후 정월대보름을 앞둔 시기여서 참배객이 많았다. 지난주에는 아예 입장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용선사 참배를 마치고 바로 길 건너에 있는 화시지애 야시자을 찾았다. 가이드가 안내해 준대로 들어갔는데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충분히 야시장의 매력을 느껴볼 재간이 없었다. 돼지꼬리요리와 과일 그리고 즉석튀김요리인 어묵을 사서 맛을 보았다. 어묵에는 계란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여행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갔다. 그곳은 샤브샤브 음식점이었다. 각자 개별로 화로가 주어지는 식이었다. 야채 고기 기타 여러 가지 들이 셀프로 구비되어져 있어 더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한국 소주도 매장에 진열되어져 있었다. 거의 포식수준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돌아왔다. 여행의 마무리가 되었다.
4일차( 조식----9시집결--- 공항-- 출국 수속--- 타이페이---인천공항(김해공항))
오늘은 대만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다. 7시 40분경에 모닝콜이 울린 10분 뒤에야 겨우 식사를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3일동안 조식을 했던 곳이라 익숙했다. 입구에서 조식용 티켓을 제출하고 뷔페식 식당에 입장했다. 야채, 고기, 음료(커피, 쥬스, 과일음료, 등), 빵 등 다양하게 준비되어져 있었다. 밥은 흰죽, 밥, 볶음밥 등이 준비되었다. 시리얼도 먹을 수 있도록 되어져 있었다. 열대과일 패션프루츠 바나나, 등도 있었다. 거의 70%정도가 한국인으로 보였다. 밥옆에는 김치도 준비되어져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텔로 올라가 짐을 챙겨서 호텔로비로 내려왔다. 호텔로비에는 세계를 누볐던 배가 모형으로 비치되었다. 또한 청동상도 몇 개있었다. 기념촬영을 했다. 입구 중앙에는 큰 화분이 있었다. 꽃을 활짝피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로 이동했다. 날씨는 여전히 흐릿했다. 대만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을 얘기해 보라고 하고서는 가이드가 자문자답했다. 고궁박물관, 지우펀, 천등날리기 등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는 얘기였고 가족단위로 여행을 많이 온다는 얘기였다. 30분 정도를 달린후 공항에 도착했다. 3일간 일정이 더있는 곽사장 부부도 일단은 작별을 고하기 위해 공항까지는 함께했다. 공항에서 작별을 고하고 출국수속을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가이드와도 작별을 고했다. 출국수속후 게이트앞 로비에서 휴식을 취하다 탑승했다.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했다. 조금더 일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김해공항으로 간 친구들은 벌써 도착해서 거제로 가는 버스에서 소식을 전해오기도 했다. 추진위원장과 사무총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다음의 여행을 기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