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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어느 토요일 날에

by 자한형 202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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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급히 시계를 보니 6시경이었다. 지난밤 내내 고민 거리였던 결혼식장에 가느냐 마느냐로 갈등을 거듭했던 것이 새삼스럽게 되뇌어졌다.. 지쳐서 곤히 자고 있는 집사람을 깨웠다. 도저히 그냥 안 가고 버텨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을 듯했다. 집안 친척들의 오랫동안의 구설에 오를 것이라는 것에 결론을 내리고 부랴부랴 열차표를 예매해 보라고 집사람에게 요청을 하였다.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조회를 하더니 표를 예약하게 되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울산으로 가는 것은 10시 20분발이었고 오는 것은 오후 4시 22분발이었다. 다행히 급박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말표를 예약할 수 있어 행운으로 여겼다. 외사촌 조카의 결혼식이었다. 부모님이 가신다고 해서 그냥 축의금만 전하고 말려고 작정을 했었는데 두고두고 한소리를 들을 것 같았기 때문에 속앓이를 했던 것이었다. 다시 큰아들 녀석의 방에 있는 데스크톱으로 가서 예약 상황을 다시 확인하고 그것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작은 아들녀석의 방에 데스크톱을 가동했으나 뭔가 잘못된 탓인지 전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쪽에 프린트가 연결되어 있기에 바로 프린트를 해갈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서울역으로 나갔다. 30분정도 일찍 나가서 표를 발권하고 울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서울역 매표소 아가씨에게 핸드폰의 찍혀있는 사진을 보여주니 바로 처리가 되었다. 고속열차가 발차하기 10분 전쯤에 탑승해서 느긋하게 이월하의 대하소설 강희대제 12권을 펼쳐보았다. 청조의 4대 임금 강희제에 대한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종국으로 치닫고 있는 내용이었다. 황자(황제의 아들)들 간의) 암투가 극심했고 2 황자 윤잉의 폐위가 두 번이나 있었다는 것에서 참으로 비운의 황자였다는 느낌이 있었다. 마지막 최후는 장엄한 것처럼 여겨졌다. 61년을 제위 한 황제였었다. 열차에 탄지 5분쯤 지나고 나자 옆좌석 창가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즉석식품과 음료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먹고 있었다. 정확하게 2시간 15분후에 울산(통도사) 역에(통도사) 도착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울산과 통도사는 제법 거리가 있을 텐데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 경부선의 경유지였다. 본래 노선이 다를 것으로 예상을 했었는데 그것은 오해였다. 역에 도착해서는 당연히 택시를 타야 한다고 여겨 곧바로 택시를 탔다. 상황을 보니 여러대의 버스가 길게 늘어서 있고 택시는 대기 중인 것이어서 줄을 쭉 늘어서 있었다. 정보의 부재였다. 택시기사님이 여러 가지 울산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다. 무척이나 잘사는 도시라는 등 자부심이 대단했다. 현대가와 공업단지 얘기도 해주었다. 100만이상의 거대도시로 화해 있는 울산의 위상이 실감 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본인자신은 서울 사람인데 이곳에 와서 산다고 했다. 아들은 서울에 있고 부인은 부산에 있어 세 가족이 각각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한다고 했다. 외곽도로를 신나게 달려 MBC컨벤션센터로 갔다. 남쪽이어서 그런지 벌써 봄기운이 완연해 보였다. 새싹이 파릇파릇해 보였고 온통 대지가 약동하는 듯 여겨졌다. 115분에 도착해서 그곳까지 가는데 20분 내지 30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시경계지역에서 시내요금으로 변경을 했다. 문제는 요금이었다. 거금 이만원을 초과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부랴부랴 식장안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식은 시작되고 있었다. 식장에 앉아있던 부모님께 문의를 했더니 예상대로 축의금은 전달했다고 했다. 식권을 한 장 받아 식당으로 갔다. 뷔폐식으로 되어 있고 무척이나 넓었다. 식장에서의 특이한 부분은 신랑이 게스트의 축가에 덧붙여 주인공으로서 본인이 직접 축가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국내 굴지의 S전자 사내 커플이었다. 모두들 화기애애한 가운데 두 신혼부부의 앞날을 축하해 주었다. 신부가 두 살 연상이라고 했다. 신부의 아버지는 어느 독일계 회사의 주요 직책에 있다고 하였다. 외가쪽 친인척이 총출동한 듯 여겨졌다. 식사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되었다. 부산의 매형께서 역까지 태워준다고 해서 자가용에 타게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이 되었다. 어떻게 내비게이션을 작동해야 하는데 KTX 울산역이라는 것이 검색이 되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는 등 계속해서 길을 물어가며 가다 보니 제시간에 도착을 하지 못했다. 역에 도착해서 플랫홈으로 들어가니 고속열차는 출발한 뒤였다. 매표소에 가서 문의 하니 다음 차는40여분 후였고 반환하면서 10%정도의 수수료를 차감당하는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7시 경이 되었다. 올라오는 길에는 이월하(二月河)의 역사 대하소설 옹정 황제를 읽었다. 강희제의 아들로 청조왕조의 기틀을 세우는데 일조한 황제였다. 북경의 대표적인 명물이라할 수 있는 자금성(紫禁城)의 약도가 책앞머리에 그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왕궁과는 그 규모면에서 대차가 났다. 여의도 면적의 몇배라고 했다. 건륭황제까지 해서 3부작이었고 총 40권이었다. 하루종일을 허비해버린 토요일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 듯했다. 부부가 같이 왔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25년전 쯤에 있었던 결혼식장이 회상되기도 했다. 4반세기의 결혼생활이 지나왔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세월을 보낸 듯해 보이기도 했다. 아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제는 손자를 볼 때도 얼마남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으로 유수같은 세월이었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결혼생활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다행히 휴일근무 중이었던 집사람과 함께 귀가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었다. 황금같은 휴일 하루가 이렇게 흘러갔다. 꽃피는 춘삼월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하루를 허비한 결혼식장에의 참석이었다. 연일 이어지는 결혼식 사태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지만 그런대로 유익한 하루였던 것 같았다. 인륜지대사로 얘기되는 결혼이 요즘은 무척이나 형식적이고 도식적인 절차와 의례로 치러지는 듯하다. 소중한 휴일을 허비했다는 아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하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느낌도 가질 수 있었다. 오늘 결혼한 조카부부가 원앙(鴛鴦)처럼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길 간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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