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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47. 장미 타다

by 자한형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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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타다/ 김정화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이 문을 닫는다. 복도를 지날수록 배에 올랐을 때처럼 허공을 딛는 느낌이 차오른다. 형광 불빛에 비친 흰색 벽이 투명하리만큼 정갈한 이곳에서는 육신마저 고요해진다.

노인요양병원은 도심 속의 섬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환자들은 섬 위로 떠밀려온 낡은 배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 조는 듯 가물대는 신세가 어쩔 수 없어 차라리 닻을 내리고 송판 하나까지 모두 거두고 싶지만 생각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사는 건 주어진 시간을 송두리째 태우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가끔 미완의 생에 멈춘 그를 만나러 간다. 노인요양병원 204호실이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삼십 대에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후 이십 년째 병원을 옮겨가며 투병중인 그는 한때 영민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지능은 어린아이 수준으로 떨어졌고 기억상실과 언어장애까지 겹쳐 ’, ‘아니오라는 간단한 대답만 건넬 뿐 시선은 늘 허공을 맴돌고 있는 듯하다. 곁을 지키는 가족들도 이젠 회생의 희망을 지우고 그를 대할 때면 빙긋 웃어줄 정도로 아픔이 무뎌졌다. 기가 막히면 울웃음이 된다는 이야기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요양보호사가 병실문을 두드려 환자의 주의를 끈다.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던 그가 환하게 얼굴을 편다. 기억의 끈을 애써 잡으려는 표정이 안쓰러워 나도 덩달아 세월의 강을 되올라가곤 한다. 이곳에 올 때면 몇 가지 준비하는 것이 있다. 재래시장에 들러 그가 즐겼던 튀김 통닭과 박하사탕과 노랗게 구운 쌀과자를 산다. 오늘은 어쩌면 하는 가냘픈 희망으로 묵은 사진도 서너 장 챙긴다.

무엇보다 장미 담배를 빠트릴 수 없다. 장미라는 이름이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것은 담배뿐일 정도로 요즘의 애연가들은 거들떠보지 않지만, 유달리 노인들이 많은 골목동네인 덕에 우리 집 근처 슈퍼에서는 아직도 이 담배를 판다. 담배 한 보루를 사 들고 돌아올 때면 나도 모르게 옛 노래를 흥얼거린다. “사랑하는 옆 친구들은 모두 사라졌고 이제 안은 게 아무것도 없네라는 노랫말이다. 여름날 홀로 핀 마지막 장미꽃 한 송이도 그럴 것만 같다.

그날은 울타리마다 장미가 햇볕에 타던 오월이었다. 여덟 살 시골아이였던 나에게는 꽤 조용한 오후였다. 어머니는 시골 장을 보러 나갔고 아버지는 종일 방안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집 앞 개울에서는 물소리가 풀렸고 장미는 오후의 나른한 열기를 받으며 선홍빛으로 타올랐다. 땅바닥에 떨어진 장미 꽃잎 몇 조각이 까맣게 말라가고 있었다. 꽃은 피는 게 아니라 탄다는 어쭙잖은 생각을 하면서 울타리 곁에 서성대었을 때, 그가 논둑길을 따라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우리는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아버지는 그와 십 년을 살다가 나와 함께 십 년의 곱절 세월을 보냈다. 그는 당연히 민감한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배다른 누이동생에게 미움이 있으련만 구포에서 김해까지 갈대밭을 가로지르며 더 어린 나를 찾아 반나절을 걸어왔다. 까매진 얼굴에서는 먼지 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인사도 하기 전에 쌀과자 봉지를 말없이 나에게 건냈다. 지금 내가 병실에 가져온 그런 과자였다. 나는 지금처럼 환한 웃음을 머금은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여 장미 덩굴에만 눈길을 주었다.

그 후 몇 번 더 그의 아버지가 계시는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는 올 때마다 조그만 선물을 건냈지만 기억나는 건 처음 만난 날의 개울물 소리와 장미 향기와 따스한 손길뿐이다. 그래도 갈대의 풋기가 마음을 달뜨게 하는 초여름쯤이면 그의 나직한 발소리를 은근히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사십 년 세월이 흘렀다.

장미 담배 보루의 포장을 벗겨 냈다. 붉은 테두리를 두른 담뱃갑에는 넝쿨ㅇ르 말아 올린 금빛 장미 한 송이가 박혀있다. ‘장미라는 선명한 상표보다 영어로 쓰인 달콤한 초콜릿의 어감이 매번 가슴을 쓰리게 한다. 달콤하게 태우라는 것인지, 태우면 달콤하다는 뜻인지 모르지만 자극적인 문구가 은근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장미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가지런한 잇몸 사이에서 흰 연기가 뿜어 나올 때마다 손가락이 가냘프게 떨렸다. 빨갛게 타들어가는 장미를 지켜보면서 인생은 저렇게 태워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다 탈 수가 없다. 인생도 나무도 끝까지 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생명체의 꿈이고 숨타는 희열이라면 남은 삶은 아쉽기 마련이 아닌가. 잉걸불이 되지 못한 채 꺼져버린 장작 같은 낡은 몸일지라도, 훌훌 태우고 싶은 본능을 잊지 못하는지 여전히 장미 담배를 붙들고 있다.

쉰을 훨씬 넘긴 그를 지켜보는 동안 예순을 가까스로 넘겼던 또 다른 쇠락한 얼굴이 겹쳐진다. 담뱃대를 손에서 놓지 않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도 권련을 즐겼으니 장미 담배를 분명히 찾았을 것이다. 갑자기 앞이 흐려진다. 병실을 채우는 담배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를 닮은 그의 눈빛 탓인지 알 수 없다.

그가 담배를 곁에 두는 이유는 장미라는 이름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함께 물끄러미 쳐다보았던 장미 울타리를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그 잔상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그를 장미 울타리 곁에 나란히 세우고 싶다. 알알한 기분을 떨치려고 옛 사진을 보여 주어도 여전히 고개만 내젓는다. 망각은 언젠가 찾아오는 손님이지만 때 이른 나이에 기억을 잃는가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시간마저 지우는 일이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알지 못할 정도라면 어찌 그 어느 날의 만남을 기억이나 할까. 장미가 탄 흰 재가 간들거리는 순간, 목울대에서 예전처럼이라는 말이 솟구쳐 오른다. 이처럼 상그러운 말도 이젠 그와 나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병실을 둘러본다. 벽에 붙은 철제침대 곁에는 여행 가방 크기의 사물함이 놓여 있다. 그 속에는 서너 벌의 못, 컵 한 개, 반쯤 뜯긴 박하사탕 한 봉지, 그리고 피우다 남은 장미 담배 한 갑. 그게 다였다. 떠돌이 선원의 짐처럼 적고 떨어지는 장미 잎만큼 가볍다 못해 휑하다. 소지품을 정리해나가는 내 손이 옛날 과자 봉지를 받았을 때처럼 저릿해진다.

필터만 남은 장미 한 개비를 쥔 그를 바라본다. 처음 만났을 때 환하게 웃음 지어주던 표정은 그대로이건만 사십 년 세월은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마주한 깊은 동공에서 그날의 내 모습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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