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과 고려인/ 김학
‘조선족과 고려인’은 다 같은 우리네 해외동포들이다. 그런데 중국에 보금자리를 튼 동포들은 자신들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옛 소련 땅에 터를 잡은 동포들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 한다.
‘조선족’이나 ‘고려인’은 대개 비슷한 연유로 해외동포들이다. 조선조 말이나 일제 때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혹은 일본의 핍박이 싫어서 떠난 동포들이다. 중국과 소련은 국경을 마주한 이웃 나라다. 그런데 중국으로 간 동포들은 자신들을 ‘조선족’이라 하고 소련 땅으로 간 동포들은 ‘고려인’이라 한다. 그렇다고 소련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고려시대에 이주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고려인’이라 했을까.
어떤 이는 ‘고려인’이라 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국명의 외국 표기가 ‘KOREA’이기 때문에 ‘고려인’이라고 한다고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나는 선뜻 수긍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일본, 또는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사는 우리 동포들도 ‘고려인’이라고 해야 옳지 않겠는가.
어쩌면 우리 동포들이 지어낸 호칭이 아니라 중국과 소련정부가 붙여준 호칭이 아닐지 모르겠다. 중국은 소수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족 자치주를 만들어준 반면, 소련은 소수민족을 동화시키려고 ‘고려인’이란 호칭을 붙여준 게 그대로 뿌리를 내리게 된 성싶다.
중국과 소련은 정 반대의 소수민족 정책을 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중국은 그대로 체재를 발전하고 있지만, 소련은 스스로 붕괴하여 소련연방에 종속됐던 15개 나라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 독립국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조선족’이란 어휘에는 ‘떼거리’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만 ‘고려인’이란 말에서는 ‘낱개’란 뜻이 느껴진다. ‘族’이란 글자와 ‘人’이란 글자에는 분명 그런 뉘앙스가 담겨져 있다.
2002년8월에는 중국의 한 귀퉁이인 흑룡강성 하얼빈에서 한국문인협회가 마련한 해외문학상 시상식과 해외문학심포지엄이 있었다. 지난해에는 같은 달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똑 같은 행사가 열렸다.
중국의 행사장에는 많은 조선족문인들이 참석했고, 조선족문인 대표는 연설도 우리말로 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우즈베키스탄의 행사장에는 고려문인 6명이 참석했고 러시아말로 연설을 하여 통역이 끼어들어야 했었다.
중국의 ‘조선족’은 지금도 우리말을 갈고 닦아 조선족 문학을 잘 가꾸고 있다. 조선어 신문과 조선어 문예지도 발간하고, 조선어 방송국도 있을 뿐 아니라 작가마자 조선어로 작품집ㅇ르 펴내고 있다. 그러나 1991년에 소련연방공화국에서 독립했다는 우즈베키스탄에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신문이나 잡지는 경영난으로 오래 전에 폐간되었고, 방송에서도 우리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소련의 스탈린이 ‘고려인’들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킨 뒤부터 ‘고려인’들은 우리말이아 우리글, 우리 풍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성공했던 셈이라고나 할까.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고려인’들이 어떻게 우리글을 알며, 글도 모르는 ‘고려인’들이 어떻게 우리 문학ㅇ르 가꿔가겠는가. 그것은 연목구이(緣木求魚)나 다를 바 없지 싶었다.
이름을 보아도 그렇다. ‘조선족’들은 거의 모두가 성 한 글자에 이름 두 글자인 우리식 이름을 지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보리스 박’, ‘나릿사 박’, ‘빅토르 최’처럼 아직까지 성은 우리식으로 쓰지만 이름은 러시아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이 건네준 명함을 보더라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조선족’들은 한자를 사용하고 있어 읽을 수 있었지만 ‘고려인’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니 읽을 수조차 없었다.
‘조선족’이나 ‘고려인’들 모두 공산권 국가에 터 잡아 살아왔기 때문에 일찍부터 북한과는 교류가 있었다. 중국이나 소련이 남한과 공식적으로 국교를 트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북한말의 어휘나 억양이 깊게 배어 있었다. 그로 미루어 통일 이후의 언어와 문자대책도 깊이 연구되어야 할 듯 싶었다.
한 많은 이민 1세들은 이미 거의 세상을 떴고, 2세 3세로 이어 내려오면서 민족의식이나 정체성이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옛 소련지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거의 모든 해외동포들의 공통적인 문제이이라. 우리나라의 해외동포를 위한 정책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낯선 이국땅에서 온갖 고난을 겪으며 목숨을 부지해온 그들의 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현지에 동화돼야 그들의 후손들이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권에 진입하여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어쩐지 아쉬움이 컸다.
‘조선족’이나 ‘고려인’, 심지어는 다른 종족까지도 한국으로 와서 큰돈을 벌고 싶다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말을 배우려는 열풍이 불고 있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타슈켄트에서는 한국어학원이 성업 중이고, 중고등학교에서는 한국어를 제 1외국어로 가르치고 있다는 가이드 김성기 군의 이야기를 듣고 다소 위안이 되었다.
한껏 기대를 안고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찾아가 ‘고려인’들의 삶의 편모를 들러보고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만 보듬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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