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희(囍)다/ 유병근
봄을 찾아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환한 꽃을 닮았다. 겨우내 딴딴하게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치솟는 식물처럼 사람들은 날이 풀리자 밖으로 나가는 걸음이 잦다. 팽팽하게 공중에 치솟아 있던 헐벗은 나뭇가지도 파르스름한 잎눈과 꽃눈을 몸에 치장한다.
사람의 몸에도 옷치장이 가벼워진다. 며칠 전의 칙칙한 코트를 벗어놓고 망사같은 옷으로 몸을 가꾼다. 옷이 무거운 계절이 겨울이라면 봄은 그것을 한 겹 한 겹 벗는 계절이다. 성급하게 벗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봄은 베란다 안에도 베란다 밖에도 있다. 멀리 보이는 산이 차차 파르스름한 기운을 드러내며 가까이 온다. 며칠 전에 본 아파트 입구의 모과나무는 봄이 오는 달력이나 다름없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파르스름한 연둣빛에 눈이 홀렸다. 얼어붙었던 가지를 비집고 솟아나는 잎눈과 꽃눈에서 달력의 날짜를 넘기듯 마음이 끌렸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갈 수 있는 강변이 있다. 강은 겨우내 강철처럼 얼어붙었었다. 강물은 얼음장 속에서 숨찬 길을 찾아 잠수하는 듯했다. 강물 흐르는 기척을 들을 수 있게 봄 햇살이 강에 내려앉아 얼음을 풀어주었을 때다. 강가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얼음 속에 갇혀 있던 피라미새끼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 같다. 주위에 오그리고 있던 강둑에도 파르스름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쑥이 보송보송 눈을 뜨는 것 또한 반가운 봄맞이다.
사월 달력에는 사일구혁명이 있다. 굳은 땅을 뚫고 치솟는 개구리가 있다. 가녀린 새싹이 흙을 밀어 올리며 모습을 내미는 새로운 세상도 있다. 깡마른 나뭇가지에서 잎눈이 트고 꽃눈이 트는 봄은 아슬아슬하게 왔다.
목련 방울이 부풀어 올라 막 터질 듯했다. 어저께 산책길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부신 아름다움을 시샘하느라 목련이 피어 한창일 때면 어김없이 꽃샘바람이 찾아왔다. 뜻밖의 강추위가 연한 꽃잎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그 서슬에 나풀나풀 피어오르던 꽃잎에 시커먼 상처가 남는다. 하지만 봄은 주춤거릴 줄 모른다.
봄은 나른한 춘곤증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것은 봄이란 어감이 사람을 곤하게 하는 것 같다. 봄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 왠지 축 처지는 느낌이 들어 차라리 스프링이라고 강하게 말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용수철을 뜻하는 스프링 속에서 톡톡 튀는 강인한 힘을 구할 수 있다. 땅을 박차고 치솟는 새싹, 그리고 나뭇가지에서 터지는 푸른 잎에 톡톡 튀는 스프링이 매달려 있음을 느낀다.
봄을 이렇게 본다는 것은 일방적인 오류에지나지 아니하겠지만 봄은 춘곤증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도약으로 가는 계절임은 반가운 일이다. 봄은 경직의 첫 삽을 꼽는 계절이다. 한 해의 계절 가운데 가장 첫머리에서 계절의 쟁기를 끄는 명에를 짊어진 멋진 달이다.
그럼에도 봄을 시샘하는 황사가 있다. 먼 중국대륙을 지나 서해를 거쳐 치닫는 황사는 모처럼 솟아오르려는 봄의 생기를 꺾는다. 집안에서 포근한 봄 햇살을 받아들이느라 열어둔 장독 뚜껑을 서둘러 닫아야 한다. 봄빛이 들어가야 된장 간장 그리고 고추장에도 꽃처럼 향기로운 맛이 든다. 황사는 그 맛을 시샘하는지도 모른다.
봄이라는 글자를 이마받이로 나란히 쓰면 희(囍)라는 한자를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봄은 희(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