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날 하루였다. 주말이었는데 이수역 태평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5시 30분이었다. 골프백과 가방을 들고 집앞에서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10분쯤 일찍 도착이 되었다. 새벽의 동이 터오기도 전이었기에 세상은 조용했지만 차들은 많았다. G사장의 차에 편승해서 2차 약속된 장소인 세영이네로 가야했다.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해서 신갈JC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양지 IC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탔다. 새벽녘이라 차들은 많지 않았다. 서서히 어둠이 걷혀가고 있었지만 날이 샐려면 아직 시간이 더 지나야 했다. 2차 약속지에도 10분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나는 처음이었지만 G사장 등은 오랫동안 다녔던 골프장이어서 무척이나 친숙한 곳이었다. 두팀이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 식당에서 합류해서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했다. 메뉴는 아우국과 청국장이었다. 후배 두명이 먼저왔다. 한 명은 만난적이 있던 회계법인 부회장인 J씨였다. 또한명은 형이 우리 동기라 했다. 부산의 의과대학병원 교수로 있는 친구의 동생이었다. 중앙대에서 심리학을 강의하는 Y교수였다. 후속으로 온 이는 동기동창인 M회장과 C국장이었다. 식당에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이른 시간이고 동도 터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북적대고 있었다. 한켠에는 전통주로 담궈논 술들이 즐비했다. 또 한쪽에는 로스트 볼이 쌓여져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운동을 위해 클럽하우스로 갔다. 라카 번호표를 부여받고 옷을 갈아입고 채비를 해서 필드로 나갔다. 막 동이 터오고 있는 중이었다. 기를 받고자 해서 사진을 몇장 찍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A조로 편성된 네사람이 먼저 나갔다. 클럽하우스에서 합류한 두분은 선배들이었다. K사장은 영국에서 내한한 상황이었고 P교수는 어제부터 라운딩을 한 상황이었다. A조는 P교수, C국장, 나, Y교수였다. B조는 K사장, M회장, G사장, J부회장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진 상태여서 플레이를 하는데 애로를 겪었다. 몸이 제대로 풀려있지 않았고 얼어있는 상태이다보니 제대로 실력발휘가 되지 않았다. 세 홀쯤을 돌고 나서야 제대로 운신이 되는 듯했다. 중간에 그늘집에서 따뜻한 정종을 두 개 주문해서 반컵씩 마시고 나니 그런대로 몸이 좀 데워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햇볕도 좀 들기 시작했고 바람도 잦아졌다. 이제는 들녘은 완전히 늦가을의 기운이 감돌았다. 단풍들도 철이 다 지난 느낌이었다. 운동중에 앞에서 고라니가 한 마리 필드를 가로질러 가기도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무난하게 플레이가 진행되었다.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에서 샤워를 하고는 로비로 나왔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위해 예약해 둔 식당으로 집결이 되었다. 메뉴는 닭도리탕과 해물탕이 준비되었다. 처음에는 막걸리를 마시다가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차를 운전해야 하는 이들이 있어 그렇게 많은 양을 마실 수는 없었다. 나는 P교수님 차에 편승해서 귀가했다. 강남 순환도로에 진입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려 애로를 겪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잘 귀가할 수 있었다. 잠깐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또 채비를 해서 약속장소로 갔다. 이번에는 거의 대부분 운동을 했던 이들이 다시 만나는 셈이 되었다. 일부 몇분은 새로운 분이었지만 대부분 구면이었기에 화기애애한 자리가 되었다. M회장이 와인을 10병쯤 희사를 했다. 안주는 서양식으로 스테이크 스파게티 등이었다. C국장은 자신이 마련하는 자리를 이곳으로 변경해서 이쪽 저쪽을 왔다갔다 하면서 회합에 합석을 했다. 추가적인 분은 L부사장, 그리고 K전무, C부사장이었다. 건배제의가 재미있었다. ‘정 비 공’이라고 했다. 세상에 없는 것 세가지였다. 정답이 없다. 비밀도 없다. 마지막은 공짜도 없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하늘에는 별, 땅에는 우리가 내앞에는 너(또는 당신). 멋진 건배로 얘기되는 하나는 백두산이었다. 백살까지 두발로 산에 가자였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도 화제가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요즘 나도는 중과 관련된 유머 얘기도 있었다. 탁발하러 다니는 스님을 뭐라 할까요. 답은 ‘영업 중’ 이었다. 또다른 것으로는 이리 저리 찾아도 간 곳을 모르는 중을 뭐라할까요. 답은 ‘부재 중’ 이었다. 스님과 관련된 유머로 하나를 더하면 그랬다. 스님이 목욕을 하러 갔다. 그런데 중3 학생이 목욕을 하러갔다. 학생이 스님에게 물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요. 그러자 스님이 나 중이요 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학생이 하는 말 나 중3이야 했단다. 자리를 파하니 거의 밤 10시경이 다 되었다. 다음으로 몰려간 곳은 인근의 노래방이었다. 한시간을 주문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거의 두시간이 소요되었다. K전무가 중간에 잠깐 식당에 가방을 두고 왔다고 해서 그것을 찾으러 다녀왔다. 노래는 예전 노래부터 시작해서 여러곡이 불려졌다. 한창 흥에 겨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돈독한 우의를 과시했다. 노래방을 끝내고 나오니 이미 자정이 지났다. 일행은 다시 인근의 곱창집으로 향했다. 문닫기 30분 전이었음에도 양해를 구하고 들어갔다. 소주를 세병시켰다. 기념촬영도 이어졌다.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한시 경이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을 고했다. 이번에는 P교수님을 모시고 댁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귀가했다. 기나긴 늦가을의 하루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거의 20여시간의 대장정이 끝나는 셈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탓도 있었지만 호기롭게 보낸 하루였다. 이젠 이렇게 보내고 즐기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현역으로 남아 있으니 가능한 부분일 듯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 3막을 새롭게 시작해서 보내고 있었고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분 또는 경영을 조력하는 분을 빼면 교수 또는 직장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었다. 참으로 즐겁고 유쾌하고 진득한 하루를 보낸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다. 대단히 긴 하루였지만 더할 나위없이 좋은 사람들과의 해후였고 만남이었다. 이젠 모두들 60을 넘기신 이도 있었고 내일모레 회갑인 이들도 즐비햇다. 모든 이들이 각자의 삶에서 기죽지 않고 팔팔하게 살아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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