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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83. 홀로 걸어온 길 홀로 걸어온 길(아스팔트 킨트의 계보) / 전혜린 나에게는 고향이 없다. 아스팔트 킨트(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회의 고향 없는 아이들)라는 단어는 나에게도 쓰일 수 있는 명칭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이북의 끝인 신의주에서 보낸 2년간은 내 어린 나이와 함께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 때문에 고향이라는 글자를 볼 때면, 언제나 내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신의주다. 초등학교 1학년을 수료했을 때 나는 서울을 떠나서 그곳으로 갔다. 신의주는 소위 신흥 도시로서 일본인들이 계획적으로 만든 합리적이고 관념적인- 지금 생각하면 숨 갑갑한 도시였는지도 모른다. 도로가 꼭 자를 대고 그린 듯 정확하고 구획이 정연했으며 집의 크기도 똑같았고 재료는 모두 붉은 벽돌이 사용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한 것은 그 깨.. 2022. 1. 27.
82. 해가 떴다, 나도 이슬 차며 길을 나서야겠다 해가 떴다, 나도 이슬 차며 길을 나서야겠다 고은 《구호와 외침은 무성하지만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감성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 세상을 돌아볼 수 있는 사색이 필요한 시간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시와 부대끼고, 거칠 것 없는 열정으로 역사에 맞서온 고은 시인이 2008년 무자년(戊子年)을 맞아 독자들께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월 2회 선보이는 철학적 에세이 ‘고은의 지평선’. 한없이 감성적이면서도 질풍노도처럼 격렬한 고은 특유의 언어로 독자들의 잠자고 있는 사유의 세계를 흔들어 깨울 것이다.》 돌아보니 일장춘몽(一場春夢)이더라. 내 생각 내 느낌들 또한 다 백일몽이더라. 감히 여기에 하나 더 한다. 어릴 때 학교 정문 앞 구멍가게 문방구에 들어가 얄팍한 공책 한 권을 샀을 때의 그 가슴 설레는 행복이 아직.. 2022. 1. 27.
81.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어령 나는 하나의 공간(空間)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宇宙)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 .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孤獨)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永源) 한 세월(歲月)과 무한(無限) 한 공간(空間)이 가로막고 있음을.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生存)의 의미를 향해 흔드.. 2022. 1. 27.
80. 풍경 뒤에 오는 것 풍경 뒤에 오는 것 이어령 ​ 그것은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이었다. 국도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한국의 어느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황토와 자갈과 그리고 이따금 하얀 질경이 꽃들이 피어 있었다. 붉은 산모롱이를 끼고 굽어 돌아가는 그 길목은 인적도 없이 이렇게 슬픈 곡선을 그리며 뻗어 있었다. (시골 사람들은 보통 그러한 길을 '마차길'이라고 부른다.) 그때 나는 그 길을 '지프'로 달리고 있었다. 두 뼘 남짓한 운전대의 유리창 너머로 내다본 나의 조국은 그리고 그 고향은 한결같이 평범하고 좁고 쓸쓸하고 가난한 것이었다. 많은 해를 망각의 여백 속에서 그냥 묻어두었던 풍경들이다. 이지러진 초가의 지붕, 돌담과 깨어진 비석, 미루나무가 서있는 냇가, 서낭당, 버려진 무덤들, 그리고 잔디, '아카.. 2022.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