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신호등 김애양
운전을 하다보면 유난히 놀랄 일이 많다.
깜박이도 켜지 않고 끼어드는 차, 골목에서 예고 없이 뛰쳐나오는 사람, 심지어는 천진난만하게 뛰어드는 꼬마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혼비백산을 하곤 한다.
그렇게까지 돌발 상황은 아니라도 제동을 걸어야 할 때가 흔하다. 그 중에서 차간간격을 넓게 놔둔 채 더디 가는 차의 꽁무니를 뒤따르려면 갑갑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초보운전’ 표지를 붙인 차는 귀엽기라도 하지만 핸드폰을 든 채 한 손으로 운전을 하거나 조수석에 앉은 연인과 호호거리는 차 뒤에선 나의 급한 성정이 드러나면서 험한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혼자 다짐한 바가 있다.
‘누군가에게 브레이크를 밟게 만들지 말자.’
그건 흐름에 맞춰 운전을 하잔 것과 주행 중엔 운전에만 집중하잔 의미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겠단 결심이었다.
이제는 운전면허증 딴 지도 30년이 넘었으므로 능숙한 운전쯤이야 그리 어려울 바 아니다.
진심은 달리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지 말도록 하겠단 것은 누군가에게 장애물이 되거나 발목을 잡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제발 나의 자유를 구속하지 말아달란 요청이었다.
내겐 결혼 생활이 온통 장애이고 구속이며 족쇄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외아들인 남편과 살다보니 시어른을 봉양하며 생기는 어려움도 있지만 외아들의 성향은 외골수에다 타협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었다. 독재성이 돋보이는 남편에게 나는 기꺼이 히틀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반면에 나는 새장에 갇힌 새처럼 갑갑함을 느꼈다. 강아지만 해도 묶어 놓으면 풀어 놓은 개보다 더 크게 짖고 자기표현을 강하게 하기 마련이다. 나는 맷돌에 비끌어 매인 오색풍선처럼 끊임없이 나부꼈다.
사실 결혼 후에도 나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동서의학을 하나로 아우르면 전대미문의 명의가 될 것 같았다. 직장인을 위한 야간 대학원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런 소망을 내비치자 남편의 거절은 단호했다. 뭘 배우러 다니려면 이혼 후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결은 간단했다. 나의 배움에 대한 열의를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향학열을 덮어버리고 자기 개발을 위해 달리는 차의 브레이크를 단단히 밟아 두면 되었다.
남편은 내게 언제나 빨강 신호등으로 행세했다. 동창회를 가는 것도 불가, 친구를 만나는 것도 노(no), 학회 참석도 안 된다며 무조건 일찍 귀가해서 가족을 돌보라고 했다.
마음속의 브레이크를 꼭 밟아두면 양보하기란 쉽다. 정시에 퇴근하여 저녁상 차리고 양순한 아내와 착한 며느리 노릇을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꿈꾸지 않으면 더 깊이 잠들 듯이 뜻을 포기하고 체념하면 삶이 편안했다. 하지만 그렇게 밟아 놓은 제동기 때문에 나는 피해의식이 생겼나 보다. 앞차의 브레이크 등이 켜질 때마다 그리고 정지 신호등 앞에 때마다 공연히 한숨이 쉬어지곤 했던 것이다.
‘저 빨간 색만 없다면 나는 무한히 질주할 수 있을텐데….’
다행히도 생각은 차츰 바뀌어 갔다.
거기엔 처음 운전대를 잡았던 시절의 기억이 한몫했다. 당시 수원에 취직이 된 나는 한밤중에도 분만을 받기 위해 총알처럼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다. 하루는 제왕절개를 마치고 나오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눈길에서의 첫 운전이었다. 한산한 도로에 어쩌다 보이는 차들은 흡사 살충제를 맞은 바퀴벌레처럼 비실비실 앞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내 생각에 그 차들은 눈 위에선 속도를 내지 못할 만큼 낡은 것 같았다. 반면에 새로 뽑은 내 차는 눈길에서도 액셀러레이터가 우수하니 우쭐해졌다. 자정이 넘은 시각 눈 쌓인 넓은 도로는 오직 나 하나를 위한 길 같았다. 호수 위의 배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느낌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그러다 톨게이트에 이르러 속도를 줄이고자 할 때,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왜 눈길에선 달리면 안 되는가를….
브레이크를 밟자마자 차는 뱅그르르 돌기 시작하더니 묘기를 부리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처럼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미끄러지고 헛돌기를 반복하면서 공포 속에 허우적거렸지만 그나마 반대편 차도에 차량이 없어 지금껏 살아 있게 되었다. 경부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곡예를 보리고 난 후에야 속도를 낸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저리게 느꼈고 이후론 눈발만 흩날려도 절대로 차를 몰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게 빨강 신호등을 켜주는 이들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제어할 수 없이 속도를 내다가는 낭패를 보고 말테니. 빨리 달려 오르면 빨리 내려와야 하는 게 세상이치일 테니. 그리고 질주(疾走)란 ‘달리는 질병’의 뜻을 가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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