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게 김애자
봄!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그대 이름을 부를 때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살짝 맞물린다는 것을! 아니 입술이 꽃봉오리처럼 봉싯 모아지기도 하겠다.
그대 이름에선 향기가 난다. 형제도 없으면서 그대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마른가지에서도 움이 돋고, 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난다. 그것도 눈부시도록 찬란하게.
봄볕이 아른거리는 꽃밭에 엎드려 양 볼을 크게 부풀리고 훅, 입김을 내뱉으면 여린 풀잎이 파르르 떨린다. 나이가 들었지만 지금도 나는 이 놀이를 즐긴다. 비릿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생명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아라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를? 이건 분명 무형이 낳은 유형의 변주라 하겠다. 아름다운 형체의 변주, 생명의 변주(變奏)라 하겠다.
모든 사물이 형체를 이루는 것은 어떤 본질과 만나야만 가능하다. 가령 도자기를 만들 때에는 흙이란 본질과 물이란 본질과 불이란 본질과 만나야만 형상을 이룰 수 있고, 그 형상을 더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유약이란 또 다른 본질과 만나야 한다. 그대 또한 다사로운 햇볕과 간간히 내리는 봄비를 만나지 않았던가?
나는 알고 있다. 그대가 물과 햇볕을 만나고 나서야 땅속에서 새로운 생명들을 소생시킨다는 것을. 나뭇가지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대지에 입김을 불어 넣었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빚어 놓고 생명을 불어 넣었던 것처럼, 그대도 이곳으로 발을 들여놓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경건하게 대지에 엎드려 푸석해진 흙의 틈새로 입김을 불어 넣는 일이었다. 그러자 비로소 들떴던 지표가 가라앉으며 빛과 습기를 빨아들였던 것이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는 아주 거칠도록 건조하지. 그 건조한 대지에 빛과 습기를 불어넣으므로 생명들은 잠에서 깨어났고, 새로운 잎을 피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입김이란 말에 갑자기 심장이 박동이 빨라지는 구나. 불현듯이 어머니의 입김이 떠오른 때문이란다.
우리 어머니도 그대처럼 입김을 잘 불으셨다. 어릴 적에 자주 겪었던 일이다. 얼음판에서 앉은뱅이 썰매를 타다가 손이 얼거나,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까지면 어머니는 언 손과 다친 부위에 입술을 대고는 봄이란 말음을 할 때처럼 입술을 봉싯 오므리어 입김을 불었다. 그런 다음 “되었다. 인자는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다.” 기도문처럼 괜찮을 것이란 말씀을 되뇌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나의 아픔과 손 시람은 어머니 말씀대로 곧 괜찮아지곤 했다. 그때, ‘호…’라는 가늘면서도 길게 이어지는 성음과 함께 어머니의 입김에서 묻어나던 촉촉하면서도 다습던 온기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나눈 대화중에 방금 “괜찮을 거다”라는 말이 가장 깊이 뇌리에 박혔던 적은 내가 초경을 치를 때였다. 말하기가 조금은 창피스럽지만, 초경을 시작할 때가 바로 교정에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오고, 교실이 바뀌고 담임과 교과서와 참고서가 바뀌는 3월 초였다. 친구들은 모두 열여섯 살 정도면 거의 치르는 일을 나는 열여덟 살이 되고서야 처음으로 꽃물이 번졌거든. 그것도 자고 일어난 아침에 말이다. 기지개를 켜고 막 일어나려는 순간, 요 위에 한 점 붉은 꽃잎이 떨어져 있지 않았겠니. 순간 놀라움과 부끄러움으로 온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엉겁결에 반짇고리에서 가위를 꺼내다 선연하도록 붉은 꽃자리를 싹둑 도려냈지. 그러나 이어서 꽃잎은 무더기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난 어찌할 바를 몰라 그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빠들 밑에서 자란 탓도 있지만, 어머니는 당신이 겪었던 식으로 때가 되면 초경을 치르게 될 것으로 믿었고, 그리되면 제 스스로 알아서 어머니께 도움을 청할 걸로 알았던 게다. 그러나 매사에 늦되기만 하던 나로서는 갑자기 일어난 사건을 수습할 수 있는 상식이 아주 미흡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침상을 받아 놓고서야 딸이 이불 속에서 울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매우 기뻐하시더구나. 미리 준비해 두었던, 소창으로 접은 생리대를 꺼내다 사용하는 방법을 일러주면서 “겁먹지 말거라, 괜찮다. 여자는 달거리 꽃을 피워야 제구실 할 수 있느니라.”
그리곤 쌀 서되 서 홉을 물에 불렸다가 해질 무렵엔 백설기 한 시루를 쪄 앞에 놓아 주더구나. 딸내미가 초경을 치르게 된 것을 경축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던 셈이지.
내 인생의 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은 봄이 오면 저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남몰래 감추고 싶었던, 애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때를 기억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조마조마 하면서도 무언가 기특한 일을 한 것처럼 은근히 자랑스러웠던 그 꽃물 번짐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달마다 꽃물 번짐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자부하는 것 말이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탱탱한 아가씨들의 발랄함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싱그럽고 사랑스럽다. 벌써부터 홈쇼핑에선 호스트들이 올 봄에 유행하게 될 키워드는 여성미를 강조하는 데 있는 것 같았다. 바지통이 좁고, 상의 기장이 긴 원 버튼 슈트와, 헐렁한 복고풍의 실루엣이 주종을 이루더구나.
그러나 봄님은 아직 앳되다. 겨우 생리대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정도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거라. 곧 괜찮아 질 것이다. 성숙을 향한 새날이 무장하게 열려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기다려 보거라.
참, 혹여 그대, 들어본 적 있는가? 여자의 히프와 자궁이 사랑의 심벌마크인 하트모양과 흡사하다는 것 말이다. 언젠가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그린 ‘태아연구’란 그림에서 본 여자의 자궁을 반으로 잘라놓은 모양은 영락없는 하트모양이었다. 그 하트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자는 태아를 보고 나는 적잖이 흥분했었다. 내 몸 속에 그렇게 예쁜 것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나도 언젠가는 자궁 속에 아기를 품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감격했었거든. 내 가슴에 봉싯한 두 개의 젖무덤을 맞대 놓으면 지구모양이 된다는 것까지를 알기엔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아울러 여성의 생리적인 현상이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의 종족을 보전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석가와 예수와, 공자와 노자도, 그리고 대문호 톨스토이와 음악의 대부 바흐도 여성의 자궁에서 태어났으니 말이다.
자! 그럼 우리 4월에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그만 헤어지기로 하자. 시간도 호흡이란 것 알고 있겠지? 우리 부드럽게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을 크게 해 보고, 햇살에 눈이 부시면 눈썹 위로 손차양을 하고 어릿어릿 봄물이 들고 있는 저 건너편 두충나무 숲을 바라보자. 그러면 가슴 차오르는 생명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