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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38. 여체

by 자한형 202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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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체(女體)/ 도창회

조물주가 인간의 몸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짓지 않았다는 지배적인 견해인 같다.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아무려나 그 쓰임새에 따라 매우 조화롭게 지었는가 싶기도 하다. 일찍이 어떤 시인은 인간의 육체를 소우주에 비겼다. 어떤 생각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옛 그리스의 천문인 푸톨레미는 우주는 분명 질서가 있고, 우주 안에 있는 만물들은 모름지기 모두 질서 있게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런 소릴 내가 믿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단순한 몸뚱어리를 소우주라고 보고서 찬찬히 각 부위를 뜯어보면 신기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그 특색이 있겠지만, 그러나 대체로 여자의 육체는 남자보다는 더 아름답게 지어졌다는 게 통설이다.

그림 속의 나부(裸婦)를 가만히 지켜보면 나는 어느새 탐혹(耽惑)되어 야릇한 감흥에 젖는다.

나는 하릴없이 어느 무료한 날 무료한 시간을 빌어 여체의 전라(全裸)의 부분 부분에 상상의 나래를 펴 나름대로 느낌을 글로 적어보기도 했다.

여체의 부위 중 맨 윗부분은 두발이 될 것인즉, 거기서 시작해보기로 한다.

널따란 지표(地表)는 천연 숲 그대로였다. 거기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원시림으로 바람기가 조금만 있으면 출렁거림이 있다. 이 천연 숲 위에 태양이 뜨면 금빛 화려한 출렁임이 있고, 달이 뜨면 은빛 신비스런 출렁임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촘촘히 불모지를 메운 이 수림에 바람이 불 때엔 흡사 모두가 모여 이구동성으로 내지르는 아우성의 광장일 수도 있지만, 다시 불던 바람만 그치면 고요한 대화의 광장일 수도 있다. 벌목을 해버리면 산토끼 한 마리 숨길 수 없어, 눈이 내리면 하얀 설원으로 변해 평화의 광장이 되기도 한다. 내보기에 이 천연 숲에는 고요 속에 자유분방한 변화가 늘 있는 성싶다.

원래 이 원시림에 인적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었으나 인간이 지()가 깨이고부터 이곳을 개간하여 가시덤불을 헤치고 가르맛길을 틔워 놓았다. 원구 배면의 너른 땅도 같은 수림으로 덮여 있어 나는 길 찾기가 어려웠고 간신히 숲 가운데 난 가르맛길을 좇아 곧장 직하했다.

숲을 나서니 목전에 뜻밖에 나타난 것은 풀 한 포기 없는 망망한 붉은 황토 벌이었다. 동서로 가로 누워있는 이 황색 들판은 아침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다. 이 광막한 황야에는 늘 바람이 불어 고적감마저 서려 있었다. 이 황야도 원래는 원시 밀림으로 덮여 있었던 듯 보이나 어느 때 산불이 났거나, 아니면 화전민들이 농사를 지어먹을 요량으로 풀을 뽑고 나무를 베어내어 개간해 놓은 곳 같기도 하다. 지금은 황토의 생땅이지만 두엄을 내고 가꾸기만 하면 비옥한 농토가 되어 작물이 잘 자랄 것도 같다.

여기서부터 두 개의 여우굴이 뚫린 산정까지는 아직 먼 거리지만 들판 중간 양편에 억새풀이 무성한 논둔덕이 보인다. 그 둔덕 아래 두 개의 천연 웅덩이가 나란히 있어 이 소()의 맑은 수면은 낮에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비쳐 그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다. 소에 고인 물도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게 되면 소의 물빛이 흐리다. 흐린 수면에 비친 보름달이 실바람에 어른거려 그 모습이 선명하지 못하다. 나는 물 위에 뜬 보름달을 한참 완상하다 산줄기를 타고 언덕으로 향했다.

등성이를 타고 조금씩 오르다보니 산언덕은 점점 높아져서 어느새 마루에 이르게 된다. 정상은 언제나 그렇듯 사방이 두루 보인다. 높은 곳은 평지에서 못 보던 정경들도 보인다. 아하, 저런 곳도 있었구나 싶다. 산정이란 동쪽 하늘에 태양이 뜨면 언제나 맨 첫 번 햇볕을 받는 곳이라 세상 기별에는 가장 귀가 밝은 곳이기도 하다. 높은 곳은 두루 내다보여 좋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방이 드러나 있어 된바람을 맞기가 일쑤다. 고지란 언제나 누군가의 정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그 높이만큼이나 고독하고, 불안하고, 바람이 드세다.

