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강물처럼 김가영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길 저쪽에서 걸어오는 남자들의 시선이 내게 멈추지 않을 때의 충격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놀랄 만큼의 미인도 스타일도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 같은 여자도 열 사람 중 여섯 정도는 잠시 시선을 멈추었다. 오직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런 것처럼 남자들이 봐주고 보여지면서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 남자들은 특히 젊고 예쁜 여자에게밖에 시선을 주지 않는다. 이미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은 여자는 다른 것으로 남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반은 진짜고 반은 거짓말이다.
아무튼 그 충격과 분노의 날로부터 십여 년이 지났다. 그리고 최근에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충격과 슬픔으로 우울하다.
마흔이었을 때는 단순히 남자의 시선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남자의 박정함이 절절이 나를 슬프게 한다.
얼마 전 젊은 여자와 남자와 나, 셋이서 백마강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 경우 남편이든 친구든 예외 없이 남자들은 젊은 여성에게 친절하다. 저쪽은 힘이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가방을 들어주거나 이것 저것 보살펴 준다.
반면 이미 젊지도 않고 여행 가방의 무거움으로 흔들거리고 있는 내 쪽은 완전히 무시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는 것은 순수하게 인간적인 배려의 문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자란 동물은 성적 매력을 인간적인 배려보다 우선시 하는 것 같다.
나이 든 남자가 젊은 여성을 배려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즐거우면 그것으로 좋은 게 아닌가 하고, 나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먼저 터미널의 계단을 내려왔다. 즐거워하는 두 사람을 두고.
별달리 나의 슬픔을 하소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이런 종류의 비애와 무연일 수는 없다.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젊었을 때는 손을 조금 다쳐서 아프다고 하면 애인이든 남편이든 달려와서 야단법석이었다. ‘보여봐라. 얼마나 다쳤나’ 하면서.
그런데 지금은 아프다고 외쳐도 아무도 달여와 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소리치지 않는다. 아프다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릴 뿐이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아픔에 동정하는 것은 자시 자신뿐이다. 그 아픔과 함께 지내는 것도 엄격히 자기뿐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부터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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