나는 산꼭대기에 나는 바람을 잡아 들이키니 막혔던 가슴이 펑 뚫린다.

문득 발밑을 굽어보니 심연이 하늘을 마실 듯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어 아찔한 현기증에 눈을 꼭 감고 말았다. 높은 벼랑에서 보는 심연은 너무나 깊어 끝닿는 바닥을 헤아릴 길 없다. 이 심연 중심으로 해서 양편에 바람을 막는 바람막이를 세워 놓았다. 언뜻 보면 뭔가 좀 인위적인 데가 업지 않다. 바람막이의 존재는 오직 거기에 부딪는 요란한 바람소리가 있음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 점으로 바람막이란 모름지기 세상 시끄러운 소리에 견디기 괴롭고 고적하다 하리라. 하나 괴롭다 하여 모면할 수 없는 게 또한 바람막이가 아니던가.

오밀조밀 군데군데 볼 것 많은 세상을 등지고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 아랫동리를 향했다.

내리막을 타고 미끌어지면서 곧바로 전혀 상상치 못했던 신천지가 지척으로 달겨든다. 나는 별유천지에 들어선 듯 초입부터 가슴이 마구 설렌다. 베일에 싸인 어떤 신화의 줄거리가 밝혀지려는 듯 가슴이 서서히 조이는 순간이다. 내가 처음 이 두 거봉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안개 속에 묻힌 채 끝만 뾰족 내민 쌍산봉을 보고 놀라 한참 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만시지탄의 격세지감마저 느꼈다.

나는 언제나 비경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몰래 마음이 급해진다. 뭔가 다급한 상황을 맞은 듯 쫓기는 기분이다. 나는 쿵덕쿵덕 뛰는 가슴을 간신히 누르며 마음으로나마 바삐 봉우리를 오르는 기분은 몹시 부드럽고 묘한 거였다.

비경(秘境)은 비경(悲境)이라고 했지만 조물주는 양쪽 알맞은 거리에다 어쩌면 그렇게도 또옥 닮은 두 개의 산봉을 세워 그 사이 깊은 골을 파놓았으니 실로 제주가 용타는 생각을 떨어버릴 수 없다. 사실 우리가 사뭇 평평한 평원을 만나면 구경거리가 없다. 막막한 사막은 하다못해 돌무더기라도 있어야 눈요기가 된다.

높은 뫼가 있으면 깊은 바다가 있듯 조물주가 이 단조로운 지형에다 나란히 두 개의 거봉을 세워 그 사이 깊은 골을 파 조화를 꾀했나 보다. 히말라야 산정은 항시 흰 눈으로 덮여 백두(白頭)가 되었다지만 여기 이 쌍산봉은 엷은 안개로 둘러져 있어 보일락 말락 보는 이로 하여금 은실 발에 가려진 신비한 모습에서 한껏 풍만한 시정(詩情)마저 돌게 한다. 비경은 사람의 족적(足跡)이 없어야 신비를 더하는 법, 아무도 정복하지 못했을 그 정상을 쳐다보며 꿈속에서나마 발길이 잦던 유년 시절을 잠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 그곳엔 분명히 썰렁한 바람이 불고 있을 거란 게 내 느낌이고, 내 추측이다.

나는 이별을 주저하며 내키지 않는 걸음을 재촉하여 남으로 향했다. 눈에 아른 거리는 그 배경의 환상을 억지로 지우려 애쓰며 묵언행보 하는 도중 멀리 전방 둥근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섬을 발견하였다.

그 생김새가 하도 유별난 데가 있어 잠시 멈춰 나의 기묘한 상상력을 억지로 유발시켜 보았지만, 그러나 갈 길이 멀어 눈을 돌리고 말았다. 길은 계속 남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 길을 따라 마음을 모으고 걸었다. 내가 걷는 이 길은 광대무변한 평야 한가운데 나 있는 유일한 간선도로다. 이 길이 끝날 쯤 해서 낮은 구릉지로 미끄러져 내리면 별안간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안전에 큰 솔밭이 나타난다. 다박솔들로 채워진 잔솔밭이긴 하지만 제법 밀렵꾼이 끼어들 정도로 으슥한 곳이다. 아스스 한기가 돈다.

태고적 정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고요히 잠들어 있는 영구의 천연 숲이다. 나무들이 나서서 길을 막으니 자세한 지형은 알 길 없지만 얼핏 보아 삼각주 모양으로 이루어진 오지인 것 같다. 이 삼각주 꼭지점 부근은 낭떠러지로 발의 전진이 전혀 불가능했다. 벼랑 끝에 분명 신기한 구경거리가 있을 성싶은데 접근절대금지라고 주서로 쓴 위험표시의 팻말을 보고나니 호기심이 싹 가셨다.

전진불능의 만부득한 사정이고 보면 빨리 우회로를 찾는 수밖에 없다. 숲 속 골짜기에 난 우회로는 지세가 험난해 발바닥의 수고로움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 길밖에 없으니 딴 궁리가 있을 리 없다. 삼각주 꼭지점 언덕에서 다시 자세히 지형을 탐색해 보니 비슷한 길이 동서로 갈라져 있었다. 나는 일단 서쪽으로 난 우회로를 택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줄창 뻗은 골짝 길은 험하고 멀어 나의 숨은 턱에 닿고, 나의 안색은 노랗게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고갯길ㅇ르 벗어나 막 산모롱이를 돌자마자 돌연 거대한 두 개의 민둥산이 시야를 가렸다. 마치 서울 근교에 자리 잡고 있는 불암산에 솟은 쌍유봉을 연상시킨다. 하늘을 배경으로 유형선으로 휘어진 능선이 몹시 부드러운 서정을 가져다준다. 둥그마니 휘인 민둥산의 곡선을 눈길로 점차 좇다보니 어느새 나는 잠결에 아내의 뒷부분을 더듬는 착각에 헤맨다. 민둥산 굴곡을 좇아서 좌우로 빨리 눈을 회전하여 번복하면 어느덧 어떤 윤무(輪舞)가 시작되고 나는 그 가운데 어떤 황홀감 같은 것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뫼가 높아야 골도 깊어 이 두 개의 민둥산에 낀 골짜기에서는 맑은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상상력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시 찬찬히 민둥산이 그은 곡선을 따라 눈길을 보내면 거기 움직이는 어떤 율동이 보인다. 마치 산들바람에 물결치는 보리 이사들의 춤사위가 보인다. 부드러운 맥무(麥舞)가 나를 유혹한다.

치키고 뻗은 산이 남성적이라면, 순하고 야트막한 산은 여성적이라고 하리라. 높은 산은 높은 산대로 아름답지만 야트막한 산은 낮은 산대로 앙증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아트막한 민둥산에 무에 그리 아름다움이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러나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다르리라고 본다. 치솟은 산이 고담준려(高談峻厲)하다면, 야트막한 민둥산은 후정다감(厚情多感)하다 하리라. 비록 민둥산에 나무가 벗겨져 헐벗은 모습이 남루하고 따분하지만, 그러나 그 따분한 가운데 먼 훗날 푸름으로 채울 여유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민둥산을 기어오르고 내리는 매끄러운 굴곡은 차라리 내겐 하려한 촉감의 유희다. 정체된 어떤 공간에 감도는 아늑한 분위기가 나를 싸안는 듯 나는 그 몽롱한 분위기에 몰입하여 넋을 놓는다. 직립한 두 개의 민둥산이 더욱 내 맘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산 먼발치 어디쯤에 낯익은 안태고향이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우직스레 하늘을 떠받들고 솟아 있는 그 아둔한 모습에서 나는 무거운 어떤 뚝심 같은 걸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의 모성애 같은 뚝심으로 버티는 그런.

발길 가는 대로 맡겨놓아 예까지 다다르고 보니 다시 깊은 쌍갈래로 쪼개져 흡사 한쪽은 경상도로, 다른 한쪽은 전라도로 뻗은 길 같더라. 심신이 피로하고 서산에 일락하니 갈 길이 막연하여 나는 그만 이쯤에서 금일 관광을 끝내고 노숙을 청하여 남은 곳은 다음날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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